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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명예'가 있는가?"

[토론회] 국가가 민·형사상 명예훼손소송의 원고가 될 수 있나

지난해 9월 국가정보원은 '원고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상대로 명예 훼손 소송을 제기해 논란을 일으켰다. 또 정운천 전 농림수산부 장관과 민동석 전 농업통상정책관은 문화방송(MBC) <PD수첩>의 '광우병' 편 보도가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PD수첩> 제작진을 고발했다.

이들 사건을 두고 '정부 정책 비판을 대한민국이나 공무원의 명예 훼손'으로 볼 수 있느냐는 논란이 적지 않게 일었다. 법률적으로는 '국가가 민·형사상 소송으로 다툴 수 있는 '명예'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도 쟁점이 됐다. 아주대글로벌인권센터와 연세대 법학연구원 공공거버넌스와법센터는 9일 서울 연세대 광복관에서 '국가는 민·형사상 명예 훼손 소송의 원고가 될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열었다.

"국가는 '기본권'을 갖고 있지 않다"

이날 세미나의 발제를 맡은 김태선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가는 명예 훼손을 이유로 민사상 손해 배상 책임을 묻는 주체가 될 수 없다고 본다"면서 "국가는 헌법에 의한 기본권 보장 의무를 지는 수범자일 뿐 '기본권 소지자'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가 스스로가 명예 훼손 소송의 원고가 되지 못한다고 해석해도 불합리한 결과는 초래되지 않는다"면서 "국가는 언론에의 접근 기회가 많을 뿐 아니라 국가 기관의 반론 보도·정정 보도 청구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고 문제된 표현이 공무원 등 개인에 대한 것이라면 개인은 여전히 명예 훼손 소송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오동석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적으로 거론될 수 있는 국가 자체의 명예는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국가 명예'라는 표현은 다양한 개인들로 구성된 국민들이 개별적으로 느끼는 명예 감정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일종의 '국가 상징'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러한 국가의 명예 감정을 참칭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국가의 평판, 명예가 민법이나 형법상 보호되는 가치가 되기 위해서는 명문의 규정이 있어야하고 국가의 헌법상 지위와 충돌하지 않아야 한다"며 "민법이든 형법이든 국가의 명예가 보호받아야하는 가치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

반면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가가 국민을 포함한 것으로 본다면 명예를 가지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고 또 표현은 '대한민국'이라고 하더라도 사실은 '정부'라고 한다면 그것은 공법인으로서 역시 명예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박 교수는 "현 상황의 헌법적 문제는 국가 정부 비판의 자유가 자꾸 봉쇄하는 결과가 초래된다는 것"이라며 "이를 '명예 주체성'이라는 추상적인 논의로 접근하기 보다는 그 공법인에 대한 비판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이익을 강조해 사법부의 명판결이 나오도록 해야할 듯하다"고 말했다.

"사실상 '국가 모독죄'를 실질적으로 되살리는 것"

김태선 교수는 "국가가 명예 훼손 소송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하면 과거 국가 모독죄 조항을 실질적으로 되살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민사상 손해 배상 청구는 비록 인신 구속과 같은 형벌을 부과하는 것은 아니지만 형사 처벌 못지 않게 정부 비판의 자유를 억제할 가능성이 다분히 존재한다"고 우려했다.

오동석 교수는 국정원이 '원고 대한민국'으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명예 훼손 소송을 제기한 것을 두고 "국정원의 국가 명예 훼손 소송은 국민과 유리된 국가를 상정함으로써 국가를 참칭하는 것이면서 국민을 참칭하여 실체화함으로써 국민과 국론을 분열시키는 반국가적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정운천 전 농림수산부 장관 등이 문화방송(MBC) <PD수첩>을 상대로 명예 훼손 소송을 제기한 것을 두고도 "이런 일들이 국가의 이름으로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자꾸 법정으로 가면 모든 공무원이 다 국가를 대표하고, 모든 국가기관이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상징할 것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국가 대표팀 축구 못한다'는 소리도 못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국가와 그외의 단체는 엄연히 다른 존재"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는 과연 국가가 '법인'에 해당하느냐를 두고도 논쟁이 벌어졌다. 개인 뿐 아니라 법인도 명예 훼손에 손해 배상 등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태훈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학설과 판례에서는 개인 뿐 아니라 법인의 경우도 명예 주체로 인정하고 있으나 그 논의를 국가 기관에 확대할 수 있느냐는 별개"라고 지적했다.

하태훈 교수는 "일단 국가와 정부의 차이가 구분되어야 한다고 본다. 국가가 명예 훼손의 원고가 될 수 있다고 하면 사법부도 국가기 때문에 기피 신청이 돼야하지 않을까"라며 "(당사자가) 행정 관청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과연 국가가 (명예가 인정되는 법인의 요건인) 통일적 의사 형성 단체인가도 의문이고 국가의 명예를 형법적으로 보호하지 않는다 해서 헌법적 흠결이 생기는 것도 의문"이라며 "일반적인 법인과 국가 내지 관청은 달리 봐야 한다"고 말했다.

오동석 교수도 "국가가 어떻게 법인일 수 있는가"라며 "공법인이 국가가 활동 목적을 부여하고 국가가 설립한 법인이라면 국가가 공법인이라는 말은 국가란 국가 스스로 활동 목적을 부여하고 국가 스스로 자기 창설한 존재가 된다"고 모순을 지적했다.

김종철 교수는 "우리는 대륙법식 국가관에 기초하고 있어 헌법에 의해 법적 단위로 국가를 창설하고 국가에게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의무로 부여하고 있다"면서 "사적 단체와 국가의 지위는 단체라는 점에서 동일성이 있으나 그 본질은 완전히 다른 독특한 존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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