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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꽌시'에는 날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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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꽌시'에는 날개가 있다

[中國探究]<58>

한중 수교 초기, 우리는 중국인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그들의 '꽌시' 문화를 알아야 한다고 목청껏 외쳤다. 그리고 어느덧 17년의 세월이 흘렀고, 중국은 건국 60주년을 맞이했다. 그 와중에 중국은 WTO에 가입하여 세계 표준에 눈을 떴고, 두 차례에 걸친 세계 금융위기 이후 경제대국의 행보를 더욱 빨리 하고 있다. 중국 곳곳에서 '꽌시'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재중 한국 기업인들 역시 중국에선 더 이상 '꽌시'가 통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전해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꽌시'의 의미와 현주소를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기 어려운 '꽌시'라는 초상화

중국 문화를 배우는 사람이면 누구나 '꽌시'(關係)라는 말을 접한다. 중국인은 고대로부터 이른바 '꽌시'(關係)에 의존해서 사회를 형성했다는 것이 그 주된 내용이다. 그러나 정작 '꽌시'에 관한 전문 자료를 찾아보려 하면 그리 쉽게 구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인 스스로도 이를 정확히 설명하지 못할 뿐더러 이를 공자의 사상처럼 대놓고 말하기에는 다소 껄끄럽기 때문이다. '꽌시'를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그 세속성에 있었다.

이로 인해 이 세속 윤리는 중국 사회를 가장 근저에서부터 설명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임에도 불구하고, 최근에까지 하나의 학문으로서 다루어지지 않았다. 학문으로의 착수는 중국인들보다 서양 학자들에 의해 먼저 이루어졌다. 서양 학자들의 눈에 가장 자주 포착된 소프트웨어는 '미엔쯔'(面子), 즉 중국식 '체면' 문화였다. 그들은 이 '체면'의 상호 작용이 가져온 인간관계의 구조와 변화에 주목하였고, 이를 통해 중국인의 세속윤리와 행위관습을 해부하고자 하였다.

중국 내의 '꽌시' 연구는 대만 학자와 서양 학자의 연구 성과를 등에 업고 시작되었다. 이들은 하나 같이 '꽌시'는 매우 사적인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또한 그 속에서 보편 법칙을 끌어내기는 매우 어렵다는 쪽으로 결론을 몰아갔다. 그것은 어떤 특정 인물이 또 다른 특정 인물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세속적인 정감 또는 관습으로 이해되었다. 소수자들의 특수 정황 중에 발생한 사적인 정감 체계 속에서 보편 법칙을 추출하는 것은 무리라는 견해가 우세했다.

사색조 같은 '꽌시'의 정체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서양 학자들은 꾸준히 '꽌시'에 내재한 보편 규칙을 해명하고자 노력했다. 그들은 점차 그 초점을 '꽌시'가 지닌 '인연'(人緣), '인륜'(人倫), '르언칭'(人情), '미엔쯔'(面子) 등의 네 요소로 압축해갔다. 그것은 각각 '꽌시'가 지닌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자원교환, 심리조절 등으로 상징되고, 나아가 연고주의, 윤리규범, 교환행위, 의식구조 등의 영역과 관련한다. 이 네 요소는 마치 한 마리 새가 네 가지 색깔로 변할 수 있는 사색조처럼 각자 다른 특징을 지니며 유기체처럼 결합되어 있다.

그 중 '인연'(人緣)은 흔히 말해지는 혈연, 지연, 학연, 직장연 등의 귀속의식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언급되는 연고주의와 유사한 관념으로서, 한번 맺어지면 결코 바꿀 수 없기 때문에 '꽌시'의 하드웨어를 구성한다. 한국에선 학연이 종종 지연이나 직장연을 압도하지만 중국에선 학연보다 지연이나 직장연이 더 우세할 때가 많다. 특히 우리에게 존재하는 동 대학 학부 출신이란 동문의식이 사회전반에 걸쳐 위계질서를 형성하는 분위기가 그리 보편적이지 않다. 반면 중국은 의사(擬似) 혈연 집단, 즉 '의형제' 집단의 분포가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보편적이고 빈번하다.

'인륜'(人倫)은 공자와 맹자가 말한 윤리 관계에 기초한다. 근대시기 중국철학자 량수밍(梁漱溟)은 중국인의 '꽌시'가 바로 이 '윤리적 꽌시'로 귀결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기반 위에서 자신과 가까운 자를 먼저 돌아보고, 여력이 있을 때 타인을 돌본다는 친소(親疏)의 원리를 기반으로 하였다. 따라서 이 '인륜'은 꽌시의 소프트웨어를 구성한다.

'르언칭'(人情)은 인간관계 속에서 형성된 부채(負債)적 자원(Resource)의 교환법칙이다. 쉽게 말하면, 내가 지닌 자원을 상대방에게 빌려주거나 또는 상대로부터 제공받을 때 발생하는 자원의 교환법칙과 부채(負債)의식이다. 이는 동양 사회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청탁과 보답의 교환행위로도 이해된다. 신세를 지면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채무의식은 동시에 채권자의 입장에선 그에 준하는 강력한 기대심리를 양산하면서, '르언칭'으로 인해 형성된 양자의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만든다.

'미엔쯔'(面子)는 인간관계 중에 발생하는 상호 확인심리이다. 중국인 사이에서 체면은 자기 자신을 세워주는 동시에 상대를 세워주는 배려로 작용한다. '미엔쯔' 속에는 자존심, 수치심, 도덕심, 허영심 등의 요소가 한데 뒤엉켜있다. 이로 인해 많은 서양 학자들은 이 '미엔쯔'야말로 중국인을 가장 잘 나타내는 심리요소로 간주했다. 미엔쯔를 대표하는 자존심이란 정감은 때론 모호한 수치심과 연관되고 때론 도덕적 손상과도 연관되며 때론 막연한 허영심과 연관되기도 한다. 얼굴이 땅에 떨어진다는 의미의 '미엔쯔 손상'은 때론 중국인들에게 목숨보다 더 소중한 문제로 인식된다.

'꽌시'의 축소와 부패와의 전쟁

이처럼 논문과 책 속에서 우리는 중국인의 '꽌시'를 1:1 또는 소수자들 간의 관계로 간주하고 그 속에 내재된 사적인 법칙을 발견하려고 하지만, 정작 여론 광장 속의 '꽌시'는 중국 사회의 변화와 그 맥을 같이 하며 주목받고 있다. 한국의 언론은 주로 중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 전반의 법제화에 주목하였다. WTO에 가입한 후 중국의 경제 구조가 더 이상 몇몇 고위 간부를 통한 '꽌시'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사회 전체 시스템에 의해 운영된다는 것은 곧 '꽌시'의 대폭적인 축소를 의미하고, 특히 한중 경제교류에 있어서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반면 중국 언론은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로 성숙된 시민의식을 언급하면서 '꽌시'가 지닌 부정적 요소를 일소하고 사회 전반의 공공성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부응하는 조치는 몇 해 전부터 시행되어져왔다. 중국 정부는 2007년 9월 국가예방부패국을 만들었고 그 해 12월 부패공직자 고발싸이트를 만들어서,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부패의 문제를 일소하고자 노력했다. 부패의 고발과 공공성의 확대는 정비례하며, 시민의식의 성숙과 고발싸이트의 운영으로 사회 투명성이 이전보다 많이 개선된 것도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언론상의 언급과는 달리, 중국 내에서의 '꽌시'는 여전히 기세등등한 것처럼 보인다. 최근 충칭(重慶)시 공안당국은 사법국장, 공무원, 경찰이 연루된 조직폭력배 2000여명을 적발했다. 21세기 들어 조직폭력배 조직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는 중국의 의사 혈연집단인 '의형제 꽌시'의 부정적 변용의 산물이다. 그리고 뇌물수수로 인한 부패의 관행은 예상과 달리 그리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부패의 영역은 오히려 더 확대되어 최근에는 의약계나 대학가에서도 청탁성 뇌물이나 대가성 수뢰가 공공연하게 발생하고 있다. 올 10월에 발생한 우한대 부총장의 수뢰사건이 그 한 예이다.

추락하는 '꽌시'에는 날개가 있다

이처럼 사색조의 '꽌시'는 사회시스템의 변화와 연동되어 변신을 꾀하면서 여전히 활약 중이다. 이 위력이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는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첫째는 관료주의이다. 수천 년간 중국인의 발목을 잡은 관료주의는 사회주의 도입 이후에도 소멸되지 않고 단지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고질적인 관료주의의 득세는 필연적으로 청탁문화와 특혜문화를 양산할 것이고, 이 와중에 '꽌시'는 관료주의 문화와 연동되어 그 효력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둘째는 개선되지 않는 중국 사회의 부패 관행이다. 중국 사회의 부패는 앞서 언급한 관료주의와 더불어 투명하지 않은 국가 행정 관행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거대한 부패군을 양산하였다. 우리나라의 부패 문제도 매우 심각하지만 중국 사회의 부패는 개인 간의 은밀한 부패 수준을 넘어 군락의 개념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친소(親疏)의 관계는 윤리 관계가 아닌 담합의 원리로 변모하기 쉽다.

셋째는 정보의 독점과 소통의 부재에 기인한 일방적인 사회 풍기이다. 언론과 정보가 독점되고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꽌시'는 공개적 소통과 교류를 꾀하기보다는 여전히 사적인 교류나 은밀한 관계의 구축을 도모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시민단체 등과 같은 NGO 단체가 걸음마 단계인 중국에선 은밀함이 공개성을 앞서고 특수성이 합리성을 앞설 명분은 쉽게 주어진다.

이처럼 현 중국에선 '꽌시'의 영향력이 단기간에 축소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추락하는 '꽌시'의 위상을 멈추게 할 만한 요소가 사회 곳곳에 퍼져있고, 심지어는 날개를 달아줄 새로운 요소도 등장할 수 있다. 관료주의와 부패문제 그리고 소통부재는 '꽌시'의 부정적 변신에 일조할 동력으로 특히 주목받는다. 중국 사회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지혜를 모으는가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과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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