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초대 대통령실장을 지낸 류우익 서울대 교수가 주중 대사에 내정된 것으로 13일 알려졌다. 또한 주러시아 대사로는 역시 현 정부에서 초대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낸 이윤호 씨가 내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당국자는 "오늘 오후 두 내정자에 대한 아그레망을 현지 대사관을 통해 상대국에 신청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들은 외교 절차를 거쳐 내년 2∼3월 부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 측근이 가서 외교 현실 직시하는 것도 좋을 것"
정부 당국자는 류우익 내정자에 대해 "이명박 정부의 초대 대통령실장으로서 대통령의 국정·외교철학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고 세계지리학회 사무총장을 연임하면서 보여준 탁월한 리더십과 국제적 경륜으로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더욱 심화시킬 적임자"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이어 "보다 긴밀한 한중관계를 위해 중량급 고위인사를 내정한 만큼 중국 정부도 환영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작년 5월 부임한 신정승 현 주중 대사를 조기 교체하고 대통령의 측근 인사를 대사로 임명한 것은 대(對) 중국 외교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비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이명박 정부가 모든 외교의 초점을 한미동맹에 맞추고 있는 것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불만을 표해 왔다. 그 불만은 전문 외교관 출신이지만 중국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고 무게감도 떨어지는 신 대사에게 표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 그룹에서는 외교적 전문성보다 정치적 무게감을 중시한 결정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의 강준영 교수는 "정부가 중국을 중시한다고 말을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뜻이 전달되지 않았던 측면이 많았다"며 "중국 정부와의 소통에 다소 문제가 있었는데 대통령 측근 인사를 보내 중국을 가까이서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가 표현된 인사"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중국의 정치문화로 볼 때 중국어도 잘 하고 중국을 잘 이해하는 외교 전문 관료가 가면 좋겠지만 지금은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며 "일단은 중국에 어필을 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국 전문가는 "정치적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이고 실세라는 측면에서 중국 정부가 환영하는 쪽이 아닐까 싶다"며 "북핵 문제건 뭐건 한미동맹만으로는 풀 수 없는 외교 현실을 대통령 측근이 가서 직접 보고 정책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석유 공급자냐' 러시아 불만은 계속될 듯
이윤호 주러 대사 내정자는 경제 관료 출신으로 LG경제연구원장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상근 부회장을 거치며 이명박 대통령과 친분을 쌓았고, 작년 2월부터 올 9월까지 지경부 장관을 지냈다.
정부 당국자는 이 내정자에 대해 "경제 관료와 민간경제연구원장을 거쳐 이명박 정부의 초대 지경부 장관을 지내면서 쌓은 경륜과 실물경제 전문가의 경험을 갖추고 있다"며 "가스, 철도 등의 경협사업은 물론 정치와 문화 등 양국 관계를 전반적으로 발전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는 인사"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 장관의 대사 내정에 대한 러시아의 시각이 긍정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러시아는 이명박 정부가 '자원외교'를 외치며 자신들을 석유·가스나 공급하는 나라로 여기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해 적잖은 불만을 가져 왔는데, 이번 인사로 그 같은 경향이 강화됐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전문가인 박상남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비즈니스 마인드가 있는 분이 대사가 된 건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서도 "서방과 다른 러시아의 특수한 정체성을 이해하는 사람이 대사가 됐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박 교수는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에너지는 한 부분에 불과하다"며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안보적 측면에서 러시아의 협력을 어떻게 이끌어 내는가도 매우 중요한데, 그런 부분이 보강되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한 전문가는 "러시아는 유라시아 물류망 구축과 제조업 육성 같은 중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어서 경제적으로 접근하더라도 긴 안목이 필요하다"며 "단기적인 성과를 중시하는 경제인이 대사로 간다면 '한국은 물건만 팔고 자원만 달라고 한다'는 불만이 계속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류 전 실장과 이 전 장관이 주중·주러 대사로 내정되면서 한덕수 주미 대사(전 총리)와 권철현 주일 대사(전 국회의원)를 포함해 '4강' 대사가 모두 '커리어 외교관(전문 외교관)'이 아닌 인물들로 채워지게 됐다.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인사가 또 한 번 '돌려막기'가 됐다는 시각을 보내고 있다. 우상호 민주당 대변인은 "전형적인 회전문 인사로 이명박 대통령의 잘못된 인사 관행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우 대변인은 이어 "특히 류우익 전 실장은 촛불집회 등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사람인데 이런 사람을 4대 강국의 대사로 다시 등용한다는 것은 우방국과 국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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