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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드라마와 '먹튀' 후보의 공통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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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드라마와 '먹튀' 후보의 공통점은?

[모 피디의 그게 모!] 드라마와 선거의 관계

스물 일곱 모 - 선거

선거가 엔터테인먼트는 아니다. 하지만 둘 다 대중성을 구한다는 측면에서 의외로 비슷한 점이 많다. 특히 드라마와 선거가 보이는 흡사한 측면들은 꽤 흥미롭다.

먼저 드라마의 전략. 일단은 '좋은 드라마'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 그를 바탕으로 짜임새 있는 대본을 만들어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을 모아 연출을 잘 해야 한다. 지극히 당연하다. 기본 중의 기본이므로 결국 이 지점에서 드라마의 작품성이 갈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것이 시청률, 즉 대중성과의 관계가 크지는 않다. 좋은 드라마를 왜 안 보냐고 애타게 외쳐봤자 상대 방송사의 프로그램이 더 재미있으면 속절없는 외침이 될 뿐이다.

선거도 비슷하다. 기본은 구체적인 정책과 그 바탕이 되는 원칙과 신념일 것이다. 이른바 후보의 '콘텐츠'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그 정치인의 가치와 품격이 갈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것이 당선과 큰 상관 관계가 있지는 않다. 대중의 인기와 선택은 안타깝지만 정치인의 콘텐츠와 비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정치인의 대중성, 혹은 당선을 결정하는 것일까.

다시, 드라마의 전략. 드라마에서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스타 캐스팅이다. 어떤 배우를 기용하느냐에 따라 일본과 중국에 선판매까지 해가며 충분한 제작비로 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 홍보 효과도 만점이다. 결국 대중은 '매력적인 사람'을 보고 싶어 한다. 스토리도 사람의 매력을 배가할 때 그 파괴력이 더해진다. 스타는 작가, 연출, 심지어 스스로의 연기력까지 넘어서는 무시무시한 존재다.

선거라고 다를까. 악명이 무명보다 낫다. 아무리 열심히 유세를 해도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투표 부스에서 처음 보는 이름들을 꽤 많이 대면하게 된다. 아는 이름 중에서 누구를 가장 매력적으로 느꼈는가에 따라 표심이 행사된다. 여기서 후보의 매력이란 뽑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다. 걸어온 길과 주장하는 바가 나와 맞아서 뽑으면 제일 좋겠지만 그저 생긴 게 마음에 들어서, 대세인 것 같아서 뽑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뭔지 모르지만 마음에 들고 대세인 것 같다는 느낌을 유권자에게 주는 것이, 좋건 나쁘건 저 사람이 영향력 있는 스타인가 보다 싶은 생각을 심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유명하다는데, 스타라는데 한 방이 있겠지 뭐, 싶은 생각이 가장 중요한 검증 과정이 되어버린다.

대본 좋고 스타 있어도 충분한 자본과 우수한 스태프의 기술력이 밑받침이 되어야 한다. 선거 역시 마찬가지다. 이건 마치 '백조의 헤엄'과 같아서, 우아한 백조가 수면 밑에서 쉴 새 없이 다리를 움직이듯 우아한 스타와 후보의 아래에서 탄탄한 지원을 해주는 자금력과 조직력이 필수적이다.
▲ 업계에서 막장 드라마의 공식은 이제 슬슬 밀려나는 분위기다. 그 조차 너무 지겹고 시대에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드라마보다 훨씬 긴 시간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선거는 어떨까? '먹튀'들이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익숙한 공식들이 슬슬 깨질 때가 되지 않았을까? ⓒ뉴시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좋은 대본과 유명 스타, 충분한 제작비가 있다고 해서 늘 시청률에 승리하지는 못한다. 연속극 시장이 특히 그러하다. 소위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들의 시청률은 늘 고공행진이다. 사람들은 이런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이래서 드라마는 보면 안 된다고, 괜히 봤다고, 후회할 줄 알면서 또 봤다고 말하곤 한다. 뜯어보면 말도 안 되는 내용이라고 욕은 해도, 사실 대강 틀어놓고 흘려보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멀끔하게 생긴 사람들이 격하게 사랑하고 싸우고 소리 지르니 나쁘지 않은 구경 거리 아닌가. TV라는 게 굳이 꼭 집중해서 감탄하며 볼 필요는 없지 않은가. 대강 내용 연결되는 선에서 괜찮은 볼거리가 나온다면 선택하기 나쁘지 않은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미니시리즈처럼 울고 웃으며 뜨겁게 따라붙어 열광하기에 좋은 선거라면 지방 선거는 연속극과 같다. 누가 뽑힌다고 해서 어떻게 나의 삶이 바뀔지 별로 실감이 나지 않으며 그냥 대강 들어봄직한 편안하고 익숙한 말을 하는 것 같아 뽑아주면 그만이다. 그래서 후보들이 아무리 애달프게 좋은 드라마, 아니 좋은 후보의 당위성을 외쳐도 쉽게 외면당한다. 아니, 재미있는 드라마, 혹은 매력적인 후보를 외쳐도 그것마저 외면당하기 쉽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처럼,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반사적인 선택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익숙한 조건과 익숙한 반사 작용. 이번 선거에도 들어봄직한 익숙한 '조건'들이 대폭 포진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 따라 익숙한 반응이 많이 따라올 것이다. 한 번의 승리만을, 그 시점의 대중성만을 놓고 봤을 때는 성공적인 전략이다. 우리는 이런 전략을 속된 말로 '먹튀'라고 부른다. 먹고 튄다. 뒷 일 생각 안 하고 순간의 욕심만 채운 다음에 도망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욕한다. 내 이럴 줄 알았다고. 후회할 줄 알면서도 또 봤다고. 사람들이 '먹튀' 드라마를 보고 '먹튀' 후보를 뽑는 이유는 대충 비슷해 보인다. 익숙해서 왠지 마음이 편할 뿐 아니라 덤으로 욕하는 재미도 있다. 하지만 시청자가, 혹은 유권자가 그 '먹튀'에게 저당 잡히는 시간의 길이는 다르다. 드라마는 그 드라마를 시청하는 시간 만큼이면 되지만 선거는 다음 선거까지 유권자의 인생이 저당 잡히게 된다. '먹튀'의 또 다른 특징은 자기 생각만 하기 때문에 공무를 보는 동안 시민과의 소통은 닫아버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간 개선의 여지도 요원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순간의 익숙함과 자극에 따라 '먹튀'들에게 대표자가 아닌 '벼슬아치'의 권리를 안겨주고 만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먹튀'나 '벼슬아치'가 아니라 대표자다. 우리가 보고 싶은 건 가슴을 뛰게 하고 인생을 반추하며 삶을 기대하게 하는 드라마다. 그리고 드라마 업계에서 막장 드라마의 공식은 이제 슬슬 밀려나는 분위기다. 그 조차 너무 지겹고 시대에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막장 드라마의 공식을 밀어내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드라마가 그렇지 뭐'라는 냉소에 지지 않으려는 시청자와 제작자 간의 신뢰였다. 그렇다면 드라마보다 훨씬 긴 시간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선거는 어떨까? '먹튀'들이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익숙한 공식들이 슬슬 깨질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제 냉소보다는 신뢰가 낫다는 생각을 가질 시점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훨씬 재미있고 통쾌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 욕하는 재미 말고 개운한 재미를 이번 선거를 통해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후회 없는 드라마를 보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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