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차이메리카' 시대의 北, 변화의 중심에 서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차이메리카' 시대의 北, 변화의 중심에 서다

[한반도 브리핑] 원자바오 방북과 美·中의 패권 경쟁

여름이 물러가고 이제 완연한 가을이다. 추석의 보름달도 둥근 모습을 잃은 모습이다. 자연은 모든 것이 변하고 순환한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늘 일깨워 준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반도의 정세는 매우 긴 시간 정체상태(stalemate)를 겪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무한한 것이 아니며 현재 큰 전환을 맞고 있다.

가장 큰 변화가 감지되는 것은 미국의 패권이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의 초강대국 패권국가로 자리매김했다. 미국은 냉전 시기 사회주의 경제권을 제외한 모든 세계 경제의 중심이었고, 미국의 달러는 세계통화의 역할을 했다. 냉전 이후 미국은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었으며, 미국의 패권과 미국식 시장 자유 민주주의는 후쿠야마가 예견했듯 역사의 끝(end of history)처럼 보였다.

미국은 자유세계와 미국의 이념을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다. 초강대국 미국이 실력으로 이기지 못할 나라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지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미국은 아직 탈레반을 완전히 소탕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전열을 재정비한 탈레반에게 역공을 당하고 있다. 이라크에서는 독재자 후세인을 제거했으나, 아직 미국이 약속한 자유와 평화를 주지 못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7년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미국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를 현재까지 겪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의 지역질서와 구도는 냉전 이후 미국의 패권이라는 큰 틀 안에서 일본과 중국의 세력이 균형을 이루는 구도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질서와 구도는 이제 큰 변화를 맞을 국면에 직면하고 있다.

패권 또는 헤게모니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경제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소비를 위주로 한 미국의 경제체제는 이제 패권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 와 있다. 2007년 시작된 미국의 경제위기는 미국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현재 미국은 다른 나라에게 자국 정부의 채권을 팔아 경기 부양책을 쓰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채권을 사는 나라 중 가장 비중이 큰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은 1970대 말부터 경제 개혁과 개방을 시작해 현재까지 연평균 10%의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다. 이 성장의 원동력은 알려진 것과 달리 외국인 투자(FDI)가 아니라 국내의 높은 저축률(약 51%. OECD 국가들의 평균저축률은 8.5%, 한국의 국내저축률은 3.2%)을 바탕으로 한 국가주도의 투자(National Investment)이다. 1990년대부터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되었으며 특히 세계시장의 중심이라고 하는 미국 시장에 소비품을 공급하는 주공급원이 되었다.

이러한 중국과 미국과의 특수한 경제관계를 하버드대의 니알 퍼거슨 교수는 차이메리카 (Chimerica)라고 명명했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을 뜻하는 'Chi'가 미국의 'merica'가 보다 앞에 있다는 점이다. 퍼거슨 교수가 편의상 'Chi'를 먼저 썼을 수 있으나, 중국과 미국의 경제관계는 중국이 소비품을 미국시장에 공급하지만 소비시장의 다양화가 가능하다는 점, 특히 거대한 중국의 내수시장이 존재하고 성장하고 있다는 점과 현재 미국 국채의 최대 보유자(약 8000억 달러)라는 점을 고려할 때, 'Chi'가 'merica'보다 먼저 나오는 것은 현재와 미래에 나타날 양국의 역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지난 5일 북한 평남 회창군에 위치한 '중국 인민지원군 열사묘'를 방문, 마오쩌둥(毛澤東)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의 묘지에 참배하고 있다. 그는 마오안잉의 흉상 앞에서 "동지, 이제 조국은 강해졌고 인민은 행복하니 편히 쉬시오"라고 말했다. 북중 '혈맹'을 과시하는 이러한 모습 속에는 북한을 끌어 들이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신화통신=뉴시스

미국에 북한은 '엉덩이에 있는 고통'(pain in the ass)과 같이 어찌할 수 없는 문제다. 저물어가는 해와 같이 패권을 잃어 가고 있는 미국으로서 북한 문제를 단독으로 해결할 힘은 이제 없다고 봐야 한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군사 작전이 실패로 평가되는 상황 속에서 북한을 군사적으로 단번에 제압하는 옵션은 이미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경제봉쇄를 더 강화할 수 있으나, 60년 넘게 지속되어온 봉쇄를 지속한다고 북한이 조만간 항복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더욱 큰 문제는 북한이 미국의 패권적 입지를 약화시키고 있는 실질적 요소로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제조 기술은 시간이 갈수록 진보하고 있고 이것은 미국의 패권적 입지 유지의 버팀목과 같은 역할을 하는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를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시간이 더 가기 전 북한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다급한 입장이다. 제임스 존스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4일(현지시간) 방영된 <CNN> 대담 프로에 출연해 "북한과 이란의 진정한 의도가 뭔지 결론을 내리기 위한 논의를 길게 끌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남은 것은 북미간 손익계산서를 서로 맞추면서 물밑에서 협상과 거래를 하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4일부터 사흘간 북한을 방문했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공항에 나와 원 총리를 마중하는 등 파격적인 대우를 했다. 항간에는, 특히 국내 메이저 신문들은 김정일이 '중국의 도움이 급해서' 혹은 '북한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은 결국 중국임을 재확인했기 때문에' 이런 대우를 했다고 진단했으나, 현재 진행되는 정세 변화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자의적인 해석이다.

중국은 2020년까지 연평균 8% 성장을 기록한 뒤 이르면 2025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1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중국은 패권국의 조건을 갖추게 된다. 중국이 과연 미국을 이어 또는 미국을 뛰어넘어 패권국으로 등극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지만, 팍스아메리카나(Pax-Americanan) 체제에서 팍스시니카(Pax-Sinica) 체제로의 전환은 점점 가까워 오고 있다.

화평굴기(和平屈起)를 기조로 하고 있는 중국의 대전략은 미국의 헤게모니를 인정하고 힘을 키워가는 것이다. 미국은 경제적으로 중국과 맞물려 있지만(Chimerica) 중국이 패권국으로 부상하는 것에 대해서는 지역 패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제지하고 일본과 군사일체화를 이루면서 견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미국 위주의 지역질서에 복종하지 않고, 나아가 그 질서를 일정하게 흔들고 있는 나라가 바로 북한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공식적으로 북한과 같은 노선(반미)을 표방할 수는 없으나 물밑으로 북한과 같이 하는 것이(북한을 도와주는 것이) 당연히 유리하다. 따라서 6자회담에서 중국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겠다는 미국의 의도는 처음부터 관철될 수 없었던 것이다.

실상 6자회담을 통해 나타난 것은 패권국 미국의 한계, 그리고 미국도 어쩔 수 없는 동북아 역관계에서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전체적인 조정을 맡고 있는 중국의 입지 강화였다. 결국 6자회담에서 가장 실리를 본 것은 중국이다.

미국은 표면적으로는 자신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북한에 6자회담의 복귀를 종용하고 있으나, 미국 입장에서도 북미 양자회담을 성사시켜 북한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 앞으로 북·미간 어느 정도 밀고 당김이 있겠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는 양자회담으로 해결의 틀을 마련하고 6자회담을 통해 또는 미국, 중국, 북한 등이 참여하는 다자회담을 통해 종지부를 찍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문제의 해결은 단지 비핵화만 의미하지 않는다. 북한과 미국의 관계정상화,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의 전반적인 변화도 동반한다. 북미관계의 정상화란 적대적 관계에서 호혜적 관계로의 전환을 의미하며, 북한이 친미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비(非)반미적 국가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국교정상화를 통해 미국이 북한에 줄 것은 경제봉쇄 해제, 국제기구를 통한 경제개발 지원 등으로 많고, 이는 북한이 절실히 필요한 것들이다.

그런데 중국의 입장에서 북미관계 정상화를 통해 북한이 친미 쪽으로 기운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역사적으로, 현실적으로 중국은 북한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영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미국이라는 헤게모니적 반공국가의 압박과 냉전기 소련이라는 거대한 국가가 제국주의적인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순치지국(脣齒之國)의 공생·협력으로 대변되지만, 북한은 늘 중국을 경계하고 중국도 북한을 미덥게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의 주체사상도 '민생단 사건'에서 기원한 것으로 북한에서 사대척결(事大剔抉)의 대상 중 하나는 바로 중국이다.

원자바오의 북한 방문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바로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 및 원조인데, 막바지에 와 있는 생산 증량이 핵심인 '150일 전투'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 북한에 대한 중국의 입지를 극대화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즉,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통해 경제적 수혜를 받기 전에 중국이 선수를 쳐서 북한이 전적인 친미국가가 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한다는 의미이다. 북한도 원 총리를 파격적으로 환대함으로써 미국과의 협상과 거래에서 레버리지를 높이려 하고 있다.

여름은 길었지만 머무르지 못했다. 어느 패권국의 지위도 무한정 지속될 수 없으며 흥망성쇠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현재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는 패권의 전환기를 맞고 있으며 북한은 마치 혼동이론(Chaos Theory)에서 변화이 중심이 되는 '이상한 끌개'(strange attractor)가 되어가고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