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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철지난 '고이즈미 모델'을 따를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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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철지난 '고이즈미 모델'을 따를텐가?

[화제의 책] 개번 매코맥 <종속국가 일본>

지난달 25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일본 총리가 전격적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한 것은 '고이즈미 노선'의 쇠퇴를 극적으로 보여줬다.

그의 노선은 흔히 '구조개혁'이라고 불리는데, 규제완화와 민영화 및 작은 정부를 근간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나 '고이즈미 계승'을 내건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전 방위상은 고이즈미 은퇴 선언 사흘 전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8.8%의 득표로 3위에 그쳤다.

반면 다른 후보들은 '개혁의 고통'을 비판함으로써 표심을 자극했고, 재정개혁보다는 경기대책 우선, 재정노선 등을 적극 내세운 아소 다로가 67% 득표율로 압승했다. 아소는 후기고령자 의료제도와 사회보장비 연간 2000억 엔으로 억제 등 고이즈미의 정책을 철저히 부정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는 와중에 일본에서는 고이즈미 노선이 외면당하고, 정치인 고이즈미마저 정계를 떠나는 장면이 연출되는 것을 보면 신자유주의가 내일이라도 자취를 감출 듯한 착시 현상에 빠진다.

그러나 지난 30여년 간 거의 모든 이들의 삶 곳곳에 스며든 신자유주의적 제도와 사고의 뿌리는 깊고 튼튼하다.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투자은행 모델을 첨단 금융시스템으로 신봉하고 공기업의 사유화(민영화)만이 지고지선의 가치인양 덤벼드는 정부가 2008년의 한국에서 탄생했다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 아닌가.
▲ <종속국가 일본> (개번 매코맥 지음, 창비 펴냄) ⓒ창비

개번 매코맥 호주국립대 명예교수의 <종속국가 일본>(창비 펴냄)은 고이즈미와 후임 아베 신조 총리의 신자유주의가 해체해버린 일본 모델, 아소 내각이 아니라 그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회복시키기 힘든 파괴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1970년대 중반 전성기를 누렸던 일본의 '토건국가' 모델은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거치고 2001년 고이즈미 총리가 등장하면서 전혀 다른 시스템으로 변모한다. 고이즈미 정부는 '작은 정부', 공공부문의 민간 이양, 규제완화의 장점을 강조하며 외형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지만, 안정적인 사회복지 기반을 허물었다.

그로 인한 부작용은 일시적인 고통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로 자리잡았다. 실업자가 늘고, 전통적인 고용제도는 거의 사라졌다. 소득과 지역 간 격차 확대와 함께 지방경제의 피폐로 이어졌다. 비정규 노동자가 증가하고 지방에서는 상점의 폐점이 잇따랐다. 의사부족 등 사회보장의 왜곡된 단면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회보장 제도를 유지할 재원 확보가 어려워지게 된 것도 문제였다.

학습국가→전쟁국가→평화국가→종속국가

<종속국가 일본>은 이같은 사회경제적 변동을 겪은 고이즈미 시대의 일본은 미국의 '품' 안에 철저히 안기면서 지역패권국이 되려 하는 야심을 드러냈다며 그 원인과 역사를 파헤친다.

매코맥은 일본이 반(半) 주권국에 가까울 정도로 대미 '종속'을 자청하면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상징되는 내셔널리즘을 강화하고, 헌법 및 교육기본법 개정을 통해 강대국을 지향하는 형용모순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 책은 이처럼 일본이 직면한 위기의 근본을 1945년 전후체제에서 형성된 정체성의 혼란에서 찾는다. 천황의 전쟁 책임을 면해주고 군주 자리를 보전해 주면서 미국의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린 점령 전략, 일본이 아시아의 다른 민족들과 다른 독자성과 우월성을 가졌으며 아시아보다는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는 의식을 심어준 심리 전술이 대미 의존성과 내셔널리즘의 모순적인 결합을 낳았다는 것이다.

고이즈미의 평양 방문 등을 통해 지역 공동체 건설에 참여하는 듯 하다가도, 결정적으로 미국이라는 군사화된 세계제국에 의존하는 종속적 대리인 노릇을 하는 일본. 매코맥 교수는 이에 대해 복잡한 분석을 내리지 않는다. 그냥 '정신분열증'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한다.

한국 시민사회의 저력

<종속국가 일본>을 읽으면 고이즈미-아베의 철지난 유행을 따라가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번역자인 이기호 한신대 교수가 지적했듯, 규제철폐와 친기업적 환경을 만들려고 애쓰는 점이나,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대해 먼저 미국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 점 등은 기본적으로 '개혁'과 외교노선을 꼭 닮아 있다.

하지만 이기호 교수는 "한국과 일본의 결정적인 차이는 한국의 시민사회가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라며 "일본이 1960년대 그토록 치열하게 전투를 치르고도 패배한 기억밖에 없는 점을 상기한다면 커다란 자산이 아닐 수 없다"고 말한다.

이는 저자인 매코맥 교수의 생각과도 같다. 서양인으로서 일본, 한반도, 동아시아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그는 일본에 비해 강력한 힘으로 자리잡고 있는 한국의 시민사회는 한국은 물론 일본, 심지어 중국까지도 변화시킬 동력을 가졌다고 보고 있다.

그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의 민주화는 현재의 잠정적인 퇴행을 극복하고 민주주의 혁명을 회복할 것이 틀림없다"라며 "마치 한류가 문화적 현상으로 징조를 보여주듯 시민사회의 에너지를 동쪽으로는 일본에 남쪽으로 중국에 전달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창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종속국가 일본>에서는 한국의 보수 정부가 일본에는 취약한 한국의 시민사회와 싸우면서도 굳이 가려 하는 길의 종착점이 무엇인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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