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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서러운 자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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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서러운 자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

[인터뷰] <정크노트>, <이로니,이디시>의 작가 명지현 씨

그를 부를 수 있는 말은 많다. 최근 장편 <정크노트>(문학동네 펴냄)와 단편 <이로니, 이디시>(문학동네 펴냄)를 동시에 내고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이고 있는 신인 소설가이고, '작가선언69'에 동참해 용산 참사 현장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작가이며, 1만 배와 단식을 이어가며 언론 악법 반대 투쟁을 펼치는 최상재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의 부인이다.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의 한 카페에서 소설가 명지현 씨를 만났다.

용산 참사와 언론 관련 법, 말하자면 그는 2009년 한국 시민사회의 두 가지 화두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피로감이 적잖은 시민사회의 분위기와 달리 명지현 씨는 빠르고 생동감 있는 그의 소설처럼 유쾌하고 밝았다.

"지난 여름 동안 5편은 쓴 것 같다. 글을 쓰려면 잠수를 타야하는데 애들 챙기고 용산 참사 현장 찾아가고 개 산책까지 시키고…. 남편은 성난 소처럼 날뛰고. 굉장히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주변에서 '하루 24시간을 쓰는 법'에 대한 책을 쓰라고 한다."

"용산 참사, 인간의 존엄성이 이렇게까지 떨어져 있는데"

'작가선언69'는 12월쯤 40여 명의 작가들이 시와 소설을 써 용산 유가족에게 헌정하는 책을 낼 계획이다. 또 '수유너머N'에 문학 강좌를 개설해 작가들이 돌아가며 강의를 하고, 이 책의 수익금과 일일호프로 모은 돈, 강연 수익금 등을 모아 용산 유가족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예정이다.

'작가선언69'는 매주 수요일마다 용산 참사 현장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명지현 씨는 지난 6월 9일 188명의 시인, 작가들이 발표한 '한 줄 선언'에서도 "무능한 정권, 썩은 검찰, 역겨운 언론-적출 대상 3종 세트. 아차, 나도 문제야"라며 선언문을 내놨다. 그에게 용산 참사에 대한 생각을 묻자 금세 눈에 눈물이 고였다.

▲ 소설가 명지현 씨. 밝고 활달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던 그는 용산 참사 이야기를 꺼내자 눈에 눈물이 고였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작가들이 직접 나와 1인 시위를 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용산 참사 사건은 작가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명지현 : 너무나 큰 충격이었고 너무나 많이 울었다. 재판 때도 그랬지만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가해자인 국가가 피해자인 가족에게 형량을 구형하고, 정말 어지간한 선진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돈 없는 사람은 죽으라는 이야기에 불과하지 않나, 한마디로 인간 존엄성의 문제다. 용산에서, 인간 존엄이라는 문제가 이렇게까지 바닥에 깔려 있으면 다른 문제는 오죽하겠는가하는 문제를 봤다. 작가들이 여름 내내 용산 참사 현장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용산 유가족들 위로해주자고 찾아간 것은 바로 이런 생각 때문이었다.

프레시안 : 1인 시위를 하면서 느낀 특별한 경험이 있을까?

명지현 : 1인 시위를 할 때 경찰이 와서 '사적인 장소에서 왜 1인 시위를 하느냐'며 방해를 하더라. 경찰이 위법적인 행동을 하면 위법에 저항할 권리가 있다. 저항을 하면서 처절한 느낌을 알고, 1인 시위의 외로운 느낌을 알게 된다. 몇몇 작가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동안에는 관찰하는 대상이었던 사람들에게 나를 봐달라고 애원하는 입장이 되어보고, 말이라도 붙여줬으면 하는 입장이 되어 본다는 것 자체가 참 값진 경험이다'. 물론 작가로서의 경험 쌓기 차원이 아니다. 겪을수록 약자에게 한발 더 다가가게 된다.

하지만 그는 용산 참사와 같은 사건, 이명박 정부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부조리한 일들이 문학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단언했다. 그는 "작품은, 예술가로서의 작가는 삶에 숨겨진 진실을 찾고 인간의 본질를 찾아내는데 그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너무나 실체가 뚜렷한 모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문학성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우려스렵다"고 말했다.

"최상재가 만약 자기자신 만을 위해 산다고 했다면"

용산 참사 현장에 작가들이 나타난 것은 언론이 '용산'의 부조리와 유가족들의 고통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명지현 씨는 이날 인터뷰에 '언론 악법 폐기하라'는 스티커를 붙인 검은 니트 모자를 쓴 차림으로 나타났다. 언론노조 사무실에 서울남부지검에서 집으로 날아온 두터운 고소장 봉투를 넘겨주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인터뷰 이후인 9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앞마당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던 최상재 위원장은 또 연행됐다. 벌써 세 번째 연행이다. 지난 7월 두 번째 연행 때엔 집 앞에서 잠복하던 경찰이 명지현 씨와 둘째 딸이 보는 앞에서 최 위원장에게 수갑을 채워 체포해갔다. 연행, 체포, 단식, 구속영장 기각, 파업, 1만 배, 단식, 또다시 연행…. 최 위원장이 연행된 9일 저녁 명지현 씨에게 전화를 걸자 "지난번 인터뷰 때 괜찮다는 것 다 들었으면서 뭘 또 묻느냐"고 웃었다.

▲ <정크노트>, <이로니, 이디시>의 작가 명지현 씨. 최상재 위원장의 부인이기도 한 그는 이날 '언론악법 폐기하라'는 스티커가 붙은 검은 니트모자를 쓰고 왔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연행, 단식, 연행…최상재 위원장이 계속 고생하고 있다. 속상하지 않나.

명지현 : 요즘 사람들이 '괜찮느냐'고 많이 묻는데 나는 진짜 괜찮다. 오히려 언론노조 집행부나 지·본부장들이 고생하는 것 보면 '미안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독한 위원장 만나서…. 노종면 위원장한테도 늘 미안하다. 언론노조 사람들 만나면 '죄송하다'라고 인사하고 다니는 것이 일이다.

최상재 고생한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굶어야 한다면 굶어야 하고, 농성을 해야 하면 농성을 해야 한다. 만약 최상재가 '자기 좋을대로만 살겠다'고 했다면 오히려 내가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어릴 때도 히틀러는 같이 살던 에바가 죽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웃음)

스티븐 잡스는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살라'고 했다. 아름다운 말이라고 공감하는 이유가 뭔가. 배고프더라도, 우직하게 보이더라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라는 것 아닌가. 사람이 낮아지는 것이 바로 높아지는 것이라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렇게 겪는 일들이 오히려 기회가 아닐까.

▲ 지난 7얼 최상재 위원장은 명지현 씨와 둘째 딸이 보는 앞에서 경찰에 강제 연행됐다. 이 사진은 명지현 씨의 둘째 딸이 찍은 것이다.

하지만 갖은 고생을 도맡아하는 남편을 지켜보는 일이 쉽지 많은 않다. 남편을 이름으로 부르는 그는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지난 7월 최상재 위원장이 경찰에 체포됐을 때다.

명지현 : 최상재 체포하려고 온 형사들을 보고 '왜 저 사람들에게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지'라고 생각했다. 최상재는 마누라도 애도 없는 것처럼, 무슨 터미네이터처럼 생각하는데, 엄연히 한 인간 아닌가. 그 형사들 개인을 탓할 문제는 아니지만…. 최상재로서는 마주치자마자 질리게 되는 '실체 악'을 대면해야하고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힘들고 외로울 것이다. 무쇠로 만든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두 번째 체포됐을 때 '옥중 단식' 투쟁을 하지 않았나. 그런데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집에 와서는 그 몸으로 미친듯이 청소를 하더라. 최상재는 그런 사람이다. 자기 몸을 혹사하는 타입이다.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댓글 좀 많이 달아주라고 하기도 한다. 집에 와서 '최상재 위원장 파이팅' 이런 걸 보면 마음이 나아지기도 하니까.

"바보같고 구질구질해도, 그렇게 살아야죠"

지현 씨는 이날 "'나만을 위해 잡초든 뭐든 다 치우라'는 태도는 미친 것"이라고 연거푸 강조했다. 그는 "사람은 똥이 되어야 한다. 내가 비료가 되어 잡초도 꽃도 피워내는 부모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장편소설 <정크노트>에도 이런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이 소설은 언덕배기 빈집으로 이사온 아편쟁이 전직 의사를 돕다 대신 양귀비를 키우며 아편 맛을 꿈꾸는 소년의 성장담이다. 이 수상쩍은 이야기에서 가장 덜 기이한 한 단락을 보자.

"그런 얘기를 듣고 난 다음부터 나는 지헌이 아버지만 보면 퇴비 더미 속에 멀쩡히 누워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시커먼 퇴비더미에 들어가 얼굴만 내놓고 두 눈을 껌벅거리며, 왜 아직 삭지 않는 걸까? 몸을 이리저리 뒤채며 자신이 검은 흙으로 변하기를 바라다가, 슬슬 녹는 자신의 몸을 기쁘게 바라보지 않을까. 그러면 지헌이 엄마가 부엌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내주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지헌아, 아버지 밑으로 이거 깊숙이 넣고 한바탕 뒤집어드려.' 지헌이는 귀찮다고 툴툴댈 것이 뻔하다. 서너 번 잔소리를 들은 다음에야 코를 감싸 쥐고 퇴비창고의 제 아버지 얼굴 위로 생선 대가리나 과일 껍질 같은 것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후닥닥 튀어나올 것이다. 그 다음에는? 컴컴한 창고 안, 퇴비 더미에서 스르륵 튀어나온 지헌이 아버지의 손. 음식물쓰레기를 골고루 섞느라 바삐 움직이는 손, 역시 손은 맨 나중에 삭아야 한다. 사람이 원래 흙이고 똥이라 나무가 되고 열매가 되어 지구 안에서 돌고 돈다는 말을 어려서부터 들었다. 지헌이네 퇴비 창고를 보면 그 말이 새삼 확인된다." (<정크노트> 중)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와 함께 살며 남의 눈을 피해 양귀비를 키우는 중학교 2학년 소년은 자신의 높다란 퇴비더미를 자랑스러워 하는 친구의 아버지를 보고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이 직접 퇴비 속에 들어간다'는 생각, '흙과 똥이 되라'는 삶의 자세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비유가 아닐까.

▲ <정크노트>와 <이로니, 이디시>. ⓒ프레시안

프레시안 : <정크노트>에 나오는 주인공 소년은 10대 청소년 특유의 거친 추진력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굉장히 구질구질해보인다. <이로니, 이디시>에 나오는 다른 주인공들도 마찬가지인데.

명지현 : 소설의 주인공들 모두 어떻게든 멋있게 만들려고 애를 쓴건데. (웃음) 못남이 있어야 인간인 것 같다. 사람의 못난 점을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지 않은 주인공이 없고 다 나다. 겉보기에는 멍청해보이고 바보같고 최악이지만, 우직하고 멍청한 짓을 해야하지 않을까. 최상재가 1만 배 하고 단식하는 것도 미련하고 바보같은 일이지만 해야만 하는 일 아닌가. 그것이 인간의 모습이다.

명지현 씨가 인터뷰에서 말한 '인간의 모습'은 단순하지만 그의 소설 속에서 인물들은 보통의 생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변주된다. 그의 단편집 <이로니, 이디시>에는 '인육'으로 젓갈을 만든 요리사, 눈동자 안에서 벌레를 키우는 도예가, 물고기로 변해가는 남자, 바람피운 남자친구에게 복수하는 여자, 옆구리가 붙은 샴 쌍둥이 등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

프레시안 : 단편마다 소재가 각양각색 다양하고 굉장히 독특하다. 소재를 주로 어디서 찾나?

명지현 : 전국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이것저것 공부하기도 하고, 다큐멘터리 작가를 했기 때문인지 어떤 소재에 대해서든 겁이 없는 것 같다. 사실 신인이라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사실 문단에서는 '베스트'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온리 원'을 원한다. 어떤 개성 하나, 나도 역시 그를 찾아가야 한다.

▲ "소설을 쓸 때 나는 너무나 행복하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개인적으로는 단편 중 <손톱 밑 여린 지느러미>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아버지처럼 물고기로 변해가는 남자는 '죽음'에 대한 공포 속에서도 바다를, 바다 속에서 비치는 햇빛을 동경하고 그리워한다. 바다로 가면 결국 죽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동시에 육지의 중력 속에 사는 삶을 이질적으로 느낀다.

명지현 : 누구나 일상을 탈출하고 싶어하지 않나. 우리 모두는 물고기가 되고 있는 상태인데 그 욕망을 모르고 사는 것인지 모른다. 일치하지 않는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괴리를 느끼면서. 그러나 무엇인가 새로운 일이 생기면 새로운 나를 받아들여야 하는 공포또한 느낀다. 흔히 자기 계발서에서는 '20대여 변화를 이겨내라' 라고 하지만 '어떻게'가 없다.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과 공포가 발생하는 것, 이것이 인간의 본질이 아닐까.

프레시안 : 소설을 쓰는 이유를 물어도 될까?

명지현 : 개인적으로는 머리 속에 다른 세계가 있어, 글을 쓸 때 너무나 행복하다. 우리 집에 아직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겨울에는 불을 때는 거실에 가족들이 모두 모여 생활한다. 아이들은 텀블링을 뛰고 개도 같이 날뛰고 남편은 <무한도전>을 볼 때 나는 그속에 앉아 원고를 쓴다. 너무나 행복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괜찮느냐'고 물을 때 '괜찮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이유도 내가 좋아하는 것은 모두 도서관에 있고 소설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 3년차가 되면서 시민사회가 많이 지치는 분위기다. 그런데 최상재 위원장도 그렇지만 명지현 씨도 활력을 잃지 않고 있다. 그런 동력이 뭘까?

명지현 : 너무 당연한 것이라…나는 역사를 거스르는 역류의 시대가 얼마 가지 못하리라는 확신이 있다. '짐승의 시대에는 짐승처럼 싸워야 한다'는 말처럼 저쪽에서는 약간의 기득권을 가지고 싸우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전 존재를, 문학과 해방을 두고 싸운다. 그래서 이길 수밖에 없다. 우리가 어두운 길을 헤쳐나갈 수록 더 많은 사람이 함께 갈 것이다. 이것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더욱 근본적으로는 작가란 기본적으로 서러운 자들의 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고 그래서 용산 참사 현장에 찾아간다. 사실 인간 본질이 원래 서러운 것이기는 해도 더 서러운 사람 옆에 서게되는 것, 이것이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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