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카프카가 그리고 있는 소설 속 풍경이자 오늘날 한국의 현실이다. 어디서인가 '고독'이라는 이름을 가진 외판원 가장이 벌레로 변신해 죽음을 맞이하고 있지 않을까? 이미 한국에는 경제 능력을 잃고 절망에 빠져 자살을 택하는 가장이 너무나 많다.
'카프카'라는 주제로 연재하는 키워드 가이드 편영수 씨는 "권력에 대한 공포가 개인에게 있는 한 앞으로도 카프카는 계속 읽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반대하는 개인을 억압하려는 권력의 속성은 보편적이다. 그의 통찰은 그가 살았던 20세기 초 이전이나 앞으로 다가올 먼 미래까지도 포괄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카프카에 대한 오해는 많다. 그가 주로 소재로 삼고 있는 부조리, 소외, 불안 등의 주제와 비극적인 결말, 주인공의 행동 하나하나를 자세하게 그리는 세밀한 묘사 등이 '카프카는 어렵다', '카프카는 답답하다'는 등의 인식을 준다. 일각에서는 '강박'이라는 말로 카프카를 표현하기도 한다.
편영수 씨는 "카프카의 시선은 지극히 깨끗하고 건강하다. 그는 그의 건강한 눈으로 우리가 권력에 매여 있으며 이러한 '속박'을 인식하지도, 저항하지도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현재 전주대학교 교수(독어독문학과)로 재직 중인 그는 "카프카는 'A는 A다'라는 정의, 자신의 작품은 무엇이라고 단정하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며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거듭 강조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펼쳐놓았다.
▲ '카프카' 키워드 가이드, 편영수 씨. ⓒ프레시안 |
"카프카는 일상에 갇혀있는 것 자체를 '죄'라고 봤다"
프레시안 : 카프카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편영수 : 솔직하게 말하자면 단순한 이유였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가 유신정권 말기였는데 휴강을 많이 했다. 독문과였지만 텍스트 하나 제대로 끝내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다 카프카의 <유형지에서>라는 작품이 교수와 함께 다 읽은 유일한 작품이었다. 만약 다른 작품을 완독했다면 다른 작가를 연구하지 않았을까.
폭압적 권력이 난무하던 시대가 아니었나. 중앙정보부 직원들이 학교에 들어와 학생들의 머리채를 잡고 사진을 찍어가던 시대였다. 이러한 상황과 카프카가 <유형지에서> 그리는 사회가 잘 맞아떨어졌다. <유형지에서>의 주인공은 아무런 죄도 없이, 상관을 존경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형 기구에서 처형을 당한다. 죄와 벌 사이의 인과관계가 제시되지 않는다. 교수님들은 물론 중립적으로 가르쳤지만 내게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프레시안 : 죄와 벌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했는데 카프카는 그러한 '부조리'를 끝까지 끌고 간다. 왜 카프카의 소설 속에는 죄나 이유도 없이 처벌을 당하거나 고생을 하는 주인공이 등장할까?
편영수 : 카프카는 현실사회의 법이나 벌과는 다른 차원의 죄와 죽음, 처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더 본질적인 차원이다. 카프카는 "신적인 것"이라고 했는데 평범한 삶 자체, 일상 자체가 죄라는 것이다. 일상을 뛰어넘은 새로운 세계를 보지 못하는 것, 이것이 죄다, 카프카의 메시지는 일상에서 거리를 두고 일상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으로 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잘 알려진 작품 <변신>도 다른 시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레고리 잠자가 벌레로 변신한 것을 형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인간으로서의 능력, 구체적으로 경제 능력을 상실한다. 그러나 잠자는 인간들이 보지 못한 벌레의 시각으로 인간의 세계를 본다. 카프카에게는 완벽하게 세상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 그러나 보통의 인간들은 신적인 것, 초일상적인 것을 보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는 게 대부분이다. 카프카는 이러한 일상적 시각에 충격을 주기 위해 주인공을 변신시키고, 합당한 죄가 아님에도 처형시키는 것이 아닐까.
▲ "카프카의 메시지는 평범한 삶 자체, 일상 자체가 죄라는 것이다. 일상을 뛰어넘은 새로운 세계를 보지 못하는 것, 이것이 죄다." ⓒ프레시안 |
프레시안 : 하지만 그러한 부조리로 인해 카프카의 작품이 난해하게 읽히는 것도 사실이다.
편영수 : 카프카는 스스로 자신의 작품이 여러 가지로 읽힐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집필을 한 것 같다. 최근에 나온 카프카 평전은 독자들이 헤매는 것을 즐긴다고 말한다. 그러나 카프카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너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이 당연하지 않다. 내 작품의 내용을 모른다고 해도 혼란에 빠져봐라. 그 삶이 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전복'이라고 한다. 정상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찌그러트리고 반전시키고 재구성한다. 예를 들면 <변신>도 기존의 동화에 대한 전복이다. 동화라면 벌레가 귀족이나 왕이나 왕자로 변해서 해피엔딩을 맞을 것이다. 그러나 변신은 동화 구조와는 정반대로 인간이 벌레가 되어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다. 기존의 동화 구조를 가져와서 거꾸로 한 것이다.
카프카는 자신의 작품을 진실을 향한 탐험이라고 했다. 그 자신이 요즘의 근로보험복지공단과 같은 기구의 변호사로 일하면서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 기업가들의 횡포, 관료체제의 잔인함, 권력 앞에서 무력한 개인을 절절히 느낀듯하다. 그런 것이 작품 속에 그대로 스몄다고도 보여진다.
"권력이 사적 공간까지 감시한다…우리는 이미 체포됐다"
프레시안 : <소송>에서는 감옥, 처벌 공간, 법정 등이 일상적인 공간 속에서 불쑥 나타나곤 한다. 왜 이러한 설정을 했을까?
편영수 : 그 작품에서 보면 K가 재판을 받는 곳은 법원 정리 부부의 방이다. 그 거실이 재판이 열리면 법정으로 변했다가 끝나면 사적 공간이 된다. 사적 공간이 곧 공적 공간이 되는 것, 다시 말해 공적인 것이 사적인 공간에 침입해 이를 파괴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대사회다. 요즘 이메일 압수 수색을 한다는 것처럼, 이것이 바로 사적인 것에까지 공적 권력이 침입하는 형상이다. 권력이 개인의 사적 공간까지 침입해 감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송>에서는 얼마나 개인에게 권력에 뻗쳐있는가 하면 옆집 아가씨 브리스톨 양의 방이나 법원 정리 애인의 방이, 화가의 방 등 주인공이 드나드는 모든 공간이 법정에 속하게 된다. 일상적인 공간이 모두 법원의 공간이 된다는 것, 이는 우리가 권력의 감시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상징한다. '체포'라고 하면 감옥이나 구치소에 갇히는 것을 생각하나 달리 보면 평범한 삶도 이미 체포된 것이고, 이미 감옥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 "개인을 억압하려는 권력 의지는 보편적이다. 권력에 대한 공포가 개인에게 있는 한 카프카는 영원히 읽힐 것이다." ⓒ프레시안 |
편영수 : 카프카가 살았던 시대가 현대 사회, 오늘날 한국만큼 개인의 권리를 침해했는가. 과거 독재시절처럼 그 시절에도 탄압이 있었는가. 당연히 그렇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권력의지는 보편적이다. 권력은 앞으로도 자신에게 반대하는 개인을 억압할 것이다. 이러한 권력의 공포가 개인에게 있는 한 카프카는 계속 읽힐 것이다. 20세기 이전의 먼 과거부터 앞으로 다가올 먼 미래까지 카프카는 시대에 제한되지 않고 권력과 개인의 관계를 기가 막히게 포착했다.
카프카는 당대에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 작가였다. <소송>, <성>과 같은 작품은 1000부에서 2000부 정도 인쇄가 됐는데 안팔렸다. <최초의 관찰>이라는 단편은 400부가 인쇄됐는데 10년 후에도 책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당대에도 알아본 이들이 있었다. 토마스 무어, 헤르만 헤세 등 대가들이다. 카뮈는 자신도 실존주의 작품을 쓰고도 '카프카 문학이 바로 실존주의'라고 했다. 카프카 문학은 1950년 2차대전 후, 즉 죽고나서 거의 30년만에 제대로 인정을 받게 됐다.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카프카는 'A는 A다'라는 말을 가장 싫어했다. 그는 <변신>에도 벌레 삽화를 넣지 말라고 했다. 상징과 비유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두고 '비밀 누설'이라고 했다. 그는 대담을 통해 내 작품은 이렇게 읽어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의 작품을 관료체제 비판이나 자신의 경험 등으로 한정해서 읽지 않았으면 한다. 하나의 해석과 관점으로만 보려고 하는 것 그 자체가 카프카를 이해하지 못하는 지름길이다.
프레시안 : 일각에서는 카프카의 작품을 두고 '강박적'이라고 촌평하기도 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편영수 : 처음 카프카를 연구한다고 할 때 몇몇 교수들은 '왜 건강하지 못한 카프카를 하느냐. 건강한 괴테를 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카프카는 매우 건강한 시각을 가졌다. 오히려 우리가 세속에 물든 눈임을 지적한다. 그의 작품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고 자신의 작품을 통해 '권력에 매어있는 자신을 인식하고 저항하라'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했다.
한 출판사에서 '카프카는 현대 예술의 모태'라고 소개하던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카프카는 현대 문명을 특징짓는 현상인 불협과 불안을 정확히 그렸다. 소외는 자기 발전이라기 보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것이다. 그 외부적인 것이 무엇인가. 자본주의 체제와 관료체제도 포함되지만 카프카는 종교 영역까지 생각했다. 인간 자체가, 삶 자체가 '불안'이라는 이해다.
▲ "카프카는 현대 문명을 특징짓는 현상인 불협과 불안을 정확히 그렸다." ⓒ프레시안 |
프레시안 : 카프카의 작품 속에서는 주인공들이 '소외'와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나같이 답을 찾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나 결국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독자들에게 답답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
편영수 : 그것은 죽음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의 문제인데 상징과 비유로 생각해야 할 듯하다. 물론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과연 죽음을 종말로 볼 것인가, 아니면 완성으로 볼 것인가. 카프카가 필리체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 보면 '죽음은 고독이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고독은 부정적인 의미만이 아니다. 불안의 연원이 어디든 불안에 떠는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이다. 이것도 또하나의 '구원'이 아닌가. 이러한 반성과 성찰이 카프카가 독자에게 주는 구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카프카 연구에서는 부정적인 면이 많이 강조되어 있다. "한국 사회의 현대인들아, 건강하게 살아라"라는 카프카의 메시지를 잘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카프카는 '긍정을 얻기위해 부정을 제시했다'고 했다. 그의 소외와 불안에 대한 기술도 역시 긍정으로 가는 길이 아닌가. 그러나 한국에서 이러한 과정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소수인 것 같다.
▲ "카프카의 단편 작품에만 머무르지 않았으면 한다. 카프카에게 오늘의 명성을 있게 한 것은 세개의 장편이다. 카프카에 대한 선입견에만 머물지 말자." ⓒ프레시안 |
편영수 : 보통 독서도 상투적으로 이뤄진다. 네이버 지식인에서 카프카를 쳐보니 사실도 제대로 지적되지 않고 줄거리도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지만, 해석과 견해도 자기만의 생각은 전혀 없었다. 외람된 말씀이나 어떤 책은 정신을 차리고 읽어야 하는 것들이 있따. 자신이 상투적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벗어나야 하지 않나. 누구나 할 수 있는 표현에 젖어 있지 말아야 한다.
범위를 더 넓히면 카프카를 읽으려면 단편만 읽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카프카가 지금의 명성을 갖게 된 것은 <실종자>, <소성>, <성>과 같은 이 3개의 장편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반복과 지루함, 권태, 불안의 이미지가 지배적이지만 이를 걷어내면 새로운 카프카를 만날 수 있다. 카프카에 대한 선입견에만 머물지 말 것을 요청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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