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초의 미사일 요격 명령, 도쿄 도심에까지 등장한 패트리어트 요격미사일, 두 차례의 미사일 발사 오보(誤報) 등. 자칫하면 오인에 의한 전쟁까지 촉발시킬 수 있었던 일본의 호들갑은 선거를 앞둔 아소 다로 총리의 노림수였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강상중 교수의 설명은 보다 포괄적이고 근본적이었다.
"한국은 민주화를 이룬 후 북한에 대한 생각을 바꿔왔다. 이번 미사일 국면에서도 일본만큼 떠들썩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조차도 북한이 미사일을 쏘는데 나무를 심었다고 하지 않은가. 이명박 대통령조차도. 아마 일본에서는 그런 상황에서 총리가 밥을 먹으러 간다고 해도 난리가 났을 것이다."
일본의 과민반응에 대한 비판이었다. 강 교수는 작년에 일본에서 출판되어 그야말로 '대박'이 난 자신의 책 제목을 인용해 "한국은 지난 50년 간 북한에 대해 '고민하는 힘'을 발휘했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며 일본의 대북 인식이 극단화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조차도"를 강조한 대목은 의미심장했다. 뭔가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북한의 로켓이 발사돼도 나무를 심을 수 있을 정도로 군사적 긴장이 완화된 상황을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누리고' 있지만, 그게 왜 가능했는지를 알고 있느냐는 추궁으로 들렸다. 그리고 나서 직설적으로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계승하지 않으면 안 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 햇볕정책이란 게 없었고 전두환이나 김영삼 시절의 대북 강경정책만 있었다면 (한국에는) 더 큰 위기가 있었을 것이다. 햇볕정책은 미국의 대북정책까지 크게 변화시켰다."
북한의 로켓이 발사된 날 청와대와 한나라당에서는 '햇볕정책이 퍼준 돈으로 미사일을 만들었다'는 말이 즉각 튀어나왔다. 그러나 햇볕정책이 없었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그때 그렇게 나무를 심을 수 있었을지, 한국과 일본의 현 대북정책으로 안보가 과연 지켜질 수 있을지, 그는 묻고 있었다.
다음은 7일 저녁 서울의 한 호텔에서 있었던 인터뷰 전문이다.
▲ ⓒ프레시안 |
"고민하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위로가 되길"
프레시안 : 이번에 한국에 온 이유는?
강상중 교수 : 2003년 경부터 1년에 1~2번씩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러 서울에 온다. 김 대통령은 내가 젊은 시절 굉장히 존경했기 때문에 내 청춘을 상징하는 분이고, 나에게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프레시안 : 작년에 일본에서 발간된 <고민하는 힘>이 80만부 이상 팔렸다는데, 왜 그렇게 인기가 좋았나?
강상중 : 판매량은 80만부였지만 읽은 사람은 100만 명이 넘었을 것이다. 일본사회의 소수자인 재일교포가 낸 책이 이렇게 많이 팔린 것은 처음이고,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자평한다.
일본의 경제와 사회가 침체되고 정체됐기 때문에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받았다고 본다. 실업자가 많아지고 젊은이들의 소득이 줄어들고 가정 경제의 파탄도 늘어나는 상황, 그리고 중산층의 처지가 안 좋아지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을 반영한 현상이라고 본다.
일본은 지금 1930년대처럼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G7이나 G8 국가들 중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을 정도로 사회 분위기가 좋지 않다. 물론 OECD 국가들을 다 치면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는 한국이지만 말이다.
프레시안 : <고민하는 힘> 한국어판이 얼마 전에 발간됐는데 한국인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읽혀지길 원하나?
강상중 : 한국도 일본 이상으로 사회적·경제적 기반이 많이 무너졌다. 청년실업률이 높고 비정규직의 비율은 일본 이상으로 높다. 과거처럼 민주화의 문제보다 경제적 불안을 불식시키는 게 한국의 당면 과제다.
서울대를 졸업한 사람들도 취직하기 힘든 상황에서 젊은 사람들이 '과연 한국에서 내 미래를 찾을 수 있나'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 책을 통해 그런 젊은이들과 고민을 나누고 싶고, 그들에게 위로를 주는 책이 되길 바란다.
"北 로켓, 아소에게 무조건 유리하지만은 않을 것"
프레시안 : 일본 우파들은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로 인해 또 한 번 군비증강 및 헌법 9조 개정을 주장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얘기들이 나오고 있고, 그걸 어떻게 평가하나.
강상중 : 이번 미사일 발사 사태는 (일본이 구축해 놓은) 미사일방어(MD) 체제가 제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한다는 걸 보여줬다.
대포동 미사일은 (장거리 미사일이기 때문에) 일본의 안보와 별 관계가 없다. 오히려 (중거리) 노동미사일이 더 문제이고, 거기에 핵탄두를 소형화해 탑재할 경우 더 큰 위협이 된다. 따라서 나는 오래 전부터 그 문제에 대해 일본이 북한과 교섭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일본 사람들은 그동안 핵·미사일 문제보다 납치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 왔는데, 이번 장거리 로켓 발사 사태로 인해 핵·미사일의 위협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역시 노동 미사일이 더 문제이고, 따라서 이번에 일본 정부의 이번 대응 태도는 과도한 것이었다.
일본이 이번 사태 이후 어떻게 변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북한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군사적인 대응을 할 가능성이 있다. 극히 일부지만 미사일 기지를 선제공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올 수 있다. 물론 지금은 일미안보체제가 있고, 따라서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있기 때문에 그런 주장이 많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은 이번에 북한이 로켓을 쏘지도 않았는데 쐈다고 잘못 판단하고 두 번 씩이나 틀린 경보를 울렸다. 한국은 미군의 정보를 받아 알리는데, 일본은 미국의 정보를 확인하지도 않고 자기네 자체적인 판단만으로 경보를 울렸다. 그 역시도 북한의 위협을 과도하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반면, 미국은 인공위성이 궤도에 진입하지 못했고, 미사일이었더라도 알래스카나 하와이까지 도달하지 못했을 거라고 발표했다. 미국은 준비에서 발사까지 1주일이 걸리는 미사일, 게다가 발사대가 하나밖에 없고 날씨에 따라 발사 여부가 좌우되는 그런 미사일은 전혀 위협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일본에서의 이번 미사일 소동은 과잉반응이었다.
프레시안 : 인기가 바닥이었던 아소 다로 총리는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의 정치자금 스캔들이 터지고 북한 인공위성 문제까지 나오면서 기사회생의 기회를 맞았다. 중의원 선거 전망은?
강상중 : 이번 미사일 문제가 일본 정치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아직은 가늠하기 힘들다. 두 번씩이나 판단 착오를 했고 그에 대해 야당으로부터 비판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아소 총리에게 무조건 유리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오자와 대표의 정치자금 문제 때문에 아소 총리의 지지율이 아주 조금 올라갔는데, 오자와가 민주당 대표직에서 물러나면 민주당의 지지율은 다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오자와 대표의 사퇴를 주장한다. 중의원 선거가 8월 경에 있을 텐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직까지는 전망하기 힘들다.
프레시안 : KAL 858 폭파범 김현희가 얼마 전 부산에서 북한에 납치된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의 가족들을 만난 후 일본에서 납치 문제가 다시 부상하고 있는 것 같다.
강상중 : 물론 일본 언론들은 그 만남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렇게까지는 보도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미사일 문제가 터지면서 납치 문제가 뒤로 좀 밀리는 분위기이다. 안보 위기에 대해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핵·미사일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
▲ ⓒ프레시안 |
프레시안 : 일본의 대북 적대감은 날로 악화되는 것 같다.
강상중 : 한국은 50년 이상 북한과 대립해 왔는데 과거에는 같은 민족이지만 적대감은 훨씬 더 컸다. 현재 일본이 북한을 보는 태도는 1970년대에 한국이 북한을 보던 시각과 같다는 느낌이다. 나는 1970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었는데 '빨갱이들은 죽여도 된다'는 말을 하는 걸 듣고 깜짝 놀랐었다. 당시는 냉전시대였는데, 일본은 북한에 대해 큰 신경을 쓰지 않아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냉전이 붕괴된 뒤 김대중 대통령의 태양정책(햇볕정책의 일본식 표현)이 추진되면서 남북관계는 크게 변했다. 바로 그 때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방북 이후) 일본에서는 납치 문제가 크게 불거졌고, 일본 사람들은 처음으로 한국 사람들이 과거 가졌던 대북 적대감을 갖게 됐다. 당시까지 일본 사람들은 북한에 무관심했다. 그러나 매우 짧은 기간에 북한 문제가 큰 의미를 가지게 됐다.
그러나 나는 한국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한국은 민주화를 이룬 후 북한에 대한 생각을 바꿔왔다. 이번 미사일 국면에서도 일본만큼 떠들썩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조차도 북한이 미사일을 쏘는데 나무를 심었다고 하지 않은가. 이명박 대통령조차도.(웃음) 아마 일본에서는 그런 상황에서는 총리가 밥을 먹으러 간다고 해도 난리가 났을 것이다.
일본은 북한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를 한국의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원래 일본은 북한에 대해 그리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냉전시대에는 북한을 사회주의 국가로 인정하고, 좋게 평가하고, 한국보다 북한하고 더 가깝게 지내던 정치세력도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북한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북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내 책의 제목대로 일본은 북한에 대해 '고민하는 힘'을 발휘하지 않았다. 그렇게 고민하는 힘이 없는 나라는 극에서 극으로 왔다 갔다 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은 50년간 고민해왔다. 그런 면에서 내 책이 일본에서 많이 읽혀지지 않으면 안 된다.(웃음)
"조지 오바마에서 버락 오바마로 갈 것"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강상중 : 지금 남북관계가 최악이다. 미사일 문제 때문에 지금은 한미일 3국이 잘 협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까운 시일 내에 미국은 6자회담을 통해 북한과 대화할 것이다. 오바마 정권은 북한에 대해 유화적인 정책을 펼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 때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했던 역할을 힐러리 국무장관이 할 것이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계승하지 않으면 안 되고 김대중 대통령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경제 문제에서도 이명박 정부는 '시장 원리주의'를 버리고 고용이나 실업 대책, 빈곤 문제에 대해 충실한 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오바마 식의 '새로운 뉴딜'과 비슷한 말을 하긴 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국민들이 실망하고 있는 것 같다. 이명박 정부는 또 점점 권위주의적으로 돼가는 것 같다. 대통령 주위에 예스맨만 있다 보니 그런 것 같다.
▲ ⓒ프레시안 |
프레시안 : 대북정책에 있어 오바마 행정부는 한국과 일본의 정부를 어떻게 상대할 것으로 보는가?
강상중 : 단기적으로는 미사일 문제가 있기 때문에 북미관계는 조금 험악해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한미일이 공조하는 것 같지만 한국과 일본은 강경노선을 걷고 미국은 온건노선을 걸을 것이다. 그러면서 미중관계가 상당히 중요하게 될 것이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오바마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부터 많은 역할을 했고 지금도 상당히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 것이다. 또 힐러리 장관은 올브라이트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클린턴 시절의 정책으로 돌아가고 6자회담도 중요하게 될 것이다. 고위급 협상으로 여러 가지 문제를 패키지로 한꺼번에 해결하는 방법을 쓸 것이다. 거기서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햇볕정책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햇볕정책이란 게 없었고 전두환이나 김영삼 시절의 강경정책만 있었다면 더 큰 위기가 있었을 것이다. 햇볕정책은 미국의 대북정책까지 크게 변화시켰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의 연설문 담당 보좌관을 했던 사람이 최근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에 글을 썼는데, 오바마 정부 초반 대외정책은 부시 행정부 2기와 유사할 것이라는 의미로 '조지 부시'와 '버락 오바마'를 합쳐 '조지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펼 것이라고 했다.
부시 2기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1기 때와 달랐는데 특히 1기 때는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했다가 2기 때는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부시 2기의 좋은 점을 그대로 안고 갈 것이다.
미사일 문제가 생겼으니 오바마 행정부가 클린턴 시절로 바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국내적으로 겁쟁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지 오바마' 정도면 괜찮다. 시간이 지나면 '조지 오바마'에서 '버락 오바마'로 갈 것이다.
일본은 미국을 '조지 오바마'에서 '조지 부시'로 돌리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는 되지 않을 것이다. 조지 오바마에서 버락 오바마로 바뀌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핀치에 몰리게 될 것이다.
프레시간 :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 강상중 도쿄대 학제정보학환(學環) 교수 정치사상을 연구하는 학자 강상중은 재일교포 2세로 태어나 한국인 최초로 도쿄대 교수가 된 인물로 남북한과 일본, 동북아시아의 문제를 화두로 삼고 있다. 저서로 <내셔널리즘> <세계화의 원근법>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 등이 있고 최근 <고민하는 힘> 한국어판이 출간됐다. ● 프레시안에서 만난 강상중 1. <고민하는 힘> 서평 : 강상중, 우울한 시대에 속삭이듯 말 걸기 2. 인터뷰 "후쿠다의 일본을 활용하라" (2007년 9월) 3. 인터뷰 "납치문제, 일본은 피해자가 되길 원한다" (2006년 4월)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