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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이 아니라 '고소원'인가"

[시민정치시평] 금도 넘은 고소·고발, 새 정부 레드카펫 깔기?

2012년 12월 19일 밤, 일본군 장교출신으로 군사쿠데타로 헌정을 유린하고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막았던 독재자의 딸, 권위주의적 리더십을 보여온 박근혜 후보가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박정희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으로 함부로 그 시대를 평가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교과서를 통해서 형성된 역사 인식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거대한 간극을 확인한 역사적인 사건 앞에 '참 세상은 다채롭구나'라고 탄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그리고 새누리당 정권이 연장됨으로써 이명박 정부 하에서 벌어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 그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고, 박근혜 당선자가 보여줄 리더십이 '불통'을 넘어서 '불안'에 기반한 공포정치로 이어지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날 밤에는 막연한 걱정일 뿐이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KBS 개그콘서트 <용감한 녀석들>의 한 정치풍자에 대해 담당PD가 장황하게 설명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더니 국정원 측의 고소·고발이 시작됐다. 물론 국정원은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국정원 소속 직원이 고소·고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고소·고발이 순수한 개인적 차원의 고소·고발이 아니라 국가 권력기관인 국정원이 큰 틀에서 상황을 통제하면서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혹 아니 '불안'이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그 '불안'은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에 대한 국정원의 고소에서 시작된다. 표창원 전 교수가 <경향신문> 칼럼을 통해 국정원의 위기를 진단하면서 그 원인은 '정치관료가 국정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거나 이런 의도적 정치화가 아니라면 무능화·무력화되었다'고 표현한 부분이 명예훼손이라면서 국정원 감찰실장이 고소장을 제출한 것이다. 도대체 국정원이 무능하다거나 무력화되었다는 비판을 못한다면 국가기관에 대한 비판은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상상하기도 어렵거니와, 그 지적이 합당하다면 감내해야 할 국가기관이 자신의 비위에 거슬린다고 개인을 고소한 것에 적잖이 놀랐다. 이 고소의 상징성 때문에 많은 언론에서 보도하면서 국정원의 고소·고발이 다시 한 번 주목받게 된다.

표창원 전 교수에 대한 고소 건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수사를 받고 있는 '국정원 여직원'이 오늘의 유머 사이트 관리자와 경찰을 고소하고 '국정원 여직원'이 대선 관련 정치적인 글도 올렸다는 기사를 보도한 <한겨레신문> 기자도 고소했다. 이미 국정원 여직원은 민주당 관계자들을 주거침입·감금 등으로 고소한 상태인데, 또다시 경찰, 기자까지 고소한 것이다. 표창원 전 교수를 고소한 사건으로 이미 국정원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확산된 상황에서 또다시 '국정원 고소사건'을 만든 것이다.

사실 국정원의 고소·고발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예전에도 국정원은 감찰실장을 통해 고소를 한 일이 있고, 이미 '십알단(십자군 알바단)' 운영과 국정원 연루설을 제기한 '나꼼수' 구성원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국정원의 한 직원이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을 고발하기도 했다. 그런데 표창원 전 교수에 대한 고소나 피의자인 '국정원 여직원'의 고소는 법리적으로 타당한지 의문이고, 현실적으로도 이런 고소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불분명하기 때문에 뭔가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이 싹트는 것이다.

표창원 전 교수에 대한 고소는 국정원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봉쇄하는 형사고소라는 비판에 직면할 것임이 분명한데도 고소를 강행한 것이다. '국정원 여직원'의 경우도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고 수사과정에 대해 경찰이 그동안 숨기거나 밝히지 못했던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과 기자까지 고소하면서 자신에 대한 수사나 보도를 막겠다는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 국정원 직원은 여론의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고소를 강행했다. 국정원의 고소·고발에 대해 일각에서는 국정원이 그만큼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하지만 이런 분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교수의 칼럼 하나에 대한민국 국정원이 발끈할 정도로 칼럼이 영향력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국정원 여직원' 사건의 경우도 경찰이 피의사실이나 수사정보를 흘리면서 언론플레이를 한다고 보더라도 피의자가 자신을 수사하는 경찰이나 기사를 내보낸 기자를 고소하는 구도를 피하면서 현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인데도 고소하고, 이런 고소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도록 한 것이다.

이런 국정원의 고소·고발 퍼레이드는 형사사법절차를 통한 가해자의 사법처리가 목적이 아니라 국정원이 고소했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함이고, 이 과정에서 자신들을 비판하거나 불편하게 하면 죄가 되든 안 되든 일단 고소·고발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 그래서 국정원의 실제 의도와 무관하게 이번 국정원의 고소·고발 퍼레이드는 사법적 수단을 통해 국민들이 법적 불안·불편 때문에 비판을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전략적 봉쇄소송(SLAPP)'의 전형으로 봐야 한다. 혹시 이렇게 말했다고 해서 고소당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런 걱정이 절대 현실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최소한 금도가 지켜지는 사회라야 힘과 권력이 없더라도 정부, 권력자를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는데 국정원의 고소·고발 퍼레이드는 금도를 넘어선 것이다.

고소당하기 전에는 불안하고, 고소당한 후에는 불편하다. 이런 불안과 불편이 양산해내는 위축효과로 비판의 목소리를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국정원의 고소·고발 퍼레이드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고, 고소당한 표창원 전교수와 경찰, 기자 등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불안, 불편이 전국민에게 전파되면서 국정원의 고소·고발이 공포정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 국정원이 박근혜 정부 출범 전 고소·고발을 통해 새롭게 시작하는 박근혜 정부를 위한 레드카펫을 깔려고 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이런 불안이 형사사법절차를 통해 적절하게 해소되고 이런 결과가 다시 국민들에게 전파된다면 고소당할 수 있다는 불안이 만들어내는 위축효과는 반감될 것이다. 그래서 이번 고소사건들에 대한 검찰수사가 중요하다. 권력기관이 국민을 겁박하는 고소·고발을 남발하더라도 형사사법절차에서 걸러낼 수 있다는 믿음이 확산된다면, 전략적으로 봉쇄될 가능성이 없고 자연히 고소·고발도 사라지게 된다. 이번 국정원의 행태를 대통령이나 권력자들의 선택이나 의지가 아닌 우리 사회의 형사사법절차를 통해 해결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국정원의 고소·고발 퍼레이드가 표현의 자유를 봉쇄하는 사건이 아니라 권력기관의 고소를 봉쇄하고 권력기관이 고소해봐야 별 것 없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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