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를 저질의 싸구려 문화로 매도하고 이를 규범적 잣대로 평가하는 것과 이에 맞선 대중문화 옹호론 간의 논쟁이 1990년대까지 있었다. 지금 21세기에도 이런 인식이 의미가 있는가. 지금은 대중문화를 의미없는 것이라 말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싸구려 문화'라는 담론은 유령처럼 계속 작동하고 있다"
19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는 '방통심의위, 무엇을 위해 심의하나'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최근 '빵꾸똥꾸' 심의 등으로 불거진 TV 오락 프로그램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의 심의도 주제로 올랐다.
"권력은 '빵꾸똥꾸'를 두려워한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박근서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언론광고학부)는 "대중문화에 관한 낡은 담론을 다시 꺼내는 까닭은 우리의 대중문화 상황이 수상쩍기 때문"이라며 "'빵꾸똥꾸' 심의와 김구라를 계기로 권력의 대중문화 개입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박근서 교수는 "'빵꾸똥꾸' 심의가 나왔을 때 많은 시청자들은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이 김구라 씨를 '막말 방송인'이라 칭하고 퇴출을 요구했던 것을 떠올렸을 것이고 '김구라 퇴출' 요구는 김제동이 <스타 골든벨>에서, 손석희가 <100분토론>에서, 윤도현이 <러브레터>를 그만두어야 하는 경우와 맞닿아 있었다"면서 "정치적 입장에 관계없이 대중의 지지를 받는 방송인들에게 권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대중은 참을 수 없어 한다"고 말했다.
박근서 교수는 "2008년과 2009년 두 해 방송 심의 결과를 살펴 볼 때 눈에 띄는 것은 특히 51조 방송 언어에 관한 항목에 위반 사례가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지금까지 텔레비전의 건전성에 대한 논란은 주로 선정성과 폭력성에 집중해서 논의돼 왔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왜 말을 가지고 그러는가. 권력은 침묵을 요구한 것이다. '빵꾸똥꾸'라는 단어를 쓰고 싶으면 아예 말을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도 "시사프로그램이 '4대강' 문제를 논리적으로 접근할 때 대중은 '빵꾸똥꾸'라는 말로 그 부조리함을 명쾌하게 정리해버린다. 그래서 권력은 그 부분에 대한 통제를 필요하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빵꾸똥꾸' 심의는 합리적 이성 뿐 아니라 감각과 감수성까지 통제하고자 하는 권력의 욕망을 대변하는 것"이라며 "이는 결국 오는 12월 결정될 방송사의 재허가 문제와 결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심의위원들 TV 이해 부족…TV 좀 열심히 보라"
방통심의위의 '빵꾸똥꾸' 심의 등은 심의 위원들의 이해 부족과 단발적인 심의 시스템 자체에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노영란 미디어수용자주권연대 운영위원장은 "과연 이 시트콤을 지속적으로 본 사람들이 이런 판정을 했을까 의문"이라며 "'해리'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소통의 부재와 그 부재를 완화하고 소통을 활성화하고자 던지는 '빵꾸똥꾸'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영란 운영위원장은 "시청자 입장에서 방송의 사후 심의는 필요하다고 보지만 현재 진행되는 심의 제도의 개선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맥락이 아닌 단발적 표현 중심의 심의를 하다보니 시청자의 이해와 상충되는 판단이 나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손병우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도 "심의는 △시대 상황을 반영한 보편적 가치 체계에 입각해야 하고 △대상 텍스트에 대한 면밀한 독해에 입각해야 하며 △시청자 권익을 중시하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면서 "특히 대학교수, 비평가, 심의위원 등이 TV 좀 열심히 봤으면 좋겠다. TV 매체와 장르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고 말했다.
손병우 교수는 "<지붕뚫고 하이킥>은 감정선의 자연스러운 연결이 돋보이고 사회성, 현실성까지 담고 있다"며 "그중에서 해리의 등장은 우리 사회의 현실성을 반영한 백미다. 해리의 변화가 어떻게 표현되느냐. 그것이 <지붕뚫고 하이킥>과 방송통신심의위가 함께 만들어낸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장면이 될 것이다. 방통심의위는 <지붕뚫고 하이킥> 카메오로 엔딩크레딧에 넣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무한도전> '돌+아이' 쓰지 마라?"
한편,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심의 강화는 예능 PD들의 제작 환경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방송사 자체 검열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것.
신정수 <놀러와> PD는 "MBC 자체 검열도 심해지고 있다. 일선 PD에게 내려오는 공문에는 사용하지 말아야할 단어와 소리들이 나오고 있다"며 "<무한도전>이 만들어낸 '돌+아이'를 사용하지 마라, 김구라 씨의 발언은 자막으로 써주지 마라, 개소리 효과음 넣지마라 이런 식"이라고 말했다.
신정수 PD는 "자체적으로 반발을 하고 있지만 '소나기는 피해가자'는 식으로 우회해가는 분위기"라며 "진성호 의원 발언이 있고 부터는 MBC에서 <세바퀴>, <황금어장> 제작진은 잔뜩 긴장하기도 했다. 김제동 씨 같은 경우는 프로그램을 제안했다가 런칭이 안 됐을 경우 확대 해석되는 경향 때문에 캐스팅을 자제하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것이 국가의 폭력으로 규제되고 법적으로 명시되지는 않으나 마치 공기처럼 예능 PD에게 다가온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연예인들도 조직화해 표현의 자유의 문제가 심각하게 와닿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꽁트는 꽁트일뿐 오해하지 말자'라는 말은 예능 PD들이 심각하게 고민해서 만들어낸 말"이라며 "심의위원들에게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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