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여윈 소나무와 잣나무를 그려놓고 "공자께서 이르시기를 소나무와 잣나무는 사철 잎이 시들지 않아서 날이 추워지기 전에도 그대로의 소나무 잣나무요 날이 추워진 뒤에도 그대로의 소나무 잣나무"라고 한다고 제자 이상적에게 글을 적어 보냈습니다. 세상은 도도히 권력과 이익을 좇아 흘러가는데 권력과 이익을 뿌리치고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대해주는 제자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세한도를 그려 보낸 것입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세한도는 정신의 한 표상이 되어 있습니다. 곽재구 시인은 「세한도」라는 시에서 이렇게 겨울을 노래한 바 있습니다.
수돗물도 숨차 못 오르는 고지대의 전세방을
칠년씩이나 명아주풀 몇 포기와 함께 흔들려온
풀내 나는 아내의 이야기를 나는 또 쓰고 싶다
방안까지 고드름이 쩌렁대는 경신년 혹한
가게의 덧눈에도 북풍에도 송이눈이 쌓이는데
고향에서 부쳐온 칡뿌리를 옹기다로에 끓이며
아내는 또 이 겨울의 남은 슬픔을
뜨개질하고 있을 것이다
은색으로 죽어 있는 서울의 모든 슬픔들을 위하여
예식조차 못 올린 반도의 많은 그리움을 위하여
밤늦게 등을 켜고
한 마리의 들사슴이나
고사리의 새순이라도 새길 것이다
---곽재구「세한도」(이근배 엮음, 『시로 그린 세한도』) 중에서
수돗물도 숨차 못 오르는 고지대의 전세방을 시인은 추사의 대정 적거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방안까지 고드름이 쩌렁대는 혹한이 유배의 세월을 사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렇게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 가난한 정신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고향을 떠나와 서울의 변두리나 산동네에 거처를 정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그들의 슬픔, "은색으로 죽어 있는 서울의 모든 슬픔들을 위하여" 무슨 이야기인가를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추사가 붓을 들고 먹을 갈아 세한도를 그리는 심정으로 "칡뿌리를 옹기다로에 끓이며""이 겨울의 남은 슬픔을 / 뜨개질하"는 아내를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세상은 오늘도 권력을 가진 이를 향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이익이 되는 일이라고 판단되면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불쌍한 이들을 마구 짓밟고 내쫓는 일을 되풀이합니다. 심지어 죽음으로 내몰고 난 뒤에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르고, 어디로 어떻게 책임을 떠넘길 것인지만을 궁리합니다. 인면수심의 세월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냉혹해져도 소나무와 잣나무의 정신으로 푸르게 살아 깨어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이 세월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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