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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연극인들 "이 공연만은 올리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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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학로 연극인들 "이 공연만은 올리고 싶지 않았다"

재능교육 해고자들을 위한 단막극 페스티벌 '아름다운 동행'

"군홧발의 시대는 끝났다 한다. 폭력의 시대도 끝났다 한다. 시대에 역행하는 투쟁의 깃발을 이제 내리라 한다. (중략) 승전국의 병사들과 패전국의 병사들은 너희가 만든 그 더러운 싸움에서 무엇을 얻었나. 죽어야만 얻을 수 있는 명예를 얻었고, 다쳐야만 얻을 수 있는 명예도 얻었지. 폐품이 될 때까지 일할 수 있는 그 고마운 자유도 얻었지."

정윤경이 부른 노래 <시대>를 흥얼대며 그녀는 무대 한가운데로 시선을 붓는다. 거기엔 '투쟁 좀 해봤다'는 사람들이 세워준 작은 천막이 있다. 자물쇠도, 콘크리트 벽도 없는 위험천만한 노상 천막. 그래도 그녀는 "매일 길바닥에 앉아 있었는데 이제는 천막이 생겼다"며 기뻐한다. 그런 그녀에게 천막 선배들은 "쉽지 않아요. 천막엔 추위도 더 빨리 오고, 더위도 더 오래가요. 이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느낌은 뭐랄까…. 달라요"라고 아픈 충언을 남긴다.

모두 떠나고 혼자 남은 밤. '폐품'이 되지 않기 위해 시작한 싸움인 만큼, 그녀는 씩씩하게 천막 농성 첫날 밤을 보내고 싶다. 하지만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와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그리고 차디찬 땅기운에 오감이 집중된다. 극한의 두려움은 끝을 모르고 뻗어 나간다. 담요로 머리를 싸매고 두 손으로 귀를 막고 그녀는 생각한다. "언젠가는 노동조합을 인정받고, 단체교섭을 체결할 수 있겠지"라고.

대학로 연극인들이 만든 단막극 페스티벌 '아름다운 동행' 중 <한밤의 천막극장>의 한 장면이다. <한밤의 천막극장> 연출을 맡은 김한내 씨는 "어려울 것도 의미심장할 것도 없다. 이 작품에 정치니 액션이니 운동이니 참여니 하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저 '이들이 저기 있구나'라는 걸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그는 말한다.

혹한의 겨울보다 두려운 것은 '잊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 단막극 페스티벌 '아름다운 동행' 포스터. ⓒ드림아트펀드 제공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들의 고공 농성이 9일째를 맞았던 지난 14일, 젊은 연극인들의 '재능 기부'로 만들어진 단막극 페스티벌 '아름다운 동행'이 그 막을 올렸다.

총 7개의 단막극으로 구성된 페스티벌은 창작 실험 공간 '혜화동 1번지' 5기 동인을 중심으로 한 연극인 67명의 발의로 시작됐다. 페스티벌 참가자인 김수희 연출가는 "자기 생활에 바빠 이웃을 외면할 수밖에 없던 이웃들이 부채감을 가지고 동조했다"며 페스티벌 참여 동기를 설명했다.

이양구 연출가의 제안으로 젊은 연극인들은 지난해 5월부터 천막을 오가며 재능교육 사태에 관한 스터디를 함께 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무대 장치 비용 등에 필요한 1300여만 원을 후원받는 데 성공했다. 그 외 시나리오 집필, 연기, 연출 등은 모두 재능 기부로 이뤄졌다.

이뿐이 아니다. 페스티벌 '아름다운 동행'이 입소문을 통해 알려지며 수많은 연극인들의 지지와 참여 의사가 이어졌다. 첫 공연이 무대에 오른 14일에는 대학로 연극인 343명이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의 전원 복직 및 단체협약 원상회복·노동조합 활동 보장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 인정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공동 지지를 선언했다. (기사 2쪽 참조)

"이 공연을 할 필요가 없는 날이 빨리 오길"

페스티벌은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들의 시린 6년의 세월을 얘기하지만, 무겁고 엄숙하지만은 않다. 무대에는 종이비행기, 피에로, 짜파게티, 생닭, 불독, 레슬링 등 '투쟁'이란 단어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소재가 연달아 등장한다. '재능교육'이란 단어는 대사에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7개의 이야기는 각각의 은유적 방식으로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을 그려낸다.

예컨대 단막극 <이건 노래가 아니래요>는 한 극단에서 일하는 가수의 삶을 통해 특수 고용 노동자들의 애환을 전한다. 극단 대표는 관객을 모으고 공연을 하는 일을 모두 가수에게 떠넘기며, 가수를 '사장님'이라고 칭한다. 노래를 부를수록 가수는 더욱 가난해지고 대표는 더욱 배가 부른다.

재능교육 사태와 무관해 보이는 이런 작품들에 대해 이양구 연출가는 "처음에는 재능교육의 노동 탄압 실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며 "하지만 페스티벌이 고갈성 이벤트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일부러 재능교육과 직접 연결되는 이야기를 빼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 연출가는 또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들이 연민의 대상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며 "딱 하나, 유명지 재능교육 노조위원장이 말한 '잊히는 게 가장 두렵다'는 말을 잘 전달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연극인들은 조심스러웠다. 혹여나 이 페스티벌이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들에게 누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극 <비밀친구>를 연출한 윤한솔 씨는 "이 연극을 보고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들이 기분 나빠하지는 않을까란 생각이 들곤 했다"고 말한다.

연극인들은 페스티벌 '아름다운 동행'이 무대에 오르지 않기를 바랐다. 이양구 연출가는 "페스티벌을 예정한 2월을 기다리며, 그 전에 사태가 해결되어 공연이 무대에 오르지 않기를 원했다"며 "이 공연을 할 필요가 없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프레시안(최형락)

특수고용노동자인 재능교육 노동자들은 1999년 노조를 설립했다. 그러다 2007년 사측의 수수료 제도 개편에 반발하며 파업을 벌였다. 회사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이 결성한 노조는 불법이라며 단체협약을 해지하고 노조원들을 집단 해고했다.

이후 지난해 11월 서울행정법원은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해고 노동자들이 제기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구제 재심 판정 취소 소송에서 법원은 "학습지 교사들도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또 재능교육이 한 계약 해지 통보는 "부당노동행위"이므로 "무효"라고 밝혔다.

그러나 사태는 해결되지 않았다. 재능교육은 '복직 후 단체협약 논의'를 고수하고 있고, 해고 노동자 12명은 '단체협약 원상회복 후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해고자 여민희·오수영 씨의 성당 종탑 고공 농성은 15일로 열흘째를 맞았다. 오는 25일이면 농성 1895일째가 돼, 기륭전자가 세웠던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 중 최장기 투쟁 기록을 넘어서게 된다.



□ 단막극 페스티벌 '아름다운 동행' 개요

공연 기간 : 2013년 2월 14일(목) ~ 2월 24일(일), 총 18회
공연 장소 :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
공연 시간 : 월~금요일 3시·8시, 토~일요일 3시
티켓 가격 : 주말 2만 원, 평일 1만5000원, 소년·소녀 1만5000원
관람 등급 : 12세 이상
러닝 타임 : 90분(주말 180분)
주최 : 혜화동 1번지 5기 동인
기획 : 청년사회적기업 드림아트펀드
문의 : 02-922-0826, 02-6339-0826, dreamart@artyng.com
예매 : 오마이컴퍼니, 인터파크, 대학로티켓닷컴, 미소티켓
정보 : facebook.com/jaeneung2007 또는 dreamart.tistory.com

▷ A팀
<한밤의 천막극장> 작가 오세혁, 연출 김한내
<다시 오적(五賊)> 작가 김은성, 연출 김수희
<이건 노래가 아니래요> 작가 김슬기, 연출 부새롬
<혜화동 로터리> 작가 김윤희, 연출 이양구

▷ B팀
<살인자의 수트케이스를 열면> 작가 이여진, 연출 김제민
<잉여인간> 원안 원미진, 공동 창작, 연출 김관
<비밀친구> 작가 정소정, 연출 윤한솔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의 전원 복직 및 단체협약 원상회복·노동조합 활동 보장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 인정을 촉구하는 연극인 선언 (전문)

지난해 12월 21일 연극인의 마을 대학로에 본사를 둔 재능교육 사태가 5주년을 맞았다. 지난 5년간 재능교육 해고자 12인(1인은 암 투병 중 사망)은 거리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며 해고자의 전원복직 및 단체협약 원상회복·노동조합 활동 보장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대학로에서 공연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우리 연극인들은 그동안 재능교육 사태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다섯 번의 겨울이 지나가고 대통령이 바뀔 만큼 시간이 흘러갔지만 사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같은 동네에서 살아가는 연극인들이 이 사태에 계속해서 침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재능교육 사태는 연극인의 문제가 되었다.

지난해 11월 1일 서울행정법원은 학습지 교사들을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보아야 하므로 사측의 계약 해지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돼 무효라고 판시했다. 우리는 이 판결에서 더 나아가 법원이 학습지 교사들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하기를 바란다. 특수고용노동자의 문제는 기업이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고 노동자를 개인사업주로 만들어 노동권을 박탈하고 기업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전가하는데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도 노동3권을 완전하게 보장받아야 한다. 특수고용 내부의 다양함이나 종속성의 정도와 관계없이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고, 국제노동기구(ILO)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2006년 <고용관계에 관한 권고>를 채택한 바 있다.

혹한의 겨울이다. 재능교육 유명자 지부장은 <한겨레21> 인터뷰에서 혹한의 겨울보다 두려운 것은 잊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고 고백했다. 우리는 그들이 잊혀질 수 없도록 노력할 것이다. 대학로를 찾는 공연예술인들과 관객들 모두 그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재능교육은 지난해 12월 제1회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아름다운 동행대상에서 기업 부문 대상을 수상한 뒤 앞으로도 이웃과 더불어 사는 밝고 건강한 사회 구현에 일익을 담당하며 특히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는 선행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학로의 연극인들 또한 재능교육의 이웃이다. 우리는 재능교육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동행을 희망한다. 재능교육이 해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사태를 마무리할 것을 촉구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극단적으로 분열된 길을 가고 있다. 재능교육 사태는 반목과 대립의 슬픈 상징 중에 하나가 되어버렸다. 재능교육 사태가 상생과 대통합의 아름다운 상징으로 전환되어 우리 사회에 희망의 상징이 되길 바란다. 반목과 대립의 상징으로서 재능교육을 떠나보내고, 상생과 화합의 상징으로서 재능교육과 아름다운 동행을 희망한다. 공연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동행을 요청합니다. 우리, 함께 걸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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