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가수 강원래씨입니다. 강원래씨는 1990년 현진영과 와와로 데뷔했고 96년 가수 구준엽씨와 함께 2인조 댄스그룹 클론을 만들어 '꿍따리 샤바라', '초련', '도시탈출' 등 다수의 히트곡들을 발표하며 활동했습니다. 2000년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장애를 입었지만 장애를 극복하고 현재 라디오 DJ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지난 6월 장애인 예술단 '꿍따리유랑단'을 결성해 전국에서 문화예술 공연을 벌이고 있습니다. 제7회 세계장애인대회 홍보대사와 나사렛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서울가요대상 대상과 KBS가요대전 올해의 가수상 골든디스크를 수상했습니다.
박인규 :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강원래 : 반갑습니다. 클론의 강원래입니다.
박인규 : 요즘도 바쁘시죠?
강원래 : 요즘 매일 라디오 KBS 3라디오 강원래의 노래선물 진행하고 있고 KBS1TV 사랑의 가족 장애인 프로그램 진행하고 있고 강연도 다니고, 지금 한중대학교라고 강원도 동해에 있는 학교에서 '춤과 대중예술'이란 과목 가르치고 있고. 여러 가지 많은 일을 하고 있죠.
박인규 : 예전 클론 하실 때보다 스케줄이 더 많은 거 아니에요?
강원래 : 그때와 차이는 있어요. 물론 지금도 클론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데, 그때 바쁘게 움직일 때는 다른 사람의 관리, 그러니까 매니저가 계속 스케줄을 잡고 저는 그냥 끌려가기만 했는데 지금은 내가 스케줄을 관리하고 이건 해야겠다, 이건 나중으로 미뤄야겠다. 관리하다 보니 조금은 예전보다 여유가 있어진 것 같아요.
박인규 : 관리할 수 있을까. 꿍따리유랑단이라는 유랑극단을 만들었어요. 언제 만든 거죠?
강원래 : 머릿속에는 한 3년 전부터 있었던 구상이었는데 우연찮은 기회에 문화예술위원회에서 기금을 받아서, 어떻게 보면 후원을 해주는 단체가 있더라고요. 거기서 소외지역을 다니는 문화공연이라는 아이템을 발견했어요. 제가 안 그래도 교통사고 피해자잖아요. 교통사고를 방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법무부에서 하는 명예보호관찰관이란 직함을 받아서 4년 전부터 강연을 다녔어요. 교통사범을 상대로. 저도 어렸을 때 불법운전도 많이 했었고 오토바이도 심하게 타고 다녔고. 그런데 저 같은 청소년들이 만약 계속 그렇게 사고를 치고 나쁜 짓을 하고 다닌다면 본인은 물론 제 3자까지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걸 방지하고자 강연을 많이 다녔는데, 강연을 다니면서 제가 한 가지 안타까웠던 게 내가 이 친구들 앞에서 말로써 강연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노래로, 춤으로써 하나의 공연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 갖고 있었어요. 그러다 우연찮은 기회에 소외지역을 다니는 문화공연이다. 소외지역이 어디일까, 소년원이나 교정시설, 차라리 교도소 가서 신나는 노래를 해보자. 대신 내 주변의 재능 있는 장애인들로 구성해서 해보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가서 제가 신청서를 냈고, 한 80개 팀이 모였어요. 소아공연팀도 있었고 그림치료팀, 동물매개치료를 하는 팀도 있었는데 저희가 당당하게 뽑히게 된 거죠. 딱 한 팀. 8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제가 가서 인터뷰도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굉장히 꼼꼼하시더라고요. 어떤 공연을 하고 어떤 감동을 줄 건지, 예산은 이 정도인데 이 예산으로 될 건지. 예산이 굉장히 작아요. 조명, 음향, 그리고 공연팀 30명 왔다 갔다 하기에는 부족하죠. 그런데 끼가 있는 많은 장애인들이 그 정도면 괜찮죠, 공짜는 아니네요 선뜻 나서주셔서 너무 고맙죠. 보람을 느끼고.
박인규 : 우선 꿍따리라는 이름은 꿍따리샤바라에서 온 건가요? 무슨 뜻이 있어요?
강원래 : 그렇죠. 뜻은 없어요. 그냥 마음이 울적하고 답답할 때 야호! 신나게 꿍따리 외쳐라. 예전에, 지금은 고인이 되신 땅딸이 이기동씨가 꿍따라닥닥 삐약삐약 하셨잖아요. 거기서 우리가 아이템을 받아서 꿍따리샤바라, 만들었는데, 처음엔 법무부나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소외지역을 가는 문화공연이란 이름을 꼭 넣어 달라. 그래서 넣다 보니 강원래의 소외지역을 다니는 문화공연. 신나는 문화공연 아닌데... 전국을 다니니까 유랑단이란 이름을 한 번 넣어보자. 그럼 강원래 유랑단? 아니아니, 그냥 쉽게 꿍따리샤바라, 꿍따리유랑단 하자. 이렇게 만들다 보니 꿍따리샤바라라는 의미 자체가 어떻게 보면 힘들 때 야호 외쳐라, 파이팅 해라 그런 의미도 있는 것 같아서 그런 신나는 마음을 전국에 펼쳐보자는 이름으로, 이름도 아주 좋죠.
박인규 : 잘 지었네요. 소년원 같이 소외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공연하는데, 그 예술가들이 전부 장애인들이다. 그 분들이 어떤 분인지 소개해 주실 수 있어요?
강원래 : 일단 스토리를 말씀드릴게요. 간단히 말씀드리면, 법무부 직원이 저를 찾아와요. 저 법무부에서 왔는데요. 제가 놀라죠. 죄 지은 것도 없는데 왜 법무부에서 왔지? 법무부에서 공연을 기획하고 있는데 장애인들로 구성된 공연단을 강원래씨가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그 분들이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소년원생들이 더 힘을 얻을 수 있다. 저는 거절하죠. 그 놈들 그냥 살라고 해요. 저도 어렸을 때 나쁜 짓 많이 해봤는데 나쁜 아이들은 나쁜 짓만 하게 돼 있어요. 범죄자들이 재범하고 그런 거 뻔한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법무부 직원이 저를 설득하죠. 그런 편견을 없애줄 수 있는 사람은 강원래씨밖에 없다. 법무부 직원이 얘기하는 거예요. 솔직히 저도 장애인들은 못한다, 불쌍하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능력도 없다는 편견을 갖고 있지만 강원래씨는 해냈지 않냐. 장애인이지만 라디오도 진행하고 클론활동도 하고 있고 그런 모습을 그 아이들에게 보여줘야지 아이들이 새롭게 거듭날 수 있다. 그래서 제가 꿍따리유랑단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이에요. 그럼 오디션을 보겠습니다. 그럼 한 명 한 명씩 절 찾아와요. 한 팔이 없는 친구인데 싸움을 너무 잘 해요. 무에타이를 하는. 그 친구가 나는 길거리에서 안 싸우고 링에서 인정받겠다. 그럼 내가 진짜 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 발차기를 보여주고. 그리고 한 손이 없는 친구가 나오는데 그 친구는 마술사에요. 그 친구는 지금 실제로 마술을 하고 있고
박인규 : 저도 TV에서 본 것 같습니다만
강원래 : 그 친구도 나오고. 안면장애인이에요. 심하게, 일반 사람과 다른데 많이 부풀어오른 친구인데 그 친구도 가수의 꿈을 꾼다. 그 친구는 실제로 2008년도 KBS장애인가요제에서 금상을 받은 친구. 그리고 여러 장애인들이 나오면서 오디션을 보는 과정을 통해서 소년원생들이 보면서 야, 저렇게 몸이 불편한 친구들도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실제로 무에타이 챔피언이 됐고 마술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건강한 나는 뭘 하고 있는 건가, 내가 마음이 건강하지 않구나, 마음을 바꿔봐야겠다, 이런 감동을 주기 위해서 공연을 기획하게 된 거죠.
박인규 : 꿍따리유랑단을 만드는 과정을 극으로 만든 거네요.
강원래 : 그렇죠. 마지막에는 꿍따리샤바라 부르면서 다 같이 춤추고 노래 부르면서 엔딩하는 거죠
박인규 : 첫 공연이 언제였나요?
강원래 : 6월 28일인가, 서울 보호관찰소에서 공연했는데 그때 아주, 처음에는 좀 쑥스러워하더라고요. 솔직히 교정시설이니까 약간 말썽꾸러기들이고 또 한 번씩 사고를 치고 온 친구들인데 내가 이걸 봐야 돼? 빨리 한 시간 끝내야지 그랬는데 처음엔 시큰둥하다가 중간쯤 되니까 재밌는 거예요. 마지막엔 다 같이 일어나서 춤도 같이 추고, 그래서 끝나면서... 적어도 열 명 중 한두 명 정도는 마음속에 뭔가를 담아갔을 거라는 생각을 해봐요.
박인규 : 지금까지 몇 번이나 공연했습니까?
강원래 : 오늘 창원 가서 공연이 있는데, 오늘이 세 번째에요. 12월까지 열 번의 공연을 마치고 내년에 또 꿍따리유랑단 공연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봐요.
박인규 : 현재 꿍따리유랑단의 전체 단원은 몇 명이세요?
강원래 : 일단 배우들만 7명 정도 되고. 실제로 마술사라든가 무에타이 챔피언, 법무부 직원으로 나오는 친구와 저 해서 7명 정도 되고, 춤추는 꼬마아이들부터 댄서들이 한 15명 정도 되고, 조명스태프, 연출 해서 한 30명 정도 왔다갔다 하죠.
박인규 : 그 연출하시는 분은 시각장애인이라고요
강원래 : 기홍주씨라고 실제로는 제가 연출을 맡아볼까 했는데 제가 연극이나 뮤지컬 쪽은 잘 몰라요. 가수들 안무 짜는 건 많이 해봤는데 연출에서 약간 제가 문외한이기 때문에 그쪽으로 잘 아는 제 친구가 한 명 있어요. 고등학교 동창인데 서울예술전문대학교 나왔고 대학로에서 무대감독도 많이 했었고, 그런데 그 친구가 시각장애를 한 7년 전부터, 당뇨가 있었어요. 그 합병증으로 시각장애뿐만 아니라 신장장애라고 해서 온 몸에 있는 피를 한 번 뺐다가 다시 집어넣는 혈액투석을 일주일에 한 두서너 번씩 하는데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더라고요.
박인규 : 그런 신체적인 것도 있지만 안 보이시는데 어떻게 연출을 할 수 있는지 그것도 좀 궁금하더라고요.
강원래 : 일단은 굉장히 잘 들어요. 잠깐만 잠깐만 원래 네가 더 뒤로 가. 아니 너 내가 앞에 나와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 목소리가 더 커지잖아. 청각으로 굉장히 민감하게, 그리고 친구가 워낙 그쪽 바닥에 오래 있다 보니, 우측에서 나오고 목소리가 좌측에서 나면 야 다시 들어가, 다시 시작해... 굉장히 철저하게 아주, 그 친구에게 잘 맡겼다는 생각이 들고 그 친구도 열심히 하려고 하고. 그 친구도 장애가 불편하지만 항상 하는 얘기가 그래요. 내가 제일 잘하는 건 연극이다. 내가 시각장애가 됐다고 해서 안마를 배울 수도 있고 다른 일도 할 수 있겠지만 내가 그래도 제일 잘 할 수 있는 건 연극이다. 원래야 고맙다, 다시 이 자리에 불러줘서, 너무 좋더라고요. 신이 나서 하니까 힘든 건 다 그냥 쉽게 잊어버릴 수 있더라고요
박인규 : 연출 맡으신 기홍주씨는 물론이고 유랑단 하시는 분들이 다른 사람을 도와준다는 차원에서 그런 공연을 하지만 본인들도 공연을 하면서 많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강원래 : 그렇죠. 솔직히 어떻게 보면 출연료도 못 받고 이런 행사를 한다는 자체가 봉사활동이란 차원도 있겠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는다는 건 이건 봉사활동이 아니거든요. 어떻게 보면 우리가 더 돈을 주고 박수를 받아야 되는데 그렇게 인정받고 박수를 받고 칭찬을 받는다는 것. 장애를 가진 분들, 물론 그 분들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으면서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어떻게 보면 우리가 더 기뻐요. 더 좋고.
박인규 : 서로 그야 말로 윈윈게임이네요. 보는 친구들은 어때요?
강원래 : 다들 좋아하죠 나중에는. 지나가면서, 솔직히 성인 분들은 나이 좀 드신 분들은 저한테 와서, 원래씨 교통사고 났을 때 오토바이 뭐 탔어요?라는 말 못 물어봐요. 그런데 꼬마들은 형형 뭐 탔었어요 오토바이?
박인규 : 스스럼이 없군요.
강원래 : 뭐 탔는데 나는 헬멧 썼기 때문에 괜찮았다 너네 헬멧 꼭 써라. 그래요? 형 헬멧은 뭐 썼는데요? 어떤 거 비싼 거 썼어요? 이렇게 스스럼없이 물어본다는 것. 그 친구들에게 약간 교육적인 효과도 있고 친해질 수 있는 계기 같아요. 그래서 많은 친구들이 좀 스스럼없이 연예인도 장애인도 별 거 아니구나. 나도 별 거 아니야. 더 열심히 하고 뭔가 꿈을 갖고 있다면 더 재밌게 살아갈 수 있어. 그런 자신감도 불어넣어 줄 수 있고
박인규 : 올해 안에 공연이 몇 번 더 남았습니까?
강원래 : 지금이 세 번째니까요 한 7번 더 남았어요
박인규 : 저는 약간 궁금했던 게 장애인들이 극단을 만드셨으면 물론 소년원이나 이런 곳에서도 공연해야겠지만 장애인을 상대로 공연을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는데 혹시 그런 계획은 없으세요?
강원래 : 일단 장애인 분들도 공연할 때 구경 많이 와요. 무료공연이기 때문에. 하지만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은 다른 스토리를 잡고 있어요. 내년에도 잡고 있고 앞으로도 계획이 있는데, 주제가 여러 가지지만 제가 장애인 분들에게 제일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하나 있는데, 나오라는 거예요. 집에만 계시지 말고, 너무 집에만 계시면서 불평하고 밖에 나가니 길이 안 돼 있더라, 계단이 너무 많아서 휠체어가 못 나간다, 사람들 시선이 안 좋다 하지만 우리가 자꾸 나오고 부딪치다 보면 사람들 시선이 바뀔 거란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내용을 담은 스토리를 만들어서 장애인 분들에게 약간 경고를 할 수 있는
박인규 : 힘을 내게 해주는
강원래 : 그렇죠. 그런 스토리로 하나 만들어볼까 생각 중이에요.
박인규 : 장애인들만으로 꿍따리유랑단이 이뤄졌지만 실제 공연은 비장애인들도 도와준다고 들었습니다만
강원래 : 그렇죠. 비장애인들도 많아요. 특히 댄서들 중에 제가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신이 있어요. 지금도 가끔가다 그런 생각을 해보는데, 내가 만약 춤을 안 췄다면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그때 내가 말썽을 피우다가 춤에 빠져들어서 대한민국 최고의 춤꾼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때, 그런 생각을 안 가졌으면 뭐가 됐을까 생각할 때 옆에서 꼬마아이들이 춤을 춰요. 그 아이들은 장애인이 아니고, 내 옛날 모습이 나올 때. 그리고 조명, 음향 하는 분들, 도와주는 스태프들은 거의 비장애인들이 많죠.
박인규 : 장애인으로 이뤄진 예술단. 국내에 그 전에 있었던가요?
강원래 : 많이 있어요. 지금도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고 있는 극단 '휠'이라는, 휠체어의 휠, 바퀴라는 뜻이죠. 그 팀도 있고 많은데 그 분들도 물론 열심히 잘 하고 계세요. 그런데 저는 한 4년 전에 중국 장애인 예술공연단을 봤어요. 보고 너무 놀라서, 어떻게 이렇게 잘 하지? 너무 잘하더라고요. 양 다리가 절단된 장애인인데도 막 텀블링을 하고, 음악을 못 듣는 청각장애인들이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춰요. 진동을 느끼면서. 그리고 시각장애인들이 춤을 춘다는 거. 그 사람들은 자기 모습을 거울로 못 봐요. 옆에서 누가 도와줘서 손동작을 다 맞춘 거예요. 그걸 보고 너무 놀랐는데, 알고 보니 중국 장애인협회 회장이 등소평 큰아들이었대요.
박인규 : 등박방인가 그렇죠?
강원래 : 네. 그 분이 하반신 마비에요. 전 몰랐어요. 야, 대단하다. 어떻게 보면 중국이란 나라는 우리보다 약간은 뒤처진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저는 그 공연단 보고 너무 놀라서 나도 나중에 저런 공연단 한 번 기획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직까지는 중국에 비하면 한참 우리가 뒤처지지만 좀 더 열심히 하고 우리가 좀 더 경험을 쌓는다면 집에 그냥 술 마시면서 숨어 사는 장애인들을 끌어당겨서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장애인 공연단을 꼭 만들겠다 생각을 갖고 있어요.
박인규 : 중국 같은 경우는 등소평 큰아드님이시니까 막말로 좀 센 분 아닙니까. 국가적 지원이 센 모양인데 우리도 사실 지원해 주면 되는 거 아니에요? 이제 시작하셨으니까, 아무래도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해주는 예산만으론 좀 부족하다는 느낌도 들고 뭔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기업이라든가 이런 쪽에서
강원래 : 그런 방법이 있는데 아직까지는 꺼려하시더라고요. 지금 기업체 한두 군데에서는 협찬을 받긴 받아요. 한화하고 빵 만드는 곳, 몇 군데 하는데 아직은 많이 적죠. 차비 정도는 받는데 좀 더 많은 지원이 있다면, 우리는 차비나 출연료 받기 위해서 협찬받는 게 아니라 무대도 좀 멋지게, 조명도 멋지게, 음향도 좋은 곳에서 많은 공연을 본다면 많은 사람들이 더 큰 감동을 받거든요. 그런 쪽에서 지원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인규 : 꿍따리유랑단이 계속 연륜을 쌓아가면서 좋은 공연을 만들면 후원도 많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보겠습니다.
교수활동도 하신다고 하고 꿍따리유랑단 활동도 하시고 방송활동도 하시고, 많이 여쭤봤는데 제가 잘 몰라서 그럽니다만 클론 활동도 계속 하신다고요. 팬들이 궁금해할 것 같아서, 요즘 클론 활동은 어디까지 진척되고 있는지 소개 좀 해주시죠.
강원래 : 클론 활동은 일단 구준엽씨와 저는 한 25년지기 친구기 때문에, 우리가 돈관계를 해서 등을 돌린다든가 싸워서 해체하지 않는 이상은 계속 활동하기로 약속했고. 또 구준엽씨 역시 의리있는 친구기 때문에 계속 활동을 하는데, 음반은 아직까지 준비는 안 하고 있어요. 머릿속에는 다 갖고 있죠. 그래서 저는 솔직히 이제 장애인이 된 지 한 8년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초보 장애인이에요. 그래서 제가 장애계 쪽에서 뭘 바꿔달라 장애인 인식을 바꿔달라 그런 식의 운동을 한다기보다도, 음악, 노래로써, 저희 노래에 장애인 이동권이라든가 소외받는 장애인들을 대변하는 노래를 만들고자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클론의 6집이 나온다면 그런 음악이 담긴 노래. 또 구준엽씨의 신나는 모습 많이 보여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직까진 음반 계획은 없고
박인규 : 일단 한 내년쯤 기대해 봐야겠네요
강원래 : 내년도 이르고 좀 더... 이제 클론이란 가수, 1년마다 앨범을 내야 된다, 인기 떨어진다, 빨리 해야된다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여유있게 천천히 계속 할 거예요
박인규 : 꿍따리유랑단을 잘 해가시다 보면 거기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으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말씀하신 중에, 생각해 보니 벌써 8년이 됐어요. 사고가 난 지. 그래서 어떤 인터뷰를 보니 제일 듣기 싫은 질문이 언제 걸을 거냐, 이런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그동안 지나온 과정을 생각해 보면 어떻게 해서 장애를 극복하고 힘이 돼 준 원동력이 뭐였다고 생각하십니까?
강원래 : 그런데 극복이란 표현은 아직 제게는 한참 먼 표현이고, 극복이란 단어 자체도 어떻게 보면 장애에 대한 편견인 것 같아요. 힘든 걸 극복해야 한다는 건 아니고 계속 가지고 사는 건데, 좀 느리게 살면 되거든요. 급하게 사는 것보다, 물론 제 친구 구준엽씨, 저랑 달리기 100미터 달리기 하면 제가 좀 더 앞서 출발하든가 천천히 도착하면 되는데, 같이 가야 된다는 거... 같이 갈 필요까진 없을 것 같아요. 나는 나고 구준엽은 구준엽이고. 그런 마음을 가지면서부터 어느 정도 천천히 살아야겠다 생각했는데 처음엔 힘들었죠. 처음엔 부정도 했었고, 부정이란 단어 자체가... 설마 내가 왜, 왜 못 걸어. 좀 있으면 걸을 수 있어 . 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1년 안에는 걷는 수술법이 나올 겁니다. 그런데 이게 현실로 다가오면서 분노, 화도 나고 짜증도 나고 지나가는 사람 쳐다보면 뭐 쳐다보냐고. 그 사람은 강원래기 때문에 쳐다봤는데 나는 뭘 불쌍하게 쳐다보냐고 화도 나고
박인규 : 일종의 자격지심 같은 게
강원래 : 분노, 부정, 좌절, 힘들어서... 심지어는 내가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자는 생각도 가져봤고. 그런데 나중엔 지치더라고요.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떻게 세상을 살 수 있을까. 그러다 보니 대한민국에 사는 장애인들을 많이 만나게 됐고 그 분들을 만나면서 내가 느낀 건 나는 볼 수 있다는 거예요. 들을 수 있고 말할 수도 있다는 것. 너무 많은 능력이 있는데도 걷지 못한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세상을 포기했던 내가 너무 그 사람들에게 죄송스럽고. 그래서 긍정적인 마음 가지고 웃어보자. 하지만 요즘도 좀 짜증날 땐 있고요. 지나가다가 아직도 못 걸어요? 왜 못 걸어요? 그렇게 질문하면 대답할 게 없어요. 그런 얘기도 너무 많이 들으니까 약간 그런 게 있는데, 힘내세요라는 말. 저는 굉장히 힘내고, 보통 일반인보다 제가 더 힘이 많거든요. 그런데 저보다 좀 부족한 분들이 오셔서 강원래씨 힘드시죠? 힘내세요 하면 약간 의아하긴 해요
박인규 : 30년을 비장애인으로 살다가 8년을 장애인으로 살았는데 물론 느리게 살면 되지만, 주변에서 조금만 더 도와주면 장애인들이 느리게 편하게 살 수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태도랄까, 이건 고쳐줬으면 좋겠다 그런 게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강원래 : 일단 인식이죠. 아무 것도 못할 거란 생각, 그리고 무조건 불쌍하다는 것. 물론 장애인으로서 힘든 점도 많고 소외받고 따돌림받기 때문에 일자리가 없고 그런 건 되게 많지만, 같이 일하다 보면 팀웍이 더 생겨요. 왜냐면 강원래가 먼저 왔는데 사지 멀쩡한 내가 왜 이렇게 늦게 왔을까 그런 생각도 가져볼 수 있는 거고, 강원래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난 왜 이렇게 느리게 할까 더 열심히 할 수 있는데, 그런 팀웍도 잘 만들어질 수 있고. 어렸을 때 놀리잖아요. 예전에 그런 게 있죠. 한 발이 불편해서 절룩절룩 걸어가면 부모님이 그렇게 가르쳐요. 너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죠. 그런 인식을 좀 바꿔준다면 함께 더불어 살고, 우리 아들, 우리 엄마, 내 애인이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될 수 있는 건 맞는 사실이거든요. 나는 여자가 될 수는 없지만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도 있듯이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시선을 긍정적으로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뭔가 하나 불편하면 나보다 머리가 더 나쁠 거야, 더 못 살 거야라는 생각을 좀 바꿔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청취자 여러분보다 제가 더 행복할 수도 있다는 것. 제가 너무 건방지게 얘기했는지 모르겠지만 저 정말 행복하거든요. 하지만 장애 때문에 불행할 거라는 생각, 그건 아니라는 것.
박인규 : 제가 마무리말씀 부탁드리려고 했는데 다 말씀을 하셔서
강원래 : 마무리 얘기 한 마디 더 있어요. 여러분, 마음이 울적하고 답답하실 때 화내고 짜증내지 마시고 꿍따리샤바라 부르시면서 웃으시기 바랍니다.
박인규 : 꿍따리유랑단 잘 되시기 바라고요, 앞으로 장애인이라든가 우리 사회를 위해서 좋고 아름다운 노래 많이 만들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강원래 : 열심히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꿍따리유랑단'을 결성한 가수 강원래씨를 초대해..
'꿍따리유랑단'이 전국에서 펼치는 감동의 무대에 대해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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