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도 그럴 것이 시민들은 조선일보 사옥 정문에 "조선일보 문닫았습니다"라는 스티커를 붙이는가 하면 정문 앞에서 즉석 '조중동 폐간'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시위대가 이들 신문사를 향해 "조중동은 폐간하라"고 외친 것도 수십번. 11일 이들 신문 지면에서는 국민들의 거대한 분노를 직면한 이들 신문의 당혹감이 그대로 묻어났다.
시민들의 목소리는 거의 보도하지 않아
이들 신문은 일제히 1면에 서울 세종로 사거리부터 시청 앞 광장까지 가득 메운 시위대의 모습을 크게 배치하고 이날 시위를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6.10항쟁 21년 후 '촛불'로 뒤덮인 대한민국 심장부 / '쇠고기 수입 반대' '정권 퇴진' 요구"라는 제목을 달았고 <중앙일보>는 "태평로 뒤덮은 촛불 …6.10항쟁 이후 최대 시위", <동아일보>는 "'6.10 촛불' 최대규모 시위"라고 했다.
이들 신문들이 촛불시위를 크게 보도한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긴 하나 이들 신문들은 촛불 시위대의 폭력 여부, 참석자 분석, 촛불시위에 부정적인 외신에만 집중했을 뿐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이명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또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대는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 추산 80만명, 한미FTA 비준 촉구 시위대는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추산 1만 여명이 모여 그 규모가 비교가 되지 않았는데도 "촛불 vs 태극기…둘로 쪼개진 6월"(<동아>), "보수단체는 '국민선동 말라' 맞불집회'"(<중앙>), "보수 대 진보 간의 대립양상이 나타났다"(<조선>)이라며 여론이 진보진영 대 보수진영의 대립구도로 몰아가기도 했다.
촛불 때문에 국가 위기?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일 때마다 이들 신문의 단골메뉴로 내놨던 '국가위기론'도 다시 나왔다.
<조선일보>는 이날 "항의표시는 충분히 했다…이제 정부를 지켜보자"는 사설에서 "10일 서울 도심과 전국 각지의 촛불집회를 지켜본 국민의 심정은 착잡했을 것이다", "TV중계를 통해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벌어진 이 모습을 지켜본 세계 각국 사람들은 한국에서 무슨 혁명이나 반란이 일어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라며 "촛불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도 이제 생각하고 기다리고 지켜봐야 할 때가 됐다"고 촉구했다.
이 신문은 '전가의 보도'인 '경제위기론'을 꺼내 "경제가 가라앉으면 맨 먼저 가장 심하게 고통받는 것은 서민들"이라며 "이 상황속에서 청와대 · 정부 ·국회 등 국가 중추기능이 촛불에 손발이 묶여버렸다. 여기서 더 정부를 흔들어 국중운영능력을 손상시켜서는 국민 전체 특히 약하고 힘든 국민들이 심각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협박했다.
이 신문은 "촛불집회도 40일 전 가족끼리 소풍나와 잔치라도 벌이듯 했던 그 집회가 아니다"라며 다시 '반미세력' 선동론을 내놓기도 했다. 이 신문은 "이라크 파병 반대, 평택 미군기지 반대, FTA 반대 시위에서 봤던 '그때 그 얼굴' 들이 집회장 곳곳에서 이리뛰고 저리 뛰고 있다. 흥분한 인파가 전경들과 충돌했다가는 무슨 큰일이라도 날 수 있는 살벌한 분위기였다"고 했다. 과연 10일 촛불집회를 '살벌한 분위기'로 느낀 이들이 청와대와 한나라당, 조 중·동 기자를 제외하고 또 있었을까?
<동아일보>도 '국가위기론'을 꺼냈다. 이 신문은 "대한민국이 표류해선 안된다"는 사설에서 "정책 실패는 정책 실패로 받아들여야 촛불시위의 정당성도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라며 "정부에 실망하고 정부가 미워졌다고 해서, 국민이 합법적 선거를 통해 선택한 대통령을 '촛불과 구호의 힘'으로 퇴진시키려 한다면 이는 대한민국 헌정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신문은 "촛불시위가 대통령 퇴진 요구로 발전하는 것은 이명박 정권의 명운에 관한 문제이기 전에 60년간 어렵게 가꾸고 쌓아온 헌정질서의 기초를 흔드는 국민적 자해행위가 될 수 있다"며 "대한민국은 떠내려가선 안된다"고 했다.
<중앙일보>도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자"는 사설과 김종수 논설위원의 "촛불 너머로 휘청거리는 경제"라는 칼럼에서 같은 주장을 폈다. 이 신문은 사설에서 "21년 전 6.10항쟁 때 그 거리는 나라를 민주화로 이끌었는데 지금은 나라의 선진화를 막고 있다"며 "이제는 나라의 장래를 생각해야 한다. 언제까지 광장으로 몰려나갈 것인가. 이제 마음을 합치자"고 했다.
또 김종수 위원은 칼럼에서 "청계광장과 서울 시청 앞 과장에 모여든 촛불의 그늘에는 경기 침체의 음습한 불안감이 엿보인다"며 "그 촛불 너머로 신뢰가 무너진 정부와 함게 가라앉고 있는 경제가 보인다"고 했다.
조·중·동 논설위원들은 지난 40일간 무엇을 봤나
이들 신문에서는 지난 40일 간 이어진 촛불시위를 지켜보기는 했나 의심스러운 칼럼들도 속출했다.
<동아일보> 홍찬식 논설위원은 "'생활정치'라는 가면"이라는 칼럼에서 '일부세력의 선전선동' 주장을 다시 폈다. 홍찬식 위원은 "진보 진영은 '광우병'이라는 생활적 이슈가 이렇게 큰 반향을 일으킬 줄 몰랐을 것"이라며 "먹을거리 문제에 큰 기대를 갖지 않고 건드려 본게 대박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들은 어느새 '생활정치'를 버리고 1980년대의 '선전선동 정치'로 되돌아가는 모습"이라며 '이명박 퇴진', '한미FTA 반대' 등의 구호를 두고 "이쯤 되면 '생활정치'라는 구호는 권력을 얻기 위한 가면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어떤 '선전선동 정치'가 40일 간 대규모 촛불집회를 이어오고 10일 저녁만해도 80만 명이 모여 '이명박 퇴진' 구호를 외치게 할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중앙일보> 조현욱 논설위원은 '분수대'에 "스트레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과장된 헤드라인에 의한 불안'이라는 '스트레스'를 소개하면서 "오늘날 광우병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한국의 상황에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 아닌가. 그 원인은 언론매체들이 톱뉴스로 광우병 공포를 조장한 데 있지 않은가. 어제 서울 광화문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도 광우병에 대한 불안과 스트레스에서 촉발된 것이 아닌가"라고 했다.
그는 "사실 국민 건강에는 광우병 그 자체보다 광우병 스트레스가 더 해로울지 모른다"며 "인간광우병의 발병 확률이 극히 낮다는 과학적 상식과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온갖 현대적 질병의 원인으로 꼽는 요즘 여론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팔면봉'에서 "전국80개 시·군서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활활, 사회 밝히는 촛불인가, 제 집 태우는 촛불인가"라고 비꼬았다.
'호텔 장사' 걱정하는 <조선일보> 속보여
또 <조선일보>는 이날 사상 처음으로 시민들의 '<조선일보> 폐간 운동'을 보도하기도 했다. 이 신문은 이날 4면 구석에 "'조선일보 폐간하라' 일부, 본사 앞 시위"라는 1단짜리 기사를 내고 "촛불시위에 참가한 시위대 300여 명이 10일 밤 11시쯤 서울 정동 조선일보사 편집동 건물 앞으로 몰려와 '조선일보 폐간' 등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며 "시위대가 1시간 가량 편집동 출입구 쪽을 막고 시위를 벌이는 바람에 취재기자들의 출입이 봉쇄됐고 퇴근을 할던 일반 직원들도 발이 묶여 있었다"고 했다.
이 신문은 "'순정'으로 시작한 시위 점차 격렬해져" 기사에서도 "네티즌들은 '조중동에 광고를 내는 기업에 불매운동을 하겠다고 해서 광고를 끊도록 하자'며 조직적으로 기업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며 "때문에 '타깃'이 된 기업들은 업무를 보기 힘들 정도의 전화에 시달리기도 한다. 몇몇 기업들은 빗발치는 전화를 받다 못해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다. 이 대문에 '정당한 소비자 운동'이라는 주장과 '군부시절을 연상케 하는 광고탄압'이라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 신문은 또 '속보이는' 기사도 냈다. <조선일보>는 "교통통제…단축수업…조기퇴근 / 광화문 주변동네는 밤마다 고립"이라는 기사에서 "광화문 일대 호텔과 어학원들도 울상이었다"라며 서울프라자호텔과 웨스턴조선호텔이 객실 취소 등 촛불시위로 인한 피해를 입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사 계열사인 코리아나호텔은 이들 호텔보다 광화문 사거리에 더 가깝게 위치해있으며 10일 촛불집회에서도 이 호텔 입구까지 빼곡히 들어찬 시민들과 호텔 직원들간에 크고 작은 실랑이가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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