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당국은 우선 대북 심리전을 위해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실시할 계획이었던 전단 살포를 당분간 보류하기로 했다. 전단 살포는 지난 24일 대북 조치 발표 당일 저녁부터 실시될 예정이었지만 기상 여건을 이유로 그간 연기됐었는데, 이제는 사실상 무기한 보류하기로 한 것이다.
군 당국은 또 이르면 6월 첫째 주에 시작할 예정이었던 확성기 방송도 지연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장비 수리에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 하지만 군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설치하고 실제 확성기 방송을 실시할 때도 상황 판단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군은 24일부터 시작한 FM '자유의 소리'방송은 계속하기로 했다. 그러나 FM 방송의 주요 전달 매체가 확성기이기 때문에 확성기 없는 대북 방송의 효과는 미미할 전망이다. 심리전의 또 다른 매체인 전광판도 현재 가동되지 않고 있다.
개성공단에 대해서도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주 국민들의 신변 안전을 고려해 공단의 평일 체류 인원을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그러나 통일부는 남측 인원의 완전 철수 등 추가 조치는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통일부는 또 위탁가공을 통해 북한에서 생산된 완제품의 국내 반입도 완전히 차단하지 않고 사안별로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정부는 금주 중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에게 서한을 발송하는 형식으로 천안함 사건에 관한 안보리 회부 절차에 공식 착수할 예정이다. 그러나 새로운 추가 제재 조치를 담기보다 북한을 규탄하고 사과 및 재발 방치를 촉구하는 일반 결의안이 채택되는 쪽으로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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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24일 오후 인민군 전선중부지구사령관의 '공개경고장'을 발표해 심리전 방송을 재개하면 확성기를 조준 사격해 격파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어 남북 장성급회담 북측 대표단장은 26일 심리전 재개와 개성공단 존폐를 사실상 연계시켰다. 인민군 총참모부도 27일 같은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군사분계선 전 지역에서의 군사 충돌과 개성공단의 폐쇄가 우려됐던 심리전 재개를 잠정 연기한 것은 우선 지방선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천안함 사건이 위력을 발휘함으로써 선거 판세가 여당에 유리한 쪽으로 기운 마당에 더 이상의 '북풍'은 필요치 않고, 오히려 역풍이 불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여기에는 확성기 방송 때문에 휴전선에서 총격사건이라도 일어난다면 그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24일 대북 조치 발표 후 환율이 오르고 증시가 폭락했던 현상이 재연된다면 선거 판세가 요동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가 26일 돌연 천안함 정쟁을 중단하자고 나선 것은 그러한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됐다.
둘째, 24~25일 미중 전략경제대화, 26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방한, 28일 한중 정상회담, 29~30일 한중일 정상회의 등 외교 무대에서 한국에 무조건 유리하지만은 않은 국제사회의 기류가 포착됐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특히 중국의 입장이 한국에 유리한 쪽으로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이명박 대통령을 사흘 연속 만났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충돌을 피해야 한다"는 말만 남기고 돌아갔다. <AFP> <AP> <로이터> 등 주요 외신들은 일제히 한국이 중국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일부 언론들은 최근 중국이 남·북·미·중이 함께 참여하는 천안함 공동 조사를 제안했다고 보도했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한국 정부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조사 국면을 끝내고 제재 국면으로 가겠다는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뿐더러 20일 조사 발표가 완전한 것이 아님을 시인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단 보도를 부인했지만, 북한이 관영 매체를 통해 중국의 공동 조사 제안 사실을 공개하고 나선다면 일이 꼬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중국은 한국의 손을 결코 들어주지 않고 있다.
미국 역시 겉으로는 한국 정부를 전폭 지지하는 것 같지만 속을 뜯어보면 꼭 그러지만도 않다.
미국은 북한을 제재하기 위한 독자적인 조치와 한미동맹 차원의 조치를 언급하고 있고, 곧 실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유엔 차원의 대응에 대해 미국은 '한국이 안보리에 회부하면 지지하겠다'는 말만 할 뿐, 주도적으로 나서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고 있다. 또 천안함 침몰과 북한의 관계에 대해서도 미국은 '북한이 저질렀다'라는 표현을 쓰는 대신 '북한의 소행이라는 한국의 조사 결과를 지지한다'는 간접화법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가 대북 조치 발표 1주일도 못돼 머뭇거리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같은 국내외적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밖에, 심리전을 자제해 달라는 개성공단 업주들의 요구도 정부의 발걸음을 더디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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