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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천안함 북풍' 타고 한미FTA가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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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천안함 북풍' 타고 한미FTA가 오나

[기자의 눈] 이명박의 길, 마잉주의 길

6.2 지방선거가 한나라당의 참패로 귀결되던 3일 새벽, 예사롭지 않은 기사 두 개가 눈길을 끌었다.

하나는 미국 뉴욕 코리아소사이어티의 한미 FTA 포럼을 다룬 워싱턴발 <연합뉴스> 기사. 그 자리에 참석한 한덕수 주미대사는 이런 말을 했다. '최근 천안함 침몰 사건을 계기로 한미 양국간 굳건한 동맹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한미 FTA는 이런 광범위한 동맹 강화 전략의 중요한 근간이다.'

한 대사의 이 말은 만약 이명박 정부가 한미 FTA 국회 비준을 밀어붙일 경우 자신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놓을 논리의 일단을 보여줬다. FTA가 한미동맹 강화의 수단이라는 말은 노무현 정부도 했었는데, 이명박 정부는 거기에 천안함 사건이라는 새 요소를 덧붙인 것이다.

또 하나는 미국 상원이 한국·일본·중국 등에 모든 연령대의 미국산 쇠고기 및 부산물을 제한 없이 수입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는 기사였다. 이 역시도 한미 FTA와 관련된 소식이었다. FTA가 미 의회를 통과하려면 한국이 쇠고기와 자동차 문제에서 추가 양보를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미 상원은 그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두 기사를 연결해 보면 이렇게 정리된다.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한미동맹의 '강화'가 더 필요해졌다. 한미동맹을 강화하려면 FTA를 통과시켜야 한다. 그런데 미 의회는 FTA 비준의 선결 조건으로 쇠고기·자동차 분야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천안함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우리는 미국의 요구를 들어줘서라도 FTA를 통과시켜야 한다.

민주당의 최문순·홍영표 의원은 지난달 17일 정부가 천안함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전폭적인 협력을 이끌어내는 대가로 FTA에서 양보를 하려고 한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천안함 때문에 FTA를 비준해야 한다는 한덕수 대사의 주장은 그런 의혹을 증폭시킨다. 천안함 때문에 쇠고기를 양보하고, 천안함 때문에 FTA를 비준해야 한다는 것이다. 천안함을 타고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겠다는 정부의 희망은 끝내 좌초됐지만, 천안함은 이렇게 다시 한미 FTA라는 항구로 뱃머리를 돌렸다.

마잉주의 경우

미국산 쇠고기와 지방선거 하면 떠오르는 나라가 대만이다. 대만의 마잉주(馬英九) 정부는 작년 10월 30개월령 미만의 뼈 있는 쇠고기를 수입하겠다는 의정서를 미국과 맺었다가 여론의 호된 역풍을 맞았다.

대만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완화는 결국 작년 12월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국민당이 패하는데 중요한 요인이 됐다. 17개 현(縣)에서 실시된 현장(縣長. 도지사격) 선거에서 국민당이 가지고 있던 자리가 14석에서 12석으로 줄었다. 대만 언론들은 그걸 '참패'라고 불렀다.

그러자 마잉주 총통은 곧바로 국민들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지방선거 결과 발표 직후 직접 기자회견에 나와 "철저히 반성하는 엄숙한 태도로서 이번 선거가 전하는 경고를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지방선거 패배 이후 국민당이 곧바로 착수한 작업이 미국과의 쇠고기 수입 합의를 뒤집는 것이었다. 대만 입법원(의회)은 올 1월 식품위생관리법을 개정해 3개월 전 미국과 맺은 의정서를 사실상 무효화시켰다. 다수당인 여당이 스스로 개정안을 만들어 통과시켰다.

요컨대 마잉주 총통은 2008년 총선과 대선 압승에 도취되어 민심에 거스르는 결정을 했다가 지방선거로 철퇴를 맞고 다시 민심을 따르는 쪽으로 궤도를 수정한 것이다.

▲ 작년 12월 지방선거 패배 직후 기자회견에서 머리를 숙이는 국민당 지도보. 가운데 마이크를 든 이가 마잉주 총통 ⓒ연합뉴스

이명박의 경우

대만 국민당은 1949년 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해 타이완섬으로 건너와 대만 정부를 수립했다. 그 후 50여년간 여당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2000년 대선에서 천수이볜의 민진당에 패해 8년간 정권을 내줬다가 2008년 총선·대선 압승으로 정권을 되찾았다.

50년을 지배해 온 구(舊) 집권 세력이 신진 개혁 세력에 10년 쯤 정권을 빼앗겼다가 다시 찾아갔다는 점에서 대만 정치와 한국 정치는 닮은 점이 있다. 국민당이 총선에서 압승하고, 마잉주가 '경제살리기'를 내세워 총통 선거에서 큰 표차로 당선되는 과정은 너무도 비슷했다. 총선-대선 순서만 달랐다.

그처럼 한국과 대만의 유사성을 발견한 이들이 작년 대만 지방선거를 보면서 내놨던 전망이 하나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대선과 총선의 압승에 취해 마이웨이 정치를 하다가는 대만처럼 지방선거에서 패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망은 이번 선거에서 적중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지방선거 패배 직후 쇠고기 문제에서 미국에 양보를 해야 한다는 논리를 설파했다. 현장 자리 2개를 잃은 '참패'를 당하고 정신을 차린 마잉주 정부와는 정반대의 길을 가려는 듯하다.

'세종시'와 '4대강'은 그대로 추진한다는 한나라당의 요란한 구호 속에 FTA를 위한 프로파간다가 조용히 준비되고 있는 인상이다. "지방선거 이후 정부는 다시 경제 회복과 지속 성장에 집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심상치 않게 들리는 이유다. 한국 정치는 이제 드디어 대만과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것인가.

그렇게 보면 북풍 몰이도 아직 시효가 끝나지 않은 셈이다. 북풍이 계속 불어야 '천안함 때문에 FTA를 해야 한다'는 논리가 먹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가 명확히 보여주듯 북풍에는 역풍만 따를 뿐이다.

이념으로 보나 정세로 보나 3차 남북 정상회담 같은 일은 할 수 없는 이명박 정부가 '역사적 업적'을 남기기 위해 쇠고기·자동차를 양보해서라도 FTA를 추진하려고 한다면 제2, 제3의 촛불이 기다릴 뿐이다. 세종시와 4대강 말고도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일이 또 하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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