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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이야기, 실은 세계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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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이야기, 실은 세계에 관한 이야기

[화제의 책] 김재명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은 눈물의 땅이다. 피의 땅이다. 강대국들의 욕망과 군수산업의 이해가 응축된 국제정치의 교과서다.

거기에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있다. 팔레스타인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무엇인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땅이고, 그것이 팔레스타인의 무고한 주민들을 죽이고 있다.

▲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김재명 지음, 프로네시스 펴냄). ⓒ프레시안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인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핍박하고 있다는 사실은 으뜸가는 아이러니다.

작년 12월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시작된 22일간의 가자지구 전쟁에서는 1400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망했다. 그 중 773명은 민간인이었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60년간 팔레스타인에 준 고통에서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당시 이스라엘 쪽 사망자는 13명에 불과했다. 그 중 7명은 아군의 오인사격으로 사망했다.

유대인이 엄청난 고난의 역사를 살아왔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보면 쿠르드족, 위구르족, 아르메니아족 등도 마찬가지로 민족적 고통을 겪었다. 그 고난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유대인들만의 독특한 경험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아랍인들이 수 천 년 살아 온 팔레스타인 땅에 밀고 들어가면서 홀로코스트의 비극이 마치 남을 핍박해도 되는 면죄부인 양 '깡패' 행세를 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으로 몰려가게 한 건 19세기 말 유럽에서 시작된 시오니즘 운동 때문이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유대 국가를 건설하자는 이 운동이 저 유명한 드레퓌스 사건에 의해 촉발됐다는 사실도 아이러니다.

유대인인 프랑스의 육군 장교 드레퓌스가 독일의 스파이라는 누명을 썼지만 반(反)유대 여론만 높아지는 것을 목격한 한 언론인이 유대인에 대한 동정심의 발로로 주창한 시오니즘 운동. 진실을 갈망했던 그의 선의(善意)가 팔레스타인인들의 운명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는 사실은 역사의 장난이 아닐 수 없다.

이슬람 극우 테러단체의 지도자로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테러에 앞장섰던 이츠하크 라빈이 이스라엘의 총리가 되어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에 서명한 것도 아이러니다. 라빈은 오슬로 협정 때문에 199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이듬해 그 협정에 반대하는 유대인 극우 청년이 쏜 총에 암살당했다.

<프레시안> 기획위원으로 '월드 포커스'를 연재하는 김재명 성공회대 겸임교수가 쓴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김재명 지음, 프로네시스 펴냄)에는 이 외에도 팔레스타인을 둘러 싼 아이러니들로 넘쳐난다.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을 막고 있는 유대인들에게도 '난민'이 있었다는 사실, 이스라엘이 중동판 '선군정치'를 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해서는 한국보다 관대하다는 사실 등. 역사란, 정치란, 나아가 운명이란 무언이냐는 질문이 절로 나오는 대목들이었다.

▲ 지난 1월 이스라엘의 마구잡이 공습 탓에 무너진 집 앞에서 눈물짓는 팔레스타인 여인. ⓒ가자지구=김재명

그런 아이러니가 집약된 환경에서 핍박받고 살다보니 정치와 역사에 대한 의식이 높아진 것일까. 김재명이 팔레스타인의 길거리에서 만난 갑남을녀들의 말을 들어 보면 세상을 보는 그들의 의식 수준은 그 어떤 전문가들보다 높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지난 1월 만났던 팔레스타인 청년 두 사람이 떠올랐다. 이스라엘의 가자 공습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점이었다. 그들은 인천의 한 대학에서 정보통신을 공부하는 학생들이었는데, 인터뷰를 하다 보니 공학도이기에 앞서 뛰어난 정치분석가였다.

"하마스는 총선에서 다수당을 차지한 것만큼 팔레스타인인들의 지지를 받는다. 어느 나라에서나 국민들이 원하는 걸 하는 당이 지지를 받는다. (…) 미국이 하마스를 테러리스트라고 해도 상관없다. 우리는 팔레스타인인의 관점에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 국제사회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휴전을 하는 게 어떠냐고 하마스에게 말하지만, 그건 이스라엘한테 해야 하는 말이다."

그 후 그 청년들이 다시 생각난 때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직후였다. DJ의 죽음에 대한 광주 민심을 탐방하는 <프레시안> 르포기사를 읽고 나서였다.

"5.18 묘지가 아니라 국립묘지로 가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지 광주의 대통령인가. (…) 김대중이 호남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김대중이기 때문에, 노무현이 영남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노무현이기 때문에 찍었다."

반박할 구석을 찾기 힘든 명쾌한 논리로 정치 상황을 설명하는 '능력'은 억울함을 아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든다는 사실을 팔레스타인과 광주 사람들은 보여줬다.

이처럼 김재명의 책은 제목이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이었지만 비단 팔레스타인의 문제만을 생각하게 하는 전문서적이 아니다. '나'와 '너',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 전쟁과 평화를 넘나드는 그의 책은, 한마디로 세계의 보편성(그리고 특수성)을 탐구하는 교양서적이라고 하는 게 타당하다.

유대인들의 알리야(귀환) 논리를 1990년대 코소보 인종 청소의 논리와 빗대고, 팔레스타인의 비극이 제국주의의 유산임을 설명하다가 한반도와의 유사성을 논하는 등 이 책의 백미로 꼽히는 대목을 읽어보면 과연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 극우파들과 알제리 민족주의자들의 테러전술을 비교하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특히 김재명은 그런 이야기들을 풀어내면서 저명한 국제정치 서적, 프란츠 파농이 쓴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같은 역사적 저술, 나아가 국제정치와 관련된 많은 영화 제목을 곳곳에서 언급한다. 그의 관심과 취재, 독서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를 보여주는 것인데, 팔레스타인이란 '소재'를 가지고 세상을 논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한다.

김재명 관심은 과거 민족분단과 해방정국 당시의 중간파에서 시작해 국제분쟁, 석유, 전쟁영화, 팔레스타인으로 이어졌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5권의 책으로 묶였는데, 다음 시선이 어디로 향할지 궁금해진다.

이번 책에서도 확인됐지만, 다음 번 주제가 무엇이건 그는 지난 2005년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김재명 지음, 지형 펴냄)에서 말했던 그 '이념'에 따라 세상을 파헤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영구평화가 무덤 속에서나 가능하다면 차라리 평화를 기원하기보다 아득한 절망 속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소수자와 못 가진 자, 약자의 정의가 승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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