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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北, 더 이상한 美…6자회담 숨은그림찾기

북핵 대립 구도 '꿈틀'…MB정부, 정녕 '걸림돌' 되려나

부시 시대 마지막이 될 6자회담이 8일 오후 베이징에서 시작됐다. 이번 회담에서는 북한이 지난 6월 제출한 핵 신고서를 어떻게 검증할 것인지를 명시하는 검증의정서 채택이 쟁점이다. 특히 과거 핵 활동을 추적할 수 있는 물질과 장비를 수거하는 시료채취(sampling)를 검증의정서에 명문화하느냐가 핵심 쟁점이다.

대부분의 언론 보도를 보면 한미일 3국 사이에는 검증의정서에 시료채취라는 문구를 넣어야 한다는 '합의'가 있는 것으로 비춰진다. 검증의정서 본문에 넣는 게 어렵다면 비공개 양해각서에서라도 들어가야 하고, 그마저도 어렵다면 명시적인 표현은 안 들어가더라도 시료채취를 뜻하는 게 분명한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반면 북한은 현 단계에서의 검증은 현장 방문과 문건 확인, 기술자 인터뷰로 한정돼야 하며 시료채취는 이른바 핵폐기 단계(3단계)에서 다뤄져야 할 내용이라고 맞서고 있다. 너무나도 낯익은 '한미일 3국 대(對) 북한'의 대립 양상이다.

그러나 최근 나오고 있는 북한과 미국의 말과 행동을 꼼꼼히 따져 보면 이번 6자회담을 기존의 '3 대 1' 구도로 보기에 석연찮은 구석이 적지 않다. 미국 대신 '일부 세력'이란 모호한 타깃을 향해 비난을 퍼붓는 북한. '시료채취는 검증의정서의 한 부분일 뿐'이라며 돌려 말하고 난데없이 러시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미국.

두 '근본 적대' 국가들의 묘한 언행은 6자회담의 구도에 뭔가 중대한 지각 변동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 '한미일 공조'라는 레토릭 속에 간과되거나 무시돼왔던 그림이 점차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 6자회담 참석을 위해 7일 베이징에 도착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 ⓒ연합뉴스
북한이 이상하다

6자회담 숨은그림찾기의 핵심 단서는 북한이 제공했다. 먼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지난 5일 싱가포르에서 한 말을 보자. 그는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와 이틀에 걸쳐 6자회담 북미 수석대표 회동을 가진 뒤 이렇게 말했다.

"(지난 10월 초) 평양 합의에 따라 검증 관련 문제도 논의했다. 쌍방의 관심사항과 우려사항을 알게 됐고 앞으로 계속 논의해 나갈 것이다. 검증대상과 방법 등의 문제는 평양 합의대로 하면 된다. 시료채취는 검증방법의 문제이며, 앞으로 좀 더 논의해야 한다."(<연합뉴스> 보도 갈무리)

싱가포르 북미 회동에서는 시료채취 문제에 관해 양측의 견해차만 재확인했을 뿐 별다른 합의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김계관 부상이 보였을 태도는? 미국에 대한 비난, 그리고 3일 후 열릴 6자회담에 나가는 자신들의 기본 입장을 강하게 설파했어야 했다. 그게 북한의 일반적인 행동 양태다. 그러나 김 부상은 그러지 않았다. 미국을 욕하지 않았다. 그간 강하게 거부했던 시료채취에 대해 "앞으로 좀 더 논의해야 한다"며 절충의 여지가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날 나온 <조선신보>의 보도. 북한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전하는 이 신문은 6일 이번 6자회담에서 북한은 시료채취 명문화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 박으면서 그것이 북한과 미국의 평양 합의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조선신보>도 미국을 비난하지 않았다. 북미 합의가 흔들린다면 1차적으로 미국을 겨냥하는 게 타당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 신문은 "일부 세력들이 조(북)미 평양 합의에 없는 시료채취 등을 포함시킨 검증문건을 이번 회의에서 채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며 '일부 세력'이란 표현을 썼다. "대결노선을 추구하는 세력들" "비핵화 과정에 훼방을 놓고 있는 세력들" "시료채취 문제를 떠들어 대는 세력들" "조선(북)과 대결하려는 세력들"…

근데 이건 어디서 많이 들어 본 표현이다. 지난 11월 12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담화. 대부분의 한국 언론들이 '시료채취 거부 담화'라고 규정했지만 실은 북미 평양 합의의 내용을 공개한 이 담화에서도 북한은 미국을 때리지 않았다. 대신 "그릇된 여론을 내돌리는 세력" 혹은 "일부 여론들"을 겨냥해 "사태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고 공격했을 뿐이다.

11월부터 등장한 '일부 세력' 표현

여기서 '일부 세력'은 누구인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미국 내 대북 강경파들이다. 그러나 임기 내에 비핵화 2단계(불능화)라도 끝내야 한다는 부시 행정부의 조바심은 존 볼턴 전 유엔 대사 같은 네오콘들의 저항력보다 강하다. 따라서 '일부 세력'은 미 강격파가 아닐 공산이 크다. 그들이 걸림돌이라면 북한이 굳이 그렇게 애매하게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럼 누구인가? 우선 일본이다. 납북자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빼면 안 된다고 했다가 좌절을 맞본 일본은 이제 시료채취 명문화를 강력히 요구하며 북핵 진전에 제동을 걸고 있다.

그런 일본이 '일부 세력'에 들어간다는 것은 북한의 태도에서도 분명히 읽힌다. 외무성 대변인이 6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 형식으로 "일본과 상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이 그러하다. 그는 일본이 의무는 이행하지 않으면서도 "회담에는 계속 주제넘게 참가하겠다고 설치"고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그런데 북한은 왜 굳이 '일부 세력'이란 모호한 표현을 썼나? 딱 꼬집어 증거를 대기는 힘들지만 심증만큼은 확실한 측이 또 한 곳 있기 때문이다. 어디인가? 바로 한국이다.

이명박 정부는 그간 북핵 진전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견제구를 날려 왔다. 대표적으로 이 대통령은 지난 10월 18일 안보 관계 장관회의에서 6자회담이 진전을 거두지 않으면 북핵 불능화에 따라 제공하기로 한 경제에너지 지원을 하지 말라는 초강경 발언을 했다고 일부 언론이 보도한 바 있다.

이에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나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북핵 검증 관련 합의문에는 시료채취가 표현되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청와대의 강경 분위기를 감지한 후 그대로 이행한 것이었다.

또한 북한은 11월 12일 외무성 담화에서 자신들은 10월 18일에 6자회담을 열자는 중국의 제안에 동의한 바 있다고 밝혔는데, 그 때 회담 개최를 반대한 것도 한국이라는 얘기가 돈다. 설득력이 꽤 높은 얘기다. 10월 11일 북미 평양 합의 공개와 북한의 테러지원국 제외에 맞춰 '환영' 논평을 냈다가 보수 여론의 역풍을 맞은 정부가 숨고르기와 대책 마련 차원에서 회담을 거부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북한의 핵 신고서 제출 당시 '핵무기가 신고되지 않아 유감'이라며 핵 프로그램과 핵무기의 처리를 분리하는 협상 구도를 애써 무시한 이명박 정부는 이처럼 북한의 입장에서 보기에 북핵의 진전마저 가로 막는 '일부 세력'이 된 것이다.

미국도 이상하다…'동맹국이 부담스러워'

숨은그림찾기를 끝내기 위해서는 마지막으로 미국의 태도를 짚어 봐야 한다. 북한이 미국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이미 반쯤 드러났지만, 미국 역시 북한을 직접 비난하지 않고 있는 모습은 남은 반쪽의 진실을 보여 준다.

힐 차관보는 6일 인천공항에서 '시료채취가 검증의정서에 포함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검증을 위해 필요한 일정한 방법이 분명히 있다"고만 답하고 말았다. 7일 베이징에서는 "시료채취가 상당한 관심인 것은 알지만 시료채취는 검증의정서의 한 부분"이라며 의미를 축소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처럼 미국은 그간 시료채취라는 표현을 가급적 자제하면서 '검증의정서 의무화'라는 포괄적인 표현을 써 왔다. 시료채취를 명시적으로 주장하는 한일 두 나라와는 사뭇 달랐던 것이다.

이쯤 되면 그간 '한미일 3개국 대 북한'의 대립 구도로만 보였던 6자회담의 그림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펼쳐진다. 북핵 진전을 가로막는 한국과 일본, 거기에 저항하는 북한, 임기 내에 불능화라도 끝내고 싶어 안절부절 하는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그림 속에 숨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그런 한국과 일본을 무척이나 부담스러워 한다는 전언이다.

그렇다면 6자회담 개최가 페루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것은 한일 두 나라를 단속하며 회담을 밀어붙이기 위한 미국의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전례를 깨고 6자회담 일정을 전격 공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3일 도쿄에서 열린 한미일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에서 어떤 말이 오갔을지도 짐작이 가능하다.

美, '난데없는' 러시아 역할 강조의 숨은 뜻

이야기는 계속된다. '숨은그림'은 아니지만 미국의 '밑그림' 정도 되는 말을 힐 차관보가 흘렸다. 그는 회담 개최 하루 전인 7일 오후 6자회담 러시아 수석대표인 알렉세이 보로다브킨 외무차관과 만난 후 이렇게 말했다.

"군축과 (핵) 검증에 대해 많은 경험이 있는 러시아가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단계이며 러시아가 매우 건설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러시아가 이같은 견해를 북한에 전달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6자회담이 난관에 봉착했을 때 대개는 북한의 입장을 옹호해 온 러시아다. 그런 러시아를 향해 '북한에 전달해 달라'는 후반부의 말은 그냥 하는 말이다. 들어줄 리 만무하다는 걸 힐 차관보가 모를 리 없다.

따라서 힐 차관보의 포인트는 '핵 검증에 경험이 많은 러시아의 견해'라는 앞부분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과거 핵 활동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시료채취를 합의한다는 건 현 단계에서 무리라는 걸 한국과 일본에 말해 달라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 러시아가 북한의 우군 노릇을 좀 해 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여차하면' 미국도 북한의 우군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른바 '북미중러 4개국 대 한일 2개국'의 구도다. 물론 미국이 과연 그렇게까지 하겠느냐는 견해가 훨씬 강하지만, 최소한 '북중러 3개국 대 한일 2개국'의 구도를 만들고 미국은 중재자를 자처하며 한국과 일본을 지그시 누르는 식으로 핵 문제를 진전시킬 공산은 있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아직 '밑그림'이지만, 미국이 한일 양국과 다른 소리를 한다는 점만으로도 6자회담의 구도가 꿈틀댄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버락 오바마 차기 행정부가 들어서면 그 변화가 더 확연해질 수 있다.

이런 흐름을 감지했을 북한의 선택이 주목된다. 부시 시대 마지막 6자회담에서 다시 한 번 강공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번트라도 쳐서 일단 진루타를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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