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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비겁하고 또 비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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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비겁하고 또 비겁하다

[기자의 눈] 헌법재판소의 '언론 탓'

헌법재판소 하철용 사무처장이 19일 국회 법사위원회에 나와 미디어 법 사태를 두고 '언론 책임론'을 폈다. 국회의원의 비판에도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은 그의 말 가운데 한 마디가 특히 튀었다.

"언론 본분을 잘 이행해 적어도 100쪽에 달하는 결정문을 제대로 읽어보고 그대로 보도만 해줬어도 이런 사태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달 29일 신문법·방송법 판결 이후 거의 한달 가까이 '강간은 했지만 성폭행은 아니다'는 류의 조롱에 시달려온 헌법재판소다. 이날 하철용 사무처장의 발언은 이러한 논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공식적인 대답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 대답은, 판결문만큼이나 비겁했다. 어떻게 보면 모든 비판의 원인을 홍보 탓, 언론 탓을 한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에 맞춤한 헌법재판소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또 국민과 헌법재판소의 심각한 인식 차이, 괴리를 실감하게 하는 발언이기도 하다.

따져보자. 헌법재판소가 신문법·방송법 처리 과정에서 위헌·위법성을 속속들이 지적했음에도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자율적 해결' 노력은 조금도 보이지 않음에 따라 초래된 지금의 '반헌법 사태'야 말로 문제 아닌가?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이런 상황에는 침묵하면서 언론에게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이러한 가정을 해볼 법하다. 헌법재판소의 단언대로 모든 언론이 "신문법·방송법은 위헌·위법이지만 무효확인청구는 기각한다"라고 썼다면 헌법재판소는 비판을 받지 않았을까? 어차피 이런 조롱을 받았을 것이다. '강간은 했지만 성폭행인지는 가해자가 판단하라!'

헌법재판소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판결의 '비일관성'과 '비겁함'에 있다. 헌법재판소 결정에서도 조대현, 송두환 재판관은 "가결 선포 행위의 심의·표결 권한 침해를 확인하면서 그 위헌성·위법성을 시정하는 문제는 국회의 자율에 맡기는 것은 모든 국가작용이 헌법 질서에 맞추어 행사되도록 통제해야하는 헌법재판소의 사명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헌법재판소가 "신문법·방송법 통과의 위헌·위법성을 확인했는데도 자율적 해결은 보이지 않는 국회"에 불만을 토로했다면 차라리 비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디어 법 판결에서 헌법재판소가 내세운 논리는 '삼권분립'에 따른 '국회의 자율적 해결'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에 응하지 않았고 헌법재판소는 이명박 정부의 '모르쇠'에 따른 총알받이가 됐다.

간단하다. 헌법재판소의 권능은 국민적 조롱에 의해서 짓밟힌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권한을 내팽개친데서 한번 망가졌고 그나마 제안한 '국회의 자율적 해결'도 완전히 무시한 국회, 이명박 정부에 의해 한번 더 망가졌다. 헌법재판소를 짓밟고 있는 것은 국민과 언론의 비판이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판결에서나 이번 해명에서나 권력자에 대한 '견제'에는 몸을 사리고 시민사회와 국민의 비판에만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권력을 견제하고 당당한 헌법재판소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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