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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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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름, 왜

[김운회의 '새로 쓰는 한일고대사']<47> 왜의 뿌리를 찾아서 ①

제 16 장. 왜의 뿌리를 찾아서

들어가는 말

일본 제국주의 시대 당시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학교) 교수였던 스에마쓰야스카즈(末松保和)의 대표적인 저서는 『임나흥망사(任那興亡史)』입니다. 그는 임나일본부가 존재한 것은 "일본의 자랑스러운 역사(96쪽)"이며, 임나일본부가 존속했던 기간 동안은 백제가 일본에 복속한 것이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합니다(66쪽). 그리하여 백제는 임나에 준하는 관계의 나라로서 일본을 섬겼고, 당시 일본과 백제와의 관계는 말하자면 주종관계(主從關係)의 타성에 끌려가는 상태였다고 결론을 짓고 있습니다.1)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가 주장하는 이 일본의 실체입니다. 그는 일본의 역사에 기여한 수많은 도래인들이 한국인들이 아니라고 합니다. 즉 그에 따르면, "일본에 온 귀화인들은 대부분 중국인이며 한국인이 아니다."라고 합니다(269쪽).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군요. 그의 논리대로 하자면, 야마토 왕조는 중국계의 힘으로 이룩했다는 것입니까?

그의 말을 들어보니, 한족(漢族)들이 참 멀리도 왔습니다. 그 험난한 요동을 지나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왜 야마토까지 갔는지 이해가 잘 안되는군요. 당시 중국의 변방이었던 베이징 지역을 거쳐 - 란하(灤河) - 산해관 - 요하(遼河) - 요동반도 - 압록강 - 청천강 - 대동강 - 한강 등을 거쳐 다시 태백산맥의 준령들을 넘고 또 넘어 낙동강을 건너 부산까지 왔다가 다시 배를 얻어 타고 험난한 대한해협(현해탄)을 건너고 규슈(九州)를 지나 다시 배를 타고 시코쿠(四國)에 갔다가 또 배를 타고 야마토 지역까지 무엇 때문에 왔을까요? 참 이해가 안 됩니다.

▲ [그림 ①] 란하 - 요하 - 압록강 - 천천강

이 거리는 오늘날처럼 생각하면 안 되는 거리입니다. 베이징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가는 거리는 고대에서는 울란바타르에서 양쯔강(揚子江)까지 가는 것보다도 훨씬 더 먼 거리로 봐야합니다. 왜냐하면 이 길은 말을 타고도 갈 수가 없고 걸어서도 못 가는 거리입니다. 그리고 군데군데 험준한 산맥들이 가로막고 있고 이 산맥들을 지났는가 싶으면 이내 험난한 바다가 있어서 배도 빌려 타야합니다. 산맥도 그저 넘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제가 낙양(洛陽)이나 장안(長安)에 사는 한족이라면 일본으로 가는 것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강대한 나라들과 소국(小國)들이 있었겠습니까? 경상도 지역만 해도 수십 개의 소국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아마 압록강은커녕 만리장성 아래에 있던 란하(灤河 : 뤼엔하)도 건너지 못하고 가지고 온 재산들이 모두 털렸을 것입니다. 일본까지 가느니 차라리 있는 그 자리에서 숨죽이고 사는 게 더 나았을 것입니다.

(1) 왜(倭)의 뿌리를 찾아서 : 우리의 이름, 왜

'왜(倭) 〓 일본(日本)'이라는 생각은 비단 한국에서만 있는 생각이 아닙니다. 일본의 경우에도 오래전부터 '왜(倭) 〓 일본(日本)'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헤이안(平安) 중기의 서적인 『일본서기사기(日本書紀私記)』에서 보듯이, 왜(倭) 〓 일본(日本) 〓 야마도 정부(大和朝廷) 라는 사고방식이 일본에서는 일반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헤이안 중기 이후에는 왜를 일본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헤이안 시대(平安時代)는 794년 간무천황(桓武天皇)이 헤이안쿄(平安京 : 京都[교토])로 천도한 때부터 미나모토노요리토모[源賴朝]가 가마쿠라 막부(幕府)를 개설한 1185년까지의 시기를 말합니다.

왜(倭)라는 이름은 송나라 이후에도 일본의 호칭으로 사용되었지만 명나라(明代) 이후에는 공식적으로 일본(日本)으로 불렀습니다. 물론 이후에도 왜구(倭寇) 등 피해를 끼치는 일본인들에 대하여서 왜(倭)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로 왜가 아직도 비칭으로 사용되고 있죠.

반도 쥬신(한국)에서는 일본이라는 말보다 왜(倭)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지만 왜라는 말은 광범위한 쥬신을 부르는 범칭의 하나이며 반도 쥬신이 열도 쥬신에게 왜라고 비하한다면 그것은 누워서 침 뱉기와 다를 바 없죠. 쉽게 말하면, 영국인들이 미국인들을 양키라고 욕하는 식입니다.

천년 이상이 지나는 동안에도 동아시아의 고대사의 패러다임은 '왜 = 일본'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에도(江戶) 시대의 일부 고증사가 가운데는 왜(倭)는 일본이 아니라는 견해를 밝힌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설은 널리 인정을 받지 못하고 고립되어 이후의 학계에 영향을 주지 못하였습니다.

왜(倭)라는 실체에 대해서는 이미 『대쥬신을 찾아서』(제2권)를 통하여 충분히 고증하였지만 좀더 구체적으로 일본의 고대사 연구나 방향에 어떤 문제들이 있는 지를 왜(倭)를 중심으로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합시다.

왜는 일본 열도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한국인들의 범칭이자 비칭이라는 부분을 상세히 살펴봅시다.

먼저 『산해경(山海經)』에는 "개나라는 거연(鉅燕)에 있으며, 남왜(南倭)와 북왜(北倭)는 연나라에 속한다."라고 합니다.2) 물론 『산해경』은 온전히 신뢰하기는 어려운 책이지만, 분명한 것은 '왜 = 일본열도'로 보고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연나라가 현재의 베이징(北京)과 요동반도를 거점으로 한 나라인데 왜가 연나라에 속한다면 산둥(山東) 반도지역과 랴오허강(遼河) 동부지역을 지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가지고 이른바 남왜북왜설(南倭北倭說)이 대두하기도 합니다만 이것은 잘못된 견해입니다. '일본열도 = 왜'라는 전제하에서만 보려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죠.

그러면 도대체 "신뢰할만한" 기록상으로 처음 나타난 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서(漢書)』입니다. 『한서』에 "낙랑의 바다 한 가운데 왜인들이 있으며, 이들은 나누어져 1백여 국이 있었다."3) 라고 합니다.

이 기록은 현재의 일본을 의미하는 왜인(倭人)에 대한 최초의 기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노우에 히데오(井上秀雄) 교수는 이 기록을 왜인으로 보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한서』에 나타난 이 왜는 동이족 전반에 관한 기록이라고 합니다. 즉 이 기록이 나타나고 있는 『한서』의 본문을 보면, 공자(孔子)가 중국 내부에서 도의(道義)가 혼란한 것을 혐오하여 해외의 구이(九夷) 가운데 도의가 행해지는 곳으로 이주하고 싶다고 한 이상향을 낙랑군에서 온 보고와 결부시킬 뿐만 아니라, 동이(東夷) 전반에도 적용된다는 예증으로 제시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나타난 "바다 한 가운데" 라는 표현도 섬을 나타내는 말이 아닙니다. 이런 표현들이 중요 사서에 종종 나타나는데, 이 의미는 해상교통이 잘 발달된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4) 즉 중국에서 해로(海路)를 이용해서 가는 지역을 의미하겠죠.

왜냐하면 조선의 경우에도 이 같은 표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컨대, 『한서』에 "그 후 한나라 군사들이 조선을 정벌하고 이로써 낙랑군과 현도군이 되었다. 조선은 바다 가운데 있고 마치 남쪽 오랑캐들의 형상[越之象]을 하고 있지만 북방의 오랑캐의 지역이다."라고 합니다.5)

여기에 특이한 표현들이 나타나는데 바로 남쪽 오랑캐들의 형상 즉 월지상(越之象)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전에 나타나는 『한서』의 표현을 보면 대체로 월나라와 같이 바다 또는 장강(長江)으로 분리된 지역임을 추정할 수 있죠. 즉 바로 이 문장 이전의 기사는 "원봉 연간에 혜성이 하수로 향했다. 점을 보니, '남쪽은 월문을 지키고 북쪽은 호문을 지켜라'고 하였다. (그리고 후에 한나라 병사는 조선을 공격해 낙랑, 현토군을 세웠다. 조선은 바다 가운데 있고 마치 남쪽 오랑캐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북방의 오랑캐의 지역이다)."라고 합니다.6)

즉 한나라 때는 남방의 군사기지를 월문(越門)이라고 하고 북방의 군사기지를 호문(胡門)이라고 하여 남북을 구분하고 있었습니다. 이 표현법에서는 "조선이 얼핏보면, 남방 오랑캐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북방인들"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죠. 아마 한족(漢族)의 사가(史家)들이 보면 매우 이상하게 느껴졌겠지만, 장강(양쯔강)에서 한반도 서남해안까지 해안선을 따라서 이동과 교역이 쉬운 연안민(沿岸民)들의 사정을 알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안개 속에 가려진 왜인(倭人)의 실체입니다.

이런 표현법은 다른 경우에도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후한(後漢) 때 유학자 왕부(王符)가 쓴 정치론인 『잠부론(潛夫論)』에는 "과거 주나라 선왕 때 한후(韓侯)가 있어 그가 다스리던 나라는 연나라에 가까이 있었다. 그래서 예로부터 전해오는 노래에 따르면, '넓기도 하다. 저 한성이여 연나라 군사들이 완성하였도다.' 그 뒤에 이 한나라의 왕성은 한씨였고 위만에게 정벌당하여 바다 가운데로 옮겨가서 살았다."는 대목이 있죠.7)


▲ [그림 ②] 춘추전국시대 때 연나라의 위치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은 학자들마다 조금 다릅니다만 저는 가장 일반적인 해석방식을 따른 것입니다. 이 구절에 대하여 일부에서는 한씨조선(韓氏朝鮮)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지나친 확대해석입니다. 왜냐하면 이를 뒷받침할만한 제대로 된 기록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바다 가운데로 옮겨가서 살았다(遷居海中)"는 대목이죠.

결국 여기서 말하는 바다라는 것은 당시 사람들이 먼 육지를 돌아서 가기보다는 해로를 통하여 조선 지역을 왕래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고조선은 어떤 경우에도 섬으로 존재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연안민의 특성을 지닌 북방인들이었던 것이죠. 쉽게 말해서 연안(沿岸)지역에 거주하는 쥬신입니다.

다시 『한서(漢書)』에 "낙랑의 바다 한 가운데 왜인들이 있으며, 이들은 나누어져 1백여 국이 있었다."라는 말로 돌아가 봅시다. 이 기록에 의하면, 낙랑의 위치에 따라서 왜인들의 위치를 알 수 있겠죠?

낙랑은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낙랑을 중국 대륙으로 보는 견해가 있고 현재의 황해도 평안도 지역을 의미하는 수도 있습니다. 만약 낙랑의 위치가 중국 대륙일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한반도 해안 지역의 사람들이 왜인입니다. 그리고 만약 낙랑이 만약 현재의 평양 지역이라고 한다면, 왜인이라는 것은 현재의 평안도·황해도 도서 지방이나 경기·충남 지역의 섬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지리부도를 펼쳐놓고 보시면 황해도에서는 뱃길로 가면 바로 충남 해안지대로 갈 수가 있기 때문에 지리 사정이 어두운 고대에서는 황해도에서 충남지역을 보더라도 섬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하더라도 충남 지역에는 많은 섬들이 있는데 이 곳과 그 연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왜(倭)라고 보았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설령 낙랑 바다 한가운데가 평안도·황해도 만을 의미한다거나 범위가 경기·충남으로 확장되는 그 어떤 경우라도 왜인이란 한국인들을 일컫는 명칭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연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나 해상 교역 등을 주업으로 하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죠. 이 점은 제가 『대쥬신을 찾아서』를 통하여 충분히 고증하였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좀더 깊이 이 왜의 뿌리를 규명해 봅시다.

필자 주

(1) 末松保和『任那興亡史』(1956)
(2) "蓋國在鉅燕南倭北倭屬燕"(『山海經』第12 海內北經)
(3) "樂浪海中有倭人 分爲百餘國"(『漢書』卷28 地理志)
(4) 井上秀雄「中國文獻における朝鮮·韓·倭について」『任那日本府と倭』(東出版 寧樂社 : 1978)
(5) "其後漢兵擊拔朝鮮,以樂浪,玄郡.朝鮮在海中,越之象也;居北方,胡之域也."(『漢書』卷26 天文 第6)
(6) "元封中, 星孛于河戍. 占曰:「南戍爲越門, 北戍爲胡門.」其後漢兵擊拔朝鮮, 以爲樂浪、玄免郡. 朝鮮在海中, 越之象也;居北方, 胡之域也." (『漢書』卷26 天文 第6)
(7) "昔周宣王 亦有韓侯 其國也近燕 故詩云 普彼韓城 燕師所完 其後韓西亦姓韓 爲衛滿所伐 遷居海中"(『潛夫論』卷9 志 氏姓 卷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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