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주주총회가 열린 서울 남대문 YTN 본사 5층에서는 김재윤 사장이 용역 경비업체 직원 30명 가량의 호위 속에 주주총회를 진행하려고 시도하면서 노조원과 용역업체 직원 간 한바탕 몸싸움이 벌어졌다. 노조원은 "용역 빼라", "하수인 물러가라" 등을 외치며 몸싸움을 벌였고 용역업체 직원은 막말을 서슴지 않으며 노조원과 몸싸움을 벌였다.
이 와중에 용역업체 현장책임자는 "다 배운 사람들이 왜 이러냐. 저희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있다"며 "우리는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이곳에 왔다"고 말해 노조원들의 비웃음을 샀다. 노조원은 "용역들이 와 있을 자리가 아니다", "오늘 일당 드릴 테니 돌아가라"고 강하게 항의하며 이들을 끌어냈다.
회의장의 아수라장이 계속되자 용역업체 현장 책임자와 박경석 YTN 노조위원장은 현장에서 즉석 타협을 봐 용역들은 회의장 옆 사무실로 들어가기로 하고 노조원은 자리에 앉기로 했다. YTN 노조원들은 우리사주 조합제에 따라 각기 주주권한을 가지고 있다.
용역업체 직원들과 노조원들의 몸싸움의 한가운데 있었던 김재윤 대표이사 사장은 장내가 정리되자 고개를 숙인 채 자리에 앉아있다 사무실로 들어갔다.
곧 이어 10시 35분께 박경석 노조위원장이 회의장에 들어와 "사측이 이 주총을 더이상 진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 우리가 이 자리에서 달성하고자 했던 목표가 달성됐다"며 "의장이 곧 개회선언을 하고 어떤 안건도 처리하지 않겠다는 발표를 하면 농성을 마무리짓도록 하자"고 알렸다.
이어 김재윤 사장이 "주주 여러분 죄송한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며 "오늘 하고자 했던 안건 심의가 불가피하게 연기하게 됐다. 다음 일정은 의장에게 일임하도록 하자"고 제안했고 주주들은 동의했다.
회사 간부들이 대주주 권한 대리?…"선배들이 이럴 수 있느냐"
한편, 이날 주주총회장에는 편집국 부장 등 YTN 회사 간부들이 대주주 권한을 위임받아 앉아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졌다. 실제로 이날 주주총회에는 대부분 회사 간부들만이 자리를 지켰음에도 의결권이 있는 주주총수의 77.69% 주주가 출석해서 적법하게 성립돼 이러한 의혹을 뒷받침했다.
현덕수 전 YTN 노조위원장은 이들을 향해 "구본홍 내정자를 사장으로 받아들이려는 대주주의 행동이 정당한가. 그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우리의 목소리가 더 정당한가"라고 물으며 "왜 눈을 감고 있느냐. 선배들이 이제까지 가르쳐준 기준과 원칙이 다 꺾였단 말인가"라고 규탄했다.
노종면 조합원도 사측의 주주총회 포기 방침이 전해지자 "선배 중 일부가 대주주의 권리 행사를 위해 제3자 위임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주총이 끝나기 전에 그가 누구인지 밝히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야누스의 가면을 쓴 1%가 이런 일을 계획하고 이끌어낼 수 있느냐"며 "오늘 일로 회사 전체가 구본홍 사장을 반대한다는 뜻을 알았을 것이라고 본다. 대주주들에게 '당신들이 포기하지 않으면 이런 일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의사를 전달해 달라"고 했다.
이를 듣는 회사 간부들은 바닥을 내려다 보거나 일부는 눈을 감는 등 심란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노조원의 규탄에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노조원들은 "이 자리에서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며 "밝혀라"를 연거푸 외쳤으나 박경석 위원장은 "추후에 밝히도록 하겠다. 집행부를 믿어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노조원들은 동의해 상황이 일단락됐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 첫단추를 막아냈다"
YTN 노조원들은 주주총회를 막아내 구본홍 내정자 사장 선임을 일단 저지한 데 사뭇 고조된 분위기이면서도 사측이 차후에 어떤 시도를 할지 모른다며 경계를 풀지 않았다. 노조원들은 주주총회가 끝나자 YTN 본사 1층에서 정리 집회를 가졌다.
박경석 위원장은 "오전 7시 경 용역 경비업체 직원 100여명이 들어와 회의장과 엘리베이터 등을 점거하면서 잠시 우려가 들기도 했으나 노조원들의 단결과 낙하산 사장은 안된다는 일념으로 막아냈다"며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 기도의 첫단추를 막아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박 위원장은 "그간 우리는 구본홍 사장 선임은 안된다고 꾸준히 민주적으로 이야기해왔으나 사측은 듣지 않았고 결국 우리는 마지막으로 단결된 힘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며 "만약 이 주총에서 구본홍 사장 선임이 통과됐다면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의 첫단추가 꿰어지고 언론계, 방송계 전체의 지속적인 장악으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사측은 분명 다음 주주총회를 시도할 것"이라며 "노조는 앞으로 사측이 주주총회 방침에 따라 대응 방안을 논의해보고 어떤 방법이 효율적인지 어떤 식으로 움직일지는 전체 조합원의 의견을 수렴해 단계별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한편, 이날 오전 8시 께 용역 직원과 몸싸움을 벌이던 중 이상은 조합원이 쓰러져 뇌진탕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의 정황은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용역업체 직원의 폭행에 의한 것일 경우 형사고발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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