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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포기하면 결론은 '무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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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포기하면 결론은 '무대책'이다

[한반도 브리핑] 북핵위기, 동전의 한 면만 보려는 '보수파'에 告함

남·북·미 3자가 경쟁적으로 조성하고 있는 한반도 위기가 정점을 향하고 있다.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는 맞대결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북은 조급한 마음에 모든 위협카드를 한꺼번에 쏟아 붓는 속도전 양상을 보이고 있고, 미국은 기다리지 못하고 분란을 일으키는 북한에 화가 난 채 빈정이 상해 있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완전한 굴복을 기다리며 북미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이 같은 위기 상황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물론 북에 있다. 장거리 로켓 발사와 추가 핵실험을 강행하더니 플루토늄 무기화와 우라늄 농축 시도까지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하지 말라는 행동을 더욱 기를 쓰고 하는 형국이다.

위기 고조의 주범은 따로 있다

그러나 북의 무리한 도발 행위가 더 큰 위기로 연결되는 고리는 바로 미국과 한국의 '협상 불가' 입장이다.

북의 잇따른 강경 조치가 미국과의 더 큰 포괄적인 협상을 원하는 것이라면 응당 협상을 통해 위기가 고조되는 것을 막아내야 한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은 일련의 북한 도발을 협상용이 아닌 체제수호용으로 내부적인 요인에 의한 것으로 단정하고 처음부터 협상이 불필요하고 불가능하다고 전제하고 있다.

북의 위협이 스스로의 내부적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하는 순간, 미국과 한국은 협상에 굳이 나설 필요가 없게 된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북한 내부의 필요성이 충족되는 상황을 기다리거나, 협상 대신 제재와 압박을 통해 억지로 북한의 행동을 멈추게 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만의 하나 북한의 강경 조치가 내부용이 아닌 협상용이라면 지금 미국과 한국의 대응은 위기를 더욱 확산하고 심화시키는 위험천만한 선택이 된다.

김정일 위원장은 애써 강경 카드를 소진하면서 미국과의 신속한 협상을 원하고 있는데, 이를 오독하고 협상 불가와 협상 무용의 입장으로 대응할 경우 북은 불가불 최후의 수단을 동원해 압박할 수밖에 없게 된다.

특히 협상 불가에서 나아가 대북 제재와 봉쇄까지 시도한다면 북으로서는 초강경의 맞대응 외에 퇴로가 없게 된다. 요컨대 한반도 위기의 일차적 책임은 북에 있지만 그 위기가 더 큰 위기로 연결되는 데는 미국과 한국의 협상불가 입장이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5월 25일 북한의 2차 핵실험을 본 순간 대부분의 학자와 언론들은 이제 북한의 핵무기는 협상용 카드가 아니라 실제 핵보유국을 향한 불퇴전의 수단임을 확인하게 되었다고 입을 모았다.

북이 협상을 통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은 결코 없고, 그 이유는 미국으로부터 자신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핵무기라는 대량살상용 억지력을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특히 김정일 건강 이상 이후 3남 김정운으로의 후계체제 정비를 위해 핵무기 확보와 외부의 위기조성이 필요하다는 그럴듯한 분석도 곁들여진다. 이제 북한은 무슨 이유에서도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6자회담이든 양자회담이든 협상을 통한 북핵 해결은 원천적으로 불가하능하다는 결론인 것이다.

이로써 미국과 한국은 국제사회의 힘을 빌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874호를 통과시키고 대대적인 대북 제재에 착수했다. 그리고 6자회담을 포기하고 '5자 협의'를 거쳐 대북 압박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어느새 북핵문제는 회담과 협상이 실종되고 제재와 압박, 그리고 '강경 대 초강경'의 악순환이 자리 잡게 되었다.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6일 워싱턴에서 미 하원 의회 지도부와 간담회를 한 뒤 기자들과 만나고 있다. 왼쪽은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 ⓒ청와대

핵협상 역사 모르나? 알고도 눈 감나?

그러나 조금만 현실을 냉정하게 살펴보면 이른바 협상무용론과 그 전제인 북한 내부요인론은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정세인식임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핵무기가 협상용이 아니라 체제수호용이라는 단정은 지금까지 북핵문제의 전개과정을 전혀 알지 못하는 무식(?)의 소치이다.

지금껏 핵무기 카드는 협상용과 체제수호용의 이중용도로 활용되어 왔다. 협상 국면에서는 핵시설 폐쇄와 불능화를 거쳐 종국적인 폐기를 논의하고 이행하지만, 협상이 중단되거나 대결이 벌어지면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고 차후 재개될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핵능력과 핵위협을 꾸준히 증대시켜왔다.

이를 무시한 채 2차 핵실험을 이유로 이제 협상용이 아니라 체제수호용 핵보유로 전략을 바꿨다고 단정하는 것은 동전에 한 면만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미 북은 2004년 폐연료봉 재처리의 용도를 변경했다고 공언했고, 2005년 2월 외무성 성명을 통해 공식적인 핵보유를 선언했다. 이어 2006년 10월엔 실제 핵실험까지 강행했다.

이미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북은 핵무기 확보의 수순을 꾸준히 밟아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추가 핵실험을 보고서야 갑자기 북이 핵무기 확보를 결심했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또, 후계 정비를 위한 내부단속용이라는 주장도 온전히 맞는 것은 아니다. 지난 4월 장거리 로켓 발사의 날짜를 택일하는 데는 분명 북한 내부의 정치적 고려가 있었다. 오바마 행정부의 관심을 끌고 신속한 협상에 나서도록 압박하기 위한 발사였지만 4월 9일로 예정된 12기 최고인민회의 출범을 앞두고 기왕이면 출범 직전에 인공위성 발사를 성공하는 것이 내부적으로 의미가 있을 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후 6자회담 불참과 불능화 중단, 중단거리 미사일 발사와 추가 핵실험 및 우라늄 농축 시도 등은 후계체제를 위한 내부단속용으로 반드시 해야 것들은 아니다. 그러한 일련의 강경 조치들은 협상 촉구용 대미 압박이 주된 요인이며 로켓 발사 이후 미국의 강경 조치에 반응하는 북한식 맞대응의 성격이 본질이다.

후계구도를 탄탄히 하기 위해 내부 단속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외부의 위기조성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안보 위기는 오히려 후계체제의 정치적 정당성에 역효과를 낼 위험성이 있다.

즉, 미국과의 일정한 안보 위기를 통해 후계 구도의 정치적 단합을 강제할 수는 있겠지만 과도한 위기 창출은 자칫 김정일 위원장과 후계자의 안보 능력 결여로 '돌아온 부메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협상 말고 뭐가 있겠나

북한 내인론과 협상무용론의 가장 결정적 한계는 아무 것도 할 게 없다는 무대책의 역설(paradox)에 빠지게 된다는 점이다.

강경 조치를 내부 탓으로 규정하고 이로 인한 한반도 위기 고조의 책임을 북한에 모두 전가하는 이른바 '북한 때리기'(North Korea bashing)는 지금의 상황을 회피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긴 하지만 아무런 해법도 나오지 않는 '무책임한' 방법이다.

협상무용론은 결국 대북 제재와 군사적 옵션으로 연결되지만 성공을 보장하긴 힘들다. 북한의 핵보유보다 북한의 붕괴를 더 임박한 위협으로 간주하는 중국의 존재와 북중관계의 현실을 감안할 때, 이른바 '물 샐 틈 없는' 제재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제재만으로 북을 굴복시키기는 어렵다. 외과수술적 폭격 등 군사적 옵션 역시 한반도의 전쟁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과 중국의 동의를 얻기는 사실상 어렵다.

결국 제재의 실효성 논란과 군사적 옵션 선택의 불가능성을 감안하면 지금 시도되고 있는 제재와 압박은 위기를 고조시킬 뿐 위기를 해결하는 해법이 되지 못한다.

또한 협상무용론은 한국의 무대책을 한탄하거나 무작정 중국만을 쳐다봐야 하는 신종 사대주의로 흐르고 만다.

"이제 미국은 북한을 막을 방법이 없다. (…) 지금보다 몇 배 더한 유엔 결의를 해도 북한엔 소용이 없다. (…) 중국은 북한 붕괴보다 차라리 북한 핵보유가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 흔히 생각하듯 김정일 사망=북한 붕괴는 현실화되기 어렵다.(…) 대한민국은 김정일 사망 이후에도 통일이 아니라 핵깡패의 인질로서 미국에 기대어 살아가는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 양상훈 <조선일보> 논설위원 17일자 칼럼

협상과 대화, 양보를 통해 북핵을 풀 수 없다는 협상무용론과 6자회담 포기론을 선택하는 순간 보수 진영의 논리적 귀결은 끝간 데 없는 무기력과 무대책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중앙일보>의 한 대기자는 미국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대북 제재를 성공시키기 위해선 중국의 도움이 절실하다며 중국이 대북 압박에 나서도록 유도하기 위해 '북한 정권에 이변이 생길 경우 한국과 미국은 중국의 이익을 해치는 행동을 하지 않고 중국의 의견을 존중하며 한반도가 통일될 경우 미국은 38선 이북으로 미군 병력을 이동시키지 않는다거나 북한에 일시적인 친중 정권이 수립되는 걸 용인한다는 것 등을 약속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창극 대기자, 17일)

협상을 통한 북핵 폐기가 무용해지는 순간 우리의 보수 논객들은 이제 북한 급변사태시 한국 주도의 통일이라는 목표마저도 중국에 양보해야 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북한 내인론에 입각해 한반도 위기 상황의 책임을 북에 전가하고 협상무용론의 정당성을 설파하기보다는 현실적 해법이 가능한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정세인식이 필요하다.

최근 북한의 강경 조치는 내부적 요인이 주가 아니라 오바마 행정부와 통 큰 포괄적 협상을 하기 위한 대미 압박용임을 전제로 북미 협상이 재개되도록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북한 때리기'라는 쉬운 길이 아니라 어렵고 더디지만 올바르고 정확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은 다시 협상에 나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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