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9일 천안함 침몰을 '공격'이라고 규정하고 비난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공격 주체는 적시하지 않은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안보리는 이날 오전 9시 40분께 전체회의를 소집해 전날 'P5(상임이사국) + 2(한국.일본)'이 잠정 합의한 문안을 9분 만에 토론 없이 통과시켰다.
정부의 애초 목표였던 '안보리 결의' 보다 낮은 수준인 의장성명은 북한 책임을 명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입장이 반영된 조항까지 들어갔다. (☞관련 기사 : 천안함 외교 '물거품'…'북한' 명시없는 안보리 의장성명)
이에 따라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공격에 의한 것임을 국제사회에서 공인받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유엔 외교는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CNN>, <로이터> 등 외신들도 북한에 대한 언급이 빠졌음을 거론했다.
그러나 정부는 '전체적인 맥락으로 봐야 한다'며 의장성명의 내용을 과대 해석함으로써 '실패한 외교'라는 비난을 피하는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북한' 빠졌는데 "북한의 천안함 공격 규탄했다"?
정부는 이날 외교통상부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발표해 "안보리가 천안함 침몰의 책임이 북한에 있다는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에 비춰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북한의 천안함 공격을 규탄하는 의장성명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북한은 앞으로 한국에 대한 어떠한 도발도 용인되지 않는다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입장을 엄중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며 북한에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저해하는 도발과 행동을 하지 말고 천안함 사태에 관해 분명하고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 사과하고 국제사회 앞에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하라고 촉구했다.
정부는 안보리 의장성명에 대해 "국제사회가 단합된 목소리로 북한의 천안함 공격을 규탄하고 한국에 대한 추가적 도발 방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박인국 유엔 주재 한국 대사는 의장성명이 채택된 직후 안보리 기자회견장에서 "이 사건에 대해 국제사회의 분명한 메시지가 북한에 전달된 것으로 본다"며 "환영한다"고 말했다.
박 대사는 "안보리가 이 사건을 15개 이사국 만장일치로 통과시킴으로써 북한의 추가 도발이나 공격에 대한 분명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박 대사는 이어 "의장성명 2항과 5항, 7·8·10 항을 보면 이번 공격이 북한의 책임이라는 점이 너무나도 분명하게 나와 있다"면서 공격 주체로서 북한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반박했다.
그는 "성명에서 이번 사태의 성격을 '공격'으로 단정하고, 그에 대해 분명하게 '규탄'을 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면서 "또 정전협정 체제가 준수돼야 한다는 점이 국제사회의 중요한 이슈로 부각됐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대사도 "외교적 승리"…각자 유리하게 해석
그러나 의장성명이 공격의 주체로 북한을 명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천안함 공격을 규탄하는 의장성명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아전인수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지난달 26일 채택된 G8(선진 8개국) 공동성명은 북한에 직접적으로 한국에 대한 다른 공격이나 위협적인 적대 행위를 자제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이에 비춰 보아도 이번 안보리 성명은 상대적으로 후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북한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고 해석하는 것은 '자화자찬'이라는 지적이다.
이같은 정부의 해석과 평가가 '꿈보다 해몽'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의장성명에 대한 북한의 일차적 반응이 비교적 차분했다는 데에서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신선호 유엔 주재 북한 대사는 이날 안보리 회의가 끝난 뒤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안보리는 이 사건의 결론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하는데 실패했다"고 비난하면서도 6자회담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 노력과 평화협정을 위한 노력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신 대사는 이어 안보리의 의장성명에 대해 "이는 우리의 외교적 승리"라고 말한 뒤 "우리는 사건의 초기부터 우리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혔었다"고 강조했다.
이는 과거 안보리에서 북한에 불리한 문건이 나왔을 때 북한 대사가 회의장에 직접 나와 규탄 성명을 낭독하며 강력 반발했던 것과 다른 모습이었다. 신 대사는 이어지는 발언에서도 평화협정과 6자회담을 강조함으로써 안보리 의장성명에 크게 개의치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지난달 15일 기자회견에서 '군사적 보복' 등의 발언을 했던 신 대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이런 강경한 대응 발언을 일체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데이비드 강 서던캘리포니아대(USC) 한국학연구소장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이번 의장성명이 북한을 직접적으로 비난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북한은 이번 결과를 '승리'로 간주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반면 보수 성향인 김창준 전 미국 연방 하원의원은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너무 아쉽고 허탈하다. 전혀 얻은 게 없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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