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한마디로 '바닥 불사론'이다. 남북관계 중단을 감수하더라도 북한의 버릇을 반드시 고쳐놓겠다는 고집이 최우선의 정책 목표다. 이명박 정부는 기존의 대북 포용정책이 북한의 변화를 가져오는 데 실패했다고 규정하면서 그 결과로 퍼주기와 끌려다니기에만 빠졌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이제 북이 변화하기 전에는 남북관계 자체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줘야 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북한에 퍼주거나 끌려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남북관계가 파탄난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 폐쇄까지 불사하며 원칙을 갖고 기다리겠다는 대통령의 입장이 이를 반증한다.
北, 내핍과 고립에 익숙
기존의 대북 포용정책이 남북관계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추진하는 것이었다면 지금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변화할 때까지 남북관계 중단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곧 대북 개입(engagement) 정책을 폐기하고 대북 불개입(disengagement) 정책으로 전환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남북관계를 단절하는 불개입 정책이 지금의 현실에서 북한 변화에 성공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기다리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이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 때문이다. 북을 변화시킬 아무런 효과적 수단과 지렛대를 갖지 못한 채 그저 퍼주지 않고 끌려가지 않겠다는 고집만을 내세워 남북관계의 문만 닫는 형국이다.
대통령이 언급한 '기다림'의 정책은 사실 북이 변하기 전에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엔 '아무 것도 할 게 없다'는 속수무책의 자괴감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실패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의연하게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기다림의 정책이 결국 북한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신념과 이를 정당화하는 비현실적 대북 인식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중단하면 아쉬운 쪽은 북한이고 결국 북이 무릎 꿇고 나올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주던 쌀을 끊고 개성공단을 닫는다고 해서 북이 당장 그 손실 때문에 손들고 나올 것이라는 기대는 주관적 희망사항일 뿐이다. 내핍과 고립에 익숙해 온 북한에게 일시적 경제 손실은 그들이 내세운 정치적 명분과 요구를 위해 충분히 감내할 만하다.
또 이명박 대통령은 기다리면 언젠가 북이 변화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마땅히 하는 일 없이 기다리고만 있는데 하늘이 도와서 북한을 변화시킬 리 만무하다. 남북관계의 문을 닫아도 북이 아파하지 않는다면 무작정의 기다림은 북을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그저 10년 동안 공들인 남북관계만 물거품으로 만들 뿐이다.
북미관계 진전마저 가로막나
기다리면 북이 아쉬워 굴복할 것이라는 자의적 대북 인식은 또 하나의 잘못된 믿음을 배태하고 있다. 바로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북미관계와 북핵문제가 진전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이에 대해 오바마 행정부는 단호할 것이기 때문에 직접 협상과 외교 중시에도 불구하고 북핵문제는 교착되고 북미관계는 지지부진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번 6자회담에서는 검증 문제와 중유제공을 연계시킨 강경입장을 내세워 그 예측을 현실로 바꾸려는 직접적인 노력까지 기울였다.
버티면 굴복할 것이라는 잘못된 신념은 북미관계가 결국 파탄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의 동굴로 이명박 대통령을 안내한다. 이에 따르면 항상 북핵 문제는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없고 북미는 타협할 수 없다.
결국 북한은 남쪽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고 따라서 기다리면 언젠가는 북이 머리를 숙이고 나오게 된다는 믿음을 확인시켜 준다. 한번 빠진 잘못된 인식이 냉정하고 엄연한 현실마저도 제대로 못 보게 하는 셈이다.
이를 두고 플라톤은 인식의 동굴이라고 지적했다. 이제라도 이명박 대통령은 바깥의 진실을 보지 못하고 그 안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대북 인식의 '동굴'에서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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