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시대적 조건과 환경은 전환기적 의미를 띠고 있지만 가시적 변화를 만들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고, 되레 정책이 역사적 흐름을 역행시켜 시침을 되돌리는 경우도 생긴다. 이른바 전환의 기회를 실기(失機)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의도건 오류건 정책방향이 환경적 조건과 서로 잘못 만나는 경우다.
전환기적 조건이 무르익었을 때 정책적 대응이 현명하지 못하거나 정책결정자가 전환기적 중대성을 감지하지 못한다면 변화의 시대는 결코 열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실기의 안타까움은 후일 역사를 반추할 때 보다 선명해진다. 그 시대를 엮어가는 정책결정자들이 역사전환에 관한 통찰력을 갖추지 못하거나, 후대 역사가들의 평가에 조차 전혀 개의치 않는다면 실기의 소명조차 의미를 갖지 못한다.
▲ 오바마의 '변화'는 한반도에도 전환기적 환경을 만들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세 차례의 전환기, 실기의 기억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 환경 60여 년 동안에도 중대한 전환의 기회가 몇 차례 있었고 그것과 조응하는 정책적 모색도 있어왔다. 그러나 대립질서의 한반도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못하고 냉전 구조가 유산으로 남아 있는 까닭은 전환의 실기 또한 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1972년 7.4 공동성명은 실로 중대한 전환기적 사건이었다. 세계적 데탕트 무드가 전개되었고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획기적 변화가 드러났던 시기였다. 남북한 모두 이 환경 변화에 조응하는 전략을 모색했고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7.4 공동성명이었다.
그러나 이후 남북한 모두 체제 내부 강화에 주안점을 둠으로써 냉전 질서를 넘지 못했다. 체제 강화라는 정권의 이익이 시대 변화의 필요성을 제어했던 것이다. 남북한 모두 전술적인 제스처에 집중했지만 거시적 안목으로 역사를 열어가지는 못했다. 그리고는 또 긴 반목과 대립이 이어졌다.
또 하나의 중대한 전환기는 세계적 수준에서 전개되었던 탈냉전과 함께 왔다. 동구권이 붕괴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북한으로서는 사회주의 국제 연대가 급속히 붕괴되어 갔던 시점이었다. 한국의 북방정책이 부분적 성공을 거두면서 한소수교, 한중수교가 이어졌다. 북한도 외교적 고립을 타파하기 위해 일본과의 수교를 위한 노력을 가시화시켰다. 1991년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을 했고 남북한 간에도 고위급 회담이 이루어져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체결되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교차승인 구도와 이를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눈앞에 다가선 듯했다. 중대한 전환기였다.
그러나 비핵화공동선언을 행동에 옮기는 과정에서 핵사찰 수용방법을 둘러싸고 파열음이 나기 시작했다. 북한의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로부터 시작된 핵 위기 속에서 북미관계는 양자간 합의(제네바 합의)의 물꼬를 텄지만, 이번엔 남북관계의 경색이 방해 요소로 작동했다. 북한의 통미봉남 전략과 한국의 북한 붕괴론 및 그에 따른 대북 흡수전략이 탈냉전 시대로의 전환적 진전을 막았다.
2000년에도 전환기의 희망이 보였다. 남북관계에서는 6.15 공동선언을 만들어 냈고 북미관계에서는 미국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의 방북과 북한 조명록의 워싱턴 방문이라는 중대한 전환기의 조건들을 만들어 냈다.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상호주권 존중, 내정불간섭 원칙 하에서 관계 개선 추진 등의 합의를 담은 북미 공동코뮈니케까지 발표했다.
화해협력정책에 기조를 둔 한국의 대북정책과 대화를 통한 해법 강구라는 미국의 대북정책이 상호보완적으로 선순환적 구조를 이루고 있었으나 이번엔 협상이익 극대화를 모색했던 북한의 계산법과 타이밍이 문제였다. 1998년 대포동 미사일 발사와 그것이 가져 왔던 미국 내의 대북 경계론의 후폭풍을 간과했던 것이다.
클린턴 당시 대통령의 방북이 무산되면서 전환기로의 전격적 진입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부시 행정부 8년이 지났다. 그 와중에 핵실험도 있었꼬, 6년이 지나서야 북한과 미국은 누적된 상호 불신구조를 타파하기 위한 노력을 되풀이해야 했다.
전환기의 환경 마련된 2009년
2009년에도 2000년과 동일한 전환기의 환경이 재생될 것인지 어느 누구도 예단하지 못한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차기 미 대통령이 줄곧 견지 해 왔던 부시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기조, 공세적이면서도 외교적 협상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 오바마 행정부 외교진영의 구성 면면을 보건대 오바마의 대북정책이 1998년부터 2000년 무렵까지 진행되었던 클린턴 전 대통령의 대북정책 기조를 계승할 것이란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비확산의 기조 위에 세계질서를 안정적으로 운용하려는 미국 세계전략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북한 핵문제에 관한 정치적 성과를 완결하려는 구상은 명확해 보인다.
북한도 2000년의 실기에서 얻은 교훈이 있을 것이다. 미국 외교정책에 미치는 국내정치적 영향과 정치적 스케줄의 민감성에 대해서도 학습했을 것이다. 더욱이 김정일 건강이상설로 인한 후계자 구도를 염두에 둬야 하는 북한으로서, 2012년의 소위 "주체 100년"을 성과 있게 준비하기 위해서는 향후 2년 동안 적극 협상에 나서려 할 것이다.
북한과 미국이 공동의 이익과 공동의 합의구조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핵 불능화, 사찰, 폐기 과정의 프로세스와 북미간 외교관계 정상화 구도가 숨 가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한반도 정세가 본질적인 변화를 위한 전환기로 접어들었다고 판단되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이러한 시점에 우리 정부의 행보는 여전히 답답하다. 무대응으로 일관하면 결국 북한이 머리 숙이고 손을 벌릴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북한 길들이기 전략이 성공할 것이라는 전제에 서 있다.
그러나 시간이 과연 우리 편인지는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북미 양자관계 진전의 어느 시점까지 팔짱 끼고 기다릴지 자못 궁금하다. 혹여 미국이 우리를 배제하고 혼자 치고 나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진 것 때문인지 모른다.
정책결정자는 시대의 흐름에 대해 지혜로운 안목이 필요하다. 자신의 정책적 의도나 신념이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어떻게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 있는가에 대한 창의적 상상력도 요구된다. 정책변화를 제어하는 다양한 요소, 이를테면 정권적 이익이나 인식적 타성, 정책변화에 대한 두려움 등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도 그래서 필요하다.
전환기의 한반도 정세에 직면해서 잘못된 정책적 전제나 희망적 관측(wishful thinking), 역사적 비전의 부재 때문에 역사의 시침을 뒤돌려 놓는 오류를 범하는 측이 우리가 아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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