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삼성그룹, 현대·기아, LG, SK 와 같은 대기업은 일단 공통적으로 "방송 사업에 진출할 계획은 없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대기업의 방송 소유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기업의 이미지를 악화시킬 수 있어 부담인데다 방송 사업에 진출했을 때의 사업성도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종편 진출'에 부정적인 재계…"국민적 반감도 부담, 수익성도 불확실"
방송 진출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대기업은 자회사인 CJ미디어를 통해 tvN, CGV, 올리브, 챔프, Mnet 등 인기 케이블TV 채널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CJ와 IPTV 사업을 시작한 KT, 케이블사업을 하고 있는 롯데, 태광그룹 등이다.
특히 CJ는 지상파방송사에 버금가는 콘텐츠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다 최근엔 투니버스, OCN, 온게임넷 등 인기채널을 다수 보유한 오리온의 온미디어 인수를 추진하고 있어 가장 유력한 종편진출 기업으로 꼽히고 있다. 만약 CJ가 온미디어 인수에 성공할 경유 4.8%의 시청 점유율을 확보하게 된다.
그러나 CJ는 '채널보다는 콘텐츠에 집중하겠다'며 지상파, 종합편성, 보도채널 모두 진출하지 않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공식 입장으로 내세우고 있다. KT도 IPTV가 콘텐츠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종편채널 진출 가능성이 제기되나 "종편채널은 수익성이 낮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여타 케이블 사업자들도 "종편채널에의 사업 확대 계획은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대기업들의 부정적인 반응은 국민들의 정서를 고려한 '연막'일 가능성도 높지만 경기침체로 이미 축소 일로를 겪고 있는 방송광고 시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체 방송시장에서 70% 이상을 차지하는 지상파 방송 광고 규모만 해도 2002년 2조7209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하락세를 이어와 지난해에는 2조 1856억 원에 그쳤다. 또 신문사와의 컨소시엄을 이뤘을 때 발생할 '주도권 경쟁'도 적잖은 부담이 되리라는 분석도 있다.
▲ 방송통신위원회의 미디어 융합 홍보 동영상 중 한 장면. 그러나 대기업에서는 신방겸영과 종합편성채널 도입 등의 사업성을 두고 비관적인 반응이 많다. ⓒ방송통신위원회 |
"방송진출 꺼리는 대기업, 정부에서 강요하지 않을까 걱정"
그간 한나라당과 방송통신위원회 등은 여론 독과점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에 방송 진출을 허용하는 이유로 '글로벌 미디어 환경시장 조성을 위한 방송시장 확대와 자본 유입 및 산업 활성화' 등을 내세워왔다. 한마디로 방송시장에 대한 대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를 전제로 언론 관련 법을 밀어붙인 셈. 그러나 대기업의 부정적 전망이 계속된다면 이명박 정부는 극심한 정국 대치와 시민사회의 반발 등 사회적 혼란 비용만 치른 셈이 된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비관적인 수익성 전망에도 정부의 압박으로 인해 대기업이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에 억지로 끌려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김승수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결국 조·중·동의 방송 진출에 1000억~5000억 원에 달할 재벌의 뒷돈을 어떻게 끌어올 것이냐가 가장 관건이 될 것"이라며 "방송의 권력에 관심없는 대기업에 정부가 방송을 '강요'하지 않을 것인가가 가장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미 경제 쪽에서는 "정부가 거대 기업들에 방송 사업을 권하고 있는데 최소한 4대 그룹이 뛰어드는 일은 없을 것" (<국민일보>), "규제를 받고 있는 KT나 SK텔레콤은 방통융합을 이유로 '발이라도 걸치라는 주문을 받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머니투데이>) 등 정부의 압박에 '부담'을 토로하는 재계의 반응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한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부정적인 시장 반응에 26일 기자회견에서 "시행령도 아직 구체적으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 아니냐"며 "신규 사업자에 대한 정부 지원과 시행령 등이 마련되면 새 미디어 산업에 대한 호기심이 국민들 간에 일 것이고 지금의 반응은 조만간 바뀔 것으로 생각한다"고 낙관했다.
케이블방송 뛰어들었던 '삼성, 현대' 등 '실패의 추억'
게다가 대기업이 방송 사업에 진출한다고 해서 방송산업이 덩달아 성장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10년 전 국내 방송 정책의 최대 실패로 간주된 케이블 TV가 대표적인 전례다. 1995년 출범 이후 4년 동안29개 채널에서 총 81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한 케이블 TV 산업의 전례가 있다. 당시 삼성, 현대, 대우 등 대기업이 케이블 방송에 뛰어들었으나 적자 끝에 IMF를 맞아 손을 털었다.
특히 지난 1997년 삼성그룹이 영화 산업에 진출하면서 만든 삼성영상사업단은 당시 600명의 인재를 끌어모으며 화려하게 시작했지만 4년 만에 2200억 원 가량의 적자를 내며 문을 닫았다. 삼성영상사업단 소속의 Q채널은 중앙일보로 넘어갔다. 대우영상사업단도 같은 시기 해체됐다. 당시 케이블TV 채널 'A&C 코오롱'을 운영했던 코오롱도 계속 손해만 보다가 매각했다.
2002년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 등이 출범할 당시에도 정부는 22조 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와 13만 명의 고용 창출을 장담했으나 2007년 기준 누적적자가 4654억 원을 기록했다. 또 3조 4000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전망한 위성 DMB 역시 같은 시기 누적적자가 2998억 원, 지상파 DMB 적자 규모 1014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렇다고 해서 대기업의 참여가 다양한 콘텐츠 생산으로 이어졌던 것도 아니다. 케이블 채널의 시청 점유율은 <KBS DRAMA>, <MBC드라마넷>, <SBS드라마플러스> 등 각 지상파의 재방송 채널이 1~5위를 점유하고 있다. 최근 몇몇 케이블 채널의 인기 프로그램이 눈길을 끌고 있지만 여전히 외국의 인기 프로그램 재방송이 대다수이고 자체 제작 프로그램은 '선정성'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늘어난 방송 채널에 비해 정작 콘텐츠 제작 역량은 미미한 성장에 그친 것.
종합편성채널은 다를 수 있을까. 기대는 엇갈린다. 지상파 방송에 집중된 프로그램 소비와 유통 경로가 다양해져 외주 제작사의 콘텐츠 투자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있는가 하면 자금 압박과 운영 미숙 등으로 해외의 인기 프로그램을 사와 방송하는 식으로 '수지타산'을 맞추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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