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진의 딸 마일라 카밧 진은 이날 부친이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에서 수영을 하던 중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밝혔다.
1922년 뉴욕에서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좌파적 입장에서 미국의 주류 학계를 비판하는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 사회비평가, 희곡 작가로 흑인 민권운동과 반전 운동에 적극 참여하며 노엄 촘스키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양심적 지식인이 됐다.
1943∼45년 미 공군 폭격수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하워드 진은 항복 직전의 독일군과 민간인들에게 폭격을 하는 것을 보고 전쟁에 환멸을 느낀 뒤 베트남 전쟁, 이라크 전쟁 등에 반대하는 활동을 펼쳤다.
그를 대표하는 저서 <미국민중사>는 1980년 출간해 2003년까지 10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로 기존 역사 서술과는 달리 노동자들을 역사의 주역으로 끌어올려 미국 사회에 지적 충격을 주었다.
<미국민중사>에서 하워드 진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정복'을 찬양하는 기존의 역사학적 관점을 뒤집고 아메리카 토착민들의 투쟁에 주목했고, '프론티어 정책'에 대한 칭송 대신 그로 인해 희생된 가난한 사람들과 노예제도의 희생자들을 살폈다.
노엄 촘스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명예교수는 "하워드 진의 저술은 한 세대의 의식을 바꿔 놓았고 우리 삶의 중요한 의미를 이해하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며 "우리의 활동이 신뢰할 만한 사표(師表)를 요구할 때 그는 언제나 맨 앞줄에 서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워드 진은 그의 자서전격인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에서 "나는 다른 관점에 공정하고자 했지만 '객관성' 이상의 것을 원했다. 내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보다 많은 지식을 얻어가기 보다 침묵함으로써 안락해지는 삶을 포기하고, 정의롭지 못한 것에는 언제나 맞서 싸울 자세를 가지길 원했다"고 말했다.
▲ 하워드 진이 2001년 한 반전집회에서 연설하는 장면. 그는 언제나 거리에 있었다. |
하워드 진은 1997년 나온 영화 '굿 윌 헌팅'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는데, 이 영화의 각본을 쓰고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 맷 데이먼은 하워드 진과 이웃해 살면서 우정을 쌓았다. 맷 데이먼은 이 영화 대사에 "<미국민중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미국을 이해할 수 없다"라는 말을 넣기도 했다.
영화인 밴 애플렉은 진에 대해 "민주주의와 미국에 대해 '반대'라는 가치가 얼마나 귀중하고 필요한 가치인지를 가르쳐 줬다"며 "그 덕분에 엘리트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역사를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유년 시절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즐겨 읽었던 진은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아 17살 때는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열린 시위에도 종종 나갔다.
군복을 벗은 후에는 뉴욕대와 컬럼비아대에서 수학했고, 이후 흑인 여학생들만 다니는 스펠만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는 당시 학생들에게 흑인들의 접근이 차단된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도록 하고 시내 카페에서 연좌시위를 하게 하는 등 민권 운동을 실천하도록 설득하기도 했다.
소설 <더 컬러 피플>로 유명한 소설가 앨리스 워커, '아동보호기금'의 회장을 지낸 매리언 라이트 이델만 등이 당시 그의 수업을 듣고 강한 영향을 받은 제자들이다. 1963년 스펠만대에서 해직당한 그는 보스턴대로 자리를 옮겨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는 한편, 비리를 저지를 이 대학 학장 존 실버를 비판하는데 앞장섰다.
1988년 은퇴 때 마지막 강의를 30분 일찍 끝내고 교내 간호사들이 파업 시위를 하는 현장으로 달려가 피켓을 들고 시위에 동참했던 일화로 유명하다. 그의 마지막 수업들 듣던 500여 명의 학생들 중 100여 명이 시위에 동참했다. 퇴직 후에도 그는 반전·평화를 위해 거리에 섰고 대중들의 마음을 흔드는 연설을 했다.
그는 <베트남, 철군의 논리>, <불복종과 민주주의>, <전쟁에 반대한다>, <오만한 제국, 미국 이데올로기로부터의 독립> 등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부인 로슬린은 2008년 작고했고, 슬하에 2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또한 그는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비너스의 딸들>, 아나키스트 지도자의 이야기를 다룬 <에마> 등 3편의 희곡을 발표하기도 했고, <비너스의 딸들>과 <에마>의 연극 제작자로 직접 참여했다.
하워드 진은 지난 주 진보적 시사주간지 <더 네이션>에 생애 마지막 글을 남겼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1년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미국인들은 지금 오바마의 화려한 언변에 현혹되어 있다. 오바마를 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하는 전국적인 운동이 없다면 그는 그저 그런(mediocre)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시대에 '그저 그런 미국 대통령'이란 위험한 대통령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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