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야마 교수는 <뉴스위크> 최신호(13일자)에 실린 기고문에서 "레이건혁명은 복지국가의 과도한 재정지출에 대한 실용주의적 대응 차원을 넘어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길을 잃었다"며 감세를 해도 재정을 충당할 수 있고 금융시장은 스스로 규제될 수 있다는 생각을 신성불가침으로 여겼던 게 그 이유라고 지적했다.
"90년대 아시아 금융위기, 레이건주의 몰락의 전조"
'주신회사 미국의 몰락'이란 글에서 후쿠야마는 감세와 규제완화 및 '작은 정부'가 경제 성장의 엔진이라는 비전, 미국은 자유민주주의의 전파자라는 생각이 1980년대 이후 세계를 지배했지만, 미국이라는 브랜드는 금융위기로 인해 위기에 빠졌다고 말했다.
후쿠야마는 2002~07년 사이 전례 없는 성장을 기록했던 세계 경제가 미국의 탈선에 의해 동반 추락하고 있다면서 "심각한 것은 그 범인이 미국 모델 그 차체라는 것이다. 작은정부론에 빠진 미국은 금융 부문에 대한 규제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사회 전체에 엄청난 해악을 끼쳤다"고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레이건주의(영국의 대처리즘)는 노동자의 고용과 해고를 쉽게 함으로써 많은 고통을 가져왔지만, 지난 30년간의 성장과 기술(IT 및 BT 등) 발전의 토대가 됐다. 국제적으로 레이건혁명은 개발도상국들의 개방을 밀어 붙여 1980년대 초반 중남미에서 일어난 외채 위기의 고통을 덜어줬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후쿠야마는 "레이건주의는 그때만 옳았다"라며 "재정 지출의 축소 없는 감세는 심각한 재정 적자로만 끝날 뿐이다. 세금을 늘렸던 클린턴 시절에도 레이건 시절만큼 경제가 빨리 성장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감세가 성장의 핵심이라는 보수주의자들의 믿음은 꺾이지 않았고, 세계화가 진척되면서 외국인들에게 미국의 달러를 보유할 동기는 지속적으로 생겨났으며, 그로 인해 미국 정부는 적자 재정을 운영하면서도 고성장을 향유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레이건시대의 두 번째 신조인 금융 규제 완화를 추종하는 이들은 규제가 혁신을 막고 미국 금융 제도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했다"라며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채무를 기반으로 한 혁신적인 금융상품들을 쏟아놓던 때에만 옳았고, 현재에는 위기의 핵심 이유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충고 혹은 강요에 의해 외환시장을 개방한 태국과 한국이 1997~98년 겪었던 외환위기가 레이건혁명이 위험 수위에 달했다는 신호탄이었다고 분석했다. 또한 미국의 무역 적자가 확대되면서 과거에는 달러를 사들였던 나라들이 미국은 자신들의 돈을 예치하기에 그리 좋은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달러 가치가 떨어졌던 것도 또 하나의 경고등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규제완화가 가져온 그늘은 월스트리트의 붕괴 이전에도 캘리포니아 전력산업 민영화로 인한 정전 사태, 엔론 사태 등에서 분명히 나타났다"며 "이라크 점령과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한 대응은 공공부문에서의 취약성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정치적 선택이 미래 좌우"
그는 "이같은 상황은 레이건 시대가 진작부터 끝났어야 했다는 것을 뜻했다"며 "그러나 유럽과는 매우 다른 미국의 특수성이 있었다. 유럽에서는 교육 수준이 낮은 노동자 계층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에 따라 좌파 정당에 표를 던지지만 미국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을 왔다 갔다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동자 계층이 밀집된 오하이오주와 펜실베이니아주 같은 곳들이 11월 대선의 승패를 좌우하는 경합주(swing states)이기 때문에 이번 선거도 노동자 계층이 결과를 좌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자유무역 협정과 IMF, 세계은행 등을 통해 글로벌 경제를 형성하는 미국의 능력이 약화되고 미국의 아이디어들이 환영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느 대선 후보가 미국의 브랜드를 제고할 수 있을까?"라고 물으며 두 후보의 장단점을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는 실용주의적이지만 첨예한 문제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힘든 과정을 겪을 것이고,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는 포스트 레이건 시대의 공화당을 이끌 유일한 인물이지만 공화당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새로운 미국은 어떤 원칙을 가져야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그림이 없다.
하지만 후쿠야마는 "미국의 영향력은 다시 회복될 수 있고 그럴 것"이라며 "그것은 몇 가지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감세와 규제완화에 대한 레이건 시대의 속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지만 그같은 변화에서 과잉은 금물이다. 자유무역은 여전히 경제 성장의 강력한 엔진이다. 감세가 자동적으로 번영을 가져오지 않듯, 무분별한 사회적 지출 역시 마찬가지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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