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일간지인 <하레츠>는 민영 버스회사인 '아피킴(Afakim)'이 이날부터 팔레스타인 전용 버스노선을 신설하여 운영한다고 보도했다. 이 버스는 서안에서 텔아비브(Tel Aviv)까지 운행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지금까지 개인이 운영하는 미니버스를 이용하거나 서안 북부의 유대인 정착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공공버스로 서안에서 텔아비브까지 출퇴근해왔다.
겉으로 봐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한 전용 노선이 만들어진 것으로, 팔레스타인인이 혜택을 입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을 알고 보면 인종차별적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새로운 버스 노선은 팔레스타인 통근자들이 출퇴근 시 겪게 되는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해 개설된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버스를 함께 타고 싶어 하지 않는 이스라엘 정착촌 주민들의 압력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정착촌 주민들은 정부에 "팔레스타인인은 위험인물"이라며 다른 버스를 이용하게 해달라고 요구해 왔다. 또한 몇몇 주민들은 "오후 5시 이후에 버스를 타면 아랍인들로 꽉 차있다. 이들이 모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불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 이스라엘은 4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주민만 이용하는 전용 버스를 도입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직장에서 일을 마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전용버스를 타고 서안지구로 귀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정착촌 주민들의 불평과는 달리 이스라엘 내에서도 이번 조치를 보는 시각이 그다지 달갑지 않다. 이스라엘의 중도적 성향 신문인 <예디옷 아흐노롯>은 이날 지면에서 "분리됐지만 평등하다고?"라며 전용 노선 개설이 인종차별적이라고 비난했다. <하레츠> 역시 "분리 버스는 이스라엘 판 아파르트헤이트(예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 차별정책)"라는 제목의 머리기사를 실었다.
이스라엘의 반전 평화 운동 단체 피스나우(Peace Now)의 활동가인 하기트 오프란(Hagit Ofran)은 "(팔레스타인 전용)버스 자체가 분리·차별의 상징이다"라며 "이것이 우리가 여기에 집중하는 이유다. 버스 분리 탑승은 매우 나쁜 조치"이라고 비판했다.
논란이 일자 아피킴과 이스라엘 당국은 차별조치가 아니라며 진화에 나섰다. 아피킴 측은 성명을 통해 "팔레스타인 승객의 이동을 쉽게 하려고 별도의 노선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교통부 역시 "팔레스타인 당국과 협의를 거쳐 결정한 것"이라며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 사람들 모두 새로운 노선과 기존의 노선을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스라엘 법에는 팔레스타인인의 버스 탑승을 제지할 근거가 없다.
서안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받는 차별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4일(현지시간) 이번 조치로 인해 서안에서의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에 대한 불평등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팔레스타인 전용 버스 외에도 서안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여러 분야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우선 신문은 이스라엘에서 일하는 것을 허가받은 약 5만여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보안 당국에 의해 감시를 받는다고 보도했다. 또 서안에 거주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짜여진 불평등하고 이중적인 체계에 의해 통치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중적 체계'란 서안에서 죄를 저질렀을 때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이 다른 법을 적용받는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이 죄를 지을 경우 다른 서구 민주주의의 국가들에서 그러한 것처럼 피의자로서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이 죄를 지을 경우에는 법적으로 보호받을 권리가 없는 군법의 적용을 받는다. 신문은 1967년 제3차 아랍·이스라엘 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동부 전선에서 요르단군을 제압하고 요르단 강 서안을 점령한 이후부터 이런 조치가 지속되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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