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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협상, 잘못된 외치가 내정에 역풍 불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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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협상, 잘못된 외치가 내정에 역풍 불러와"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6/24] '고종시대의 리더십' 펴낸 오인환 전 공보처 장관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최근 쇠고기 수입 문제로 불거진 촛불집회를 비롯해 전 세계적인 유가 폭등으로 인해 나라 안팎이 어수선한데요. 김영삼 정부시절 공보처 장관을 지낸 오인환 전 장관이 최근 우리 선조들이 겪은 시행착오와 교훈 속에서 위기관리의 핵심을 찾는 저서 <고종시대의 리더십>을 출간했습니다. 특히 오 전 장관은 대한민국에서 유능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장 필요한 덕목은 위기관리의 지도력이라며 고종 시대 당시 통치자와 위정자들이 해 온 역할과 그 평가를 집중 조명했는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오인환 전 장관을 초대해 고종 시대의 리더십과 위기관리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지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오인환 전 장관입니다. 오인환 전 장관은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했고 프랑스 파리시 대학에서 연수했습니다. 한국일보 외신부 차장, 사회부장, 정치부장, 편집국장을 비롯해 이사 겸 주필을 역임하며 28년 간 언론계 생활을 했습니다. 1992년 김영삼 민자당 대통령 후보의 특보로 정계에 들어가,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5년 간 공보처 장관으로 재직했습니다. 퇴임 후에는 저작 활동을 펴고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파리의 지붕 밑>, <조선왕조에서 배우는 위기관리의 리더십>이 있습니다.

박인규 : 안녕하십니까?

오인환 :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인환 : 네.

박인규 : 요즘은 주로 어떻게 보내고 계십니까?

오인환 : 요즘은 머리가 맑은 오전에는 책을 읽거나 집필을 하고 오후에는 여느 보통 사람들처럼 건강관리를 위해서 운동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 ⓒ프레시안

박인규 :
이번에 책을 내셨어요. <고종시대의 리더십>이란 제목인데, 저를 포함해서 많은 분들이 고종이라면 쉽게 얘기해서 나라를 망하게 한 군주인데 이 분한테 배울게 뭐가 있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하실 것 같아요. 그런데 특별하게 고종 시대를 택해서 리더십을 연구하게 되신 특별한 계기가 있으십니까?

오인환 : 고종시대만 특별히 연구하고자 해서 한 게 아니고 제가 2003년에 <조선왕조에서 배우는 위기관리의 리더십>이라는 책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다룬 것이 태조 이성계로부터 23대 국왕이던 정조까지를 그 때 다뤘습니다. 그 후에 정조 이후에 근세사를 다루기로 생각을 하고 고종 시대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게 된 거죠.

박인규 : 말하자면 퇴임 이후에 조선시대 왕조에 대해 한번 다 일람을 하신 거네요.

오인환 : 결국 그렇게 됐습니다.

박인규 : 우리가 보통 리더십 그러면 외국지도자들을 주로 많이 보는 걸로 알고 있는데 조선시대 왕들의 리더십에 주목하시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오인환 : 그것은 역사를 조금 심층 취재랄까 이런 걸 하다보니까 조선시대에는 리더십을 중국의 리더십을 주로 벤치마킹을 했고, 건국 이후에는 미국이나 서양의 리더십을 많이 들 연구하고 따라가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이 과연 한국의 토양에서 맞는 것인지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 있었고 우리가 찬란한 문화를 나름대로 갖고 있고 그 속에서 우리도 훌륭한 리더십의 전통이 있을 것인데 왜 우리 것을 소홀히 하는가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우리 역사에서 한 번 찾아보자. 잘못 된 것 중에서도 우리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 많지 않겠느냐 그래서 조선왕조시대의 리더십을 집중적으로 한번 분석해 본거죠.

박인규 : 우리 자신의 통치 경험해서 새로운 리더십의 원형을 찾아보자.

오인환 : 그렇죠.

박인규 : 그렇다면 10년 동안 조선왕조의 리더십을 연구하셨다 이렇게 말씀 할 수도 있겠네요.

오인환 : 연구했다기보다도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28년간의 언론계 생활에서 얻은 언론인의 그 입장에서 심층 취재를 한 거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 될 겁니다.

박인규 : 일종의 역사 비평서다.

오인환 : 그렇죠.

박인규 :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조선왕조의 500년을 한 번 훑어보시려면 그래도 뭐 기본적인 자료라든가 이런 것들을 많이 보셔야 했을 것 같은데 어떤 자료들을 주로 수습하셔서 보셨습니까?

오인환 : 근데 그건 두 가지로 말씀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역사라든가 전략이라든가 이런 것에 대해서 젊은 시절부터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관련서적을 쭉 사들였고, 그 다음에 2008년 퇴임 후에는 집중적으로 국사서적을 많이 사들였습니다. 그래서 역사 심층취재를 시작하면서 모자라는 부분은 도서관에 간다든가 또는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자료를 빌려본다든가 이렇게 했고, 제가 가질 수 있는 심층취재 방식의 특징은 모든 자료를 섭렵한다기보다는 알고 싶은 주제에 대해서 알맞은 자료를 집중적으로 한번 모아보고 나머지는 많은 생각을 통해서 그 역사를 분석해보고 검증해보고 하는 그런 절차를 거치면서 추리력이라든가 분석력을 총동원해보고 하는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그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박인규 : 사료를 읽어보시고 나서 계속 사고를…….

오인환 : 그러니까 그 자료를 봐 가지고 그대로 인용한 게 아니고 그 자료가 왜 쓰여 졌을까? 이 자료의 배경은 뭔가? 이 배경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그 자료를 인용하는 것도 평면적으로 인용하는 게 아니라 가급적이면 입체적으로 그렇게 인용을 한 거죠.

박인규 : 이번에 나온 책 <고종시대의 리더십>이 어떻게 보면 5년 전에 나온 책 <조선왕조에서 배우는 위기관리의 리더십>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우선 뭐 앞에 나온 책, <조선왕조에서 배우는 위기관리의 리더십>은 태조부터 정조까지라고 말씀하셔서 혹시 가장 바람직한 지도자는 어떤 분으로 꼽으실 수 있나요?

오인환 : 그 점은 정치역량으로 얘기한다면 말하자면 조정을 장악하고 백성들을 끌어간다는 점에서 카리스마도 있고 지도자로서의 능력도 탁월하다는 점에서는 태종이 저의 개인적으로는 가장 맘에 드는 그런 지도자가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박인규 : 고종에 대해서는 저도 아까 말씀드렸습니다만, 많은 분들이 나라를 망하게 한 왕이기 때문에 또 아버지한테 치이고 부인한테 업히고 이런 좀 별로 좋지 않은 부정적이 평가가 많은데 또 최근에는 나름대로 국권을 지키기 위해 애쓴 군주다 그런 평가도 나오고 논란이 많은 것 같습니다. 고종에 대한 고종의 리더십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오인환 : 그런데 고종이 무능하다, 유약하다 그런 평가가 나온 것은 고종 때 나라를 망하게 했다는 그런 책임론에 빠져있기 때문에 그런 건데 특히 일본 식민 사학자들이 고종이 무능했기 때문에 일본이 한국을 병탄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 식민사관을 내 걸음으로 해가지고 고종의 부정적 측면이 더 부각된 게 아니냐.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고요. 그 다음에 우리나라 국사학자들도 고종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습니다만 최근에는 긍정적인 측면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있어요. 그런데 그것은 제가 보기에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교훈을 얻고자 한다면 승자의 입장에서 쓴 역사에서 뿐만 아니라 패자의 역사에서도 우리가 배울게 많다 이런 얘기죠. 고종이 총괄 적으로는 무능한 군주로 보이겠지만 47년간의 통치를 분석해보면 상당히 노련하고 유능했던 그런 측면들이 있다. 그런 점은 우리가 평가를 해야 된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박인규 : 그렇다면 고종의 리더십 중에서 우리가 지금 긍정적으로 봐야 될 부분은 어떤 게 있을 수 있을까요?

오인환 : 고종의 리더십 중에서는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부정적인 그런 측면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고종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던 대원군이나 또 1894년 명성황후가 시해 된 뒤에는 고종이 홀로서기에 성공하고 있거든요. 그 때 고종의 통치라든가 위기관리라든가 하는 여러 가지 측면을 분석해 보면 매우 노련하고 여론을 잘 활용하면서 정치를 이끌어가는 그런 측면도 나와 있는 등 상당히 수준 이상의 정치 역량을 보이고 있다. 이런 걸 볼 수가 있는 거죠. 그런데 그게 빛이 안 난 것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막을 만한 방어력을 조선왕조가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결정적인 문제가 된 것 같습니다.

박인규 : 명성황후가 시해 된 이후에는 나름대로 홀로서기 하면서 정치적 수확을 보여주셨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흥선대원군이나 명성황후의 정치적 리더십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오인환 : 흥선대원군의 리더십이라는 것은 이른바 고전적인 것이 아니었나.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성격이 호방하다든가 추진력이 좋다든가 하는 그런 점에서는 집권 초기에 강력한 개혁도 할 수 있었고 단군 이래 가장 충실하게 국방 문제를 해결한 지도자였다. 그런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역사의식이 없지 않았나. 그러니까 미래지향적으로 끌어가는 대국의 정치를 할 수 있는 그런 준비가 안 돼 있던 지도자가 아니었나. 그러니까 과거 지향적이었고. 자기의 권력욕을 주체하지 못해서 나라와 고종에게 부담을 주고 종국에는 자기 욕심에 지나치게 매달리다가 일제의 앞잡이로 전락이 되는 그런 일까지 생기 게 된 것이 대원군의 정치지도자로서의 특성이자 한계인 것 같고.

명성황후는 고종이 신중하고 내성적인데 비해서 판단도 빠르고 성격이 강직하고 그래서 좀 강한 개성의 그런 분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고종을 많이 도와주고 특히 외교문제 같은데서 많이 도와줬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고종과 함께 상소가 들어오면 같이 읽는 다는 등 해서 국정의 파트너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쭉 역사서들을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가장 중요한 게 민생인데, 민생을 어떻게 챙겨야 된다. 그래야 이 나라가 잘 된다. 뭐, 그런 인식을 갖고 고종한테 영향을 미친다든가. 대신들한테 일개를 한다든가 하는 그런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고 무슨 뭐, 잔치를 벌이고 뭐 어떻게 하고 하면서 사적으로, 말하자면 비용을 과다하게 낭비한다든가 해서 오히려 통치부담이 되는 그런 역할을 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박인규 : 그 당시에는 조선이나 청나라나 일본이나 모두, 서양문명에 도전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근대화라는 게 굉장히 중요한 숙제였는데, 조선이 제일 늦었다고 해요. 장관님께서도 왜 우리가 늦어졌는가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오인환 : 제가 보기에는 일본의 신민 사학자들은 조선 민족이 게으르고 무능하고 그래서 전체적으로 독립국을 유지할 능력이 없다, 그런 식으로 해서 폄하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그것은 지나친 왜곡이고, 다만 우리 조선왕조가 근대화에서 제일 지각하게 된 것은 제일 늦게 근대화의 현장에 도착했다, 지각생이었다, 그렇게 봅니다. 왜냐하면 중국 같은 경우에는 15, 16, 17세기에 걸쳐서 차례차례 서양의 문물이 들어오지 않습니까? 그래서 서양을 굉장히 폭넓고 깊게 받아들였어요. 물론 중국의 문명이 최고다 하는 그런 자부심 때문에 받아들이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만. 일본 같은 경우에도 난학이라는 네덜란드 학문이 들어와서 많은 영향을 끼쳤고, 에도 막부가 쇄국을 하면서도 일정 항구는 열어놨기 때문에 계속 서양 문물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근대화가 가능할 수 있었는데, 우리나라는 성리학의 교조주의가 너무나 철저하고 완벽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배타적이었기 때문에, 서양의 문물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 아주 배타적이었고 받아들이지 않는 체제를 굳건히 하다 보니까 늦은 거다, 이런 거죠. 그래서 그 벽이 두껍다 보니까 늦어진 거지, 다른 이유는 있는 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박인규 : 이번 책을 통해서 대외적으로 볼 때, 고종 당시의 한반도 상황과 유사한 상황이 현재에도 반복되고 있다,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어떤 일들이 그런 건가요?

▲ ⓒ프레시안

오인환 :
그러니까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라는 게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이런 얘기죠. 지정학적 위치라는 게 백 년 전에는 러시아가 말하자면 공격적이었고, 청나라와 일본이 서로 한반도를 차지하기 위해서 싸웠고, 일본과 러시아도 싸웠고, 그 뒤에 영국과 미국이 작용을 했고. 그런 구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초강대국인 미국이 있고 그 앞에 일본이 있으면서 미일 협력 구도 하에 한반도를 접근하고 있고, 중국은 초강대국인 미국을 상대로 해서 새로운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고, 러시아는 러시아대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고, 하기 때문에, 새로운 질서라고 하지만 구조적으로는 백 년 전하고 다를 게 없다. 그래서 지금은 미국과 중국이 어떻게 대결양상으로 가느냐하는 것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구도에서 가장 큰 변수가 된다, 이렇게 볼 수 있지 않느냐 하는 점에서 백 년 전과 상황이 비슷하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거고,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패턴의 위기가 나오고 있다는 것은 예를 들면, 고종이 청나라나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서 미국에 접근하려고 합니다. 매우 노력을 하는데, 그래서 미국 공사였던 알렌에게 이권을 주고 미국의 관심을 끌어오려고 노력하는 게 역사서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부시 대통령을 만나러 가면서 서둘러서 쇠고기 협상을 마무리 지은 게 백 년 전처럼 뭔가 미국을 상대로 해서 얻기 위해서 무리하게 쇠고기 협상 문제를 양보하고 검역 조건을 포기한 거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하는 것은 양상이 백 년 전과 비슷하다는 얘기죠. 예를 들면 말하자면 알렌에게 이권을 줘서 관심을 끌어보려 했으나 그때 실패 했고, 이번에는 국내에서 역풍이 일어나서 오히려 사태를 꼬이게 했고 꼬이게 한 것이 국내 정치, 통치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됐다는 점에서 그런 점이 반복되고 있는 게 아니냐, 그런 얘긴 거죠.

박인규 : 대외관계를 잘 못 처리하다 보니까 국내 정치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런 말씀이신데, 고종 때 같은 경우는 자체 실력이 부족하다 보니까 필요할 때는 러시아도 부르고, 청나라도 부르고, 외세를 불러들이면서 독립을 지키려고 했는데, 요즘 같은 경우는 예를 들면, 노무현 대통령 때는 동북아균형장, 물론 지금은 없어졌습니다만, 미중 간의 균형을 지키겠다, 그런 식의 논의를 하다가 또, 이명박 대통령 와서는 한미동맹이 훼손이 됐으니까 복원을 하겠다고 하면서 우리 주변의 강대국과 관련해서 굉장히 여러 가지 논란들이 많은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고종 시대의 어떤 걸 배워야 할까요?

오인환 :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대미관계에서 노무현 대통령이나 현재의 이명박 대통령이나 두 대통령이 다 같이 조금씩 문제가 있지 않냐, 저는 이렇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는 미국에 대해서는 '노'라고 얘기할 수 있었던 점에서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건국 이래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간 게 아니냐는 게 한국 외교의 현주소였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노'라고 얘기할 수 있었던 것은 참 어려운 일을 해낸 거다. 왜냐하면 일본도 미국에 대해서 '노'라고 할 수 있어야 된다고 하는데, 사실 '노'라고 할 수 있는 일본 지도자들이 별로 없었거든요. 한국에서는 그런 대통령이 나왔다는 점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일조를 한 겁니다. 균형을 잡게 하는 데.

그러나 고종 시대 이래의 한미관계를 보면 미국이 한반도에 어떻게 접근을 하느냐, 미국의 국익과 관계가 없을 때는 한반도에 개입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미국이 초강대국이 된 뒤에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 때문에 한반도에 관심을 갖게 된 건데, 미국을 한국을 식민지화하거나 한국의 영토에 야욕이 있다거나 하는 것을 보여준 적은 없는 것이다, 미국이 있음으로 해서 일본이나 중국 같은 주변 국가들이 한반도에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 데 견제하는 세력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미국을 일방적으로 친미로 가는 것이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미국을 이용하는 용미, 미국을 비판하면서 균형을 가지면서 가는 것은 괜찮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반미 쪽으로 선회시켰다고 평가를 받는 것은 국익에 훼손이 있었다, 저는 이렇게 봅니다.

그러면 노무현 대통령 이후에 정권을 잡은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의 대미 노선을 바꾸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바꾼 겁니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진보정권 십 년에 생긴 대미외교가 국민에게 어느 정도 영향력을 끼쳐서 미국의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국민들이 균형 감각을 가지게 된 결과가 있었다, 결과는 큰 흐름이든 작은 흐름이든 우리 사회에 형성돼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그 흐름이 말하자면, 국민의 눈높이를 조금 더 높아지게 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옛날식으로, 경제 발전을 시키기 위해서는 이렇게 밀고 나가서 해야 된다고 해서, 국민의 눈높이를 무시하고 앞으로 나갔다가 이번에 역풍을 맞게 된 거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미국과의 관계를 원상회복하려던 것을 조금 더 껄끄러운 그런 상태로 가게 한 것, 매끄럽게 끌어가지 못한 것, 이런 것은 역사 인식이나 상황 인식에서 문제가 있었다, 이렇게 볼 수가 있는 거죠.

박인규 : 어떻게 보면 미국과의 건전한 관계라는 측면에서 두 분 다 양쪽 방향으로 지나치게 가신, 균형을 잡지 못 잡았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오인환 : 그렇죠. 지금 한국 국민들의 대미의식을 포함해서 세계화 의식은 이미 세계 톱클래스에 가 있는 것 아닙니까? 네티즌은 세계 톱 수준이거든요. 그러니까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알고 움직여야 한다, 그러니까 CEO들은 자기가 밀고 가면서 따라와라 이렇게 되는 건데, 대통령은 밀고 가면서 당신들 따라오라고 하면 안 됩니다. 국민들이 원하는 게 뭐니까 내가 이렇게 가겠습니다. 그러니까 순서가 바뀐 거죠.

박인규 : 이번 책에서도 고종 이래 우리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은 명분론과 실리론의 조화다,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오인환 : 우리나라가 명분론을 찾는, 소외 명분론의 나라라는 것은 세계 그런 유례가 없는 그런 나랍니다. 왜 명분론이 강했느냐, 성리학의 영향 때문에 그런데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조선왕조 이래 명분론으로만 살아왔느냐, 그런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거기에 맞서고 균형을 찾게 해주는 실리론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조선왕조 이래 지금까지 나라가 어지러워질 때는 명분론과 실리론이 한 쪽이 찌그러졌을 때 꼭 혼란이 오고 어려운 시기가 왔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런데, 그래서 명분론과 실리론이 그때그때 내용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균형을 맞춰가야 하는 게 한국으로서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면 이명박 시대에 와서 명분론과 실리론은 뭐냐, 실리론은 말할 것도 없이 창조적, 실용주의를 앞세운 이명박 대통령이 가는 노선을 실리론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나라를 좀 더 잘 사는 나라,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 실리론입니다. 그러나 촛불집회는 어떤 면에서 명분론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잘 살아보자는 건 좋은데 왜 우리의 검역조건을 그렇게 쉽게 포기 하느냐, 안 된다, 그래서 충돌이 생긴 것이고 100일 만에 개각을 하는 사태가 생긴 건데요, 문제는 이것을 나쁘게만 볼 게 아니라 명분론과 실리론이 서로 보완점을 찾아가는 것이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명분론이 주장을 함으로 해서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이 대통령이 얻게 된 거 아닙니까? 그래서 미국서도 무시하듯 하려면 한미 관계를 포함해서 여러 가지 파장이 올 수 있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도 양보하고 있는 거고. 만약에 촛불집회가 없었으면 미국이 그렇게 전향적인 자세로 오기는 어렵지 않았겠느냐, 생각할 수 있는 거죠. 반대로 실리론의 입장에서 명분론의 도움을 잘 받아들여서 잘 흡수해서 국면을 잘 수습을 해야 되고, 촛불집회의 명분론도 이명박 대통령의 실리론이 현실적으로 개선이 가능한 수준에 왔다고 하면 자제를 보여야된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 ⓒ프레시안

박인규 :
명분론과 실리론이 어느 한 쪽이 어느 한 쪽을 이기려하지 말고, 서로 균형을 맞춰서 국익을 최대화하는 데서 타협을 이뤄야한다는 말씀이신데, 지난 십 년 동안의 연구와 사색 끝에 조선왕조의 리더십을 총체적으로 보는 두 권의 책을 내셨는데요,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시는지, 마지막으로 마무리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인환 : 지금까지 위기관리에 관한 책을 썼듯이 초대 대통령 이승만부터 그 이후 노무현 대통령, 또 이명박 대통령 시대까지를 위기관리의 관점에서 접근해보려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나이도 있고 해서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박인규 : 요즘 70은 청춘이라고 하는데요, 가능하실 것 같습니다.

오인환 : 감사합니다.

박인규 : 말씀을 듣고 보니까 무엇보다도 균형, 어느 한 쪽이 이기는 게 아니라. 예전에 동양의 성현들은 중용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무엇보다도 전임자들의 정치 경험, 이런 것들이 전수가 잘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도 많은 조언을 해 주시고 정치가 잘 되도록 역할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최근 저서 <고종시대의 리더십>을 출간한 오인환 전 장관을 초대해, 고종 시대의 리더십과 위기관리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지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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