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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한일관계: 마찰을 넘어 '진화'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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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한일관계: 마찰을 넘어 '진화'를 향해

[해외 시각] 한국, 일본의 '이용가치'를 보라

한일관계의 현재: 거듭되는 마찰

최근 1년 간 한일관계가 마찰로 점철되고 있다. 1998년 10월 오부치 게이조 수상과 김대중 대통령 사이에 발표된 '한일 파트너십 선언'을 전성기로, 그 뒤의 한일관계는 '진화'하기는커녕 '후퇴'하고 있다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이 점에서 한일관계의 '잃어버린 14년'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노무현 정권은 집권 후반기에 영토문제를 시작으로 '외교전쟁'을 불사하겠다며 대일 강경정책으로 치달았지만, 그 후 등장한 이명박 정권은 '실용주의' 외교를 내걸었고, 이에 더해 일본에서도 비교적 리버럴한 역사인식을 가진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정권이 등장함으로써, 한일관계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지속될 것으로 기대되었다.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보란 듯이 무산되었다. 이명박 정권 출범 후 한일 통화스와프 협정 이외에 한일관계에는 가시적인 성과가 없었고, 한일 FTA(자유무역협정) 교섭도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 또한 일본정부의 '다케시마(독도)는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라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 원인이 되어 '정기적'으로 마찰이 반복되고 있다.
한일청구권에 대한 두 개의 판결,그리고 역사문제의 '재부상'

'정기적'인 마찰을 점화시킨 것이 2011년 8월의 한국헌법재판소에 의한 판결이었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범위를 둘러싸고, 이미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주장하는 일본정부와, 종군위안부, 사하린 주재 조선인, 한국인 피폭자 문제 등은 협정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한국정부 사이에는 이견이 존재했다. 판결에서는 한국정부가 일본정부와의 이견이 있음에도 교섭을 방기하는 행위는 '부작위(不作為)'로서 헌법위반이라고 규정하고, 한국정부에 대해 일본정부와의 협상에 임하도록 했다.

9월에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이루어지는 수요집회의 주최 측인 '정대협(한국정신대책문제협의회)'이 대사관 앞에 '종군위안부기념비'인 소녀상을 건립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정부는 일본정부의 항의를 사실상 '묵살'했다. 이처럼 종군위안부문제가 재차 주목받으면서, 12월 교토에서 있은 한일정상회담에서는 노다 수상이 기념비 철거를 요구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이에 대한 반론으로서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일본 측에 요구함으로서, 회담의 시간은 허비되고 있었고, 분위기 또한 험악해지기도 했다.

이에 더해, 2012년 5월 한국의 최고재판소가 '획기적'인 판결을 내렸다.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해석은 한국병합이 불법이자 무효라는 한국의 공식적인 역사관과 충돌하는 것이며, 따라서 한국인 징용자에 대한 개인청구권 문제가 남기 때문에 일본기업에 미지불 임금에 대한 지불의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사법의 입장에서 한일 간 역사관의 차이에 깊이 관여하고, 이를 근거로 한일수교에 의한 정치적 문제해결에 사실상 재론을 강제한 것이다. 이 논리를 관철할 경우, 필연적으로 한일기본조약을 파기하고 재협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논리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역사문제의 '재부상'은 안전보장 면에서도 한일협력에 급제동을 걸고 있다. 원자력기본법개정을 이유로 일본이 재무장을 노리고 있다는 보도가 대대적으로 확산되었고, 집단적 자위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헌법 해석을 하고자 하는 노다 수상의 발언이 소개되어, 일본의 '군국주의화'에 대한 경계감이 크로즈 업 되었다. 그리고 당초에는 전혀 문제없이 체결될 것으로 보였던 GSOMIA(한일 포괄적 정보보호협정)도 신중론이 우세한 국내여론을 배경으로 체결자체가 직전에 무기한 연기되었다. '역사를 반성하지 않은 채'로 '군사대국화'를 지향하는 일본과 '안전보장협력'을 하는 것은, 일본에 침략 받았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신중을 기해야만 한다는 것이 신중론의 기본 논리이다.
갈등의 귀결, 대통령의 "독도"상륙

이러한 갈등의 귀결은 2012년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상륙이었다. 그리고 천황의 한국방문을 둘러싸고 이명박 대통령의 적절치 않은 발언이 그 뒤를 이으면서, 역사문제를 둘러싼 대일 '강경'자세가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이명박 정권의 입장에서 보면, 종군위안부문제 등 역사문제에 대한 일본의 소극적인 대응에 "참을 만큼 참았고", 이에 대한 '충격요법'으로서 지금까지 암묵적으로 터부시 되어왔던 "독도"문제에 행동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노무현 정권 이후, 한국에서는 1905년 "독도"의 일본편입을 일본에 의한 한반도 침략의 일환이었다는 점에서 영토문제가 '역사문제화'되어 왔지만, 일본에서는 영토문제와 역사문제는 별도의 문제로서 인식되어 있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에 의한 "독도"방문이 일본정부가 종군위안부문제에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강제하는 효과를 이끌어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지가 많다. 오히려 그 간 일본 측에 뿌리 깊게 확대되어 온 견해, 즉 한국은 별개의 문제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역사문제를 끄집어낸다는 논리를 강화시켜버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진정한 역사문제 해결에는 마이너스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구조변동기에 직면하고 있는 한일관계

한국의 역대정권은 대일정책에 관해 처음에는 유화적인 자세를 보이다가도, 기대했던 성과를 올리지 못할 경우 일본에 쉽게 실망하고,정권 말기 레임덕 상태에서는 국내 강경여론을 억제하지 못한 채, 정권의 재창출을 위해 강경자세를 역으로 이용하고자 한다.노무현 정권도 이명박 정권도 이러한 사이클로 한일관계를 이끌어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이라는 선택을, 이러한 한국 국내정치 사이클의 한 국면으로서만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한국의 역대 대통령은 퇴진하기 전후에 암살(박정희) 또는 체포(전두화, 노태우)당하거자, 자살(노무현)을 하는 했던 사실, 설령 본인이 체포되지 않았다 해도 최측이나 친인척이 체포(전두환, 노태우)되었던 사실을 상기하면서, 이명박 대통령도 퇴임 후 체포되지 않기 위해 '보신(保身)의 방편으로서 "독도"방문이라는 실적을 남기려 했다는, 다소 '황당무개'한 논의들 마저 유포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논의들 안에는 작금의 한일갈등을 이명박 대통령 개인의 문제로 귀착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내제해 있다.

하지만 한일관계의 현실을 이러한 개인적인 동기, 또는 한국 국내정치가 배태한 사이클의 한 국면으로만 이해해도 좋은 것일까. 필자는 이러한 설명이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이런식으로 설명해서도 않된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행동의 배후에 존재하는 한일관계의 현재적 모습을 좀더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 한일관계는 탈냉전 이후부터, 특히나 최근 수년 사이에, 눈부신 변용을 하고 있다.현재는 바로 이러한 구조 변동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약 25년 간의 한일관계의 구조변동의 징후로서는, 필자는 한일관계에 대등화, 균질화, 다양·다층화, 쌍방향적 균형화, 공공재화 등이 나타났다고 본다. 각각의 내용을 살펴보자.

① 한일관계의 대등화
: 한국의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일본 경제력의 상대적 쇄퇴로 인해, 경제력의 측면에서 한일 간의 격차가 좁혀졌을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한국의 존재감이 현저하게 증대하고 있고, 외교력에 있어서도 한일 양국이 근접하고 있다.

② 한일관계의 균질화
: 한국의 지속적인 발전에 의한 선진국화와 정치적 민주화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한일 양국이 시민민주주의라는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③ 한일관계의 다양·다층화
: 냉전의 종식과 한국의 민주화, 체제경쟁의 '승리'에 동반해, 한일 간에 시민사회의 자유로운 교류가 전개되었다. 특히 한국의 글로벌 경쟁력의 비약적인 향상에 발맞춰, 한일 간에는 정부간 관계, 경제계 간의 관계 만이 아니라, 시민 사회 관계를 포함한 다층적인 관계, 나아가 정치경제를 넘어 문화까지 포괄하는 다양한 영역에 까지 미치는 관계가 구축되어 있다.

④ 한일관계의 쌍방향적 균등화
: 과거에는 일본에 대한 한국사회의 높은 관심에 비해, 한국에 대한 일본사회의 관심은 저조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글로벌화에 따른 대일관심의 상대적 저하, 역으로 일본사회의 한국에 대한 관심의 증폭은, 양자 간의 상호관심의 균질화를 초래하고 있다. 또한 한국사회에서 대일관이, 글로벌화 속에서 '단련되어',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2국 간 관계와 비교라는 시점에서 한일관계를 생각하게 되었다.

⑤ 한일관계의 공공재화
: 한일 월드컵 등, 국제적 행사의 공동개최나 대외원조에서의 협력 등으로 대표되 듯, 다국 간 협의의 틀 속에서 한일의 이익이 근접하고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한일이 협력함으로서 보다 국제적인 공공재를 제공할 수 있는 관계라는 인식이 대두되고 있다.

한일 균형화 속에 증대하는 마찰의 배경

그렇다면 한일마찰의 증대라는 현상을 이러한 구조변용 속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한일은 더욱 더 대등화,균등화, 균형화하고 있고,국제정치 안에서 가장 비슷한 위상과 파워를 가진 인접국가가 되고 있다.따라서 바람직한 국제환경에 관해, 한일은 이해를 같이하는 경향이 있다.한일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공유하고 있고,이로 인한 이익을 최대화하고 코스트를 최소화하기 위한 협력이 필요하다. 

또한 대북정책과 대중정책에 관해서도,다른 나라들과 비교해서도 상대적으로 유사한 정책선택을 하기쉽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북한이 대중의존을 심화시켜가면서 체제유지를 위해 핵개발을 지속하는 것 보다는,한국주도의 한반도 통일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그리고 북일 수교도 일본외교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활용할 수 있다.북일수교와 남북경제협력이 밀접한 연계 하에 전개된다면,한국에게도 바람직한 것이 될 것이다. 

대중관계의 경우 경제관계가 한층 더 깊어지고 있고,대북관계에서도 중국의 영향력 행사에 기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대응에서 한국이 일본과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에는 일정정도의 제약이 존재한다.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한일 양국에게 유익한 형태로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책임있는 대국으로서의 역할을 중국에게 요구할 필요가 있으며,이를 위한 대중 영향력은 한일 양국이 협력할 때만이 확보가 가능하다.게다가 한일관계의 다양화와 다층화의 진전 등 한일관계의 공공재화의 경험은 이러한 협력에 대한 인센티브를 보다 견고한 것으로 할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자동적으로 한일 간의 협력관계가 도래하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공통이익이 한정되어 배타적으로 될 수 밖에 없는 제로섬적인 한일관계가 되어버릴 가능성도 없지않다.경쟁적인 관계라는 점만이 중시될  경우,설령 상호이익이 발생한다고 해도 어느 한 쪽이 보다 많은 이익을 분배받는다는 식의 상대적 이익의 관점에서 상호격차가 확대되는 것에 대한 우려만 커진다. 이러한 생각은 곧 협력에 대한 거부로 이어진다. 협력에 의해 얻게 될 이익을 한층 더 효과적으로 증대시킬 수 있고,그것의 수혜가 상호배타적인 것이 아니며, 우월한 입장에 있는 일방이 상호 간의 격차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 감내할 경우에만 비로소 협력이라는 선택을 취하기 쉽다.
상호신뢰관계의 구축이 불가결

이를 위해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 최소한의 상호신뢰관계의 유무이다. 상대를 신뢰할 수 없고,상대방이 언제라도 선수를 칠 수 있다는 생각 속에 머물러 있으면 협력이라는 선택은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GSOMIA나 ACSA(물품역무상호제공협정)은 대미동맹관계,대북정책, 대중정책 등과 관련한 상호이익을 확장시킬 수 있는 한일협력 분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한국의 시각에서 보면 이러한 이익보다도,일본의 '군사대국화'에 기인한 한국의 불이익이라는 측면이 크게 부각되기 쉽다. 

또한 한일관계의 다양화, 다층화라는 현상의 특징 중 하나인'한류'에 관해서도 한일 간 상호평가에 괴리가 보이고 있다.일본에서 보면 일본사회의 한국문화의 비중이 커져감에 따라 한일 간의 거리가 가까워졌다고 보일지 모르지만,한국에서 보면'한류'는 어디까지나 글로벌한 현상이지 한일관계에만 특유한 현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일 간의 거리가 가까워진 것으로 받아들일리가 없다. 따라서 한일 간의 문화교류의 밀도를 높이는 것이 한일의 상호신뢰 증대에 무조건적으로 기여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한일관계의 구조변용이 현저히 나타남에 따라,단지 한국의 국내정치의 사이클의 한 국면으로서 한일마찰이라는 현상을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다만 한일관계의 구조변용이 일차적으로 마찰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정치적 선택이라는 것이 개입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떠한 정치적 선택을 하느냐는 것이 중요하게 된다. 구조변용에 의해 발생한 한일관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갈 정치적 선택이란 무엇인가. 그 조건을 생각해 보자. 

한일의 선택: 마찰의 사이클로부터의 탈각을 향해

마찰을 불러일으키는 정치적 선택은 다음과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한국은 한일관계의 대등화,균질화, 균형화에 직면해 일종의'혼란'에 빠져있는 측면이 없지 않다.'대국'일본의 의도나 능력에 대해 '과대평가'하는 측면과 '기대 밖'의 일본에 대한 '과소평가'가 혼재하고 있다.일본이 항상 '우경화'하고 '군사대국화'를 지향한다는 담론은 한국에서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이는 거의 '불변의 전제'수준에 까지 이르러 있다. 

다른 한편에서, 한국사회의 일본에 대한 이미지는 지금까지의 '표준・모범'이라는 측면이 급속히 상실되고,'이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라든가, '한국에 이익에 되는 역할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극단적인 이미지가 지배적으로 되어가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 안에서는 일본에 대한 좋고 나쁘고를 떠나 무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왜,한일관계에서 그 외에도 중요한 문제가 산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만이 지금에 와서 클로즈 업 되고 있는가라는 물음에는 이러한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역으로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한일관계의 구조변용에 대응해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이 종전보다 크게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한일협력에 대한 한국이 '경직되고', 소극적인 자세에 직면해, 결국 '한국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한일협력에 그다지 기대할 수 없다'라는 식의 '체념'에 가까운 상태에 빠져있다. 달리 말하면, 한일은 잠재적인 협력가능성 보다 그 것의 실현불가능성이라는 전제 하에, 어차피 협력이 곤란하다면 양자관계에서의 쟁점에 관한 대립이 극대화되는 것은 어떨 수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회의론에 빠져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모두 한일협력을 '진화'시킨다는 선택지를 대체할 만한 현실적으로 유효한 대안이 과연 존재할까.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외교적 위상을 유지하고 높이기 위해서, 한일관계를 한 층 더 밀접하게 하는 것 보다 효과적인 선택지는 작금의 국제정치의 힘의 역관계를 고려해 볼 때 쉽게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미중관계의 긴장격화라는 환경요인을 근거로, 미일동맹을 한층 더 강화함으로서 중국을 견제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봉쇄'도 필요하다는 논의도 존재한다. 그리고 대미동맹관계를 공유하는 한국에 대해서도 이 '대열'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논리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물론 중국의 군사대국화와 더불어 미중관계의 긴장이 높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도, 그 배경에는 중국에 대한 대항의식이 있으며, 이 때문에 한국과 일본과의 동맹관계를 냉전기와는 다른 의미에서 중시하게 되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미중의 경제적 상호의존관계나 특히 엘리트 수준의 인적교류 등을 고려할 경우, 미중 간의 공통이익 또한 매우 크다. 이 점에서 현재 영토문제를 둘러싼 미중일 관계가 보여주고 있듯이, 스스로 전면에 나서서 중국과 대결하고자 하는 일본을 미국이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도식은 현실성을 결여한 것이다. 일본으로서도 오히려 중국에 대항하기 보다는, 중국을 동아시아 국제관계에서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대면하고, 그에 걸 맞는 행동을 선택하도록 하는 편이 훨씬 더 현실성이 높은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략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이 오히려 주도해 왔었던 것이기도 하다.

한국 또한 미중 긴장관계가 높아지지 않는 것을 그 어떤 국가 보다 '기대'하고 있다. 미중 긴장관계가 높아질수록 한국의 전략선택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이 단독으로 그러한 미중관계를 구축할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결국 다른 여타의 전략과 비교우위를 따져 봐도, 중국이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동아시아 국제관계의 평화적이고 안정적인 질서형성에 공헌하도록, 한일이 주도적으로 설득하고 영향력을 행사해 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자, 비용대비 효과가 가장 큰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대북접근에서 한일협력은 유효

그렇다면 이러한 전략의 선택은 과연 실현 불가능한 것인가. 물론 최근의 한일마찰의 증대라는 점을 생각하면, 한일협력의 '진화'시킨다는 선택지는 간단치 않다는 점이 새삼 실감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의 여지는 분명히 남아있다. 한국에 대한 '체념'을 말하고 있지만, 일본에 대한 '과대평가'와 '과소평가'의 공존이라는 한국사회에 대해, 과연 한국의 불신을 불식시켜가며, 한국으로 하여금 일본의 '가치'를 인정하도록 하는 공공외교(public diplomacy)를 충분히 구사해 왔던가. 의문이다.

물론 타협 가능한 영토문제를 타협 불가능한 '역사문제화'해 버리는 것은 일본의 입장에서 용인하거나 양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종군위안부 문제 등 역사인식을 둘러싼 제 문제에 대해, 일본사회가 불필요하게 마찰을 피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한국사회가 '일본이 변했다. 역사를 반성하고 있다'라고 인식시키도록 하는 대담한 제안을 할 수 있는 여지는 아직 남아있지 않은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재산청구권에 관한 한일 간의 문제는 모두 해결되었다", "더욱이 아시아 여성기금사업을 통해 도덕적인 책무도 이미 수행하지 않았나"라는 식의 일본정부의 주장은, 국제사회에서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과거 한일수교 협상에서, 종군위안부를 둘러싼 문제가 논의된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시아 여성기금사업 또한 그 취지는 좋은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일본정부의 관여를 되려 숨기고자 했기 때문에 사실상 기대했던 효과를 올리지는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해 "일본정부가 강제한 사실이 없다"라는, 그야 말로 본말이 전도된 주장으로, 일본정부의 사죄입장을 표명했었던 '고노담화'를 철회시키려는 일본 국내의 움직임은, 오히려 일본정부와 일본사회가 한국에 축적해 온 그 간의 성과를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점에서 일본의 국익을 저해하는 행위이다.

노다 정권과 이명박 정권 간에서도 물밑에서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교섭이 진행되었던 것처럼, 한일관계를 한층 더 '진화'시키기 위해서도, 일본정부는 지속적인 문제해결 노력이 필요하다. 외교의 연속성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동의했던 한국정부 또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한국정부는 일본정부에게만 문제해결을 떠 넘겨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본정부가 주도하고 한국정부가 적극적으로 참여함은 물론, 한일 양국의 기업과 시민사회도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형태로, 다시 하번 이 문제에 관한 가시적인 해결을 위한 공동사업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는 '과대평가'와 '과소평가'라는 극단적인 과잉대응이 아니라 좀 더 사실에 가까운 일본을 평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일본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에 입장에서도 일본의 '이용가치'를 적절하게 평가하지 못하는 것은 매우 불행한 것이다. 특히 대북정책에서 북한의 대중의존도의 심화와 북미관계를 우선시하는 전략에 직면함에 따라 6자회담 속에서 '주변화'되어가는 경향 속에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 북일경제협력와 남북경제협력을 긴밀하게 연계시켜가면서 북한에 대한 한국의 존재감을 높여가고, 북일수교라는 과제에 직면해 있는 일본의 힘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지혜를 발휘할 때다.

한국에서는 2012년 12월에 있던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인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가 민주화 이후의 대통령선거에서 최초로 과반수의 득표를 획득해 당선되고, 2013년 2월 25일 제18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일본에서도 중의원 해산에 이은 12월의 총선거에서 야당이었던 자민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 아베 신조 정권이 등장했다. 아베 수상은 이전부터 고노담화와 무리야마담화의 수정을 주장하는 등, 역사인식을 둘러싼 문제해결을 위해 그 동안 한일 간에 축적되어 온 성과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 한일 간의 마찰의 증대가 우려된다. 게다가 아베정권은 영토문제에 관해 민주당 정권 이상으로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자 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둘러싼 대립 또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과거 2회에 걸친 대통령 취임식과 달리,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에 아베 수상이 참석하지 않은 배경에도 이러한 한일관계의 미묘한 상황전개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점에서 한일 양국정권은 먼저 역사인식을 둘러싼 대립이 필요이상으로 격화 되지 않도록, 즉 현재의 상황이 급변하지 않도록 관리하려는 기본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이에 더해, 2월 12일 북한이 제3차 핵실험을 강행함에 따라 한일 양국을 둘러싼 정세는 전 보다 훨씬 더 엄중해 지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의 진전에 의해 직접적인 군사적 위협이 높아지고 있고, 이에 따라 미중 양국의 영향력 행사가 기대되는 상황이지만, 그 한계가 명백해지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한일은 북한의 비핵화에 가장 핵심적인 이해를 가진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전술한 바와 같이 북한이 핵문제는 북미 간의 문제로서, 남북 간에 또는 북일 간에 이 문제가 다루어지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한일 양국은 주변적인 지위로 밀려가는 경향 속에 있다. 어떻게 하면 한일이 주도권을 회복하고, 미중의 영향력 행사와 상승작용을 해 가면서,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이를 위해, 한일 간 협력관계는 어떻게 구축해 가야 할 것인가? 안전보장이나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일협력에 대해, 진정성을 가지고 문제를 본질적으로 재성찰해야만 하는 시기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한일 간의 역사문제를 관리하고,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일협력의 효과를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아베 정권과 박근혜 정권 사이에 공유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 이 글은 지난 1월말 국민대학교 일본학연구소가 발행한 <일본공간> 제 12호에 실렸던 글로 필자 기미야 다다시 교수 및 국민대 일본학연구소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 당초 이 글은 지난해 12월 한국 대통령 선거 전에 작성된 것으로, 마지막 두 단락은 필자가 현재 상황에 맞게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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