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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지식인 위추위(余秋雨)의 '거짓 기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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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지식인 위추위(余秋雨)의 '거짓 기부' 사건

[中國探究]<46> 중국 지식생산구조의 변화와 지식인의 사회적 위상

'국학대사'라 불리는 지셴린(季羨林)의 서거로 잠시 소강상태를 맞기는 했지만, 올해 상반기 중국 문화계를 가장 뜨겁게 달군 일은 아마도 위추위(余秋雨)의 '거짓 기부' 소동일 것이다. 위추위는 '가을비'라는 이름의 아우라가 말해주듯이, 중국 문화를 역사적 관점으로 해석해 대중적 수필이라는 방식으로 풀어내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 왔다. 그는 최근 중국에서 대중 스타 지식인의 출현이라는 사회·문화 현상을 이끈 주요한 사례로 손꼽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심지어 그는 '위대사(余大師)'라는 별칭까지 얻었을 정도다. 중국 문화에 관한 그의 책이 여러 권 번역, 소개된 바 있어 우리에게도 낯선 작가는 아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작년 쓰촨성(四川省) 원촨현(汶川縣)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많은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발생하자, 학교 건물의 부실 공사 등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이 때 그가 학교를 다시 짓는 데 약 20만 위안(元)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기부 액수는 중국 작가들 중에서 으뜸을 차지할 만큼 큰 규모였고, 중국 사회는 그의 이런 선행에 다시 한 번 '감동'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올해 5월, <베이징문학(北京文學)>의 편집장 샤오샤린(蕭夏林)이 블로그에 "그의 기부는 거짓"이라는 요지의 글을 올리면서 의혹을 제기했다. 1주일 쯤 지난 뒤 위추위의 비서가 나서 '주주독서인(九久讀書人)'이라는 문화 기업을 통해 직접 기부했노라고 해명했다. '주주독서인'의 이사장 황위하이(黃育海)도 학교 세 곳에 도서관을 짓는 비용으로 기부했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그런 해명에도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6월 15일에는 역시 위추위 못지않은 대중 지식인인 이중톈(易中天)이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려 "기부를 했다는 구체적인 물증을 제시하라며" 몰아붙였다. 황위하이는 일언지하에 그의 요구를 거절했으나, 불과 사흘 뒤 기부 사건의 한 당사자였던 두장옌시(都江堰市) 교육국이 기부금으로 도서관을 지은 것은 아니며 "책을 기부한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샤오샤린이 다시 이에 대해 "거짓 증언"이라며 맹공을 퍼붓자 지난 6월 22일 위추위가 공개적으로 해명을 시도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해명은 자신은 "세계 토론대회 심사위원이라 논쟁에 많은 경험을 갖고 있다"느니 "고수는 함부로 손을 쓰지 않는 법"이라며 문제의 핵심을 비켜가고 있다.

이번 소동은 중국 사회의 지식 생산과 유통의 구조, 그리고 지식인의 사회적 위상이라는 다양한 쟁점들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사회주의 이후, 중국 사회에서 지식인의 위상은 끝없이 추락했다. 물적 생산을 담당하는 노동자, 농민, 병사만이 '인민'으로 호명되면서, 독립적 권위를 가지고 지식 생산에 기여해 왔던 지식인은 사회적 냉대를 받기 일쑤였다. 지금은 형편이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대학교수나 의사 등과 같이 우리 사회에서 상위 계층에 속하는 이들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별 볼일 없는 집단으로 분류되어 왔다. 사회주의 실험기 동안 중요한 지식은 주로 당과 정부의 테크노크라트들에 의해 기획되었고, 역시 당과 정부가 장악한 미디어를 통해 유통되었다. 제도권 내부의 지식과 다른 관점이나 경향은 존재할 수 없었고, 설령 제도권 밖의 지식인들이라 해도 당과 정부의 지침을 철저히 따라야만 했다.

개혁 개방이 급속한 경제 성장을 불러오면서, 이런 상황에도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회가 다원화하면서 지식이 유통되는 통로인 학교나 연구소 같은 기구나 출판,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 등과 같은 미디어에 대한 관리, 감독에 여지가 생기게 되었고 그 틈을 타고 지식의 생산이 새롭게 구조화하기 시작했다. 세기의 전환과 더불어 지식 생산의 새로운 구조를 보여주기 시작한 데는 전통적인 제도와 기구로서 수많은 전문가들이 포진하고 있는 대학이나, <독서(讀書)> 등과 같은 잡지의 역할이 컸음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신흥 미디어가 새로운 지식 생산의 주요한 진지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단편적인 정보와 오락적 기능만을 담당하던 텔레비전이 이를 선도했다. 중국 국영 중앙방송10(CCTV10)이 2001년 "중국의 훌륭한 전통문화를 보급하자"는 취지로 기획한 '백가강단(百家講壇)'이라는 프로그램은 이중톈이나 위단(于丹) 등과 같은 수많은 스타 지식인을 탄생시킨 계기가 됐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 위추위도 여러 차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의 문학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텔레비전은 중국 지식인들이 고루한 학문의 틀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대중과 접촉할 수 있는 유통의 경로를 제공함으로써 '지식의 대중화'와 '대중의 지식화'라는 목표를 이루고 있는 듯 보인다.

텔레비전 못지않게 인터넷 역시 큰 구실을 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공방은 공식적인 당사자들의 해명을 제외하고는 주로 인터넷 블로그에서 진행되어 왔다. 인터넷 블로그는 중국 사회에서도 다양한 아젠다를 창출할 수 있는 주요한 수단이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공격을 가하는 쪽은 주로 인터넷 블로그를 이용하는데 반해, 방어를 하는 쪽은 공식 인터뷰나 강연의 기회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오프라인에서 여론의 반전을 꾀하는 수비자들이 온라인의 개방성과 신속성을 따라잡지 못하는 형국인 듯, 인터넷 여론은 위추위에게서 곱지 않은 시선을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문제는 중국 내 지식 생산의 구조가 큰 변화를 맞이하면서 동시에 지식인의 사회적 위상도 급격하게 상승했고, 단지 '지식의 생산'만으로도 큰 경제적 수입을 가져올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위추위는 중국의 전업 작가들 가운데 가장 많은 인세 수입을 자랑한다. 그의 인세가 연 평균 140만 위안에 이른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다. 지식인 역시 '바오파후(爆發戶: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인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그들의 부(富)는 자연스럽게 사회적 책임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위추위는 지식인의 계층 이동이라는 댓가를 지불함으로써 '부의 사회적 환원'을 통해 자신의 문화적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고자 했을 것이다.

의혹을 제기한 측이 진실인지, 아니면 위추위의 기부가 진실인지는 여전히 분명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사건의 당사자들이 구성하는 '기부'의 라인이 그리 복잡하지 않은 데 비추어 위추위의 해명은 여전히 중국의 '인민'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유례없는 대재앙으로 기록됐던 쓰촨 대지진의 현장에서 중국적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했다는 평가를 받은 그의 선행이 도덕적 조건을 갖췄느냐의 여부에 따라 스타 지식인은 다시 추락을 거듭할 수도 있다. 분명한 점은 중국 사회의 '개방'은 현재진행형이고 그에 따라 사회적 개방성 또한 시간이 갈수록 투명도를 더해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가 '대사'라는 칭호를 계속 보유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오늘날 중국의 많은 지식인들이 변화하는 사회에 발맞추어 계층 이동의 꿈을 꾸고 있지만, 거기에서 대중성이 충분조건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지식인, 사회적 책임, 기부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펼쳐진 이번 소동을 곱씹어 보면, 우리 사회의 경험이 역시 증언하는 바와 같이, 오히려 강력한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할 때 참된 '계층 이동'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지셴린의 죽음을 전 국민이 애도하며 그를 '국학대사'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 점이 지금 그의 상황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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