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국가들은 지구적 재앙인 기후 변화 문제에 대해 경제 성장을 이유로 이처럼 미적지근한 모습을 보이며 목표를 흐리는 행위를 일삼고 있다. 기후 변화 문제에 있어 선진적이라 할 수 있는 유럽도 실상을 뜯어보면 마찬가지이다.
다음은 반세계화 운동가로 유명한 남반부 포커스(Focus on the Golbal South)의 월든 벨로 필리핀대 사회학과 교수가 이와 관련해 지난 15일 미국 외교정책 비판 사이트인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Foreign Policy in Focus)에 올린 기고문이다.
월든 벨로 교수는 이 글에서 G8 정상회의의 기후 변화 성명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미국·일본의 행보를 따라가고 있는 유럽 국가들의 위선적인 행태를 고발하고 있다. 벨로 교수는 또 기후 변화 문제를 기술 혁신으로 해결하겠다는 시각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하고 있다. <편집자>
반(反) 기후 정상 회의(The Anti-Climate Summit)
작년 12월 유엔 기후변화회의 기간 동안 소위 발리로드맵의 초안이 작성되었는데, 각국 대표들은 고통스러운 선택에 직면했다. 이들은 특히 온실가스 방출량을 2020년까지 25~40% 감축할 필요성을 언급하고 협상에서 미국이 퇴장해버릴 가능성에 직면할 수도 있었다.
아니면 미국을 협상의 테두리 내에 두려고 (원래) 목표에 대한 언급을 빼면서, 그 결과 2009년 12월 코펜하겐에서 개최될 유엔 기후회의의 의제가 돼야 할 방출량 의무 감축이라는 강력한 체제가 등장하는 과정을 미국이 치명적으로 방해하는 위험에 맞닥뜨릴 수도 있었다.
대표들은 후자를 택했고 어떤 목표도 언급하지 않는 대가로 미국을 달랬다. 며칠 전 일본 홋카이도에서 개최된 G8 정상회의에서 나온 기후선언을 보니 발리의 대표들이 선택한 것은 전략적인 실수였음이 분명해졌다. 2050년까지 방출량의 50% 감축하자는 G8의 서명은 자신들은 큰 진전이라고 내세우나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가 얘기한 바대로 실제로는 "기후변화의 도전에 대응하는데 필요한 유의미한 기여와는 반대되는 행동"이었다.
사실 "퇴보"(regression)라는 말도 너무 완곡한 표현이다. G8의 입장은 커다란 뒷걸음질(giant step backward)이었다. 이들은 교토의정서상 2단계에 해당하는 의무이행기 동안 생겨날 효과적인 지구 기후 전략 전망을 또한 효과적으로 손상시켰다. 교토의정서 2단계는 2009년 12월 코펜하겐에서 열릴 중대한 유엔 회의에서 완성될 예정이다.
G8 기후선언 해부
G8의 기후선언(코뮈니케)이 낳은 커다란 혼란 때문에라도 그들의 입장을 상세히 해부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발리에서 채택될 수도 있었던, 2020년까지 1990년 기준 25~40%의 온실가스를 감축한다는 목표에 대한 공감대는 점점 커지고 있다.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의 평균 온도가 21세기에 섭씨 2도라는 중대한 문턱을 넘지 않게 하려면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방출량을 80~90%까지 과감하게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25~40% 감축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길목에 있는 중간 목표다. G8의 '다짐'은 바로 이 최종 목표의 절반에 불과한 것으로 대단히 부적절한 것이었다.
다른 몇 가지 고려사항들은 미국이 부추기는 공식(formula)의 위험성을 부각시킨다. G8은 전지구적인 감축을 제안하는데 이는 산업국가나 선진국(Annex1, 교토의정서 부속서1에 규정된 선진 38개국)의 국가들이 떠맡는 방식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미국과 같은 거대 오염원 국가들은 전세계 나머지 국가에 무임승차할 수 있는 셈이다.
둘째, 감축의 명백한 기준이 없다.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는 당초 감축 기준은 1990년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그 말을 철회해야 했고, 이어서 2000년이라는 더 높은 기준을 언급했다.
셋째, 이 선언은 구속력이 없다. 그리고 G8 국가들은 유엔기후협상의 틀 안에서 서명국으로서의 의무를 지키겠다고 맹세하는 무엇을 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G8의 성명은 유엔의 프로세스와 경쟁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뒤집으려는 의도를 강화했다. G8의 선언이 '기후변화 주요국 회의'(Major Economies Meeting)로 알려진 과정의 일부로 부상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주요국 회의는 기후에 관한 유엔의 의사결정 틀과 과정을 왜곡하기 위해 미국 주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반(反) 기후 연합전선
G8의 기후선언을 보면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경제 강국들도 기후변화를 막는 효과적인 조치에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다. 그리고 부유한 나라의 정부가 이산화탄소 수준을 의무적으로 과감하게 스스로 줄이지 않으면 중국, 인도 및 다른 개발도상국으로 하여금 향후 의무적인 체제에 동참하도록 호소하는 것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미국의 태도가 너무나 퇴행적이라는 사실은, 다른 선진국들의 정책이 약간 더 긍정적으로 보이게 한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효과적인 기후 조치를 실행에 옮기는데 미국이 가시적으로 가장 큰 장애물이긴 했지만, 다른 산업국들이 쟁애물이 됐던 것이 문제가 아니었던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일본과 캐나다는 의무적인 감축 체제를 지지한다는 과거의 입장에서 후퇴해 미국이 협상에서 완전히 고립되지 않도록 구해줬다.
유럽연합(EU)은 감축 의무 체제를 계속 지지하고는 있지만,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기후 변화를 막는데 필요한 '2050년까지 80~90% 감축'을 기꺼이 지지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탄소 방출량 감축에 대한 접근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EU는 미국과 같이 탄소 거래에 있어서 친기업적인 시장 위주의 접근 방식을 중시하는 쪽으로 조금씩 바꾸고 있다.
남반구 국가들에 기술을 지원할 때도 EU는 지금까지 기꺼이 약속했던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을, 그것도 유엔의 제도적인 절차를 통해서가 아니라, 세계은행 기후투자펀드와 같이 세계은행이 설립한 기관을 통해서 시행하고 있다. 그 역시 미국과 같다. 이유는 간단하다. 북반구 국가들이 세계은행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유럽국가들도 미국이나 일본과 같이 에너지 사용과 경제성장을 "분리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계속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현재 유럽의 소비수준을 유지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은 에너지를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석유를 다른 에너지원으로 대체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EU는 유럽인들을 만병통치약으로 달래는 편을 더 좋아하는 셈이다.
예컨대 벨기에 브뤼셀의 바이오연료는 최고 수준이다. 물론 전세계 농업 생산에 미친 명백히 부정적인 충격이 분명해지면서 바이오연료에 대한 그들의 열정에도 찬물이 끼얹어졌지만 말이다. 벨기에는 또한 대규모 댐, 탄소 분리 저장, 저장 기술과 같이 하드 에너지(석탄·석유·원자력)를 대체할 에너지 개발에 점점 더 힘을 쏟고, 핵 에너지에 대한 논의도 다시금 열어두었다.
고통 없는 전환이 가능하다?
기술을 통해 기후 문제를 교정할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입장은 북반구 국가들의 정치·경제 엘리트들에 한정되지 않고, 핵심적인 지식인들(intellectual) 사이에서도 공유되는 것이다. 이는 덴마크의 회의적 환경론자인 비외른 롬보르(Bjorn Lomborg) 같은 이들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와 같이 영향력 있는 여론조성가에 대한 얘기이다.
삭스는 동유럽의 경제충격 치료법에 대한 저술가에서 빈곤퇴치와 자구온난화와 싸우는 진보 인사로 탈바꿈했다. 삭스는 최신 저서인 <공동체>(Common Wealth)에서 기술을 통해 깨끗한 녹색지구로 전환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고통 없이, 즉 북반구의 생활방식과 남반구의 고성장 개발 패러다임에 커다란 변화 없이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일부 환경론자들이 외치듯 부자 나라의 수입과 소비를 줄이는 데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세계 기술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삭스가 말하는 핵심기술은 방출탄소저장과 탄소분리저장이다. 그는 "이 기술 덕분에 세계는 기후를 위협하지 않는 방식으로 석탄과 같은 저비용 화석연료를 계속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삭스의 태도는 유치한 기술 맹신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데, "공기 포착 기술을 사용하면 그 어떤 시기에 방출된 것보다 많은 이산화탄소를 포착·분리해서 이전의 이산화탄소 상승을 되돌릴 수 있다. 바꿔 말해서 발전소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새로운 방출을 막는 일이 될 것이다. 공기 포착 기술을 사용하면 우리가 이 시점까지 했던 것을 되돌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이 기술이 상용화까지는 적어도 20년이 걸리고 삭스의 공상과학 시나리오에는 들어가지 않는 위험성은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와 기후 위기
유명한 환경론자은 허먼 데일리는 이러한 태도를 일컬어 '환경을 위한 행동은 경제를 침해할 때 멈춰버린다'는 의미로 '성장 마니아'라고 부른다. 그러나 성장 마니아들은 심리 치료만으로 고쳐지지 않는다. 그것은 전세계 자본주의를 보호하는 방패로 복무하는 후천적 이데올로기이다. 자본주의는 생산 팽창 방식이므로 끊임없이 살아있는 자연을 죽은 상품으로 전환시켜야 재생산이 가능하다. 이것이 성장의 본질이다. 이것이 항구적인 소비 증가가 자본주의를 가동하는 수익 엔진에 중대한 이유이다.
전세계 자본주의의 이사회인 G8은 부단한 노력은 성장, 소비, 이윤, 시장에 대한 급격한 통제를 피하기 위한 행동이다. 이 때문에 기후 재앙의 그림자가 출현하는 것을 막는 생존 가능한 전략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발적인 감축, 기술을 통한 교정, 탄소 거래는 불가피한 일을 방지하려는 절박한 시도들이다. 2차 대전 동안 미국 경제가 그랬듯 엄격히 규제된 시장과 이윤, 엄격하게 통제된 소비, 공정하게 공유된 희생을 수반하는 계획 경제를 취해야만 기후 변화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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