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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상황에선 정부의 지도력과 신뢰가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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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위기상황에선 정부의 지도력과 신뢰가 중요"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7/07] '외환위기 징비록' 펴낸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최근 고유가를 비롯해.. 생필품 등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서민 경제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 조사 결과에서도.. 한국인의 경제적 행복지수는 지난 연말에 비해 5점 이상 떨어진 34점대에 그쳤는데요. 일부에선 3차 오일쇼크나 제2의 외환위기 설과 같은 경제위기설까지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1997년 외환위기 당시 IMF 협상 수석대표를 거쳐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이 최근 '위환위기 징비록'이란 책을 통해 10년 전 외환위기의 긴박했던 순간을 회고하며 현재 우리 경제 상황은 결코 위기로부터 벗어난 것이 아니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는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니어재단 정덕구 이사장을 초대해.. 97년 외환위기 당시를 되돌아보고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경제를 진단해 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니어재단 정덕구 이사장입니다. 정덕구 이사장은 1948년 충남 당진 출생으로 71년 고려대 상학과를 졸업했고 83년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71년 행정고시 10회 출신으로 재무부 조세정책과장·경제협력국장·국제금융국장을 거쳐 재정경제원 기획관리실장을 지냈습니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월 뉴욕 외채협상 대표로 활약했고 뒤이어 재정경제부의 첫 차관을 역임한 후 김대중 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내는 등 29년간 경제 관료로 활약했습니다. 이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국제금융센터 소장, 중국 베이징대 초빙 교수를 거쳐 2004년 총선 때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진출했으나 지난해 2월 의원직을 사퇴했고.. 고려대 경영대학원 교수를 역임했습니다. 지난해 재단법인 니어재단을 설립해 현재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박인규 : 바쁘신 중에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정덕구 : 소개해 주신 대로 니어재단 활동 열심히 하고 있고 알고 계신 대로 외환위기 징비록 출간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바쁘게 지냈습니다.

박인규 : 니어재단을 잘 모르시는 분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재단입니까?

정덕구 : 니어라는 뜻이 가깝다는 뜻도 되지만 사실 앞으로 한국이 넘어야 될 고비는 동북아에 있어서 위치 선정이고 일부에서는 이것을 샌드위치론이라고도 하지만, 결국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우리 국익이 어떻게 보호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들과 연구 검토가 필요하기 때문에 연구재단을 만들어서 North East Asia Research라는 뜻의 약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특히 통화체제에 대해서 세계적으로 상당히 이름을 얻고 있는 단체입니다.

박인규 : 이번에 외환위기 징비록이라는 책을 출간하셨는데요. 10년이 넘었습니다. 책을 보니 상당히 꼼꼼하게 쓰셨다는 생각이 드는데 우선 책을 쓰셔야겠다고 생각하신 계기와, 왜 이렇게 시간이 걸리셨는지 설명해 주시죠.

▲ ⓒ프레시안

정덕구 :
제가 운이 좋아서 장관을 지낸 다음 서울대학 교수로 초빙돼서 3년 반을 있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외환위기 격전지의 한복판에 있었기 때문에 그 위기의 발생 이전부터 위기가 발생되고 수습하는 전 과정의 한 복판에 서있었던 사람이 공교롭게도 저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중간에 정권이 바뀌었기 때문에 많이 갈라졌는데, 이걸 역사로 남겨야 되는데 대개 역사는 고통스러운 역사일수록 야사가 정사를 엎어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에. 또 특정인의 무용담이 주도할 수 있기 때문에, 이걸 학문적으로 체계화해서 그 당시의 난중일기를 체계 있게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주로 그 골격은 서울대 교수 시절 연구실에서 썼던 것인데, 그 이후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실명으로 나오고 거기 많은 역사적 날짜나 데이터 같은 게 필요하기 때문에 이걸 점검하고 많은 사람들이 읽고 고치고 하는 과정에서 10년 가까이 시간이 걸렸습니다.

박인규 : 외환위기에 관한 최대한 균형 잡힌 정사를 써야겠다. 그래서 시간이 걸리셨군요. 그동안 외환위기에 관한 책이 많이 나오기는 했는데, 징비록.. 일부 언론에서는 대단히 비장한 제목이다. 징비록이라는 게 서애 유성용 선생이 다시는 임진왜란 같은 외침을 막기 위해서 경계하자, 그런 책이라는데요. 어떤 의미에서 그런 제목을 다신 거예요?

정덕구 : 사실 그 당시 우리가 위기가 오는 소리를 듣고 있었고 많은 전문가들이 경고했는데 사실 정치적 혼란 속에서 특히 대통령 선거, 미리 막을 수 있는 국난을 막지 못했다는 심정을 갖고 있었고 이걸 책에 담아서 후세에 남기고 싶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실 정글과 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씨름판에서 씨름하다 보니까 샅바를 놓치는 경우가 있는데, 만일 샅바를 놓친 씨름선수의 위치가 됐을 때 그 입장이 얼마나 처절한가. 다시 샅바를 잡아서 시합에 임하게 되기까지의 그 처절한 생생한 기록, 이건 정말 후대에 교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특히 신뢰의 위기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느냐. 아무리 정부가 얘기하고 권위있는 당국자가 얘기해도 아무도 믿지 않는, 특히 국제사회가 냉엄하고 냉정하게 돌아설 때 우리 위치가 얼마나 고독한가를 생생하게 기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박인규 : 책의 부제가 역사는 반복되는가... 라고, 말하자면 경계의 의미를 담으신 거죠?

정덕구 : 제가 그 이후에 서울대학에서 국제금융론을 가르쳤는데, 그때 공부하는 과정에서 세계의 경제위기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본 자료인데 1970년대, 80년대, 90년대에 걸쳐 총 25개국에서 71번의 외환위기가 발생했습니다, 다른 얘기로 하면 한 나라에 보통 한 세 번 정도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화산이 폭발할 때 지표의 가장 약한 부분을 뚫고 나오듯이 체질적으로 외환위기에 적합한 요건을 갖춘, 취약한 나라가 있기 때문에 한국이 과연 그 체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옛날 체질을 그래도 갖고 있다면 그 비운의 역사가 다시 반복될 수 있지 않느냐, 이걸 한 번 점검해 보자는 뜻이었습니다.

박인규 : 97년 외환위기가 났을 때 6.25 이후 최대 국란이라는 말도 있었고, 일부에서는 차제에 우리 경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선진국형으로 갈 수 있다, 쓴 약이지만 잘 먹자는 얘기가 있었는데 지난 10년 동안 우리 경제의 변화를 보시면서, 업그레이드됐다고 볼 수 있습니까? 어떤 변화가 가장 컸다고 보십니까?

정덕구 : 무엇보다 자유시장경제운영의 경험을 축적했다고 볼 수 있죠. 자유시장경제의 경험을 축적한다는 것도 굉장한 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미숙한, 초기 단계의 무력감이 있죠. 자유시장경제 초기에는 무력감이 옵니다. 정부가 지켜주다가 안 지켜주니까, 정부와 시장의 역할에 대한 정리가 아직 덜 돼 있습니다. 언제 정부가 나서도 언제 시장이 작동되느냐, 시장이 언제 실패하고 정부가 언제 개입하느냐. 박정희식 개발모형이 붕괴되는 과정이죠. 그래서 관치금융이나 정경유착이 해소된 건 굉장한 발전이고. 특히 민간부문과 시장기능이 아주 커졌는데 그에 비해서 정부의 리더십은 아주 약화됐다고 볼 수 있고 특히 한국 특유의 역동성을 잃고 양극화가 아주 심화되는 가운데서 취약부문이라 할 수 있는, 성장할 수 있는 7개의 큰 산업은 획기적으로 발전했는데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이나 서민경제는 상당히 취약해지는 현상을 보이고. 사회안전망이라고 하죠, 복지제도 이런 것들이 미발달된 상태기 때문에 경기 후퇴시에 서민생활의 어려움이 아주 가중되고. 그래서 큰 틀로 보면 성장잠재력이라는 것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거든요. 80년대 초 우리의 성장잠재력이 13%까지 갔는데 지금 4% 후반이에요. 이제 잘못하면 2015년 가면 3%로 간다는 전망도 있는데, 이런 것도 출산율이나 민간투자의 취약이라든지 성장동력이 약화되는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 있기 때문에 외부적 여건이 급속히 악화될 경우에는 급속한 저성장으로 가는 취약점을 갖고 있고. 최근 나타난 현상으로 잘 아시겠지만 사회적 갈등이라든지 문제해결능력이 아주 약화돼 있습니다. 사회적 합의과정이 아주 후진적이고 충돌이 많고 의회민주주의역량이 취약하다든지 사회적 신뢰기반이나 투명성 같은 사회적 자본의 축적이 아직 부족한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선진국형 경제로 첫발은 내디뎠지만 아직 미숙한 부분이 많다. 사실 이번 이명박 대통령이 압도적 표차로 당선될 때는 많은 국민들이 경제를 살려 달라는 소망을 담아서 이명박 정권이 탄생했는데 지금 최근 들어와서는 고유가에 고물가 제3차 오일쇼크다, 제2 외환위기다 우려가 나오고 있는데 우리 경제의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정덕구 : 우리 경제가 지금 대외경제 부분이 크게 악화되고 있고, 거기에 따라서 대내경제 쪽에 충격을 크게 주고 있는, 그래서 양쪽에 다 적신호가 켜져 있는 건 사실이고, 조기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위기심을 불러일으킬 경우가 있는데 위기는 이런 것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붕괴될 때 옵니다. 현재는 그걸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은 작동 중이기 때문에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현재가 위기라고 하기는 어렵고, 지금 심리적 동요가 아주 크기 때문에 심리적 동요를 막을 수 있는 정부나 당국의 절제 있는 행동이 필요할 때고 어떻게 하면 바깥에서 몰려드는 악재들 나쁜 여건들을 국내 경제주체들에게 충격을 덜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최대한 우리가 주력해야 되는데, 결국 그러다 보면 고통분담이라든지 그 고통을 특정 부문에만 다 지우고 자기는 안 지겠다, 도덕적 해이도 많이 나타나는데 이럴 때 민간부문이 특히 약화되고 심화될 때 가장 중요한 건 뭐니 뭐니 해도 정부고, 정부가 리더십과 신뢰를 잃으면 이런 현재 같은 상황이 위기로 갈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현재는 우리가 위기가 아니고 시스템이 잘 작동되고 있지만 여기서 정부의 절제있는 행동과 국민들의 고통분담에 대한 의지, 자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중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어려움은 있지만 아직 위기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어려움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정부의 리더십이랄까 절제있는 행동, 이를 국민들이 따라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현재 이명박 정부에서 대처하는 방식, 어떻게 보십니까?

▲ ⓒ프레시안

정덕구 :
원래 정부가 태동할 때 배경이 있죠. 역동성을 좀 회복해 달라는 거였거든요 국민들이. 역동성은 잠재성장력을 강화해서 심장박동을 아주 튼튼하게 하고, 그래서 성장률을 높이고. 고용을 증대시켜서 이것이 기업활동을 강화하면 이것이 전체의 선순환이 돼서 경제 전체가 아주 활발해지는 걸 기대하고 많은 표를 얻어서 대통령에 당선됐지 않습니까. 그런데 두 가지가 있죠. 하나는 예측오차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빨리 대외여건이 나빠질 줄 몰랐죠. 그 예측오차가 아주 정 반대로 예측한 것과 반대로 움직였기 때문에 초기정책선택에서 조금, 이것이 예측오차에 문제가 있는 거지 그런 예측하에서라면 그 정책을 쓸 수 있죠. 두 번째는 사실 정권 초기에 이렇게 엄청난 고유가에 각국의 부동산 버블붕괴라든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여파로 인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 이런 것이 동시에 이뤄지는 경우가 별로 없죠. 그래서 초기에 집중적으로 대외 악재가 쏟아지는 불운을 겪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이번 책을 보니까 IMF구제금융이 불가피했다 하더라도 되돌아보시면 여러 가지 협상과정에서 이건 참 아쉬웠다, 우리가 더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부분이 있습니까?

정덕구 : 우리가 유동성위기 단계에서 금융위기로 발전하고 완전히 경제시스템이 붕괴되는 경제위기로까지 확산됐거든요. 그 위기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아쉬움은, 초기대응에 우리가 철저했더라면 외화유동성위기도 막을 수 있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는 거죠. 외화유동성위기를 막을 수 있는 타이밍이 언제였나, 제가 볼 때는 태국에서 바트화의 크라이시스가 왔을 때 그때 1차 우리가 위기대응체제로 갔어야 되고. IMF구제금융을 청구하는 건 웬만하면 하지 않아야 되기 때문에 그건 했어도 우리가 한 달 내지 한두 달 정도는 빨리 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바트화 위기가 왔을 때 동아시아에 통화위기가 왔을 때 관리체제로 들어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이번 책에 보면 외화위기 당시에도 이른바 월스트리트의 음모설이다, 한국경제를 자기 맘대로 요리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 식의 음모이론 같은 것도 있었고. 이번 책에도 보면 정덕구 이사장께서 말하자면 한국 경제를 미국 경제에 가깝게 하기 위해서 미국이 도와줄 수도 있었는데 IMF로 가도록 강요한 측면이 있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봐야 됩니까?

정덕구 : 한국의 재벌경제체제라든지 정부 주도의 고성장정책, 확대·균형정책에 대한 경제심리가 상당히 팽배해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미국 중심으로 서방세계가 계획적으로 음모를 꾸며서 한국에 위기가 오도록, 안 올 수 있는 걸 오도록 음모를 해서 위기를 만들었다고까지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동아시아 전체 문제였고 동아시아 전체가 지나치게 고성장 정책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대외불균형, 경상수지 적자라든지 태동하는 것이 있었는데... 다만 단기자금들이 해외에서, 동아시아에서 갑자기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겠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습니다. 다만 위기가 발생한 이후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이번 기회에 시정하자는 면에서 구제금융조건을 강화한다든지 협상을 위한 시간을 끌면서 초기대응에 실패해서 외화유동성위기를 금융위기로, 다시 경제 전반의 총체적 위기로 확장시킨 데는 다소 도의적 책임을 질 만큼 미국이나 서방 각국에 책임이 있다. 특히 강도 높은 재벌구조조정을 시킨다든지 공기업 민영화 등 기존 경제체제 변화를 강력히 요구한 점을 볼 때, 이런 음모설이 바로 그런 데서, 저걸 통해서 미국이 국익을 얻기 위해 한 게 아니냐는 오해를 충분히 받을 만한 여건이었다. 그러나 위기 발발 자체를 음모에 의해서 도출시켰다고 하기는 근거가 희박하다.

박인규 : 그 당시 고금리정책에 대해서는 굉장히 말이 많지 않았습니까? IMF가 고집한 고금리정책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정덕구 : 외화 유동성위기 초기단계에는 고금리정책이 필요합니다. 채권금리가 올라가면 외화가 빠져나가다가 다시 회복되고, 주식시장이 붕괴될 때 외국인 투자자금이 채권으로 옮아가면서 덜 빠져나갈 수도 있고, 그래서 선진국에도 스칸디나비아나 영국 같은 나라도 초기 단계에는 금리를 팍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문제는 이런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같은 경우 사흘 동안 하고 끝났습니다. 그 대신 금리를 500% 이상 올렸습니다. 전기충격요법 같은 건데 이걸 우리는 넉달, 다섯 달 동안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재무구조가 취약한 상태에서 고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그 자체로 무너진 기업들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정부가 할 수 없이 한 대응은 신용보증제도를 확대해서 중소기업들이 연쇄부도가 안 나도록 철저히 막는데, 이 막는 정책에 대해서 IMF가 비난을 했고 정부가 싸웠고 정부의 뜻대로 밀고 나감으로써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을 연쇄부도상태에서 막을 수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너무 지나치게 이론이 앞서나가는 정책을 장기적으로 쓰면서 현실에 안 맞는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98년 4월에 가서는 IMF 내부보고서도 그 정책은 실패했다는 걸 인정했는데, 사실 우리가 3월달쯤 갔을 때 이미 고금리정책을 우리 스스로 폐지하고 통화를 풀고 금리를 급속히 낮췄기 때문에 그 이후 정책변경 이후 짧은 시간 내에 우리는 한 자리 숫자, 7,8% 금리로 떨어뜨릴 수 있었는데 이런 모든 과정을 볼 때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와 IMF가 초기 대응에서 많은 허점이 있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인규 : 요즘 촛불집회가 두 달 이상 지속되면서 촛불집회 때문에 경제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등 논란이 많은데, 협상을 오랫동안 해 오신 전문가로서 한국과 미국의 쇠고기협상, 잘 된 것 같습니까?

▲ ⓒ프레시안

정덕구 :
한국과 미국의 쇠고기협상이 양국 간의 통상현안으로 오랫동안 논의돼 왔습니다. 벌써 7,80년대부터 이미 양국 간의 분쟁 대상이죠. 강대국과의 협상은 항상 어렵습니다. 그 이유가, 그들이 주장하는 것이 국제적인 룰에 대개 부합합니다. 왜냐면 그 사람들이 국제적인 룰과 심판에 대한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그런 걸 수 있고. 그러나 그걸 그대로 수용할 수 없는 게 우리 입장이죠. 우리는 비록 약간 후진적이고 뒤떨어져 있더라도, 국내적인 요인이 있죠.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이 어렵습니다. 이번 경우도 저도 굉장히 동정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협상의 테이블에 설 때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얻으면서 국제적 기준에 부합할지... 이걸 조화를 이루는 게 굉장히 중요하고 강대국과의 협상이 쉽지 않다는 걸 국민들이 이해해 주셔야 되고, 우리가 수많은 물건들을 외국에 팔 때 우리가 강한 압박을 받는 부분도 있거든요. 다만 국민건강에 관한, 특히 국민들의 먹거리에 대한 예민한 심기를 좀 덜 우리가 헤아리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많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어떤 측면에서 보면 대내적인 국민설득에 실패한 부분이 있다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정덕구 : 이해 당사자들에게는 항상 100% 설득이라는 게 어렵지만, 이런 것이 집합적 의사결정과정이라고 하는 국회에서 이 문제를 잘 논의해서 다뤘어야 되는데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 것도 촛불집회로 번지게 된 요인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박인규 : 현재 여러 가지 대내외적인 여건은 경제활성화 이전에 어려움을 극복해나가야 될 과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마지막으로 이명박 정부에게 경제정책 관련 제언을 마지막 말씀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정덕구 : 어려움 속에서 아주 분투하고 있는 경제팀들에게 격려를 해줘야 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잠재성장률을 높여서 성장기반을 갖추는 건 앞으로 변함없는 과제가 될 겁니다. 단기간에 성장률을 높이는 것은 경제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되는데, 우선 국제유가의 고공행진 하에서 국내 경제부문에 대한 파급을 얼만큼 줄일 것인가 하는데 주력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태풍이 몰아붙이는데 내 우산이 튼튼하니 나는 괜찮다 할 게 아니고 위기관리 위험관리 쪽으로 가는 게 좋겠다. 위기감으로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불어넣는 건 필요하지만, 또 지나치게 국민들이 위기론에 빠져서 위축시키고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게 하면 안 와도 될 위기가 옵니다. 우리는 보통 전문가들이 자기실현적 위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실현적 위기가 오게 되면 사실 안 맞아도 될 매를 맞는다든지, 이렇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아주 격조있는 처신을 통해서 위기에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고. 민간부문이 어려움에 빠지면 고통분담의 자세를 갖도록 유도해야 되고 도덕적 해이에 빠지지 않도록 정부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고 오일쇼크 하에서 경제운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경제주체인 가계와 기업이 합리적으로 대응, 행동하게 하는 것인데 고비용구조하에서 자체흡수능력을 배양하게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정부가 솔선수범해서 여러 가지, 홀짝제도 한다는데 정부도 물가안정을 위한 제반정책노력이 정착되면서 성장기반이 흔들리지 않도록 양쪽을 세심하게 챙겨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인규 : 시장경제가 아무리 발전한다 하더라도 역시 위기에 대해서는 정부의 리더십과 신뢰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제2의 외환위기 이런 게 있어선 안 되겠지요.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정덕구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최근 저서 '위환위기 징비록'을 출간한 전 산자부 장관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을 초대해 IMF 외환위기 당시를 되돌아보고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 경제를 진단해 봤습니다.

*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 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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