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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국이 보이니까 좋네" <상>

[김운회의 '새로 쓰는 한일고대사'] <5> 다시 보는 일선동조론 ②

(2) "여기서 한국이 보이니까 좋네"

이제 일선동조론에 대해 다시 한번 가볍게 살펴보고 부여사의 기나긴 여정을 출발합시다. 여기서 살펴 볼 것들은 지나치게 황당한 것들을 제외한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예를 들면 아베 타추노스케(阿部辰之助)와 같이 스사노오가 단군이라든가 조선의 시조라든가 하는 내용들을 말합니다.(19) 이 같은 내용들은 이미 쯔다 소기치(津田左右吉)나 이마니시 류(今西龍) 교수 등에 의해 비판된 것입니다. 특히 이마시니 교수는 일선동조론을 반대하고 오히려 조선정체론(朝鮮停滯論)을 주장하였습니다.

먼저 언어에 대해 한번 분석해 봅시다. 일선동조론 초기에 있어서 대표적인 언어관련 연구자는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와 가니자와 쇼사부로(金澤庄三郞 : 1872~ 1967)였습니다. 특히 가니자와는 조선의 언어는 일본의 하나의 분파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현대 일본의 연구는 오히려 반대입니다. 최근에는 한국어와 일본어는 같은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구체적인 연구가 나왔습니다. 대부분의 일본어는 한국어를 어근으로 한다는 것이지요. 지금까지 발견된 것만도 5천여 개가 넘는다는 것입니다. 그 주인공은 비교언어학의 권위자인 일본의 시미즈 기요시(淸水紀佳) 교수와 한국의 박명미 교수입니다.

시미즈 기요시 교수는 주로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언어들을 비교하였습니다. 시미즈 교수팀은 5천 여 개의 유사한 단어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시미즈 기요시 교수는 한국과 일본의 고유어는 동일하다는 생각에서 연구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일본어의 뿌리는 고대 한국어라고 주장합니다. 시미즈 교수는 만주에서 한반도 일본열도에 이르는 언어지도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는 이것을 한어의 영역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대륙한어는 시베리아에서 출발하여 반도한어 - 열도 한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일본어만큼 한국어와 닮은 언어는 없습니다. 다만 그 어휘는 일본어는 만주 - 시베리아 지역의 언어가 더욱 생생히 살아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20)
▲ 한어의 영역지도

이상을 보면, 시미즈 교수도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태어났다면 아마 무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한국어가 일본어가 된 것도 아니죠. 대륙의 한어가 남하하여 한국어도 되고, 일본어도 된 것입니다. 이 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한국인들은 한국에서 일본을 만들었다고 하고 일본은 이에 대해 펄쩍 뛰며 반박합니다. 제가 보기엔 모두 틀렸습니다. 반도 중심의 시각이나 열도 중심의 시각 모두 틀렸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한국인의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다음으로 '일선동조론'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는 것은 일본이 태고적부터 신라 즉 한국을 지배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입니다.

『일본서기』에는 일본의 시조신 가운데 하나인 스사노오(素戔嗚尊)가 신라 땅을 다스렸고 진구황후(신공황후 : 神功皇后)는 신라와 고구려를 정벌하여 열도 - 한반도에 이르는 대통일제국을 건설하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일합방은 침략이 아니라 지금까지 내려온 숙원사업을 해결한 것일 뿐이라는 논리입니다. 왜냐하면 불합리하게 형제가 떨어져 살고 있고 또 가난한 형제를 일본에 편입하는 것은 오히려 조선인들의 고뇌를 해결한다는 논리입니다.

물론 형제가 함께하면서 복잡한 세계사의 격전장에서 이겨나간다는 것은 좋은 일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동족(同族)이라는 근거가 단순히 신화에 지나지 않고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많은 문제를 야기시킵니다. 일선동조론은 침략전쟁과 각종 해악들은 일단 제외하더라도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형제애가 정치적 의도로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진정으로 형제애를 가졌다면 차별없이 대하고 그 형제가 불편하지 않도록 해야하는데 현실은 딴판이었던 것이죠. 또 다른 하나는 일본 = 종가, 조선 = 분가라는 논리는 사실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방향이 분명히 틀렸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사람들이 이주해온 것이라는 일선동조론의 논리는 전혀 앞뒤가 맞지 않죠. 결국 3·1 만세운동이 터졌고 일선동조론자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삼일운동(1919) 당시 최린(崔麟)은 심문조서(訊問調書)에는 "일본의 정치는 선정(善政)을 표방하며 입으로는 동화주의(同化主義)를 제창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그것과 다르고" 결국은 일본을 높이고 조선을 천대하는 주의라고 토로합니다.(21)

이 장에서는 일선동조론의 핵심인물인 스사노오와 진구황후 가운데서 스사노오만을 분석하여 그 사실성을 밝힐 것입니다. 진구황후는 근초고왕편에서 상세히 분석할 것입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선동조론은 본격적으로 대두하였는데, 구메 쿠니다께(久米邦武)와 호시노 히사시(星野恒) 등의 제국대학 교수들에 의해 시작됩니다. 구메는 『일본서기』, 『고사기』, 『신찬성씨록』등의 기록에서 일본국가의 일체성을, 호시노는 인종과 언어적인 특성을 주로 분석하였습니다. 이들이 주로 강조한 것은 스사노오(素盞鳴尊)가 가리쿠니 즉 한국(韓國)을 통치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한번 보고 넘어갑시다.

『일본서기』에는 신들의 탄생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혼돈 속에서 하늘과 땅이 생기고 그 가운데 갈대싹[葦牙]같은 것이 신(神)이 되고 이 신으로부터 세 신이 생긴 후 다시 여덟 신이 생겼는데 그 마지막이 이자나기(伊奘諾尊 :イザナキ)·이자나미(伊奘冉尊 : イザナミ)였고 이들은 결혼합니다.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는 다까마노하라[고천원(高天原)]에 살면서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천조대신(天照大神 : 아마테라스로 약칭)]와 스사노오노 미코토(素戔嗚尊 : 스사노오로 약칭)를 낳았습니다.(22)

태양신인 아마테라스와 그의 동생인 스사노오도 다까마노하라[고천원(高天原)]에서 살았는데, 스사노오의 행실이 좋지 못해서 여러 신들이 그를 벌하여 쫓아내니, 스사노오는 아들들인 50여 명의 날래고 용감한 신[猛神]들을 데리고 신라국(新羅國)으로 가서 소시모리(曾尸茂梨)에 있다가 진흙으로 만든 배를 타고 이즈모노쿠니(出雲國)의 파천(簸川)상류에 있는 조상봉(鳥上峯)으로 가서 사람을 잡아먹는 뱀을 죽였다라고 합니다.(23) 즉 일본 최고의 신인 아마테라스(天照大御神)는 말썽만 피는 동생 스사노오(建速須佐之男命)를 쫓아내니 스사노오는 신라 땅으로 가서 그 나라를 다스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신라국을 다스리던 스사노오는 다시 일본이 그리워 이즈모노쿠니(出雲國 : 현재의 시마네 현)로 돌아가서 나라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이상의 내용이 열도쥬신(일본인)의 마음 깊이 새겨져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일본서기』의 내용만 봐도 스사노오가 "신라국에 내려서 소시모리라는 곳에 있었다."라고만 되어있지 배를 타고 신라에 갔거나 신라국을 통치했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일본서기』에는 오히려 여러 신들에게 내몰려 갈 곳이 없는 스사노오를 신라국에서 받아준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스사노오는 신라국에 대하여 "이 땅도 내가 살고 싶지 않다(此地吾不欲居)."라고 합니다. 즉 신라 땅에서도 상당히 괄시를 받았다는 의미로 추정됩니다.

일단 먼저 아마테라스와 스사노오의 고향인 다까마노하라[고천원(高天原)]에 관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봅시다.

일본에서는 그들의 조상신이 다까마노하라[고천원(高天原)]에서 다카치호노미네[고천수봉(高千穗峰)]로 내려왔다고 믿고 있습니다. 즉 스사노오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 뒤, 아마테라스의 후예들이 하늘에서 다카치호노미네로 내려오는 이른바 천손강림(天孫降臨)이 시작되는 것이죠. 일본인들은 다카치호노미네의 위치를 미야자키 현(宮崎縣)과 가고시마현(鹿兒島)의 경계 지역인 기리시마야마(霧島山)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규슈 최남단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24)
▲ 다카치호노미네의 위치

물론 다까마노하라는 하늘의 나라이겠죠? 그러나 만약 하늘이 아니면 어떻게 될까요? 민족이 이동할 때 그 이전에 머물렀던 곳을 하늘이라고 표현을 했다고 하면 규슈(九州) 남단 이전의 나라라는 것은 어디가 될까요? 야마토 지역은 앞으로 진출할 방향이므로, 이 곳은 한반도의 남단 밖에는 없죠. 왜냐하면 다카치호노미네에 가장 가까이 근접한 나라는 한반도 남부지역 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다까마노하라는 한반도 남부의 어느 곳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일본서기』의 「신대(神代)」편에서는 "하늘로 오르다", "내리다"하는 말들이 자주 나타납니다. 이 부분을 주변의 글의 내용과 관련해서 분석해 보면, "하늘로 오르다"라는 표현은 아마테라스의 나라 즉 신국(神國)들 사이의 맹주국으로 가는 표현으로 보이고 "내려가다"라는 말은 그 주변지역으로 가는 경우를 표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스사노오가 "내려간 곳"에도 역시 신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엔 우리도 요즘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간다"라는 말을 하고 서울 사람들은 "시골에 내려간다"라는 말을 쓰듯이 사용한 표현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니까 현재 한국의 언어습관과도 매우 유사한 것이죠.

참고로 『고사기(古事記)』에는 아마테라스의 후손인 니니기가 내려오면서, "이 땅은 가라쿠니[한국(韓國)]을 향하고 가사사노미마에(笠沙之御前)로 바로 통하는 곳이어서 참으로 좋은 땅"이라고 탄성을 지릅니다.(25) 그러니까 어떤 지역에 내려오더니 "한국이 보이니까 좋네."라고 신이 나서 이야기합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한반도와 면해있는 곳들의 지명들이 대체로 천(天)이라는 글자가 붙어있다는 것입니다. 대마도(對馬島)나 이끼섬(一岐島)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런데 일본의 시각은 상당히 다릅니다. 일단 스사노오가 다까마노하라(고천원)에서 아마테라스와 심한 갈등을 겪은 후 신라로 가서 신라를 다스리다가 못내 일본이 그리워 최종적으로 돌아온 곳은 이즈모쿠니(出雲國)입니다. 여기서 다까마노하라는 학자들마다 견해도 다르고 복잡하지만 대체로 간사이(關西) 지방에서 규슈지역에 이르는 지역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이즈모쿠니는 현재의 시마네현(島根縣)일 수도 있고 일본의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기리시마야마(霧島山 : 규슈 남단)일수도 있습니다.

만약 이즈모쿠니가 현재의 규슈 남단인 기리시마야마(霧島山)라면 스사노오의 행적은 이해가 불가능하죠? 왜냐하면 신들이 하늘에서 규슈나 간사이 지역에 내려와 다시 한참을 올라가 바다를 건너서 여러 수십개의 소국을 그쳐서 신라로 가서 신라를 다스려야 합니다. 그 가운데 수십개의 소국들을 거쳤을 터인데 왜 하필 신라입니까? 왜 신라를 다스려야 합니까? 그리고 또 다시 규슈나 간사이로 돌아옵니까?
▲ 시마네현의 위치(일본 시마네현 홈페이지 소개자료)

『일본서기』에는 스사노오가 배를 타고 신라국으로 갔다는 말은 보이지 않군요. 그러니까 다까마노하라는 신라에 가까운 지역에 있었다는 말이지요. 만약 다까마노하라가 일본의 간사이 또는 규슈라면 신라는 일본 땅에 있게 되네요. 『일본서기』에서는 스사노오가 다까마노하라[고천원(高天原)]로부터 신라지역에 "내려 온" 것으로 서술되어있습니다. 그러다가 "진흙으로 배를 만들어 타고"일본의 시마네 현으로 간 것이죠.

어떤 경우라도 다까마노하라[고천원(高天原)]라는 정체불명의 A지역에서 출발하여 도착하는 B지역은 분명합니다. 도착지가 혼슈의 시마네가 되었든 규슈남단의 미야자키가 되었든 그 곳은 분명히 현재의 일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에서 왔다고 하는 이들의 출발지는 어디겠습니까? 만주나 중국 또는 한반도이겠지요? 그러나 이들은 90% 이상이 일단은 한반도를 거쳐서 일본으로 가야할 것이 분명합니다. 더 넓은 남지나해나 태평양을 건널 수는 없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다까마노하라는 일본 이외의 지역으로 한반도나 만주의 어느 곳쯤 되겠지요. 그러면 이제 다까마노하라의 기원을 추적할 필요가 있군요.

일본에서는 다까마노하라(高天原 : たかまのはら)는 가공으로 만들어낸 곳으로 보는 경우도 있고 나라현의 삼륜산(三輪山), 금강산고천대(金剛山高天台) 등의 야마토지역(大和), 미야자키나 가고시마등의 규슈(九州) 지역, 호쿠리쿠(北陸), 후지산(富士山) 등으로 비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26) 주로 규슈 지역이나 혼슈의 간사이 지역의 산악지대로 비정하고 있죠. 군국주의 시대의 일본에서는 다까마노하라를 하늘[天上]로 생각했지요. 당시에는 하늘이 아니라 지상에 있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불경(不敬)스러운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다까마노하라를 일본 지역으로 비정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스사노오가 다까마노하라로부터 신라로 갔는데 배를 타고간 흔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신라로부터 이즈모로 갈 때는 "배를 타고" 갑니다. 뿐만 아니라 다까마노하라가 일본이라면 신들은 일본의 자생신(自生神)이므로 천신(天神)이 될 수가 없지요.

뿐만 아니라 『일본서기』에는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다까마노하라에 앉아서 "아래에 어찌 나라가 없겠는가?", "우리의 나라를 얻자", "마땅한 나라가 있을까?"라고 말하고 하늘의 창으로 큰 바다를 이리저리 그어 나라를 만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일본서기』「신대(神代)」4 에서는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다까마노하라에서 일본을 찾거나 만드는 장면들이 모아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까마노하라가 일본에 위치한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죠. 일본에 앉아서 일본을 만듭니까? 이들은 하늘의 창으로 아무것도 없는 바다를 휘저어 일본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해로(海路)를 개척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면 이제 다까마노하라는 한반도 남부의 어느 고원지대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서기』를 보면, 다까마노하라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말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토대로 보면, 다까마노하라는 현재의 거창 ― 고령 ― 합천 등에 위치한 지역으로 추정됩니다. 저는 이 곳을 경상남도 거창(居昌)의 가조면(加祚面, 加召面)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천원(高天原)이라는 이 특이한 지명이 아직도 이 지역(거창)에서 쓰이고 있고, 가조의 옛 이름이 벌인데 이 말은 일본의 건국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가시하라(橿原) 또는 가시벌과 같은 의미라는 점 등과 이후 나타나는 소시머리 등을 보면 이 점 확연해 집니다. 저는 『대쥬신을 찾아서』를 통해서 이 부분을 상세히 고증하였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 거창과 가조면 위치(거창군 관광안내도 재구성)

필자 주

(19) 阿部辰之助『新撰日鮮太古史』(大陸調査會 : 1928)

(20) 시미즈 기요시·박명미 『아나타(あなた)는 한국인』(정신세계사 : 2004)

(21)「崔麟訊問調書」『韓國民族獨立運動史 資料集 11』(국사편찬위 : 1990) 19~20쪽.

(22) 『日本書紀』神代 上

(23)『日本書紀』神代 上

(24) 關裕二『古代史(일본의 뿌리는 한국)』(관정교육재단 : 2008) 118쪽.


(25) 『古事記』神代 卷 下 (岩波書店) 238쪽.

(26) 鎌田東二「高天原とは何か-聖なる他界の形成」『よみがえる神道の謎』(歴史読本臨時増刊, 新人物往来社 :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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