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광우병 편' 제작 당시 일부 번역을 맡았던 정 씨는 <PD수첩> '광우병 편' 방송 이후 논란이 커지자 '오역 논란'을 앞장서 제기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등 보수 언론은 그의 주장을 <PD수첩> '왜곡'의 증거로 내세우며 대서특필했다. 최근 정 씨는 <PD수첩> 공방을 놓고 자신의 주장을 담은 책 <주>도 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이날은 그간 정 씨가 내세워온 주장의 신뢰 여부를 놓고 양측이 날선 공방을 벌였다. 특히 광우병에 문외한인 정 씨는 '광우병'에 관한 자신의 거침없는 주장을 내세워 변호인 측으로부터 "그렇게 말하는 근거가 뭐냐"는 질문을 받았다.
몇몇 질문에 정 씨가 "그렇겠죠"라는 식의 대답을 내놓자 김형태 변호사는 "말장난 하지 말라"고 반발했고, 문성관 판사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나지 않는다고 해야지 증인은 여기서 쓸데 없는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제지하기도 했다.
▲ <PD수첩> '광우병 편'을 놓고 진행된 7일 공판에서는 '오역' 논란을 최초 제기한 정지민 씨가 직접 나서 변호인 측과 날선 공방을 벌였다. ⓒ프레시안 |
"정지민 씨 부실한 번역·감수"
<PD수첩> 측은 "정 씨가 <PD수첩> 광우병 편에 오역 논란을 제기한 부분은 대부분 정 씨가 번역을 했거나 감수를 맡았던 부분이고, 정 씨는 감수 과정에서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 씨는 "<PD수첩> 제작진이 감수 이후 내용을 왜곡했거나 당시 보조 작가인 이연희 씨가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라고 주장해 변호인 측 증인으로 출석한 이연희 작가와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PD수첩> 팀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suspect'를 '의심된다'가 아닌 '걸렸다'고 번역한 것은 정 씨가 직접 초벌 번역한 부분이다. 이후 정 씨는 본인이 감수를 했음에도 오류를 시정하지 않았다. 또 '우리 딸이 걸렸던'으로 번역된 'could possibly have'도 최모 씨가 번역한 것을 정 씨가 감수한 것으로, 이 과정에서도 오류는 수정되지 않았다.
또 '딸이 인간광우병에 감염됐다면 어떻게 감염됐을까 생각했어요'(if she contacted, how did she)라는 초벌 번역은, '아레사가 어떻게 인간광우병에 걸렸는지 모르겠어요'로 수정됐으나 정 씨는 감수 과정에서 오류를 수정하지 않았다.
이 자막을 작성한 이연희 작가는 "반복된 '감염됐다'는 말을 줄이다 실수를 했다"며 "그러나 정 씨는 수정하라는 지시를 하지 않았다. 만약 수정 지시가 있었다면 반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지민 "지적했지만 실제로 고쳐졌는지 알 수 없어"
그러나 정 씨는 "4시간 동안 감수를 했지만 이연희 작가가 노트북 모니터를 몸으로 가리거나 보여주려 하지 않아 실제로 내가 지적한 내용이 고쳐졌는지 알 수 없었다"고 반박했다. 그는 "몇몇 의도적인 '오역' 부분은 내가 지적했는데도 이연희 작가가 반영하지 않거나 <PD수첩>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바꾸었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연희 작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맞받았다. 그는 "당시 '감수'를 진행했던 편집실은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야 할 정도로 공간이 좁았고 노트북은 두 사람 가운데 있었다"면서 "감수자가 지적을 했다면 고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지금 정 씨가 지적하는 '오역' 부분은 스스로 감수를 하면서 전혀 지적하지 않은 부분"이라고 맞받았다.
이러한 논란은 정 씨가 부실한 감수를 했다는 지적으로 이어졌다. 정 씨는 '이연희 작가가 지적하는 대로 고쳤는지 확인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나는 지독한 근시라 노트북 모니터를 들여다볼 수 없었고 눈이 아프기 때문에 그럴 생각도 없었다"면서 "당시 이 작가에게 짜증이 난 상태라 멀리 떨어져 앉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어서 또 다른 증인으로 나온 번역가 최모 씨는 "감수를 할 때는 대체로 혼자 진행하지만 보조작가와 함께 일을 할 때는 내가 지적하는 대로 고쳤는지 반드시 확인한다"면서 "만약 지적대로 고쳤는지 확인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자막 감수를 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정지민 "비타민 처방" 발언도 근거 못 돼
또 다른 논란은 아레사 빈슨의 실제 사인. 정 씨는 지난해 7월 자신의 인터넷 커뮤니티와 <문화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 등을 통해 "고 아레사 빈슨이 입원했던 메리뷰 병원은 빈슨에게 비타민을 계속 처방했다"면서 "이는 위장접합술 후유증을 의심한 처방인데, <PD수첩>이 사인을 인간광우병(vCJD)으로 몰아가려고 이 내용을 고의적으로 빼고 편집, 방송한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문화일보>는 그의 주장을 받아 "빈슨 어머니는 <PD수첩>과의 인터뷰에서 '빈슨이 비만 치료를 위해 위장접합술을 받은 뒤, 여러 가지 후유증이 나타났고 병원 측이 자꾸 비타민 처방을 했다'고 밝혀, 위장접합술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주장은 지난 4월 7일자 <중앙일보> "PD수첩, 빈슨 다른 병 알고도 '인간광우병 의심' 보도 의혹"라는 보도에서도 검찰 측 주장으로 다시 보도됐다.
그러나 정 씨는 이번 공판에서 "빈슨 어머니가 언제 그런 말을 했느냐"는 지적에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는 "빈슨의 어머니는 위장접합술로 사망했을 가능성을 두세 차례 언급했다"면서 "어머니는 '포타슘(칼륨) 처방'을 여러번 말했고 나는 그것을 비타민과 연결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포타슘이 어떤 물질이냐", "비타민이라는 말은 없다. 어디서 봤느냐" 등의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빈슨의 어머니가 비타민 처방을 받아왔다고 말했다'고 한 것은 잘못 알았던 것 같다"고 인정하면서 "<PD수첩> 측이 취재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실제 사인을 '베르니케뇌병증'을 추정한 것을 놓고 "나는 '인문학도'로서 합리적인 추정에 따라 알아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법정에는 민동석 전 농림수산식품부 정책관이 나와 8시간 동안 진행된 공방을 끝까지 지켜봤다. 그는 정지민 씨가 증언을 마치고 나가자 따라 나가 "수고했다"며 악수를 나누는가 하면 공판 이후에는 검찰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바로잡습니다 <프레시안>은 10월 8일 "오역 논란 제기한 정지민이야말로 '오역·왜곡' 당사자" 보도 당시 기자의 착오로 "몇몇 질문에 정 씨가 '그렇겠죠'라는 식의 대답을 내놓자 판사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나지 않는다고 해야지 증인은 여기서 말장난하면 안 된다'고 제지하기도 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말장난"을 언급한 것은 김형태 변호사로, 문성관 판사는 "쓸데없는 말 하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바로잡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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