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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강경론자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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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강경론자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한반도 브리핑] 남북관계 개선이 달갑지 않은 사람들

이른바 북한의 '물폭탄'으로 남북관계가 긴장되고 있다. 사건 초기만 해도 남측의 대북 전통문에 북측이 신속히 화답함으로써 돌발적 사고가 남북간 불필요한 감정대립으로 확산되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6명 사망이라는 감정적 분노를 앞세운 일부 보수언론의 여론몰이에 의해 분위기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갑작스런 방류 경위를 설명하고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해 사전 통보하겠다는 북측의 답변에도 불구하고 보수언론들은 수공(水攻) 가능성과 반민족적 살인행위까지 거론하며 공식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여론에 떠밀린 통일부도 북한의 '의도'를 의심하며 북에 유감표명을 요구하고 정확한 진상 규명에 나서겠다며 하루가 다르게 강경한 입장으로 바뀌고 있다.

북한의 예고 없는 방류로 무고한 시민 6명이 사망한 것은 너무나 안타깝다. 그러나 6명의 사망 사고를 전적으로 북한 책임으로 돌리고 최근 북이 취한 잇따른 양보 조치마저 무위로 돌리면서 남북관계 경색으로 치닫는 것은 아무리 봐도 석연치 않다.

사건의 진상이 정확히 밝혀져야 하겠지만 이번 사건의 핵심은 '사고'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사전통보를 합의한 것도 아니고 국제법에 따른 의무사항이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북이 통보 없이 방류한 것 자체를 죽음의 원인으로 등치시키는 것은 과도하다.

갑작스런 수위 상승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고 체계적인 대피 조치를 취할 수 있었던 수자원공사와 우리 정부의 대응 시스템이 먹통이었다는 사실도 동일하게 원인으로 거론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번 사건의 핵심은 북의 무단 방류이고 이는 북한의 호전성과 인명경시 및 대남 수공 위협에 기인한 것으로 집중되고 있다.

임진강 참사, 책임 따지되 대북 압박 명분은 곤란

이처럼 사건의 진상과 본질을 외면한 채 감정적인 반북주의를 내세워 대북 강경기조를 강요하는 우리 사회 일각의 분위기는 무엇을 의도하는 걸까? 그것은 기본적으로 남북관계 정상화 움직임을 못마땅해 하는 강경 보수층의 정서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북한의 양보 조치를 일관된 대북 제재와 압박의 효과라고 반기면서도 북이 주도하는 협상국면이 조성되는 걸 내키지 않아하는 완고한 보수진영에서는 북이 내민 대화 재개의 손을 잡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다.

북이 유연한 입장을 보이는 것도 '원칙적' 입장을 견지했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이들은 여기서 북이 내민 손을 잡는 것은 또 다시 북한의 페이스에 말려들 위험이 있고, 따라서 북이 확실히 굴복하고 기어 나올 수 있도록 더 강력하고 강경한 대북 압박을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북이 내민 대화의 손과 북이 열고 있는 협상의 창을 오히려 걷어차고 기존의 강경한 압박과 봉쇄를 밀고가길 희망하는 바, 여기에 이번 임진강 사건은 더없이 좋은 명분을 제공하게 된 셈이다.

사건의 정확한 진상 규명과 균형 잡히고 객관적인 접근을 뒤로 한 채,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북한의 후안무치와 잔인성만 강조되면서 어렵게 조성되고 있는 남북대화 분위기와 남북관계 정상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탁월한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다.

▲ 라이트코리아, 납북자가족모임 등의 보수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지난 8일 오후 통일부 앞에서 북한의 황강댐 방류 사건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굴복'으로까지 비춰지는 北의 태도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본다면 방류 사태 이후 북이 취한 대응은 사실 과거에 비해 진전됐고 유연했다. 남측의 전통문에 6시간 만에 답을 한 것도 이례적이었고 만족스럽진 않지만 방류경위를 설명하고 앞으로는 사전 통보를 하겠다고 밝힌 것은 최근 남북관계와 기존 합의를 고려할 때 일정하게 전향적 태도를 엿보게 한다.

그럼에도 일부 언론은 '사과'를 언급하지 않았다며 6명 죽음에 기본적인 예의도 없다고 몰아붙였다. 그러나 사실 남과 북 어느 쪽도 자신의 일에 대해 상대방에 공개적으로 '사과'라는 단어를 사용한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다. 기껏해야 유감 표명 정도가 남과 북이 상대방에게 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예우였다.

남쪽도 그 어떤 경우든 북에 사과를 하지 않는다. 만약 북에 사과를 한다고 하면 지금 북이 사과하지 않는다고 흥분하고 있는 언론과 인사들에게 몰매를 맞을 것이다. 가까운 예로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 씨가 최근 석방되면서 우리 정부는 '어떤 사과나 대가도 북에 하지 않았다'고 자랑스럽게 밝혔다.

그러나 유성진 씨가 북측 지역인 개성공단 내에서 북측 여성에게 체제와 지도자를 비난한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북에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고 보면, 이번 임진강 방류 사건에 북이 반드시 사과해야 한다는 우리 요구는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우리가 하면 로맨스고 상대방이 하면 불륜이라는 전형적인 이중 잣대인 셈이다.

사실 최근 북의 행보는 과거와 비교해 볼 때 의아할 정도로 유연하다. 아무런 사과나 대가 없이 유 씨를 풀어줬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으로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했고 기존의 관례와 달리 쌀 지원 등의 이면 약속 없이도 추석 상봉을 선뜻 합의했다.

지난 해 북이 취한 군사분계선 통행 제한 등의 '12.1 조치'도 북한 스스로 완전 해제하면서 원상 복구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조의를 표하기 위해 온 특사 조의방문단이 하루를 기다리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면담을 희망했던 모습도 분명 과거와는 다르다. 북이 먼저 내걸었던 개성공단 임금 인상 요구도 스스로 철회했다.

이명박 정부가 고개를 숙이거나 사과하거나 상응하는 대가도 제공하지 않았는데 그동안 걸려 있던 현안들을 북이 순순히 나서서 풀어줬으니 당연히 남측의 성공이요 북측의 굴복으로 비칠 만하다.

北이 줄 '떡'은 무한한가

사태가 이러하면 다음 수순은 이명박 정부가 나서서 어렵게 열린 남북 대화의 창을 더 열고 북이 내민 대화의 손을 잡는 것이어야 했다. 그렇지만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더 큰 양보만을 요구하고 있다.

핵 포기의 결단을 내리기 전엔 북미대화가 없을 거라며 우리가 먼저 앞서서 밝히곤 했다. 포괄적 패키지를 둘러싼 북미협상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여전히 제재국면이 유효함을 강조했다. 우리 정부가 결정하면 될 일인 금강산 관광 재개도 전혀 생각이 없다.

또한 북이 이미 밝힌 플루토늄 무기화와 우라늄 농축 시험을 다시 확인했을 뿐인데도 무슨 큰 일이 난 것처럼 확대 해석하고, 오히려 기존 입장과 달리 6자회담 참여와 협상 의지가 있음을 밝힌 대목에는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 북이 언급한 우라늄 농축이 핵연료로서 필요한 저농축 우라늄인지 아니면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고농축 우라늄인지 확인도 안한 채 정부와 언론은 북이 이제 대놓고 우라늄 농축으로 핵무기를 만들려 한다고 비난한다.

최근 들어 북은 이명박 정부가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고 있다. 그것이 제재의 효과인지 북한이 주도하는 선제조치인지 분명하진 않지만 이명박 정부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수용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명박 정부와 보수 진영의 요구에 반응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에도 이를 부족하다며 거부하거나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자신과 북에 서로 다른 이중 잣대를 들이대며 북을 비난하고 북이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다 내놓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며 북이 내민 손을 뿌리친다면 지금 열린 대화의 창이 마땅치 않은 것이고 남북관계의 개선이 달갑지 않은 것에 다름 아니다.

남북관계 진전을 원치 않거나 북과의 대화와 협상을 내키지 않아 하는 사람에겐 최근 북한의 양보와 입장 변화쯤은 성에 차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어렵게 조성된 남북관계 개선의 가능성마저 박탈하고 싶을지 모른다.

본시 믿을 수 없고 원래부터 미치거나 나쁜 놈이라는 한국판 '오리엔탈리즘'으로 북을 보는 한, 지금 진행되는 북한의 양보와 대화 재개의 가능성은 경계해야 할 북한의 음모로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북한이 하나 양보하면 또 다시 다른 양보를 요구하는 얄궂은 사태 진전을 가져올 것이다. 광주리에 떡을 이고 가는 아줌마에게 고개를 넘을 때마다 떡 하나 줄 것을 요구하며 애간장을 태우게 하더니 결국은 줄 떡이 없게 되자 그 아줌마마저 잡아먹고 마는 마음씨 고약한 '호랑이'의 심보인 것이다.

북한의 일방적인 양보만을 요구하고 그 양보로 조성된 관계 진전의 기회를 스스로 버린다면 이는 처음부터 떡에는 관심 없고 결국 북한이라는 아줌마를 해치겠다는 의사를 가진 것으로 읽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으로서도 호랑이에게 줄 떡이 무한정 있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고개를 넘을 때마다 떡을 줘야 하는 북한의 입장에서 호랑이에게 한꺼번에 떡을 다 줄 리는 만무하다.

남북관계 개선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이제는 한국이라는 '호랑이'가 한번쯤은 북한이라는 '아줌마'에게 떡을 주어야 한다.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서 벌어지는 남북관계에서는 그렇게 해야만 신뢰성 있는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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