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중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첫 아시아 순방을 계기로 오바마 미 행정부의 적극적인 대북 접근 기조에 제동을 걸기 위한 일본과 한국의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힐러리 장관이 자기네 나라를 방문했을 때 그간 북한 핵문제 진전 등에 걸림돌로 작용해왔던 문제를 적극 제기함으로써 미국의 발걸음을 더디게 하겠다는 전략이다.
납치 피해자 가족 만나게 해 모성애 자극?
일본은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를 부각시킬 계획이다. <요미우리신문>의 8일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힐러리 장관의 방일 기간에 납치 피해자 가족들을 면담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힐러리 장관을 통해 납치 문제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이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협조를 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납치 문제는 북일 양국이 풀어야 할 주요 현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일본은 이 문제가 해결돼야 북한 핵시설 불능화에 따른 경제·에너지 지원에 나설 수 있다고 고집하는 등 납치와 직접 관련이 없는 문제를 진전시키는 데에도 난관을 조성해 왔다.
일본의 이 같은 태도는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 뿐만 아니라 납치 문제 해결 그 자체마저 어렵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일본은 힐러리 장관에게 납치 피해자 가족을 만나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그러한 태도가 정당함을 주장하려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힐러리 장관이 그들을 만나 납치 문제에 관한 적극적인 발언이라도 내놓는다면 그걸 근거로 북미관계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요미우리>에 따르면 힐러리 장관의 일본 방문 일정이 16일부터 18일까지로 그리 길지 않아 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 같은 계획이 보도된 이상 어떻게든 가족 면담 일정을 끼워 넣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이에 따라 일본의 만남 요청에 미 국무부가 어떤 태도를 보일지도 관심거리가 됐다. 일본의 계산속을 알면서도 힐러리 장관이 납치 피해 가족을 만난다면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북한의 경계심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미사일 시험발사 움직임이 뚜렷해질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해 세계 70여개 인권단체들이 연대한 '북한자유연합'은 최근 힐러리 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북한 인권과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면서 방일 기간 중 납북자 가족을 만나 보라고 제안했다.
일본인 납치 문제에 적극적이었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2006년 4월 납치 피해자 요코타 메구미의 모친인 요코타 사키에(橫田早紀江) 씨를 백악관으로 불러 면담한 바 있다.
'분단 현장'에 데려가고픈 이명박 정부
한국의 이명박 정부 역시 힐러리 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오바마 행정부의 마음을 묶어 둘 수 있는 방법을 찾느라 고심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7일 정부가 힐러리 장관의 방한 일정에 '비무장지대(DMZ) 또는 연평도 방문'이 포함되도록 미국에 제안하는 방안까지 고려했다고 보도하면서 "미국의 외교 수장이 남북 대치의 현장에 선 상징적인 모습을 통해 북한의 소위 '통미봉남'(通美封南) 기도를 차단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힐러리 장관이 한국에 머무는 시간(19~20일)이 예정보다 줄어들면서 '아이디어' 차원에서 그치고 말았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부는 힐러리 장관에게 짧지만 강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북한 관련 이벤트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처럼 납북자 가족을 만나게 한다거나 탈북자 시설을 방문케 하는 방안 등이 고려될 수 있다.
정부는 그를 통해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에 특사를 조기에 보내는 등 한국이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대북 행보를 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데에 힘을 쏟을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 문제에 아프가니스탄 파병 혹은 전쟁 지원 문제 등 다른 한미 현안을 연계하겠다는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전달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계획이 성사된다 하더라도 힐러리 장관의 마음을 얼마나 붙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웬디 셔먼 전 대북정책 조정관 등 힐러리 장관의 '귀를 붙잡고 있는' 핵심 참모들이 북한에 대한 포괄적 접근을 선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바마 행정부의 다른 대외정책 포스트들이 북한 문제에 있어 힐러리보다 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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