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에 따르면 이 아파트에서 30여 년째 경비용역을 맡고 있는 한국주택관리는 이달 중순께 60세 이상 경비원 23명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그러다 이 중 시말서를 한 번도 쓰지 않은 8명과는 계약을 연장하고 나머지 15명에 대해서는 31일자로 계약 해지를 확정했다.
노조는 해고의 표면적 이유가 된 '시말서'는 정당한 해고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노조 측은 "한 노동자는 자신의 차에 생긴 흠집을 잠시 보고 있다가 근무 태만으로 찍혀 시말서를 썼으며, 또 다른 사람은 경비초소 안에 있는 형광등을 만진 일이 무단 근무환경 변경으로 문제시되어 시말서를 썼다"고 밝혔다.
민형기 신현대아파트 노조위원장은 "해고된 노동자들은 이 아파트에서 길게는 십수 년씩 일했던 사람들이다"라며 "그런 노동자들에게 사소한 문제로 시말서를 쓰게 하더니, 그를 빌미로 해고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 31일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서 집단 해고된 경비노동자들이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단지 내 굴뚝에서 고공 농성에 돌입했다. ⓒ프레시안(최하얀) |
아울러 노조 측은 이번 집단 해고 사태의 발단은 지난 3월 신현대아파트가 경비직 상한 나이를 65세에서 62세로 낮춘 데 있다고 전했다.
신현대아파트는 그간 60세 이상의 경비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촉탁직 형태로 65세까지 간접 고용해왔다. 그러다 지난 3월 입주자대표가 김 모 변호사로 새로 바뀌며, 촉탁직을 62세로 제한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고용계약이 만료되는 12월이 되자, 60세 이상 노동자 23명 가운데 시말서를 쓴 바 있는 15명을 우선 해고했다는 게 노조 측의 설명이다.
노조 측은 이런 정년 단축 시도에 대해 "사회 흐름에 역행하는 결정"이라며 반발했다. 서울일반노조 박문순 법규국장은 "고령화 시대를 맞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물론, 정치권이 앞장서 정년을 연장하겠다고 말하고 있다"며 "신현대아파트는 이런 사회적 흐름에 완전히 역행하는 정년 축소를 결정했다"고 비판했다.
노동조합 결성한 해에 집단 해고, "노조 파괴 목적 아니냐"
이와 함께, 이번 경비원 집단 해고는 올해 설립된 경비원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는 신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이 지난 3월 아파트 경비원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비슷한 시기에 입주자 대표가 새로 바뀌며 갑자기 정년이 단축되었으며, 급기야 고용 계약이 만료되는 연말이 되자 14명이 집단 해고되는 상황이 연출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민주노총 서울본부 법률지원센터 배현의 노무사는 "지난 3월 노동조합이 설립된 후, 하청(한국주택관리)과 원청(신현대아파트 입주자대표 등)에 꾸준히 단체협약 체결과 대화를 요청했으나 전부 묵살됐다"고 전했다.
배 노무사는 "무려 30년이나, 경비 용역을 맡은 한국주택공사는 노동조합과 교섭해본 적이 없어 준비 시간이 필요하단 취지의 의견을 전달했다"며 "지금도 업체는 입주자대표의 입만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업체는 그간 신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을 형식적으로만 고용하고 있었을 뿐, 임금 지급, 채용 면접 권한 등은 아파트 입주자 대표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배 노무사는 "하청을 통하지 않고, 원청이 직접 임금 지급을 하는 등의 행위는 불법도급으로 볼 여지가 있다"며 "그러다 전직 부장판사인 김 모 변호사가 입주자 대표가 되자, 불법 소지를 알아보고, 고용 주체를 하청으로 명확히 하는 작업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작업의 일환으로 신현대아파트 입주자대표 측은 지난 3월 입주자들에게 경비 노동자 고용 형태와 관련한 담화문을 발표했다. 담화문은 경비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한 만큼, 아파트가 직접 사용자로서 교섭할 여지를 없애기 위해 고용 주체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노조 측은 이날 오후 3시께 바람막이용 비닐을 굴뚝 위로 올리려고 시도했으나, 경찰의 제지로 실패했다. 강남경찰서 정보과장은 "누가 올라가라고 했느냐"라며 "내려오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말해 노동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민형기 신현대아파트 노조위원장은 "날씨가 많이 추워 위에 있는 사람들이 걱정된다"며 "한시라도 빨리 해고가 철회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굴뚝에 올라간 경비노동자 민 모씨. 이날 밤 기온은 영하 8도를 밑돌았다. ⓒ프레시안(최형락) |
▲ 굴뚝 아래 한 편에 추락을 대비한 에어쿠션이 설치돼 있다. 그러나 사회 안전망은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 해고된 노동자들이 추운 겨울에도 고공농성을 벌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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