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최근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가 대통령직 인수위원직에서 갑자기 사퇴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오랫동안 박근혜 당선인의 대북정책을 자문하고 설계해온 온건보수 성향의 최 교수조차 설 자리가 없다면, 새 정부의 대북정책 역시 '잃어버린 5년'을 5년 더 연장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더구나 인수위 대변인실이 북한 해킹설을 제기했다가 번복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져 이러한 우려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박 당선인 스스로 '신뢰'를 강조하고 있지만, 출범 이전부터 대북 불신을 자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 역시 여전히 '전략적 인내'를 고수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1월 15일 빅토리아 눌런드 미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의 대북 정책 변화 여부의 질문에 "내가 아는 바로는 미국 정부의 대북 정책 재검토 계획은 없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기류를 잘 보여준다.
펜타곤의 '언론플레이'
기실 미국의 대북정책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잘 보이지 않는다. 동아시아 전략이라는 큰 틀에서 대북정책을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있느냐가 보다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 중심에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억제하고 궁극적으로 해결을 시도할 것인가', 아니면 '북한 위협을 구실로 동아시아 군사패권 강화를 추구할 것인가'가 있다. 안타깝게도 오바마 행정부 1기는 후자에 방점을 찍었고, 2기 출범을 앞두고도 비슷한 기류를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1월 18일자 <뉴욕타임스>의 보도가 주목된다. 이 신문은 미국 국방부와 정보기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북한의 신형 미사일이 동아시아 주둔 미군 및 동맹국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북한이 KN-08이라고 불리는 신형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북한 곳곳에 이동식 발사대를 설치하고 있다며, 이러한 움직임은 "김정은이 경제적 변화를 얘기하면서도 미국의 동맹국과 미군,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하고 있어 김정은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야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KN-08은 북한이 작년 4월 15일 태양절 행사에서 선보인 것으로써, 미국 정보 당국은 아직 실전배치 되지 않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은폐가 용이한 이동식 미사일 부대를 곳곳에 배치하면서 "백악관, 펜타곤, 정보기관들이 북한의 미사일 능력에 대한 재평가에 착수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 리언 패네타 미 국방장관 ⓒ로이터=뉴시스 |
더구나 퇴임을 앞둔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며 "이는 그들이 미국을 공격할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는 2011년에 로버트 게이츠 당시 국방장관이 퇴임 일성으로 "북한이 5년 이내에 ICBM을 개발할 것"이라고 말한 것보다 3년 정도 앞당겨진 것이다. 그러자 펜타곤 관리들은 패네타 장관이 의도한 것은 북한의 미사일이 미국 본토까지 타격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와이 정도를 사정권에 두고 있다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ICBM과는 별도로 미국이 최근 주목하고 있는 것은 신형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인 KN-08이다. 북한이 2012년 4월에 공개했을 때, 많은 전문가들은 모조품이 지나지 않다며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최근 정보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로켓 모터 등 부품 실험 및 이동식 발사대 증강에 나선 것이 포착되었다며 이 미사일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또한 미국 관리들은 "북한의 미사일 기술 진전은 패네타가 퇴임을 앞두고 아시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대한 사유"라며, 그 핵심적인 목적은 "동맹국들, 특히 일본 및 한국과 함께 동아시아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에 박차를 가하려는 데에 있다"고 보도했다.
시진핑은 '압박'하고, 박근혜는 '포섭'하고
그렇다면 펜타곤과 정보기관들은 왜 이 시점에 <뉴욕타임스>에 상세한 브리핑까지 해주면서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고 나선 것일까? 여기에는 세 가지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첫째는 김정은 체제의 변화론에 대한 '반격'이다. 최근 일부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경제와 대외 관계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며, 한미 양국의 대북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 시점에 북한의 미사일 위협이 증대되고 3차 핵실험까지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는 '북한은 변하지 않았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는데 더없이 좋은 재료이다.
둘째는 중국의 새로운 지도부인 시진핑(習近平) 체제에 대한 '압박'이다. 미국은 중국이 대북 제재 동참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어왔다. 이에 따라 미국이 선택한 방법은 '중국의 안보 이익을 건드려 대북정책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위협론'을 이유로 MD를 비롯한 한-미-일 3각 동맹을 추진하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전략적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끝으로 곧 출범할 박근혜 정부를 '포섭'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이미 미국은 이명박 정부를 상대로 MD 협력을 크게 늘려왔다. 이제 남은 과제는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 MD에 한국의 기여도를 공고히 하고 이를 위한 방편 가운데 하나로 한일 군사협정을 체결토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최대 명분 역시 '북한위협론'이다. 미국이 일본의 아베 신조 정권의 국수주의적 우경화를 견제하고 나선 것도 한일 군사협력 증대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의 성격을 지닌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한국에 그 어느 때보다 전략적 지혜가 요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증강은 분명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문제는 이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있다. MD를 고리로 한-미-일 3각 동맹을 추구하는 것은 실패한 역사를 더욱 나쁜 형태로 되풀이할 우려가 크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는 남북대화와 6자회담을 비롯한 대화와 협상의 필요성을 강조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지난 5년간 대북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군사적 억제력이 약한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 해결 의지와 협상력이 부족했던 데에 있다. 곧 출범할 박근혜 정부가 꼭 명심했으면 하는 말이다.
* 필자 정욱식 블로그 '뚜벅뚜벅' 바로가기
* 필자가 <프레시안>에 연재한 글을 엮어 만든 책 <핵의 세계사>가 발간되었습니다. ☞ 책 소개 바로가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