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단체와 학계가 최근 지식경제부와 한국전력이 내놓은 제6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에 큰 실망감을 드러냈다. 21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6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 진단 토론회'의 참가자들은 그간 논란이 돼 온 6차 전력 수급 계획을 비판하며 그 대안을 두고서 갑론을박을 벌였다.
6차 전력 수급 계획은 2027년까지의 전력 수요 전망과 발전소 건설 계획을 담고 있는 국내 에너지 정책의 로드맵이다. 전기 요금과 지역 발전소, 송전탑 건설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모든 에너지 문제의 향방이 이 계획에 따라 정해진다. 아무리 그 중요성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6차 전력 수급 계획,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가 열린 2월 1일 오후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강당에서 전국전력노동조합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재벌 특혜 민자 발전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에너지 펑펑 쓰는 한국…정부는 "전기 더 써!"
지난 2월 1일 6차 전력 수급 계획 공청회가 시민·사회단체의 반말로 무산된 후 7일 다시 열렸지만 원안을 재확인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이에 따라 전력 수급 계획은 지식경제부와 전력거래소의 전력정책심의회만 거치면 2월 안에 원안 그대로 확정·공고된다. 박근혜 정부가 채 검토를 제대로 하기 전에 앞으로 15년간의 에너지 로드맵이 마련되는 것이다.
이번 6차 전력 수급 계획의 가장 큰 문제는 전력 수요 예상이다. 정부는 전력 수요를 조절하는 길을 선택하는 대신 예상 전력 소비량만 늘렸다. 이렇게 늘어나리라 예상되는 전력 소비량은 정부가 기존의 핵발전소에 더해서 새로운 화력 발전소 등을 추가로 건설하겠다고 나선 근거가 되었다.
지식경제부는 지난 1월 31일 전력 소비량(6553억 킬로와트)과 최대 전력량(1억2674만 킬로와트)을 5차 계획 때보다 각각 9.2퍼센트, 8.5퍼센트 늘렸다고 발표했다. 이에 늘어난 전력량을 감당하기 위해서 18기의 화력 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해 1580만 킬로와트의 전력을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토론회에 참석한 윤순진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는 애초에 전력 수요량을 늘릴 필요가 있었느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한국은 이미 '에너지 다소비국'이다.
2012년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한국은 석유 소비, 석탄 소비, 전력 소비에서 각각 9위, 7위, 9위(2010년 기준)를 차지해 상위권을 기록했다. 한국보다 높은 순위를 기록한 국가는 미국, 중국, 일본, 인도, 러시아, 독일 등 한국보다 인구수가 월등하게 많거나 국내 총생산(GDP) 규모가 큰 국가들이었다.
2010년 IEA가 발표한 <주요 선진국의 소득과 에너지 소비>를 보면 한국이 GDP 대비 에너지 소비량이 매우 큰 나라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조사 대상 8개국(한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영국, 미국, 호주)에서 한국의 GDP는 최하위였으나 1인당 전력 소비량은 미국, 호주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미국은 엄격하게 오염물질 규제, 한국은?
신규 건설되는 발전소 18기의 사업자와 발전 방식을 둘러싼 논란도 이어졌다.
이미 18기 가운데 12기를 대기업(SK건설, 삼성물산, 동양건설, GS건설, 대우건설, 동부건설, 현대산업개발 등)이 짓기로 해 민간 발전소의 과도한 수익에 대한 논란이 일었었다. 게다가 12기의 발전소가 온실 기체를 배출하는 주범으로 꼽히는 석탄 발전소로 건설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이와 관련해, 조경두 박사(인천발전연구원)는 "신규 화력 발전 시설이 세계적 추세를 거스를 뿐 아니라 대기오염 문제를 해결하려는 국내의 노력과도 모순된다"고 비판했다.
조경두 박사는 "바람의 특성을 고려할 때 해안에 밀집한 화력 발전소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은 인구 밀집지로 갈 수밖에 없다"며 "이는 환경 피해를 일으키고 사회 비용을 증가시킨다"고 말했다. 그는 화력 발전 시설이 들어서면 △대기 오염 물질(미세 먼지, 황산화물, 질소산화물, 독성 수은 분진 등) 배출 밀도 증가 △유해 대기 오염 물질 증가 △저탄장(다량의 석탄을 저장하는 장소)의 2차 오염 증가 △온배수(화력 발전소에서 수온이 상승한 채 외부로 배출되는 물)에 의한 해양 생태계 교란 심화 등의 피해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대기정화법(Clean Air Act)이 규정하는 BACT(Best Available Control Technology)를 수도권 화력 발전 시설에는 예외 없이 적용한다. 이 법은 유연탄 연료의 황산화물 함량을 0.5퍼센트로 유지하게 하는 등 오염물질을 엄격하게 규제한다. 그는 "특히 석탄 화력 발전소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 차츰 폐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그는 석탄 화력 발전소가 인천시에 들어서는 계획을 꼬집었다. 인천시는 지난해 '유엔 녹색 기후 기금(GCF) 사무국' 유치에 성공해 해마다 약 1000억 원을 들여 대기 환경 개선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6차 전력 수급 계획을 따르면 인천시 옹진군에 온실 기체와 각종 오염 물질을 내놓는 영흥도 화력 발전소를 증설하게 된다. 그는 "한쪽에서는 재정을 투자해 대기 오염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신규 화력 발전 시설에서의 오염 추가 배출을 허용하는 것을 통합적 관리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아울러 그는 화력 발전 시설이 환경 비용에 대해 공정하게 세금을 내는 과세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4년 1월부터 화력 발전세가 도입돼 화력 발전소는 1킬로와트시당 0.15원의 화력 발전세를 납부해야 한다. 그는 "대기 중으로 유해 물질을 배출하는 화력 발전소가 이렇게 적은 세금만 낸다면 면죄부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지난 1월 2일 오후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당인리의 화력 발전소 굴뚝에서 흰 수증기가 하늘을 덮고 있다. ⓒ뉴시스 |
신·재생 에너지 두고 갑론을박
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앞서 이뤄진 논의에 반대의 뜻을 내비치며 "결국 다 돈의 문제"라고 단언했다. 그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옵션은 원자력과 석탄·가스뿐"이라며 "시민·사회단체에서 대안으로 제시하는 신·재생 에너지는 비싸서 (현실 가능성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최종적으로 전기 요금을 올려야 하는데 그 요금에 대해서는 별로 말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서 그는 "정부가 신·재생 에너지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신·재생 에너지 공급 의무(RPS, Renewable Portfolio Standard) 제도를 도입했지만 다들 벌금을 내겠다는 식"이라며 신·재생 에너지 정책이 실효성이 없었다고 밝혔다. RPS 제도에 따르면, 발전 설비 용량 500메가와트 이상의 발전 사업자는 매년 2퍼센트의 발전량을 신·재생 에너지원으로 공급해야 한다.
이런 노동석 연구위원의 주장에 시민·사회단체는 즉각 반발했다. 왜냐하면, 애초 시민·사회단체가 적극적으로 옹호한, 신·재생 에너지의 보급 확대를 위해서 마련된 발전 차액 지원(FIT, Feed in Tariff) 제도를 폐지하고 2012년 RPS를 도입한 것이 이명박 정부의 지식경제부이기 때문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그 옹호 논리를 적극적으로 제공한 곳이다.
발전 차액 지원 제도는 재생 에너지로 공급한 전기가 전력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도록 전력 가래 가격 일부를 일정 기간 동안 지원하는 형식이다. 태양, 풍력 에너지 등 재생 에너지 강국인 독일에서 성공적으로 시행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2001년 10월에 도입돼 적지 않은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지식경제부는 이 제도를 지난 2011년 폐기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은 "발전 차액 지원 제도를 절대로 폐지하면 안 된다고 시민·사회단체가 그토록 말렸는데 결국 폐지하고서, 우리가 그렇게 반대하던 RPS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느냐"며 "그런데 시행한 지 1년 만에 RPS 제도가 실패했다고 하면서 신·재생 에너지 정책은 답이 아니라고 말하는 건 또 무슨 황당한 논리"냐고 비판했다.
양이원영 처장은 "6차 전력 수급 계획을 따르면 2024년에 우리나라는 현재의 미국보다 전기를 많이 쓰는 나라가 된다"며 "한국처럼 조그만 나라에서 이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계속 이렇게 싼 전기를 공급하려고 발전소만 짓는 방향으로 갈 게 아니라 전기 요금을 올려 전기 수요를 조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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