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좋은 보도사진 기자 되려면 국제적 분쟁지역에 뛰어들어야"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좋은 보도사진 기자 되려면 국제적 분쟁지역에 뛰어들어야"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6/03] 아프간 현지 취재로 국제적 상 받은 보도사진가 정은진씨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때론 한 장의 사진이 그 어떤 말보다 더 많은 감동과 의미를 전하기도 하는데요 세계 곳곳의 기아와 분쟁지역을 누비며 그곳 사람들의 일상을 담는 포토저널리스트 정은진씨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그녀는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미국의 침공 이후 혼란스러워진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 취재 해 세계적인 '페르피냥 포토 페스티벌'에서 수상을 했는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포토저널리스트 정은진씨를 초대해 그녀가 아프가니스탄을 선택했던 이유와 치열한 포토저널리스트의 세계에 대해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포토저널리스트 정은진씨입니다. 정은진씨는 1970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했고,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대 사진학과를 졸업했으며 미주리대학교 언론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미주 <한국일보> 뉴욕지사 기자와 <LA 타임스> 사진 인턴으로 근무했고 2004년부터 프리랜서 사진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4년 동남아 쓰나미를 촬영한 사진이 <뉴욕 타임스> 1면 톱으로, 한국에서 활동하는 미국 선교사의 인물사진이 <타임>지 아시아판 표지 사진으로 실리기도 했습니다. 2006년부터 아프가니스탄에 입국해 활동했으며 그 다음해.. 아프간 산모사망률 사진으로 세계적인 '페르피냥 포토 페스티벌'에서 '케어 인터내셔널 휴머니티 르포르타주' 그랑프리를 수상했고 올해 3월에는 '데이즈 재팬 국제보도사진대상'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지난 2월 자전적 에세이 '카불의 사진사'를 발간했으며, 4월에는 국내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박인규 : 바쁘신데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 2월 카불의 사진사라는 책도 내셨고 4월에는 국내에서 개인전, 지금 일본에서는 정은진씨의 사진을 비롯한 여러 가지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데요. 우선 궁금한 건 아프간이란 나라가 굉장히 위험한 걸로 알고 있는데 사진작가로서 아프간을 들어가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 ⓒ프레시안

정은진 :
사진으로서도 그렇지만 저널리즘 측면에서 보자면 아프가니스탄은 국제뉴스에서 굉장히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어요. 아시다시피 911사태가 일어났잖아요. 뉴욕, 필라델피아, 워싱턴DC에서 일어났지만 911사태의 배후인물로 주목되고 있는 알카에다의 빈라덴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비호하고 있던 세력이었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알 카에다가 성장했고, 911사태 이틀 전에 탈레반과 맞서 싸우던 아프리카 북부 동맹의 장군이 암살당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911 사건으로 인해 미국이 제일 처음 군사작전을 시작한 데가 아프가니스탄, 대테러 전쟁의 시작이 그곳이었고 11월 13일에 탈레반정권이 퇴각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세계 역사상 지금 아프가니스탄이 뉴스의 중심이고 탈레반이 퇴각한 다음 미군과 나토군이 점령해서 군사작전을 펴고 있고 탈레반은 남부에서 게릴라전투를 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아프가니스탄에 평화가 오지 않고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아프간은 굉장히 중요한 뉴스의 중심으로서 사진기자나 펜기자나 마찬가지로 기자라면, 국제문제에 관심이 있고 전 세계에서 이뤄지고 있는 서방 대 이슬람세계와의 분쟁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기 때문에 당연히 기자라면 현실을 봐야 되는 곳이고, 특히 사진기자들에게는 정말 아프가니스탄은 그동안 내전이나 탈레반이라든지 하는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아프간을 선택했어요.

박인규 : 사실 아프간이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게 2001년 911사태 이후인데 2006년도에 들어가셨으면 좀 늦게 들어가신 편이네요

정은진 : 그 전에는 솔직히 겁나서 못 들어갔어요. 주위에서는 아프간 한 두세 번씩 다녀온 친구들이 이 많았는데 그동안에는 제 자신이 준비가 안 돼서 못 들어갔어요.

박인규 : 우리나라 기자들도 사실 아프간이나 이라크에 들어갔지만 대개 한 달 이상 못 있고 일이주 있다가 나오고 그랬거든요. 언제 들어가신 겁니까?

정은진 : 2006년 8월에 들어갔어요

박인규 : 그 당시에는 어땠어요? 주로 카불에 계셨습니까?

정은진 : 네. 주로 카불, 아프간에 장기체류를 목적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일단 살고 있는 데를 마련하고 왔다갔다 했어야 했기 때문에 카불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그땐 이제 탈레반 퇴각 5주년이 돼 가고 있던 시기였어요. 그래서 뭐랄까 5년이란 많은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조금 잠잠했는데 9월 8일, 911사태 사흘 전에 대형자살폭탄 사건이 일어나고 그런 다음 탈레반이 계속 외국인 납치로 인해서 자기네들의 힘을 키우고 세력을 키워서, 하여간 10월부터 갑자기 탈레반의 영어로 하면 인서전시라고 하는데 반격작전? 공격이 굉장히 빈번해지고 옛날에는 아프가니스탄에 자살폭탄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이라크에서 자살폭탄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그쪽에서 보면 그게 효과적인 게릴라전술이라는 게 판명되니까 아프간에서도 이제 그런 수법이 계속 생겨나게 된 거거든요. 그러면서 춘계대작전이라고 해서 2007년 2월 말에 바그람 자살폭탄 사건, 딕 체니 부통령이 바그람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때 우리 윤장원 하사도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고 탈레반이 갑자기 군사적으로 강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약간 국제뉴스에서 잊혀져가던 아프가니스탄이었는데 그것 때문에 다시 주목받게 됐습니다.

박인규 : 2006년도 여름에 들어가셨다고 했는데, 들어가시게 되면 내가 어떤 걸 취재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우지 않습니까? 주로 전쟁 쪽이었나요?

정은진 : 저는 가는 데마다 그런 게 별로 없어요. 일단 들어가고 나서 현지에서 적응을 먼저 하고. 그리고서 기획의도가 어느 정도 있어야겠지만, 의도만큼 일이 항상 전개되진 않거든요. 현지에선 항상 돌발사태가 있기 때문에

박인규 : 일단 한국사람들은 아프간은 위험한 데, 좀 문명이 떨어진 데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책을 보고 좀 이상하다고 느낀 건 방세가 굉장히 비싸다.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정은진 : 왜냐면 외국인이 살려면 비쌉니다. 현지 물가는 낮지만 일단 유엔이 들어간 나라는 외국인이 사는 생활비나 물가 아니면 집세가 굉장히 높아요. 왜냐면 안전지역에 살아야 되고 특히 인터넷 값이 비싸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제반비용을 합치자면 정말 한 달 평균 미화 천 불, 우리나라 돈으로 100만원 정도가 집세로 들어가고 나머지 통역을 고용하거나 교통비는 따로 들어갑니다.

박인규 : 아프간이라는 나라는 극단적인 이슬람 국가고 특히 여성을 굉장히 억압하는 국가로 알고 있는데 아시아계 여성으로서 취재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정은진 : 어려움이 많았어요. 책에도 썼는데요, 우리나라 여자분들이 아주 많이 들어가셨어요. 아프가니스탄에

박인규 : 어떤 일을 위해서요?

정은진 : 기독교단체에서 많이 들어가시고, 2006년도 제가 들어갈 즈음에는 우리나라 분 2천 명이 카불 운동장에서 평화행진을 하신다고 해서, 그때 거의 여자분들과 애들이 많이 들어갔어요. 그랬는데 동양인, 특히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구별을 못하기 때문에 현지에서는 동양 여자라고 하면 굉장히 안 좋게 보고

박인규 : 왜 안 좋게 보죠?

정은진 : 일단은 중국 분들이 매춘업소를 많이 차렸어요. 그러니까 매춘업소가 생기고, 용역업체 사람들이 많이 있게 되면 매춘업소가 항상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매춘부들이 중국 분들이 많다 보니까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중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도덕적 가치를 빼앗으러 오는 아주 나쁜 사람들, 그리고 한국 분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빼앗으러 오는 사람으로 알고 있죠. 그래서 동양사람들을 아주 천시하고 미워합니다.

박인규 : 그렇다면 아시아계 여성으로 활동하기에 유리한 점은 하나도 없었겠네요?

정은진 : 거의 없어요. 게다가 아시아 저희들은 아프간에서 차별받는 소수민족인 하자라족과 외모가 거의 비슷해서 또 차별을 받습니다.

박인규 : 그럼 한 1년 정도 취재활동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신변의 위협 같은 거 당하신 적은 없습니까?

정은진 : 많이 당했죠. 방송으로 다 얘기하긴 그렇고, 제가 책을 낸 것도 책을 읽어보시고 아프간의 현실을 많이 아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아프간이라는 데가 그렇게 만만하게 볼 데가 절대 아니거든요. 상식을 뒤집는 곳이기 때문에 아프간이 정말 이런 데라는 걸 아셔야만 양국 간의 평화도 좀 있을 것 같아서

박인규 : 카불의 사진사라는 책에 본인이 1년 동안 겪으면서 느낀 아프간의 실상이 있다.
아프간에서 1년 동안 활동하시면서 아프간 산모의 사망, 젊은 산모던데 사진으로 찍어서 세계적인 보도사진전인 '페르피냥 포토페스티벌'에서 상을 받으셨어요. 우선 케어 인터내셔널 르포르타주 그랑프리. 어떤 상입니까?

정은진 : 인권문제를 다루는 상이고요. 케어 인터내셔널이라는 비정부단체에서 후원해서 매달 전 세계인권문제를 다룬 사진작품들을 선정해서 수상하는 거고 페르피냥에서 페스티벌 기간 중에 수상하는 상이고 한 10년 정도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쟁쟁한 다른 나라 사진기자 분들이 많이 수상하셨는데 제가 수상하게 돼서 정말 놀랐고, 그걸 수상함으로써 국내외 많은 분들이 아프가니스탄의 또 다른 내전과 탈레반 폭정의 또 다른 희생자가 있다. 바로 산모들이라는 걸 알리는 계기가 된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저도 그 사실을 많이 알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박인규 : 프리랜서 사진기자로서의 정은진씨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계기가 됐군요.
사진은 한 장이 아니고 일련의 사진들로 알고 있는데 어떤 사진입니까?

▲ ⓒ프레시안

정은진 :
그 사진은 제가 26살인 산모가 병원에서 제왕절개수술을 마치고 아들을 이미 낳고 회복실에 있는 장면부터 시작해서 산모가 사망해서, 주로 보통 이런 건 사진연작이라고 해요. 포토스토리라고 하는. 한 장으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여러 장의 사진, 케어 인터내셔널의 경우는 열 장의 사진이 규정이거든요. 그래서 열 장의 사진으로 어떻게 메시지를 전하느냐가 관건이에요. 그래서 심사위원들께서 보시기에는 회복실에 있는 모습부터, 이 산모가 원래 결핵환자였는데 제왕절개수술 이후 산후합병증으로 세 가지 산후합병증으로 인해 사망하고, 사망하고 나서 주검이 되어 다시 마을로 돌아가면서 마을 사람들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여정을 담은 사진 스토리에요. 그래서 스토리 전개가 내러티브가 심사위원들께서 보시기에는 이게 바로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스토리라고 생각하셔서 상을 주신 것 같아요.

박인규 :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아시아계 여성에 대해서 좋지 않게 본다. 그런데 카메라를 들고 죽음까지는 굉장히 사적인 문제인데 그런 걸 촬영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촬영이 가능했습니까?

정은진 : 그건 말씀드리자면 긴데요, 어쨌든 사진기자가 촬영을 하려면 거쳐가야 될 관문이 굉장히 많아요. 병원에 간다면 병원 관계자들에게 허락을 맡아야 되고, 그 지역에 있는 보건국에 허락을 맡아야 되고 여러 가지 허락을 맡고 그럼으로 해서 결국 병원에 들어가서 사진촬영을 하더라도 촬영하는 개개인들한테 승낙을 얻어야 되고 설득하는 작업이 굉장히 길거든요. 그래서 또 제가 전시회를 하는데 제가 찍은 산모사망률 사진을 보고 어떤 여자분께서, 저건 나도 찍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해요. 그럴 수는 있는데, 제가 또 책을 통해서 알리고 싶은 건 사진기자가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셔터를 누르기까지, 95%까지는 준비작업이 필요하거든요. 셔터를 누르는 데는 1초도 안 되는 시간이지만 그걸 위해서 사전작업을 하고 리서치를 하고, 그렇게 해서 여러 작업을 거쳐서 드디어 그 장소에 가서 사진을 찍기까지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많은 뒷얘기들을 알려드리고 싶어서

박인규 : 사진기자는 95 대 5군요. 저희는 펜대기자인데 80대 20입니다. 쓰기 전까지 80%. 26살 젊은 여성이 아기를 낳기 위해 제왕절개수술을 하고 죽었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겠죠. 아프가니스탄에 그런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을 받은 거 아니겠습니까?

정은진 : 아프가니스탄의 산모사망률이 전 세계에서 2위라고 합니다. 이건 유엔통계에 나온 거고, 1위는 시에라리온이고요. 아프가니스탄이 아프리가 국가들을 제치고 왜 2위인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너무 상황이 안타깝지만 정말 하기 힘든 취재고, 그런데 여러 분들이 많이 믿고 도와주셔서 병원 관계자들이 도와주셔서 가능하게 됐는데, 실제로 그렇게 해서 시각적으로 너무 충격적인 걸 보여주지 않고, 또 스토리가 될 수 있고 그러면서 잔잔한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드린 것 같아요

박인규 : 산모사망률이 높은 건 왜입니까? 전쟁 때문인가요?

정은진 : 굉장히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말씀드린 환자의 경우 같은 결핵은, 결핵도 간접적인 원인 중 하나고, 보건체계가 굉장히 열악하고. 가장 큰 문제는 내전과 탈레반 폭정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의 인프라가 다 파괴됐어요. 그리고 아프간은 아프리카도 그렇지만 산세가 험해요. 사막지역이고 해서 인프라가 다 파괴되고 도로가 파괴 다리가 파괴되고 다 내전 때문에 그렇게 됐는데 거기를 산모들이 당나귀를 타고 가야 돼요. 그런데 진통이 있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보건소에 가지고 못하고 중간에 길거리에서 많은 안 좋은 일이 있겠지요. 그래서 내전 때문에 산모들이 고통을 겪고 산모가 고통을 겪는다는 건 아이들한테도 문제가 있는 거고 그 나라 민족의 재생산, 인구문제에도 문제가 있고, 그러면 그 민족의 미래가 달린 일이기 때문에 산모사망률 문제는 정말 전쟁이 없어야 된다는 교훈을 많이 남겨주는 것 같아요

박인규 : 듣고 보니까 아시아계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이 많고 미군과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산모사망률도 높고. 이렇게만 보면 아프간은 사람 살 데가 아니라는 느낌이 드는데 실제로 인터뷰나 책을 보면 그래도 1년 동안 아프간에 살면서 인생을 배웠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어떤 이유에서인지

정은진 : 일단은 밑바닥 생활을 하기 때문에, 일단 아프가니스탄에는 전기가 잘 안 들어와요. 수도인 카불에도 이틀에 한 번씩 전기가 들어오고. 24시간 들어오는 게 아니라 저녁 7시부터 밤 10시까지 서너 시간 전기가 들어오고 끊기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봤을 때, 힘든 생활이긴 하지만 저희가 경제적으로 한 100년 200년을 뒤로 거슬러 살아가는 거지만 그 나름대로 만난 아프간인들이 물론 생활 자체는 피폐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좋은 분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극한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인간성을 많이 발견하게 돼요

박인규 : 작년에 페르피냥 포토페스티벌에서 상을 받으셨고 올해 또 일본에서 데이즈 재팬 상을 받으셨고 둘 다 아프간에서 찍은 작품이죠. 국내에서 개인전을 하셨는데 아프간의 주로 일상을 담았다고 들었습니다만. 보신 분들의 반응 같은 건 어땠습니까?

정은진 : 보신 분들, 사진 하시는 분들은 왜 좀 더 저널리즘 같은 사진이 없는가... 그렇게 불평하실 것 같고. 일단은

박인규 : 작품은 주로 일상적인 걸 담으셨나보죠

정은진 : 네. 인물사진들. 제가 일하면서 찍은 사진이 아니라 저널리스틱한 사진보다는 인물사진을 많이 했어요. 일이 없을 때 틈틈이 필름작업한 사진들이거든요. 일단 저는 그쪽이 더 애착이 가고, 두 번째는 신문박물관이 굉장히 여러 연령층이 많이 오고 가시는 데에요. 어린이들도 단체관람을 많이 하는 데라서, 좀 하드한 뉴스사진보다는 어린이들도 공감할 수 있는 사진, 온가족단위로 많이 오시기 때문에 강도는 약간 마일드하게 제가 사진들을 골랐고요. 물론 사진기자고 저널리즘 하는 사진기자기 때문에 언젠가는 정말 저널리즘을, 뉴스사진, 보도사진을 엮어서 전시회를 하고 싶고 사진집도 내고 싶은 욕심은 있죠

박인규 : 일단 아프간에 1년 계셨으니까, 그 뒤에 아프리카도 다녀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주로 사진기자들은 주로 분쟁지역, 문제가 있는 지역을 다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정은진 : 활동계획은 잘 모르겠고, 저도 분쟁지역뿐만 아니라 다른데도 다니거든요. 그런데 분쟁지역이 어떻게 부각돼서 그렇게 된 것 같고. 일단은 뭐 저도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계획은 없고요. 그 다음에도 또 분쟁지역이라고는 제가 단정지을 수는 없어요.

박인규 : 제가 포토저널리스트라고 소개했습니다만, 우리들은 보도사진작가 또는 사진기자, 이렇게들 많이 이야기하는데, 우선 서울대에서 미대 동양화를 전공하시다가 대학에 가서 미국에 가서 사진을 공부하시고 보도사진을 찍게 됐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정은진 : 동양화과 다니다가 사진수업을 듣게 됐고요. 그 수업에서 선생님이 점수를 잘 주셔서 거기에 고무받아서.

박인규 : 사진도 굉장히 분야가 많잖아요. 인물사진만 찍는 분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는데, 특히 보도사진은 쉽지 않은데

정은진 : 제가 여러 취재원들과 교통하면서, 소통하면서 사진작업을 사실을 담아서 작업하고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매료돼서 뉴욕대학교에 진학하고 솔직히 뭘 해야 될지 몰랐어요. 대학에서 순수예술을 했었기 때문에 파인아트... 순수예술 쪽 사진도 생각해보고 여러 가지 분야를 생각해본 건 당연한데, 그 중에서도 또 제가 학교 다니면서 뉴욕에 있는 차이나타운에서 중국과 대만에서 온 이민자들이 경극단을 운영하면서 나름대로 미국사회에서 중국문화를 알리는 분들이 계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분과 한 학기동안 생활하고 같이 여행도 다니면서 공연도 하고. 그렇게 그 분들과 소통하면서 정말 그 작업에 보람을 느끼게 되더라구요. 그런 걸 시작으로 해서 아무래도 저널리즘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박인규 : 일부에서는 세계적인 보도사진작가가 되려면 꼭 전쟁터나 분쟁지역을 가야 되느냐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도 있고요. 하지만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보도사진작가가 되기는 쉽지 않은데, 나름대로 정은진씨가 그 속에서 살아남은 비결이랄까요? 좋은 보도사진작가가 되려면 어떤 게 필요합니까?

정은진 : 일단 저도 사진을 하면서 계속 그런 질문이 저를 괴롭혔어요. 도대체 어떻게 하면 훌륭한 보도사진가가 될 수 있을까. 그런데 정말 정답은 분쟁지역 가야 되고요. 정말 저는 솔직히 말씀드리는 거예요.

박인규 : 그건 아마 누구도 그런 사진을 찍기 힘들기 때문에 그런 모양이죠? 위험하지만

▲ ⓒ프레시안

정은진 :
위험하지만 분쟁지역에 있는 사진들이 인간성을 어떻게 표출하느냐. 그 시대정신을 담을 수 있고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같은 데를 가면 그 시대적 흐름을 개발이 안 됐기 때문에 시대적인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데가 여러 군데 있어요. 어쨌든 찍기만 하면 그게 전부 시대정신을 담고 있기 때문에, 하다못해 길거리 다니는 어린애, 길에서 연을 날리는 어린 아이들조차도 전부 탈레반 정권 때 연날리기를 금지했었고. 여성들의 문제라든지 어린 아이들, 아동노동이라든지 또 하다못해 탈레반 때 이슬람교에서는 속살을 보이면 안 되기 때문에 그게 보디빌딩이 금지되고. 여러 가지 시대정신을 담고 있기 때문에

박인규 : 세계사의 모순이 집약적으로 모인 현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분쟁지역에 간다 하더라도 누구나 좋은 사진을 찍을 순 없는 거 아닙니까. 뭐가 필요하죠? 어떤 준비가 필요하죠?

정은진 : 일단 눈치가 빨라야 되고, 일단 사진기자들은 이슈와 빛을 쫓아야 돼요. 그래서 빛과 상황과 대상을 어떻게 찾아내느냐. 대상이 어디 있고 어떤 상태며 어디를 찾아가야 되는지 그런 것도 잘 알아야 돼요.

박인규 : 아프간 취재를 통해서 여러 개의 상을 받으시고 책도 내시고. 보도사진가로서 한 획을 그었다고 생각되는데 앞으로의 계획을 마무리말씀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은진 : 일단 올해의 큰 뉴스는 베이징올림픽과 미 대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미 대선에서 예를 들어 오바마가 승리할 가능성이 있다면 아무래도 아프리카에 관심이 좀 돌려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케냐 쪽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앞으로 포토저널리스트 정은진씨의 많은 활약을 기대하겠습니다.

정은진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포토저널리스트 정은진씨를 초대해 그녀가 아프가니스탄을 선택했던 이유와 치열한 포토저널리스트의 세계에 대해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