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현지시간) 투표 종료 후 일제히 공개된 이스라엘 방송 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집권 리쿠드(Likud)-베이테누(Beitenu) 연합이 전체 120석 가운데 가장 많은 31석을 차지하며 다수당 자리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합당한 리쿠드당과 베이테누당이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42석에 비교해 볼 때 11석이나 줄어든 결과다.
집권 우파연합과 달리 중도 좌파 성향의 신당인 '예쉬 아티드'(Yesh Atid)당은 선거 전 예상했던 의석수보다 2배 가까이 많은 19석을 차지하며 제2당의 지위를 확보할 것으로 예상됐다. 좌파 정당인 노동당은 17석, 극우 정당인 유대인가족당은 12석을 차지할 것으로 나타났다.
집권 리쿠드-베이테누 연합이 기존 의석수에 한참 모자란 성적표를 받아들 것으로 예상되면서 네타냐후의 보수적인 중동 정책을 유연화하라는 압박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단독으로 정부 구성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네타냐후가 과반 의석인 61석을 확보하기 위해 중도파 정당들을 적극 포섭할 경우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중동 문제에서 유연한 정책을 주문하는 압박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출구조사가 발표된 후 텔아비브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
실제로 네타냐후 총리는 출구조사 발표 후 예쉬 아티드당 야이르 라피드(Yair Lapid) 당수에게 "훌륭한 일을 함께할 기회를 얻게 됐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중도 정당 포섭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선거 전 다수의 중도 정당 지도자들은 네타냐후 총리가 팔레스타인과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연정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중도 정당 포섭이 어려워질 경우 네타냐후 총리가 강경파 정당들로만 연정을 꾸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팔레스타인 문제는 물론 사회보장제도를 비롯한 각종 경제·사회 현안에서 네타냐후와 야당의 충돌이 빈번해질 가능성이 높다.
네타냐후 사실상 패배, 중동정책 바뀌나?
네타냐후의 집권 우파연합이 다수당 지위 유지에는 성공했지만 기존 의석수의 4분의 1이 줄어든 31석에 그치며 사실상 패배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네타냐후가 중동의 정치 변동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한 유권자의 실망감이 반영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서정민 교수는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네타냐후가 중동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제대로 수립하지 못했고 이에 따라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성공회대 김재명 겸임교수는 강경 보수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감도 선거 결과에 반영됐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중동의 민주화 바람 속에 이스라엘의 유권자들이 평화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재명 교수는 대미 관계도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네타냐후 정부가 오바마 정부와 관계가 좋지 않은데다가, 재선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오바마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중동 문제에 있어 미국이 맹목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오바마가 중동 평화 문제에 개입하면서 네타냐후와 긴장 관계가 높아질 수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네타냐후를 지지하는 것은 이스라엘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유권자들의 심리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상 네타냐후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유지했던 중동 정책 기조는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정민 교수는 "현재 집권 우파연합은 이란, 팔레스타인 등과 적대적인 대립각을 세우면서 보수의 정치적 명분을 유지하려 한다"며 이스라엘 내부의 정치적 필요 때문에라도 정책 변화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재명 교수는 의석수가 줄어든 책임을 지고 네타냐후 대신 다른 총리가 들어설 수도 있다면서 중동 정책의 변화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스라엘 보수 정당의 기반이 강경 정책이기 때문에 쉽게 변하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이번 이스라엘 총선은 약 67%의 투표율을 기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비교적 높은 투표율에 대해 서정민 교수는 현재 이스라엘 정치 상황이 투표율을 높인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스라엘은 현재 '교차로'에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라고 전제한 뒤 "이집트, 시리아 등 중동의 변화가 이스라엘의 미래를 불안하게 했다. 이런 정황 때문에 투표율이 높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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