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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정체성' 뚜렷한 한국, 선진국 될 조건 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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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문화적 정체성' 뚜렷한 한국, 선진국 될 조건 충분"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6/12] '세계사 산책' 연재 끝낸 덕성여대 이원복 교수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 <가로세로 세계사>등 교양만화 저자로 잘 알려진 덕성여대 이원복 교수가 지난 2006년부터 한 일간지에 실은 '이원복의 세계사 산책' 연재를 마쳤습니다. 무엇보다 이원복 교수는 이번 연재를 통해 역사에 대한 폄훼를 바로잡고 싶었다고 강조하는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덕성여대 이원복 교수를 초대해 만화를 통해 바라본 역사의 흐름과 그의 만화 세계에 대해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덕성여대 이원복 교숩니다. 이원복 교수는 1946년 대전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다니던 중 1975년에 독일 뮌스터 대학으로 유학해서 시각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꿨고 같은 대학 철학부에서 서양미술사도 전공을 했습니다. 84년 한국으로 돌아온 후 현재까지 덕성여자대학교 산업미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 만화 애니메이션 학회장과 미국 얼바인 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했습니다. 대표작품으로는 천만 권 이상 팔린 만화 베스트셀러 「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를 비롯해.. 「가로세로 세계사」,「만화로 떠나는 21세기 미래여행」, 「나란나란 세계사, 도란도란 한국사」, 「신의 나라, 인간의 나라」등이 있으며, 1993년에는 우리나라 만화 문화 정착에 기여한 공로로 제9회 눈솔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박인규 : 저희가 한 2년 전에 한 번 모셨는데 또 모시게 됐습니다. 바쁘신데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원복 : 감사합니다.

박인규 : 이원복의 세계사산책이라는 만화를 시작하신 게 2006년 말이죠?

이원복 : 2006년 9월경으로 기억합니다. 한 2년 반 정도 연재했죠

▲ ⓒ프레시안

박인규 :
한 70여회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연재가 쉬운 작업은 아닌데 끝나고 나니 후련하시죠?

이원복 : 모든 연재라는 게 꼭 해본 사람은 느끼는 거지만 일단 끝나면 허전해요. 하지만 그 다음에 엄청나게 후련해요

박인규 : 시원섭섭하다

이원복 : 그렇죠. 시원섭섭하다는 것이 아마 모든 연재를 끝난 작가나 자녀들 결혼시킨 부모들의 심정이나 같을 겁니다.

박인규 : 네. 세계사 하면 보통 히스토리, 역사를 생각하지만 한자로는 일 사자를 써서 역사기도 하면서 시사기도 하면서... 일종의 에세이 같은 것으로

이원복 : 그렇죠. 역사에세이라고 할까, 아니면 세계에 물건 사자를 쓰면 세상이야기 아닙니까. 역사에 꼭 한정되는 게 아니라 역사이기도 하고 세상 현재 돌아가는 얘기도 하면서 메뚜기처럼 자유롭게 뛰어다니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세계를 역사와 세상을 통해서 반추해 보자는 의도였겠죠.

박인규 : 2006녀 9월에 일간지를 통해서 역사와 세계사에 대한 에세이 같은 만화를 그리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까?

이원복 : 그 계기라는 것이, 어느 작가가 만화를 연재하고 싶어도 신문사가 필요 없다고 얘기하면 안 되는 건데, 이 경우는 신문사에서 제의가 왔어요. 그쪽 편집국장 얘기가 요즘 젊은 어머니들이 어린 자녀들이 학교에 와서 어머니한테 질문하기를, 우리나라의 대한민국에 정통성이 있는 게 아니라 북한에 정통성이 있다는데 그거 어떻게 된 겁니까? 그런 식으로 교육받고 편향된 교육을 받은 자녀들에 대해서 뭔가 해줄 말이 없다는 거예요. 자기 자신이 역사에 대해서 깊은 그런 게 없으니까. 그래서 우리가 공감한 게 이대로 가면 안 되겠다. 딴 건 몰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내 나라, 내 조국의 정통성마저 부정하는 것은 우리가 그냥 보면 안 되겠다 해서 그런 취지 아래 연재를 시작하게 된 거죠.

박인규 : 요즘 역사 바로잡기라고 해서 대안교과서도 나오는데 이미 그때부터 그런 움직임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이원복 : 네. 물론 역사 바로잡기라고 하면 두 가지 시각이 있겠지요. 좌파적 시각 내지는 우파적 시각이 있는데 역사 바로잡기는 꾸준히 앞으로도 진행되겠습니다만. 과거 몇 년 동안 어느 정도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겠지만 약간 편중된 면도 없지 않았어요. 예를 들어 친일파 명단을 작성하거나 할 경우 물론 친일한 사람들은 우리가 정리를 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사실상 그런 논리에 의거하면 일제 36년 동안 끈질기게 만주에서 독립전쟁을 안 한 사람은 전부 친일파가 될 수 있는 오류도 있거든요. 그런 건 곤란하다는 겁니다.

박인규 : 일본에서도 자기 역사에 대한 자학을 그만 두자, 해서 그런 논쟁도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김대중 노무현 정권 들어서 과거사를 바로잡자는 운동이 있는가 하면 과거사에 대해 지나치게 자학적이 아니냐, 여러 가지 논쟁이 많은데. 그렇다면 이원복 교수님께서는 우리 역사에 대해서 자부심을 좀 더 가져야 되는 쪽이다.

이원복 : 당연히 그렇죠. 내가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제가 외국에 상당히 오랫동안 머물렀고 해외여행을 자주 합니다.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대한민국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인가 뼈저리게 느끼거든요. 그걸 정작 한국 안에 있는 국민들이 모른다는 것을 상당히 안타깝게 느끼고 있습니다.

박인규 : 우리들이 갖고 있는 장점이랄까 위대함을 스스로 안 보려 하고

이원복 : 그리고 과거에 얽매여 있는 부분. 한 가지 제가 불만스러운 것이 아직도 광복절이란 말을 쓰는 거예요. 잘못된 건 아닌데, 우리가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고 일제에 강점된 건 36년인데, 해방된 게 벌써 60년이 넘었고, 그 짧은 것이 아직도 광복이라는 것이...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 일본 콤플렉스가 묻어있는 거 아니겠어요? 저는 그런 것이 싫어요. 그래서 앞으로 이것이 광복절보다는 이 날을 바꿔서 건국기념일로 바꿔야 되지 않겠느냐. 그게 제 개인적 견해입니다.

박인규 : 건국기념일은 48년이죠. 광복절보다는 전향적인 쪽으로 나가야 된다.

이원복 : 네. 그리고 사실 광복절도 우리 힘으로 했다고는 꼭 말하기 어려운 것이 세계정세에 의해서 2차대전이 끝나면서 우리에게 주어졌던 상황인데, 그것에 대해 너무 광복절 광복절 얘기하니까 어떻게 우리나라 전체 역사로 볼 땐 조금 부끄러운 면이 있어요

박인규 : 말하자면 45년 8월 15일보다는 48년 8월 15일을 더 기념해야 된다.

이원복 : 제가 볼 땐 그것이 우리에게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해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당장 또 일각에서는 그건 분단의 시작이 아니냐, 이런 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씀하시겠어요?

이원복 : 어떻게 말한다기보다도, 우리에게 중요한 건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걸 다 우리가 인정해 줘야지요 상대방 견해를

박인규 : 우리의 장점을 대외에 알리는 쪽으로.
지난번 인터뷰에 나오셨을 때, 먼 나라 이웃나라라면 우리가 배우고 본받고 싶은 강대국 중심 이야기라면 가로세로 세계사는 우리가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조건들을 말씀하셨는데. 이번 세계사 산책에서도 우리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강조하신 건가요?

이원복 : 세계사산책이라는 연재만화에서는 우리가 선진국이 되자 어쩌자 그런 거창한 것보다도, 작은 테마를 가지고 한 번씩 그냥 일상인 것 같지만 과거사를 세계역사를 반추해 보면서 오늘의 현실을 좀 객관적으로 돌아보자는 의미가 컸죠

박인규 : 그리고 가급적 긍정적이고 객관적으로 바라보자

이원복 : 그렇죠. 긍정적이고 우리 역사에 대해서 따뜻한 눈으로, 그리고 미래지향적으로 바라보자는 의도였습니다.

박인규 : 만화를 연재하시면 아무래도 거기에 대한 여러 가지 반응이 올 텐데 그걸 받으면서 우리가 역사를 보는 눈, 우리 역사의 흐름 이런 데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이 새로우셨을 것 같아요

이원복 : 그런데 제가 반응에 대해서는 신경을 많이 못 씁니다. 왜냐면 작가가 자기가 쓴 것에 대한 반응에 민감하면 거기 얽매여서 자기 생각을 밀고 못 나가요. 그래서 저는 대단히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에 대한 어떠한 댓글도 보지 않습니다.

박인규 : 일단 하실 때는.
우리나라 해방 이후의 역사를 많은 사람들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쳤고 이제는 선진화다. 물론 선진화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다르지만. 선진화에 대해서는 일단 말씀들이 의견들이 일치하는 것 같아요. 이교수님 보시기에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될 만한 여러 조건들이 돼 있습니까?

이원복 : 제가 볼 때는 우리나라가 선진화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경제적 여건이나 지하자원이나 인적자원보다도 정신적 자원인데요. 제가 선진국이 될 때 가장 중요한 것으로 드는 게 문화적 정체성, 문화적 자부심입니다. 지금까지 선진국이 돼 있는 나라 치고 자기 문화에 대한, 자기 민족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 정체성이 없는 나라가 없어요. 그런 면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충분히, 심지어 미국에게도 지지 않으려고 하는 일본에게도 지지 않으려는 이유가, 우리가 문화적으로 자신있기 때문에 너희들이 비록 힘이 있지만 우리는 결코 굴복할 수 없다, 하는 정신력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볼 때는 중요한 선진국으로 갈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는데 한 가지 문제라면 다른 나라에 없는 법이 하나 있는데 이것이 국민정서법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게 좋은 면으로 작동할 수도 있고 발목을 잡는 면으로 작동할 수 있는데 다른 나라의 지도자는 비전과 소신이 있으면 국민을 잘 이끌어서 아일랜드 같이 제일 못 살던 나라에서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로 이끌 수 있는데 한국의 지도자는 이런 비전과 소신 외에도 국민정서법을 잘 아우르고 설득할 수 있는 하나의 정치력을 아울러 가져야 된다고 봅니다.

박인규 : 말씀 들으니까 요즘 촛불집회 생각이 아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럽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적어도 우리만의 문화가 있고 자부심이 있는데

이원복 : 그걸 보면서 우리가 월드컵 때 붉은 악마들이 거리에 나온 것과 촛불집회에 나온 것과 상당히 비슷한 점이 있어요. 우리 국민들이 한 번 몰린다고 하면 대단한 에너지가 뭉치거든요. 그것이 옳은 방향이냐 나쁜 방향이냐, 그건 나중에 평가가 나오겠죠. 그러나 뭉치는 힘이 감성적인 면으로 흐르면 곤란한 면은 있죠. 그래서 앞으로 촛불집회 같은 걸 보면서는 우리 대한민국만이 가질 수 있는 에너지라는 면은 긍정적이지만 만약 이것이 하나의 그리스식 직접 민주주의의 물꼬가 된다면, 그리스는 1,2만 명밖에 안 되지만 5천만 명이 전부 직접민주주의를 한다면 이건 하나의 통제불능, 카오스상황이 될 수 있거든요.

박인규 : 결국 우리 국민에게 굉장한 국민적 에너지가 있는데 어떻게 생산적으로 이끌어가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이원복 : 그렇죠. 중요한데 이런 문제들을 잘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분수령으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박인규 :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세계사산책에서도 닫힌 민족주의가 아닌 열린 국민주의로 가야 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우리가 그럼 약간 닫힌 민족주의의 단계에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이원복 : 그런 단계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가장 심한 단계죠. 민족주의라는 말이 19세기 일본사람들이 내셔널리즘을 잘못 번역한 거예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민족이란 개념은 언어, 역사, 신화... 그리고 하나의... 혈통은 빼고. 역사, 문화, 언어, 그리고 신화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말하는데, 거기 어느 나라의 내셔널리즘에도 혈통개념은 안 들어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3천년 동안 내려오는 하나의 개념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민족주의, 민자가 들어가는 말로 번역되다 보니 혈통민족주의가 돼 버리니까 배타적 폐쇄적이 될 수밖에 없어요.

박인규 : 알게 모르게 인종주의 비슷한 것을

▲ ⓒ프레시안

이원복 :
지금 우리나라도 외국인 100만인 시대고, 한국인과 결혼해서 한국국적을 취득한 혈통이 많은데 바로 혈통주의 때문에 그들을 한국사람으로 인정 안 한다고요 아직도. 이런 걸 보면 우리가 가장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제일 먼저 깨야 될 것이 바로 이 민족주의라는 단어가, 혈통민족주의가 아니라 국민주의라는 대체어로서 다시 생각해야 된다고 봐요

박인규 : 피에 의한 집단의식이 아니라

이원복 : 그 것이 아니라, 그 시대는 지났어요

박인규 : 만화 중에, 역사의 상처라는 부분에서... 역사의 상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게 예의다

이원복 : 제가 언급한 건 우리나라 역사가 아니라, 외국인과 얘기할 때 상대방 나라 역사를 짚지 않는 것이 우리의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는 의미였죠. 예를 들어 영국사람한테 식민지 시대 때 너희들이 못된 짓 한 거.. 내지는 프랑스사람한테 알제리 전쟁 얘기하고 특히 독일사람한테 나치 히틀러 얘기하면 그 사람들 상당히 당황해 하죠. 그래서 역사의 상처를 짚지 말라는 건, 우리 역사보다도 국가간의 관계에서 상대방 나라의 역사를 들추지 않는 것이 상대방 나라 사람들에 대한 예의다 그런 얘기죠

박인규 :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일본에 가서 과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말자. 미래를 바라보자. 했는데 독도 문제를 다시 교과서에 싣는다고... 굉장히, 특히 일본에 관해서는 종군위안부 문제라든가 과거사 문제가 있다 보니 그건 계속 추궁해야 되는 거 아니냐

이원복 : 독도문제는 제가 볼 때는 과거사 문제가 아니고 영토 문제고, 그것은 우리가 언급하면 할수록 손해인 것 같아요. 그냥 우리가 가지고 가만히 있으면 그쪽에서 자꾸 들먹거리고 자꾸 문제 삼으면... 그냥 지나가지

박인규 : 예전에 노무현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내 부인이면 부인이지 자꾸만 부인이다 부인이다 그럴 필요 없다. 그랬는데요 시마네현에서 한 번 나오니까 우리도 막...

이원복 : 일본에도 우익 보수주의자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계속 문제를 물고 늘어질 겁니다. 그런데 일일이 대응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그러면서 이게 국제문제화 되면 국력경쟁이 되는 거고 그러다 보면 오히려 불리한 경우가 올지도 모르기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 말씀대로 내 부인이면 부인이지 왜 자꾸 언급하느냐. 독도는 우리땅 그걸로 끝내자는 거죠.

박인규 : 그 외에 종군위안부 문제라든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특히 야스쿠니 문제 그런 부분들은 저희가

이원복 : 야스쿠니 같은 경우는 우리가 조금 달리 생각해야 될 것 같아요. 상당히 언짢고 기분 나쁜 문제죠. 전범에 대해서 경례를 한다는 게. 그런데 일본은 우리와 종교세계가 전혀 다릅니다. 일본에는 지금도 한 800만의 신이 있어요. 우리나라는 신의 개념이 없고 있다면 기독교의 유일신이기 때문에 사실상 신은 더 갓이라고 하는 전능하신 하느님 한 분인데, 일본에는 바람신 무슨 신, 그리고 일단 사람이 죽으면 다 신이 돼요. 그래서 죽은 사람을 모시는 것이 신사인데 거기 12명인가 13명인가 1급 전범이 같이 있다는.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우리 전통이기 때문에 그 많은 귀신들에 대해서 국가 수반이 경례를 한다. 그런데 종교개념이 다른 중국이나 한국에서 볼 때는 말도 안 된다고 하지만 일본사람이 볼 땐 우리가 이해 안 되는 거죠. 여하튼 국제적으로 볼 때 어쨌든 우리가 그 사람들 종교문제까지 다 인정해 줄 필요는 없는 거고, 기분 나쁜 건 나쁜 거죠.

박인규 : 우리가 선진국이 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확실한 조건으로 문화적 정체성이 뚜렷하고 자부심이 있다. 다만 국민들이 분출하는 에너지를 어떻게 생산적으로 끌어가느냐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 외에 아무래도 선진화가 많이 얘기되고 있으니까, 연재하시면서 우리가 선진화되려면 이것도 고쳐야겠다 하는 게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이원복 :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돼야 하지 않겠는가. 상식과 일반적인 준법정신 같은 거. 지난 얘기지만 우리나라에는 헌법이 있고 그 위에 떼법이 있고 국민정서법이 있다는 우스개소리가 있는데, 법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지 아직도 많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는 선진국으로 갈 때는 선진국의 개념은 바로 그 문화정 정체성 플러스 준법정신이에요. 딴 거 아닙니다. 국민소득이 다가 아니고. 쿠웨이트 같은 나라 국민소득이 4만 달러, 5만 달러 돼도 선진국에 안 넣어주는 이유가, 모든 부를 왕이 다 차지하고 상식이 안 통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니까 안 쳐주는 거거든요. 그래서 상식과 준법정신, 이런 것들이 교육을 통해서도 정착해가는 문화가 와야겠습니다.

박인규 : 상식과 법이 통하고, 무엇보다 합리적인 문화가... 쉬운 것 같으면서 잘 안 되더라고요.
이원복 교수님은 국내에 거의 유일한 교양만화가로 알려져 있는데요. 상당히 일찍 만화를 그리셨더라고요.

이원복 :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알바로 시작했으니까 햇수로는 46년째입니다.

박인규 : 그때부터 만화에 재질이 있으셨던 겁니까?

이원복 : 재질이 있다기보다도 우연하게 어린이 신문사에서 저임금의, 외국만화에 비치는 종이 대고 베끼는 작업부터 시작했어요

박인규 : 번안만화 같은 건가요?

이원복 : 번안도 아니고 그냥 옮기는 거. 그때는 어린이신문이니까 만화는 필요하지만 일반 작가들은 값이 비싸니까

박인규 : 대학 가서는 건축학을 하시고 독일 가서는 디자인을 하셨는데, 사실 요즘은 만화가의 위상이 많이 올라갔지만 옛날에는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거고 격이 낮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교수를 하시면서 만화를 그리셨어요. 그때 좀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이원복 : 어려움이 많았죠. 제가 처음 87년도에 먼 나라 이웃나라라는 만화책을 출판하니까 최초로 인터뷰를 온 데가 어느 무가지였던 장터신문 같은 데서 인터뷰 요청이 왔어요. 그런데 인터뷰의 포커스가, 만화의 콘텐츠가 아니라 어째서 교수가 만화를 그렸느냐였어요.

박인규 : 교수님이나 되시는 분이 하찮은 만화를 그린다.

이원복 : 그래서 매스컴의 생리라는 것이 언론에서 한 번 터뜨리면 계속해서 줄줄이 인터뷰가 오지 않습니까? 그래서 처음 87년 89년까지 거의 2,3년 동안 모든 인터뷰의 내용이 어떻게 교수가 만화를 그리냐....

박인규 : 먼 나라 이웃나라 같은 걸 만화로 그려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신 겁니까?

이원복 : 제가 75년에 독일에 소위 유학이랍시고 갔는데 그때만 해도 굉장히 외화가 귀하고 외국 나가기 어렵던 시절이었는데, 순진한 마음에 그때 갔을 때 너무 많은 문화적 충격과 부러운 것이 많고, 그러다 보니까 이건 나 혼자 보기 아깝다. 우리나라 어린이들한테 잘 사는 모습, 왜 잘 사는가를 한 번 보여줘야겠다 해서 시작한 게 그 만화였죠

박인규 : 75년에 생각하셨으면 한 12년 동안 구상하시고 나오신 거네요

이원복 : 아니죠. 75년에 그걸 만화로 시작한 것이, 새소년이라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어린이 잡지에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이라고 월간연재했습니다. 75년에 가자마자 시작한 건데, 연재를 쭉 하면서 처음에 한 걸 읽어보니까 순 엉터리 투성이더라고요. 처음에 와서 흥분해서 감동해서 쓰면 나중에 세상을 살다 보면 이게 그게 아닌데, 내가 뻥을 한 게 아니냐. 그래서 그걸 많이 수정해서 새로 만든 게 먼 나라 이웃나라죠

박인규 :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신 거군요. 먼 나라 이웃나라에서 가로세로 세계사, 세계사산책, 요즘은 와인까지 진출하셨어요. 최근에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이란 책도 내셨는데 와인을 특별하게 좋아하십니까?

이원복 : 와인 좋아하죠. 굉장히 좋아합니다.

박인규 : 와인을 좋아하시다 보니까 만화를 만화가 나오게 된 건가요?

이원복 : 당연히 그렇죠. 그리고 또 와인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저희 연배.. 우리나라 5,60들은 어느 술이든 없어서 못 먹고. 폭주가 미덕이던 시대였거든요. 세상의 먹어서 죽는 거 외에는 다 먹어본 세대기 때문에 다 먹어보니 역시 와인이 제일 부드럽고 알콜도수도 적당하고 좋더라고요

박인규 : 와인이 건강에 좋다고 한 4,5년 전부터 열풍이 분 걸로 기억하는데요 이교수님은 언제부터 와인에 빠지신 겁니까?

이원복 : 와인이 건강에 좋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프렌치 파라독스라고 해서, 미국사람들이 70년대에 연구해 보니까 미국사람, 프랑스사람 똑같이 기름진 거 먹고 왕창 마시고 먹는데 왜 자기네들은 뚱뚱하고 빨리 죽고, 프랑스 사람들만 장수하고 날씬하냐. 그래서 레드와인을 마셔서 그렇다는 건데. 제가 남불에 살면서 일찍 죽으면 그게 이상한 거예요. 남부프랑스 마르세유쪽에, 저 푸른 바다, 빛나는 태양에, 솔솔 부는 바람에, 그리고 늦으막히 일어나서 일 조금 하다가 집에 들어와서 밥해먹고 낮잠 한 숨 자고 저녁때 와서 밥먹으러 나가서 춤추고 놀고 또 가서 자고, 스트레스 없이 편하게 살면서 레드와인 마시고. 그러면서 일찍 죽으면 그게 이상한 거죠.

박인규 : 삶의 환경 때문이지

이원복 : 스트레스 없는 웰빙라이프가 바로 장수비결이지 레드와인을 많이 먹으면 안 되죠

박인규 : 제가 알기론 많은 분들이 와인을 건강에 좋다고 마시는데, 건강에 좋은 게 아니라면 와인은 왜 좋은 겁니까?

▲ ⓒ프레시안

이원복 :
와인의 매력은 역시 잘 아시다시피 위스키는 우리가 마실 수 있는 종류가 제한돼 있잖아요. 2,30종 많아야. 와인은 제대로 마시자면 최소한 10만 종류가 있으니까요. 평생 마셔도 못 마시죠. 그리고 또 이것이 빈티지라고 해서 제조연도마다 따지면 거의 100만 종류가 있죠. 그럼 그걸 평생 다 마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거고, 그러니까 늘 새로 만난다는 느낌, 다양함과 놀라움. 서프라이즈 하는 즐거움도 있고. 그리고 와인은 각 지역마다 전통과 문화가 있으니까 그런 하나의 문화적인 음료라는 면에서 사랑을 받는 것 같습니다

박인규 : 그런데 요즘에는 와인스트레스라는 말도 나오고 한국사람들은 와인을 입으로 마시는 게 아니라 머리로 마신다. 우리 와인문화에 좀 문제가 있나요?

이원복 : 문제가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대한민국 국민이 세계에서 제일 와인을 늦게 만났어요. 와인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피기 때문에 기독교 문화에는 반드시 빠질 수 없는 게 와인이거든요. 전 세계가 기독교도들에 의해서 식민지화 됐기 때문에 와인문화가 전 세계에 몇백 년 전부터 퍼졌는데... 일본과 한국은, 일본은 명치유신에 의해서 외치를 안 받았고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됐기 때문에 서양의 지배를 안 받아서 와인을 모르다가, 죽 와서 그 다음에는 가난해서 몰랐고 2000년대 와서 경제력이 늘어가면서 세계적으로 와인붐이 부니까. 이제 와서 와인을 만나니까 모든 것이 우리는 압축해서 성장하고 접근하니까 우리가 지금 와인에 대해서 스트레스 받고 공부하는 게 뭐냐면 서양에서 100년 150년간 이뤄온 와인문화를 1년 만에 압축소비 접근하는 거죠. 그러니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죠.

박인규 : 그렇다면 와인을 어떻게 하면 가장 잘 즐길 수 있나요? 그것도 기본적으로 뭘 좀 알아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이원복 : 와인을 즐기는 건, 그냥 내가 내 돈 주고 마시는데 맛없으면 맛없는 거고 맛있으면 맛있는 거고. 주인의식을 갖고 마시면 그게 좋은 거죠.

박인규 : 주인의식을 가지고 내 입맛에 맞는 걸 골라라.

이원복 : 좋은 와인 딱 마시면 옆사람이 좋다고 하면 자기도 따라서 좋다고 하죠. 안 그러면 교양없는 사람 같아서 눈치보게 되지 않습니까. 그건 바람직한 게 아니죠.

박인규 : 그래도 와인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이원복 교수님이 쓰신 와인의 세계와 세계의 와인을 봐라. 요즘도 계속 마시시나요?

이원복 : 네. 일주일에 한 서너 병은 마시죠.

박인규 : 먼 나라 이웃나라와 가로세로 세계사는 연재가 끝나신 겁니까?

이원복 : 연재라기보다도 작업인데, 단행본인데 두 가지가 다 같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죠. 먼 나라 이웃나라는 더 이상 안 만든다고 했는데 가만해 보니까 중요한 세 나라가 다 빠졌더라고요. 특징이 뭐냐면 먼 나라 이웃나라는 나라별이고 가로세로 세계사는 지역별인데, 지역별은 앞으로 캐나다, 오스트리아, 뉴질랜드를 묶어서 낸다든지, 얼마든지 가능성은 많은데 먼 나라 이웃나라 같은 경우는 제일 중요한 스페인이 빠졌더라고요

박인규 : 스페인이 왜 중요합니까? 왕년의 제국이라서?

이원복 : 왕년의 제국에다가 세계를 1차적으로 포맷팅한 게 스페인이었죠. 전체 남미가 브라질을 제외한 전체가 스페인어권 아닙니까. 미국도 남부가 거의 스페인어권으로 편입돼가고 있고. 그 다음 또 빠진 나라가 러시아가 빠졌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용기와 건강과 시간이 남아 있다면 중국편을 한 번 다뤄보고 싶어요.

박인규 : 이원복 교수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하실 일이 남아있어서 좋을 것 같은데요,

이원복 : 행복하죠

박인규 : 혹시 먼 나라 이웃나라 외에 앞으로 만화작업으로 그리고 싶은 작품이 혹시 있으시든가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면 마무리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원복 : 남은 시간도 사실 얼마 안 되고, 살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은데

박인규 : 아직 그래도 30년은 하시는 거 아닌가요?

이원복 : 감사합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시간적인 공간은 많지 않으니까 이제 두 가지 일에만 정진하자 그래요. 먼 나라 이웃나라, 가로세로 세계사

박인규 : 만화를 통해 재미뿐만 아니라 교양과 지식을. 앞으로도 많은 좋은 작업 부탁드립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이원복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덕성여대 이원복 교수를 초대해 만화를 통해 바라본 역사의 흐름과 그의 만화 세계에 대해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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