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숙명여대 이만열 명예교숩니다. 이만열 교수는 1938년 경남 함안 출생으로 1963년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했고 1986년 같은 대학에서 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70년부터 30여 년간 숙명여대 한국사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3년 정년퇴임을 했고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 제8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현재 숙명여대 명예교수와 연세대 석좌교수를 맡고 있으며 문화재청 근대문화재분과 위원장과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심사위원회 위원장, 그리고 도산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안녕하십니까?
이만열 : 안녕하세요?
박인규 : 예, 저희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하실 때 한 번 모신 적이 있는데요. 다시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그 동안 잘 지내셨죠?
이만열 : 네.
박인규 : 이번에 단재 신채호 전집 10권짜리 완간이 됐어요. 단재 신채호 전집을 새롭게 내야 될 필요성이랄까 어떻게 준비가 됐는지 말씀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만열 : 예, 말씀하신대로 단재 신채호 선생은 우리 역사학회의 거벽이요, 또 문예의 대단히 우수한 그런 문학가였고, 또 민족 언론의 대단한 중요한 존재요, 그리고 또 독립운동의 참 전범이라고 할 수 있는 모범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분인데 그의 사상과 행적을 제대로 살피기 위해서는 그가 남긴 글이라든지, 그에 관해서 쓴 당대의 증언들, 이런 것을 제대로 모아야 합니다. 그 동안에도 두 어 차례 그렇게 한 적이 있습니다만, 연구자들이 연구하는 동안에 새로운 자료를 많이 발굴을 했습니다.
박인규 : 독립기념관에서 아마 주도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전집을 만드시려면 상당히 많은 역사학자들이 참여하셨을 것 같은데 어떤 분들이 주로 참여하셨습니까?
이만열 : 독립기념관에서는 예산마련을 하고 기획을 했습니다. 그리고 일단 이런 전집을 만들자면 관련된 학자들이 편찬위원회를 보통 만들고 있습니다. 그 편찬위원회 위원장으로는 윤병석, 독립운동 연구를 오랫동안 하신 어른입니다. 인하대 명예교수로 계시고요. 윤병석 교수님을 비롯해서 신용하 교수라든지 한시준 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 최기영 교수 그리고 단재 문학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졌던 인하대학의 최원식 교수, 경북대학의 김주현 교수, 그리고 충북 대학의 역시 사학사를 하는 박걸순 교수, 그 밖에도 무정부주의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는 이호령 박사, 그리고 지금 중앙박물관장으로 있는 최광식 관장, 그리고 최홍규 경기대 교수 등 편찬위원은 열 네 사람이었고 그 밑에서 간사로 일했던 분들이 박민영, 조범례 등 또 네 분이 있습니다. 이 분들의 수고에 의해서 이루어 졌습니다.
박인규 : 역사학자들뿐만 아니라 뭐 문학이라든가 사상하시는 분까지 포함을 해서 열 네 분이 2006년부터 2년 동안 작업을 하셔서 10권짜리 단재 신채호 전집이 나온 거로군요. 조금 전에도 말씀하시면서 그전에도 두 어 차례 신채호 전집이 나왔다. 광복직후, 1970년대에도 신채호 전집이라는 이름을 달고 책들이 나왔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그때와 비교해보면 이번 전집은 좀 더 완벽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이만열 : 예, 단재 신채호에 관한 저술들은 해방 직후에 단편적으로 나온 적이 있습니다. 전집류는 아니고, 그리고 72년에 전집류로써 상, 하권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75년에 그 보유편이 나오고요. 그 다음에 77년에 가서 상, 중, 하 그리고 별권 해서 4권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나온 저술들을 물론 그 당시까지의 자료를 모은 것이겠죠. 그런데 좀 문제가 되었던 것 가운데 하나는 그런 전집 속에 단재의 글이 아닌 것이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 당시엔 필명으로 다 하지 않기 때문에 문장이라든지 문투라든지, 그 속에 나타나는 예를 들면 대한매일신보에 무엇을 발표했다하면 그 정신을 가지고 아! 대충 이것은 단재의 글이겠다. 해서 묶은 게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묶어진 것 가운데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 되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조금 정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70년대 이후에 학자들이 중국이나 또 여러 곳에 가서 연구하는 동안에 새롭게 발견 된 자료들이 있습니다. 해서 이것을 묶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70년대 것보다는 훨씬 충실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다시 말씀이 되겠지만 완벽한 것은 아직은 아니다. 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박인규 : 지금까지 할 수 있는 최대한 단재 신채호 선생의 글을 모았지만 모두 다 모았다고는 얘기할 수는 없는 그런 부분이 있다는 말씀이시죠?
이만열 : 예.
박인규 : 10권이라고 하면 말하자면 역사책부터, 이 분이 또 소설도 쓰시고 그렇지 않습니까? 어떻게 지금 구성이 되어 있습니까? 10권이?
이만열 : 네, 첫째 권은 아무래도 그의 주제라 할 수 있는 조선상고사가 됩니다. 그것을 원본을 복사를 하고 원본을 다시 현대 그러니까 활자를 현대 활자로 고친 거죠. 그렇게 해서 한권으로 묶었습니다. 그 다음에 둘째는 역시 그의 주제에 해당하는 논문들을 묶은 조선사 연구초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논문들이 실려져 있는데 조선사 연구초가 되겠고요. 셋째 권은 역시 역사물로써 독사실론이라든지 대동제국사서언 이것은 이번에 처음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조선상고문화사 등이 셋째 권에. 넷째 권에는 전기류. 그가 쓴 을지문덕, 수군 제일 위인 이순신, 그리고 동국 거걸 최도통. 최영전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태리 건국 삼걸전. 이런 전기들이 들어갔고요. 다섯 권째는 신문, 잡지에 수록된 그의 글을 모았습니다. 여섯 번째는 논설이라든지 사론류를 모았습니다. 일곱 권째는 그의 문학. 문학작품이 많은데 문학, 용과 용의 대결이라든지 하는 그 문학작품들을 모았고요. 여덟 권 째는 독립운동. 독립운동은 그가 한 것도 되지만 그에 대해 언급돼 있는 예를 들면 제 3자끼리 서신을 왕복했는데. 거기에 단재에 대해서 들어있다면 그런 것들도 우리가 찾아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것은 주로 국내 구국운동에서 더 나아가서는 망명해서 독립운동, 그리고 3.1운동 후에 독립운동, 또 무정부운동 이런 류를 다 묶었습니다. 아홉 권 째는 단재에 관해서 후인들이 쓴 단재가 돌아가고 난 뒤에 정인보 선생이라든지 이운재 선생이라든지 이런 분이 쓴 글과 그리고 연보 이런 것들을 묶어서 또 한권으로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총 아홉 권이 되겠습니다.
박인규 : 이번에 나온 단재 신채호 전집에 그 동안에는 발표되지 않았던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자료들이 많이 들어 있습니까? 아까 한번 잠깐 말씀하셨습니다만?
이만열 : 예를 들어서 잡지를 간행했는데 신대한이라든지, 그 다음에 천고라고 하는 이런 잡지를 김창숙 선생하고 북경에서 발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동제국사서언을 비롯해서 그 다음 아까 말씀드린 문학이다. 또는 논설이다. 그런 것 가운데서 빠졌던 것. 그것을 거의 수록을 했습니다. 국내에 있는 것은 단재 것을 거의 완벽하게 찾았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상당히 민족주의적인 이런 성격을 가진 비유가 사학이 있습니다. 이것을 합쳤습니다. 종합한 분이죠. 그러니까 사료는 유가적인 사료를 가지고 정신은 비유가적인 자주 독립 정신을 가지고 역사 연구를 했다. 그런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근데 민족주의사학을 성립시킨 분이다. 라고 얘기합니다. 그런 점에 대해서 아직까지도 참 완벽하게 정리가 안 되어 있습니다. 제가 좀 연구한다고 했지만은 더 천착을 못시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가로서 가장 과격하고 비타협적인 독립 운동가였습니다. 그리고 독립운동에서 무장투쟁을 강조하고 정신적인 것을 바탕으로 해서 민족의 주체성을 굉장히 강조했거든요. 이런 것도 오늘 이 시점에서 세계화를 지향하는 시점에서 우리가 국수주의적인 것은 지양을 해야겠지만 그의 정신을 오늘 이런 세계화 시대에 대승적으로 또는 변증법적으로 승화를 시켜 나갈 수 있느냐 하는 데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언론인으로서 가장 강직하고 혜안이 아주 밝았으며 그 다음에 비판적이고 타협이 없는 언론인으로써 물론 오늘날도 참 그런 좋은 언론인들이 많지만, 단재 같은 언론인이 오늘 이 시점에서 시사 하는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또 문학자로서도 역시 현실과 유리된 문학이 아니라 현실을 바탕으로 해서 문학이 나아가야 될 길을 보여주었다는 그런 의미에서도 단재는 새삼 주목해야 될 점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저는 사실 이번에 나온 신채호 전집을 일람을 하면서 신채호 선생의 원전을 다 그대로 옮기셨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상당히 도움이 될 텐데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는 너무 어렵다. 신채호 선생의 전집을 현대어로 알기 쉽게 고친다든가 또 어린 학생들이 알기 쉽게 평전 같은 것도 나왔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드는데. 실제로 그 정도까지 연구가 진척이 되어 있나요?
이만열 : 옳은 지적이십니다. 저희도 그것을 의식하고 처음에 가령, 1권을 편 저의 경우. 조선상고사를 처음에 조선일보에 연재를 했습니다. 연재한 것을 그대로 싣고, 그것을 오늘날의 활자로 만들어서 읽기 쉽게 만들고, 그다음에 1946년에 조선상고사가 한 권의 책으로 나왔습니다. 그 책으로 나온 것도 쉽고, 그것도 또 읽기 쉬운 활자로 넣고, 그리고 거기에다가 완전히 그것을 현대어로 만드는 작업까지 하도록 원래는 그렇게 계획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건 제 경우뿐만 아니라 다른, 9권까지 계획이 됐었지만, 원래 저희들이 계획했던 자료, 그게 중국에서 들어오고 북한에서도 교섭의 여하에 따라서 될 것 같이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그게 잘 안 됐습니다. 그게 잘 안 되면서 차질이 생기고 언젠가는 다시 전집을 보완이 돼야 된다는 것 때문에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비전공자들을 위한 단계까지는 완벽하게 가지는 못했습니다. 이것은 예산의 문제도 있고 또 인적 역량의 문제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지금 말씀을 들어보면, 북한에도 단재 신채호 선생의 자료가 꽤 있다고 하는데, 거기에 있는 자료가 모두 수록이 되진 않은 모양이죠?
이만열 : 네, 그렇게 되질 못했습니다. 북한에 있는 자료라고 하는 것은, 저희가 추측건대 1920년대의 한글학자 한뫼 이윤재 선생이 북경에 계시는 단재 선생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단재 선생이 방에서 원고를 쌓아놓고 '이게 내가 조선사에 관한 거다'하고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단재 선생이 옥고를 치르고 돌아가신 후에 그 유고가 어디로 갔는지. 그게 이제 박 모라고 하는 사람이 단재의 글 같은 것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자기 이름으로. 그러니까 아마 그 사람이 소유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고, 그 원고가 아마도 해방 후에 북한으로 가지 않았는가 추측을 했습니다. 실제로 북한에서는 단재 선생의 유고에 해당하는 글들을 노동신문이나 문학잡지에 발표를 했습니다. 발표를 했기 때문에 단재 선생의 유고가 거기 있다는 것을 확인을 한 셈이죠. 그것을 이번에 남북이 합작해서 가능하다면 남북 공동출판으로 해서 해보자, 우리가 전향적인 생각을 가지고 그쪽하고 교섭을 했는데 잘 되질 않았습니다. 앞으로 되기 기대하고, 저희도 아홉 권을 내면서 북한의 것과 또 중국에, 이런 것들이 있을 터인데 아직 수집 못 했던 것을 모아서 만든다든지, 좀 더 비전공자들을 위한 단계로까지 갈 때는 같이 간행하기를 기약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하긴 단재 선생이 필명을 12갠가를 쓰셔서 수집하기도 쉽지가 않다고 하던데요, 일단 우리가 수집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단재 선생의 글들을 다 모았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북한이나 중국에 아직 우리가 모르는 자료가 남아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앞으로 우리가 단재 신채호 연구를 위해서 해야 될 일은 미확인 자료를 모으는 것 외에 신채호 연구와 관련해서 우리들의 과제랄까요, 앞으로 해야 될 것은 어떤 게 있을까요?
이만열 : 학자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자료를 완벽하게 모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자료를 완벽하게 모으지 않고 이론을 세운다든지 정리를 해 버리면, 다른 자료가 나타나면 그게 깨지는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게 좀 필요합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중국에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 대한 자료를 찾아야 될 게 많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사료관이라고 할 수 있는 각 성마다 시마다 있는 당안관이라고 하는 것이 대단히 폐쇄적입니다. 제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지금 나라가 독립한 지 60주년이 됐는데도 임시정부 자료가 체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헌법에 보면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돼 있는데 우리가 앞으로 남북의 문제라든지 여러 가지를 풀어갈 적에 임시정부사를 제대로 정리를 하든지, 아니면 사료라도, 자료라도 제대로 정리를 해야 된다, 그래서 시작을 해서 제가 한 60권 계획을 세웠고, 제가 있는 동안 열 댓 권 출판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러자면 필연적으로 중국에 있는 당안관을 뒤져야 되는데 제가 직접 가서 교섭을 했을 때, 다는 못 가죠, 몇 군데 가서 하면 자기네들이 협조를 하겠다고 해요. 하지만 결과가 잘 나오질 않습니다.
박인규 : 대한민국의 국사편찬위원장이 갔는데도?
이만열 :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런 게 외교적인 문제면서, 심지어는 외교부 차관에게까지 얘기해서 교섭을 좀 하게 해 달라고 했는데, 이렇게 숨겨져 있는 게 있습니다. 또, 북경도서관을 비롯해서 도서관에도, 우리가 아는 자료가, 단재 사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이 사람들이 내주질 않습니다.
박인규 : 말씀을 듣고 보니까,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때 과거사 바로잡기 운동이 많았는데, 과거사 바로잡기 전에 제대로 알기가 필요하겠다는 느낌이 드네요.
이만열 : 네. 제대로 알기도 되고 자료 제대로 모으기도.
박인규 :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숙명여대 이만열 명예교수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단재 선생은 1936년 2월에 여순 감옥에서 돌아가셨는데, 물론 식민지 시대였죠. 그런데 아직까지 단재 선생의 국적이 무국적자로 돼 있다고 해요. 왜 그런 일이 벌어진 겁니까?
이만열 : 정확하게는 무국적자보다는 무호적자라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것은 일제가 한국을 강점하고 난 뒤에 1912년, 조선 민사령을 제정해서 호적을 만들었는데, 그때 국외에 거주하거나 또 호적 등재를 거부해서 호적이 없는 분들, 단재 선생 같은 분은 독립운동을 하면서 일제의 통치에 들어가지 않겠다, 호적을 하는 게 일제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게 되니까 하지 않겠다고 해서, 그래서 무호적, 또는 무국적자로 남게 되었는데 거기에 해당되는 분들은 신채호 선생을 비롯해서 이상설, 김규식 선생 등, 아마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약 2~300명 되지 않는가,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박인규 : 한마디로 대한민국 호적에 이분들의 이름이 안 올라가 있는 거군요.
이만열 : 그런 셈입니다.
박인규 : 그런데 최근에 이분들의 대한민국 국적을 법령이 곧 만들어질 것 같다고 하던데요. 좀 소개를 해 주시죠.
이만열 : 네, 의원입법으로 국제법 개정 및 특별법 제정 추진을 2005년 8월부터 몇 분 의원들께서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 있는 법과의 상충 내지는 보완 문제 때문에 그것을 추진하다가 중지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독립 유공자 예우법 제 6조, 그러니까 등록 및 결정에 관한 조항을 신설을 해 가지고 거기에 독립 유공자들을 좀 넣어보자는 움직임이 지금 국회 및 정부에서 추진이 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이게 지난달 말에 입법예고가 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이게 법률로 되면 그러면 이분들, 신채호 선생이나 이상설 선생, 김규식 선생의 경우에 어떤 변화가 있는 겁니까? 후손들에게 혜택이 있습니까?
이만열 : 우선 국적 취득이 가능한 거죠. 국적 취득이 되면서 그동안에 독립 유공자에 관한 예우에 대한 법이 있으면서 본인은 돌아가셨으니까, 후원자들에게 학자금을 지원한다든지 매월 얼마씩 지원하는 그게 있습니다. 손자까지 가는 경우도 있고, 자녀들까지 가는 경우도 있고, 법에 따라서는 조금씩 다릅니다만, 이런 혜택을 그동안에 받지 않았다면 받을 수가 있습니다. 단재 선생의 경우는 1959년 8월 법령 제 79조에 의거해서 그분의 아들 되시는 신수범 선생이 자기가 호적을 정리하면서 호적에 보면 전 호주 난이 있지 않습니까. 전 호주 난에 단재 선생을 넣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단재 선생 자신이 호적을 가진 걸로는 되지 않습니다.
박인규 : 어쨌든 하루 빨리 독립 유공자 예우법이 통과가 돼서 제대로 기록이 됐으면 좋겠고요, 말씀을 듣다 보니까 우리가 아직도 독립 운동사를 비롯해서 우리 역사에 관해서 해야 될 일이 많다, 이런 느낌이 드는데요. 국편위원장을 하셨으니까요, 혹시 정부나 이런 데 대해서 과거 역사를 제대로, 규모 있게 하려면 어떤 게 필요한지 말씀을 해 주세요.
이만열 : 요즘은 역사 정리를 한다는 것이 자칫하면 과거사 정리와 관련해서 나타난 정치적 싸움 비슷하게 되는데, 그러나 역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역사적으로 정리할 것은 가능하면 시대가 가까울수록 빨리 정리하는 게 현명하고 그게 우리 후손들에게 짐을 넘겨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역사 정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모든 정치나 국가의 목표가 경제 성장인데, 그게 가시적으로, 통계적으로 나타나는 데만 너무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정리한다는 것은 막대한, 국가적으로 보이지 않는 자원을 축적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투자가 사실상 참 미흡합니다. 사람을 키우는 것도 그렇고. 여기에 대한 투자를 제대로 해 놓으면 뒷날 거기에서부터 문화의 꽃도 피고 또 외적으로 보이지 않는 어떤 경제적인 성장이라든지 민족적 성장이라든지, 나타날 텐데,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효과에 급급한 나머지 여기에 대한 투자나 인력 양성이 부족하다는 거. 그리고 이런 문제를 두고 외교적 채널을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이 많이 있을 텐데, 특별히 독립 운동사와 관련해서는 그 동안에 학계에서 정부를 활용을 못했다고 할까요, 우리 정부의 역량이 높아졌으니까 활용해서, 대외적으로 자료를 좀 협조를 받는다든지 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박인규 : 저희가 한류 문화, 한류 얘기를 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한류의 바탕이 되는 게 우리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정리하는 건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미흡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고요. 그렇게 보면 단재 신채호 전집이 우리 역사를 정리하는 데 한 걸음 나가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우리 역사를 제대로 정리하는 데 역할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만열 : 그분 전집뿐만 아니라 다른 어른들도 많이 있습니다. 단재 신채호 전집을 계기로 해서 다른 어른들의 것도 새롭게 정리하는 이런 작업이 참 필요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박인규 : 물론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겠지만, 역사학계의 활약도 기대해 보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이만열 : 고맙습니다.
박인규 :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신채호 선생 전집의 편찬 위원인 숙명여대 이만열 명예교수를 초대해 신채호 선생의 업적과 활동에 대해 알아보고, 오늘날 우리가 단재 신채호 선생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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