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위원회는 선정 이유에 대해 "국제 외교와 인류의 협력을 강화하려는 오바마의 비상한 노력" 때문이라면서, "그는 새로운 국제 환경을 창조했다"며 오바마의 외교적 노력이 더욱 가속화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이어 "오바마는 세계를 이끌어가야 하는 지도자들은 세계인들의 다수가 공유하고 있는 가치와 태도에 기반해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에 바탕에 둔 외교를 펼쳤다"고 덧붙였다.
▲ 2009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 23일 유엔본부에서 찢겨진 유엔기 옆을 지나가고 있다. 이 깃발은 이라크의 캐널호텔에서 무장세력의 공격을 받아 훼손된 것이다. ⓒ로이터=뉴시스 |
'아직 해 놓은 게 없는데…'
국제사회에서는 오바마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의외라는 반응이다. 올해 노벨평화상에는 사상 최대인 205명의 후보가 추천됐고, 모건 창기라이 짐바브웨 총리나 베트남의 민주화 운동가인 틱 쾅 도 등이 유력한 후보로 꼽혔었다.
<AP> 통신은 오바마 대통령이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 마감시한인 지난 2월 1일을 앞두고 불과 2주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했다고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핵확산 방지에 기여하고 교착 상태였던 중동평화회담 재개를 위해 노력한 공로로 노벨평화상 후보에 추천됐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오바마의 외교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확대했다는 이유로 올해 노벨상을 수상하긴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했었다. <뉴욕타임스>는 오슬로발 기사에서 노벨상 발표 직전까지 오바마가 선정될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없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은 오바마가 국제 문제에 대해 야심찬 아젠다를 제시하긴 했지만 중동 평화나 이란 핵 프로그램 문제에서 아직까지 어떤 돌파구도 마련하지 못했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어려운 선택에 직면해 있다고 평가했다.
고르바초프 "책임감과 비전, 헌신을 가진 사람 지지 받아야"
<로이터>는 또 국제사회가 오바마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해 크게 놀라는 분위기이고, 따라서 찬사와 함께 강한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중동평화회담에서 팔레스타인 측 최고 책임자를 맡고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사에브 에레카트는 오바마의 수상을 축하하며 "그가 중동의 평화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199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은 "기쁘다. 오바마가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했던 일은 희망에 대한 커다란 신호였다. 위기의 시절에 책임감과 비전, 헌신, 정치적 의지를 가진 사람들은 반드시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주제 마누엘 바로수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평화의 가치, 인도주의 개선에 대한 그의 헌신을 기리는 것"이라며 "오바마의 비핵화 비전이 세계에 희망을 던져주었음을 반영한 것"이라고 축하했다.
이슬람 강경파 "노벨평화상이 정치적이라는 것 입증"
그러나 이슬람권의 반응은 주로 차갑다. 팔레스타인에서 하마스와 연대하고 있는 '이슬라믹 지하드'의 지도자인 칼리드 알 바트쉬는 "노벨평화상을 오바마에게 준 것을 보면 그 상은 정치적인 것일 뿐 신뢰와 가치, 도덕에 따라 주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살고 있는 이삼 알 카즈라지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문제들은 아직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변화를 주장한 그는 아직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파키스탄의 보수적인 이슬람교 정당 '자마트-에-이슬라미'의 고위급 지도자 리아카트 바루치는 "웃기는 일이다.(It's a joke) 오바마에게 상을 준 사람들은 황당한 이들이다. 그는 평화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라크와 중동,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엇을 변화시켰나"라고 따져 물었다.
탈레반 대변인인 자비훌라 무자히드는 <AFP> 통신과 전화 통화에서 "오바마는 아프가니스탄의 평화를 위해 전혀 기여한 것이 없다"며 "노벨상 선정은 불공정하다"고 비난했다. 그는 "오바마의 평화 정책에서 우리는 어떤 변화도 보지 못했다"며 "그는 아프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영국 <BBC> 방송이 노벨평화상 발표 직후 홈페이지에 개설한 독자 의견 코너에도 의견이 크게 엇갈리는 가운데 '아직 이르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한 시청자는 "오바마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이렇게 빨리 이뤄진데 대해 매우 놀랐다"며 "세계 평화를 위한 그의 노력이 아직 열매도 맺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른 시청자는 "오바마가 인류를 위해 세계를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시킬 것으로 믿고 있다"며 "그러나 그는 이제 막 일을 시작했고 목표를 이루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노벨위원회, '핵 없는 세상' 비전 강조
그러나 노벨위원회는 "우리는 오바마의 업적에 대해 상을 수여한다"며 "많은 사람들과 지도자들과 국가들은 오바마의 외교에 적극 화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특히 '핵 없는 세상'에 대한 오바마의 비전을 강조하며 "오바마는 국제정치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오바마 취임 이후) 유엔과 그 밖의 국제기구들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다자외교가 국제무대의 중심에 다시 서게 됐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이어 오바마 대통령이 세계의 핵무기고의 축소를 주장하고 평화를 위한 활동을 통해 세계에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었다고 평가했다.
오바마는 지난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핵 비확산 및 군축 정상회의'를 개최해 핵무기 폐기를 촉구하는 결의를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바 있다. 앞서 오바마는 지난 4월 체코 프라하에서 "미국은 핵무기 없는 세계의 평화와 안보에 공헌하겠다"고 선언했다.
<BBC> "더 잘 하라는 격려의 의미"
취임 9개월도 안 된 상황에서 노벨상을 받게 된 오바마 대통령은 이로써 적잖은 정치적 자산을 확보하게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노벨상 수상자라는 권위는 오바마에게 중동 평화, '핵 없는 세상' 구상 등 자신의 외교적 목표를 수행하는데 커다란 동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정치적으로도 오바마는 시카고 올림픽 유치 실패로 삐끗했던 이미지를 제고하고 의료보험 개혁 추진 등에서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BBC> 방송은 9일 "오바마가 올림픽 시카고 유치는 실패했지만 노벨평화상을 타 전화위복이 됐다"며 "오바마의 수상은 이미 성취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기보다는 더 잘하라는 격려의 의미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한편, 미국과 적대 관계에 있는 이란은 오바마의 노벨상 수상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 눈길을 끌었다.
이란 대통령실의 알리 아크바르 자반페크르 언론보좌관은 <AFP> 통신에 "우리는 오바마의 수상 소식이 놀랍지 않다"며 "이번 수상이 세계 질서에 정의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에 자극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자반페크르 보좌관은 특히 오바마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을 철폐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된다면 노벨평화상이 올바르게 돌아갔다는 사실을 증명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오바마는 미국과 미국의 영향 아래 있는 나라에서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 왔는지를 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현직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은 1906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과 1919년 우드로 윌슨 전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퇴임 후인 2002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앨 고어 전 부통령은 2007년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노력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오바마는 또한 미국 민주당의 고위 인사 중 세 번째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됐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에게는 1000만 크로네(약 16억8000만 원)가 상금으로 주어지며, 시상식은 오는 12월 10일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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