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그먼과 스티글리츠는 지난 대선 때 오바마를 지지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은 가장 권위있는 경제학자들이라는 점에서 오바마 정부는 이들의 비판에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처지다.
▲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로이터=뉴시스 |
스티글리츠 교수는 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Obama's Ersatz Capitalism(오바마의 짝퉁 자본주의)'라는 기고문(원문보기)에서 지난달 23일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발표한 '민관합동투자프로그램(PPIP:Public Private Investment Program)'이 왜 월가의 금융업체들에게 '위장한 공적자금 퍼주기'로 볼 수밖에 없는지, 크루그먼 교수보다 더 세밀한 설명과 함께 맹비판했다.
"PPIP의 전제들, 모두 틀렸다"
PPIP는 민간 투자자들과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펀드로 월가 금융업체들의 부실자산을 매입하도록 하면 '적정가격'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또하나의 전제는 적정가격으로 부실자산을 매각할 수 있으면 금융업체들은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월가의 금융업체들이 자본잠식이 될 정도로 부실한 상태가 아니라, 신뢰 상실로 제값을 인정받지 못하는 부실자산 때문에 '지급불능 위기'에 빠진 것처럼 잘못 알려졌다는 것이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두 전제를 모두 거짓이라고 판정했다. 스티글리츠 교수에 따르면, 우선 적정가격은 실제 시장에서는 형성될 수 없다.
예를 들어보자. 은행이 매각하려는 한 부실채권이 1년내에 휴지가 되거나 200달러의 가치를 지닐 확률이 50대 50의 경우 이론적으로 이 채권의 '적정가격'은 100달러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투자자들은 부실자산의 이론적 가치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게다가 정보의 비대칭 상태에서 은행은 '역선택' 방식으로 부실자산을 매각하려들 것이다. 가장 부실한 자산을 가능한 한 좋은 가격으로 팔려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론적 적정가격이 100달러이지만, 투자펀드에서 150달러에 매입할 용의가 있다면 은행으로서는 기꺼이 팔려고 할 것이다. 매매가 이뤄진다면, PPIP의 자금 조성 비율에 따라, 투자자금 150달러 중 8%인 12달러는 민간이 투자한 것이지만, 나머지는 정부 투자 12달러와 정부 보증자금 126달러로 채워진다.
문제는 PPIP의 손익 배분 방식이다. 정부는 민간투자자를 끌어들인다는 명분으로 조성 펀드 자금의 92%(정부 투자 8%+정부 보증자금 84%)를 책임진다. 불과 8%만이 민간자본이다. 민간투자자는 정부 보증 자금을 빼고도 이익이 날 경우는 그 이익 중 절반을 가져가고, 손실이 날 경우는 8%에 대해서만 책임진다.
손실 위험은 정부가 거의 전부를 떠안는 투자조건
150달러로 매입한 채권이 1년 뒤에 휴지조각으로 판명되면 민간투자자는 12달러만 잃는 반면 정부는 138달러를 모두 잃는다. 만일 이 채권이 200달러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명되면 정부 보증자금 126달러를 뺀 74달러의 이익을 50대 50으로 나눠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결국 민간투자자는 12달러의 손실 위험을 감수하면서 37달러의 이득을 갖는 반면, 납세자는 138달러의 손실 위험을 감수하면서 겨우 37달러의 이득을 갖는 것이다.
투자자들이 보다 실제 가치에 가깝게 매입가를 저울질하려들 경우 거래는 이뤄지기 힘들다. PPIP의 전제는 '실제 가치'보다 저평가됨에 따라 발생하는 '유동성 위기'이기 때문인데, 실제 가치에 가깝게 부실자산이 처리된다는 것은 결국 '자본잠식' 상태임이 드러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 딜레마를 타개하는 것이 바로 정부가 92%의 손실 위험을 떠안는 조건의 펀드 조성인 것이다.
이때문에 스티글리츠 교수는 "적정가격으로 부실자산을 매매한다는 것은 작동 불능이며, 부실자산을 비싸게 사줌으로써 자본을 확충해주겠다는 얘기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PPIP에 대해 "쓰레기를 혈세로 사주기'라고 혹평한 크루그먼 교수와 동일한 판단이다.
"오바마 정부의 계획, 실체가 드러나면 신뢰 더 추락"
스티글리츠 교수는 "자산을 비싸게 사준다는 것은 은행의 손실을 정부로 옮긴다는 것"이라면서 "가이트너의 방안은 납세자가 큰 손해를 볼 때만 작동한다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크루그먼과 스티글리츠는 모두 사실상 '지급불능 상태'인 은행들을 처리하는 해법으로 '일시적인 국유화'를 유일한 정답으로 제시하고 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오바마 행정부가 내놓은 해법은 국유화보다 훨씬 나쁜 방법이며,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한다는 의미에서 '짝퉁 자본주의'라고 성토했다.
나아가 그는 "가이트너의 방안은 월가가 애용하는 '교묘하고, 복잡하고, 투명하지 않은' 장치로 막대한 부를 금융시장으로 이전시키는 수법의 일종"이라면서 "은행이 필요로 하는 자금을 의회에 또다시 요청하지 않고, 국유화도 피하는 방법으로 고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가뜩이나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오바마 정부의 계획이 값비싼 비용을 지불하는 것임이 명백해지면 더욱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면서 "그렇게 되면 금융시장을 재건하고, 경제를 소생시킨다는 과제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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