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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쥬신의 또 다른 이름

[김운회의 '새로 쓰는 한일고대사']<49> 왜의 뿌리를 찾아서 ③

(3) 왜, 쥬신의 또 다른 이름

신라와 관련하여 나타나는 왜라는 것은 가야를 의미한다는 말들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가야가 멸망한 이후 신라를 괴롭혀왔던 왜(倭)가 자취를 감춘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삼국사기』에 박혁거세 이후 줄기차게 나타나 신라를 침범하던 倭가 500년을 전후로 나타나지 않다가 800년경에 나타나는데 이 때는 일본국(日本國)이라고 나오지요. 그런데 500년 이후라면 일본은 더욱 강력해지고 있는 시기입니다. 만약 신라를 공격을 했다면 더욱 강력하게 공격을 할 수 있었을텐데, 이 500년 이후에는 신라를 공격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 동안의 연구를 보면 500년 이전의 신라를 줄기차게 공격한 왜는 일본(日本)이 아니라 경남과 전남 해안 지방의 가야인들이죠. 500년 이후 왜가 나타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이 시기에 가야가 신라에 병합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왜(倭)의 실체를 아시겠죠? 그러면 이제부터는 왜라고 하지말고 와[wa]라고 읽어봅시다. 일본인들은 왜(倭)를 '와'로 읽습니다. 왜냐하면 왜라는 말은 어떤 민족의 고유이름을 한자로 표기한 말인데 그것을 현대 한국의 한자발음인 왜(倭)라고 하면 왜를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쓰기는 倭로 써더라도 '와[wa]'로 읽읍시다.

박시인 선생과 같은 고대 언어 전문가들은 '와[倭(wa)]'라는 말이 '오쥐[옥저(沃沮)]'나 '와지[물길(勿吉)]'와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즉 와라는 말은 옥저, 말갈, 물길 등의 다른 표현으로 쥬신을 이르는 범칭 가운데 하나라는 말이죠. 勿吉(와지)은 '해드는 곳'을 의미하고 와(倭), 오쥐(沃沮)라는 말 역시 '해 뜨는 곳'을 의미합니다. 원래 와지, 와디라는 말은 숲을 의미합니다. 이 점을 좀더 구체적으로 볼까요?

『한서(漢書)』에 "와(倭)라는 것은 나라 이름이다. 몸에 문신을 사용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를 일러 委[wa, wi 또는 we ?]라고 이른다."라고 합니다.40) 즉 倭라는 것의 발음이 와[wa], 위[wi], 웨[we] 등의 발음 가운데 하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그 재는 높고 가파르지 않고 수목만이 빽빽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41) 여기서 울지(鬱地)는 만주어로 우디[wudi]인데 삼림(森林)을 뜻하는 말입니다.42) 이 말은 方言으로 만주 지역에서 웨지(weji), 와지(waji) 등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물길(勿吉)'의 음인 와지[waji] 또는 웨지[weji], 오늘날 일본을 의미하는 倭의 실제 음인 와[wa], 그리고 沃沮의 실제 음인 오쥐[woji] 등과도 같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의미는 숲[森林] 또는 동쪽(해가 숲에서 뜨는 모양) 등으로 아사타라, 아사달의 한역어(漢譯語)인 '쥬신(朝鮮)'의 朝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도쥬신(한국)의 사가들은 이들 가운데 오직 옥저만이 반도 쥬신과 하나의 핏줄이라고 믿고 있죠.

따라서 와(倭)라는 말은 일본열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만주의 광범위한 한국인을 말한다는 것이죠. 대체로 와(倭)는 한국인들 가운데 해안이나 연안 지역에 거주하면서 수렵이나 어로, 농경을 하던 사람들을 부르는 말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들 지역은 남방계의 이동로에 있어서 남방계와 광범위한 혼합이 이루어졌으며 천손족의 남하로 인하여 피지배계층으로 된 경우가 많았을 것입니다. 언어학자 강길운은 가야는 드라비다계의 언어를 후기 신라는 터어키계 언어를, 고구려는 몽골계의 언어를 각각 사용했으며 백제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말이 서로 달랐지만(『주서(周書)』), 지배층은 역시 고구려어를 말기에는 드라비다어와 동계인 가야의 지배층어를 썼음이 분명하다고 합니다.43) 이 점은 왜의 사정을 알려주는 하나의 단서가 되기도 하겠지요.

그러니까 와(倭)류의 언어들(와, 와지, 오쥐, 와디, 와지 : 倭類語)은 쥬신류어(肅愼類語 : 珠申, 朝鮮, 肅愼, 諸申, 息愼 등)나 까오리류어(高麗類語 : 高麗, 忽里, 高句麗, 句麗 등) 등과 대동소이한 의미로 해뜨는 곳의 사람들 즉 한자로 쓰면 동이(東夷) 또는 '일본(日本)'입니다.

일본(해 뜨는 곳)이라는 말은 일본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죠? 왜냐하면 일본에서 해뜨는 곳은 바로 태평양 바다가 아닙니까? 따라서 일본이라는 말은 한반도에서나 할 수 있는 말이죠. 그 말은 많은 반도쥬신(한국인)들이 열도로 건너가 일본을 건설했다는 말입니다.

『삼국지』에는 2세기말 이래 많은 사람들이 낙랑군에서 한반도 방면으로 유입된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동과 만주 지역의 많은 사람들의 이동은 쥬신의 뿌리인 요하 문명이 본격적으로 한반도로 이식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또 이들의 지속적인 남하가 있었으므로 부여계의 대대적인 이동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일본의 연구자들은 한반도에는 늦어도 3세기에는 왜인이 이미 살고 있었으며, 이들은 진한(辰韓)에서 나오는 철 원료 획득을 둘러싸고 한인(韓人)과의 교섭도 활발했을 것으로 보고 있죠.44) 이것은 와(倭)라고 불리는 범쥬신의 일부가 한반도 남부로 지속적으로 이주한 것을 현대 일본인들의 관점에서 표현한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본의 경우 일본 자체에 대한 연구는 8세기의 『고사기』·『일본서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두 사서의 편찬 시기에 해당하는 7세기 말엽부터 8세기 초두에 걸친 시기는 일본의 고대국가가 이미 천황제(天皇制) 율령국가(律令國家)라는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한 때입니다.45)

현재까지 나타난 연구 방향이나 성과들로 본다면, 일본의 와(倭) 또는 일본 고대사에 대한 연구는 여러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일본 고대 국가의 성립은 쥬신의 이동에서 비롯된 것인데, 쥬신의 종합적인 이해가 없이 일본 자체에 대한 분석만으로는 열도 쥬신의 실체를 제대로 알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연구는 전체 쥬신사나 범부여계의 역사를 도외시한 채 분석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점은 한국의 사학계에서 더욱 심합니다.

물론 일본의 연구는 동시대의 중국이나 반도 쥬신의 역사서를 참고로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기 때문에 종합적인 인식 자체가 결여되었다고 하기만은 어렵겠지요. 그러나 쥬신의 실체나 뿌리에 대한 이해가 없이 막연히 "일본은 부여계의 이동의 결과"라는 식으로 보기는 곤란한 측면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말하는 부여계의 이동 과정도 정확하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둘째, 반도 쥬신(한국)과 마찬가지로 열도쥬신(일본)은 지나치게 민족주의적 시각에 경도되어 역사적 실체에 대해 침묵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 점은 반도 쥬신과 마찬가지로 역사의 연구를 매우 어렵게 합니다. 원래 부여계는 반고구려적(反高句麗的), 친한족적(親漢族的) 성향이 매우 강한 쥬신으로 소중화주의적 경향이 매우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본의 지명부터 마치 중국의 지명을 옮겨 놓은 듯한 인상을 줄 뿐만 아니라 열도의 원주민에 대한 시각도 중국의 화이관념(華夷觀念)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메이지(明治) 시대 이후 천황제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제국주의적 침략의 결과 고대사의 열도 쥬신(일본)의 국가성립의 방향이 왜곡되거나 역전된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4세기 후반 남조선에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가 설치되었다는 설이 대세를 이루기도 했고, 이 설은 아직도 대다수 열도 쥬신들은 믿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 견해는 일본열도 내에 조선의 분국(分國)이 있어 그들이 일본의 국가 형성에 주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이른바 임나일본부는 이들 분국을 야마도 정권[大和朝廷]에 흡수하는 과정이었다는 김석형 선생의 견해만큼이나 왜곡된 견해입니다.46)

임나일본부에 대한 기록은 『일본서기』에만 나오는데 이 부분은 쓰다 소기치(津田左右吉)에 의해 위서설(僞書說)이 제기된 이후 반도쥬신의 사학계는 주로 이 견해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임나와 백제, 가야 등에 대한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이해가 필요한데 임나 그 자체에만 집착하여 분석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이 부분 즉 임나일본부에 대해서는 성왕과 킨메이 천황 부분에서 다시 한번 상세히 다룰 것입니다).

넷째, 일본의 고대사 연구의 특징은 '왜 = 일본'이라는 결론을 염두에 두고 사실들을 추적해나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역사적 실체를 파악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앞에서 본대로 고대의 사서들에 나타나는 왜라는 명칭이 현재의 일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연구는 왜 또는 왜로국 등의 명칭이 나오면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열도와의 관계를 찾아내려고 부산을 떨면서, 위치를 비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역사적 사실을 더욱 미궁에 빠뜨리게 되지요.

이상의 긴 논의를 통하여 와(倭)라는 개념이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바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와는 바로 쥬신이지요. 일본인도 쥬신인 것처럼 말입니다.

필자 주

(40) "倭是國名, 不謂用墨, 故謂之委也"(『漢書』卷28下「地理志」第8下의 주석.
(41) 『朝鮮王朝實錄』燕山 028 03/10/07(乙亥) 1619年.
(42) 김주원·이동은「朝鮮王朝實錄에 나타난 女眞語 滿洲퉁구스語」『알타이학보』제 14호 2001, 52쪽.
(43) 강길운 『고대사의 비교언어학적 연구』(새문사 : 1990) 153쪽
(44) 山尾幸久「魏志倭人傳の史料批判」『古代の日本と朝鮮』(上田正昭·井上秀雄 編, 學生社, 1974)
(45) 井上秀雄, 앞의 논문.
(46) 金錫亨 「삼한 삼국의 일본열도 내 분국에 대하여」『력사과학』(19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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