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10년간 금강산에서 발생한 22건의 사망 사고(북한 사람 사망 포함)는 병사(17건)이거나 단순 사고사(5건)였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북한군 초병이 남측 관광객을 총으로 쏘아 사망하게 한 것으로 북한 지역 관광에 잠재된 위험성을 비극적으로 보여줬다.
이에 따라 금강산·개성 관광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아울러 그렇잖아도 냉랭한 남북관계에 심각한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 피격 경위 설명은 '일방적'
북측이 현대아산에 통보해 온 바에 따르면, 사망한 박왕자 씨가 장전항 북측구역 내 기생바위와 해수욕장 중간 지점에서 총격을 받은 때는 새벽 4시 30분에서 5시 사이.
북측 초병은 관광객 통제구역을 지나 군경계지역에 진입한 박 씨를 발견하고 정지 명령을 내렸고, 이에 놀란 박 씨가 도주하자 경고사격을 한 뒤, 그래도 멈추지 않자 조준사격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는 북측의 일방적인 주장에 따른 추정일 뿐이다.
박 씨가 발견된 북측 군사보호구역으로 들어가려면 2m 높이의 철제 울타리가 쳐진 관광통제선을 넘어야 한다는 점, 경고를 들은 박 씨가 1km를 도주했다는 점, 북측의 통보가 사건 발생 4시간 후에나 이뤄졌다는 점 등 북한의 설명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적지 않다.
또한 이날 일출 시간이 5시 21분이었던 사실로 미뤄볼 때 조준사격 당시 박 씨를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북측의 대응이 과도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박 씨가 비무장의 중년 여성이었고, 북한군도 그가 관광객일 것이라고 충분히 추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만의 하나 스파이 목적으로 갔다 하더라도 출입국사무소에서 철저한 검색을 받았기 때문에 무장상태일 리 없다는 걸 북한 병사도 안다"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수칙을 따른 것은 과잉대응"이라고 말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수칙이 있었더라도 그걸 실제 적용하는 건 서해상 충돌 같은 데서나 있는 일"이라며 "일단 잡아서 현대아산에 연락하고, 심문하고, 문제될 게 있으면 따지고, 정부가 개입해 협상을 하게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 진상 규명 불가능할 수도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우선 사건의 진상을 명확히 규명하고, 설령 북측의 설명에 신빙성이 있더라도 과잉대응이 아니었는지를 철저히 따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문제는 사건의 진상을 독립적인 입장에서 규명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피해자는 이미 사망했고, 사건 전모를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폐쇄회로 TV가 현장에 있었던 것도 아닐뿐더러, 현재까지는 목격자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현재 남북 정부 당국간의 대화 채널이 꽉 막혀 있고, 북측이 이명박 정부에 대해 극도의 불만을 표명하고 있는 상황에서 진상 규명에 충분히 협조할 것인지도 미지수다.
이와 관련해 한 전직 고위 당국자는 "식별 가능한 낮 시간에 그랬다면 북한이 옹색해질 수 있지만 야음에 첩자가 침투해서 그랬다고 우기면 남쪽에서도 대응하기 어렵다"며 "남북이 서로 버티면 사태가 오래 갈 수 있다"고 말했다.
■ "북한 유감표명 있어야"
그러나 경위야 어찌됐건 민간인을 살상했다는 점에서 북측의 최소한의 유감 표명이 있어야 이번 사건이 원만히 마무리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백학순 연구위원은 "화해협력의 상징인 금강산에서 민간인이 사망했다는 건 북한의 사과가 필요한 일"이라며 "정부가 관광을 잠정 중단한 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정부 산하기관의 한 전문가도 "사람이 죽었으니 북은 유감을 표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이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남북이 철저한 방지시스템을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현대아산도 관광객들에게 관광 주의사항을 보다 강력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대통령 사태 대응 안일"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사건 소식을 듣고도 국회 시정연설에서 '전면적 남북대화 재개'를 언급함으로써 사태에 안일하게 대응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워졌다.
이 대통령의 이번 대화 제의는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에 대한 존중'이라는 북측의 요구사항을 어중간하게 수용한 것으로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 내기엔 미흡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그러나 사건을 인지했던 이 대통령이 유감의 말 한 마디 없이 총격 사건과 대화제의를 별개로 간주함으로써 그간 이명박 정부의 대북 상호주의를 강요해 왔던 보수층들의 목소리만 키워준 셈이 됐다.
한 전문가는 "이 대통령의 신중치 못한 대처는 보수층이 대북 규탄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할 것"이라며 "그나마 '전향적'이었던 대북 메시지를 대통령 스스로 물거품으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진상 규명 작업을 조속히 진행하되 남북관계가 더 이상 악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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